< 133화. 15-16시즌 이적 시장. (7) >
소하가 친구이자 체력코치인 김용한과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무렵.
포츠머스의 언론지부터 시작해 모든 잉글랜드 신문지는 본격적으로 ‘아다마 트라오레’의 이적설을 터뜨렸다.
[포츠머스의 최우선 타겟은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 ‘아다마 트라오레’.]
[이적 시장이 한 달이나 지나서 시작된 포츠머스의 첫걸음. 많은 서포터가 기대했던 대로 ‘대어’를 노린다.]
[‘라 마시아’ 출신 대형유망주를 노리는 성소하 감독. 측면자리에 새로운 스타일의 선수를 원한다.]
[예상 이적료는 500만 파운드에서 700만 파운드. 포츠머스가 감당한 범위.]
[몰래 이적을 진행하던 애스턴 빌라. 갑작스러운 포츠머스 난입에 식은땀을 흘린다.]
잠잠하던 포츠머스의 이적 시장이 단숨에 불타올랐다. 특히나 너무나 조용한 이적 시장에 내심 불만이 많던 포츠머스 서포터들의 반응은 미쳐 날뛰기 일보 직전에 처한다.
-오오···. FM 3대 마(馬)중 하나인 아다마라고?
-젤송 ‘마’르티네즈, 브루마, 아다마, 이 셋 명마 중 하나인 아다마잖아?
-포츠머스에는 없는 스타일이긴 하지. 정말 기대된다.
-바르셀로나의 이단아! 기술 축구를 가르치는 곳에서 나온 몸 축구를 하는 선수지.
-그런데, 가장 필요한 포지션은 오른쪽 윙백 아니었어? 설마···.
-에이. 성 감독이 아무리 포변충이라고 해도 아다마를 개조시키진 않을 거야.
온라인에서는 소하를 너무 만만히 봤다. 혹은, 제대로 봤다거나.
소하의 포지션 변경은 워낙에 유명한지라 누구나 예측하기 쉬운 편이기도 했다.
‘멀티 포지션은 현대축구의 핵심이니까. 하나만 잘해서 먹고살려면 진짜 엄청나게 잘해야지.’
대표적으론 폴란드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있다. 전방 공격수 역할 하나만으로 신계 바로 밑까지 치고 온 선수였으니까.
사실, 레반도프스키가 굉장히 독특한 경우였다.
몇 년 뒤 월드클래스 급 공격수 해리 케인도 9번과 10번 사이를 오가는 플레이를 했으며,
현 월드클래스인 루이스 수아레스도 중앙과 측면 포워드를 왔다 갔다 할 정도다.
신계라 불리는 호날두나 메시 또한 다양한 공격 포지션을 자랑하는 선수들.
멀티 포지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왔다는 증거였다.
이 때문에 축구 좀 안다고 자부하는 전문가들은 소하의 의중을 제대로 잡아내 칼럼을 내기도 했다.
-성소하 감독이 아다마 트라오레를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포츠머스에는 없는 스타일의 윙어이기도 하며, 윙백으로서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성소하 감독은 여러 선수의 포지션 변경을 성공적으로 이끈 감독. 영입에 성공만 한다면 최고의 이적이 될 것이다.
물론, 호평만 남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우려의 시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서포터들이 귀를 기울이기에는 충분한 주장이다.
-성소하 감독은 유망주를 키우는데 도가 튼 감독이다. 하지만, 과연 그 ‘라 마시아’에서도 포기한 머리가 나쁜 선수를 갱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요는, 아다마 트라오레라는 선수의 좋지 않은 평가였다.
축복받은 피지컬에 반비례하는 처참한 축구 지능. 이것을 과연 소하가 제대로 만져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미 ‘조쉬 킹’이라는 멍청이도 사람으로 만든 감독이야.
-암만 돌대가리라도 조쉬 킹만 할까?
-성소하 감독은 변태가 분명해. 멍청이들을 조련하는 맛에 중독된 거지.
다만, 부상으로 입원한 조쉬 킹이란 선례 때문에 우려 섞인 시선은 매우 적은 편이었다.
가레스 사우스 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에게 탈모를 선사한 전설적인 일화!
그 주인공을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수 유망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소하였으니까.
이래저래 한 달간 남들이 하는 이야기나 지켜보던 포츠머스 팬들에게는 마냥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아다마 트라오레의 영입에 매달렸던 애스턴 빌라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아, 이게 뭐야. 그러니까 진작에 빨리 끝내라고 했잖아.
-하. 나 참. 질질 끌 때부터 알아봤다.
-뭘 쫄아? 상대는 어차피 2부리그라고? 1부리그인 프리미어 리그에 속한 우리가 훨씬 유리해.
-그건 다른 팀일 때 이야기잖아. 포츠머스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2부리그라고.
-난 모르겠다. 성소하 감독은 직접 설득하러 스페인까지 갔다는데, 우리 감독은 뭐 하는 거야?
영입을 질질 끈 프런트에 대한 비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낙관론.
이미 망했다는 비관론.
우리 팀의 감독은 뭐하냐는 불만.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이상 애스턴 빌라의 프런트가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과감하게 바르셀로나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애스턴 빌라,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합의. 기존에 고수하던 700만 파운드를 포기했다.]
[바르셀로나 측, 원하는 이적료에 고개를 끄덕이며 협상을 마무리. 이제 선수와의 개인 협상만 남았다.]
어찌나 급했던지, 한 달 내내 끌던 협상을 그대로 바르셀로나 측에 맞춰줘 버렸다.
구단 간의 협의가 끝났다면 이제 구단과 선수의 협상만이 남는 법. 하지만 애스턴 빌라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마다 트라오레는 급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다마 트라오레, 많은 구단에서 제의가 왔기에 조금 더 심사숙고할 것.]
에이전트를 통해 여론몰이를 시전.
일단 두고 보면서 포츠머스의 제안을 들어볼 생각을 내비쳤다.
-···그냥 포기하자.
-뭐? 많은 구단에서의 관심? 지금 우리랑 포츠머스밖에 없잖아.
-저런 놈은 나중에도 뒤통수칠 놈이야. 털고 딴 선수를 노려보자.
들끓는 애스턴 빌라 서포터들의 여론.
아다마 트라오레의 태도는 애스턴 빌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다른 팀도 아니고 포츠머스니까.”
같은 프리미어 리그 팀이나, 다른 유럽의 1부리그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다. 영입 경쟁은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부리그의 관심에 자신들의 제의를 고민한다는 사실은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였다.
결국 혼돈으로 빠져드는 아다마 트라오레의 이적 사가.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드디어 포츠머스의 프런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지난 2년 동안 소하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두 손으로 세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중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인 사람을 떠올리자면, 먼저 러시 윌콕스 감독이 떠오를 거다.
러시 윌콕스.
4부리그의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의 감독. 그리고 그는 소하는 만나고 2년 만에 스컨소프의 신이 되었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가 지옥 같은 혈전 끝에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해냅니다! 기적이에요! 이제 다음 시즌 챔피언십 리그에서 그들을 보게 될 겁니다!]
소하와 마찬가지로 2년 연속 승격에 성공한 러시 윌콕스 감독. 포츠머스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은 스컨소프라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아니, 소하가 없었다면 소하가 누리는 영관은 그의 차지였을 거다.
“성소하라는 초신성이 내뿜는 빛에 가려졌지만, 그 또한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 위대한 감독임이라는 사실에는 반반할 여지가 없다.”
평론가들의 극찬처럼 소하라는 강적을 상대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에 성공한 러시 윌콕스 감독.
그 또한 소하에게 많은 걸 배웠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친구야.’
소하를 떠올리며 콧방귀를 뀌는 러시 윌콕스 감독. 소하만 아니었다면 모든 영광은 그의 차지였을 터. 덕을 봤어도 얄밉긴 하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는 언젠간 소하와 제대로 술 한잔하고 싶다는 마음이 엿보였다.
이어서 러시 윌콕스 감독과 비견되는 내부인사가 있다.
바로, 잭 밀러 수석코치.
2년 전 그의 평가는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능력에 비해 과한 욕심을 가진 중년.
-영국 중년의 수치.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잭 밀러가 수석코치가 된 일도 포함해야 한다. 세 살배기 수준의 전술적 안목으로 수석코치라니. 불가사의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등등.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뤘던 잭 밀러의 평가.
하지만, 현재는 평가가 전혀 다르다.
-포츠머스에 없어서 안 될 살림꾼.
-불가사의가 풀렸다.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수석코치지만 뛰어난 인재였다.
-영국 중년의 모범.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 물론, 완전히 달라진 평가는 소하가 가장 먼저 나서 긍정할 만큼 정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잭 밀러의 뒤를 이어 ‘에밀리아 존슨’ 또한 진화의 한 축이었다.
2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에 불과했던 갈색 머리의 귀여운 여성. 현재는 광고계의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연봉은 원하는 데로 드립니다. 우리 회사에 오시죠?
-존경합니다. 어떻게 그런 광고를 만드실 수가 있죠?
-조그마한 축구팀의 팀장에 머물 재능이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재능을 꽃피우셔야 합니다. 저를 위해서, 광고계를 위해서라도요.
영국은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대단한 구애를 받는 그녀. 이런 열정적인 제안은 모두 그녀가 만든 ‘생존 일기’라는 독특한 너튜브 홍보물 덕분이었다.
-에밀리아 존슨은 광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우아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던 광고계에 B급 감성으로 충격을 주었다.
소위 말하는 ‘병맛’ 광고를 전 세계로 퍼뜨린 장본인이었다. 본디 개척자란 그 길이 험난할지언정 과실은 달콤한 법.
상상도 못 할 거액을 제안받는 그녀였지만 대답은 항상 같았다.
“전 포츠머스에서 일하는 게 즐거워요. 그리고 때로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답니다.”
왠지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얼굴로 거절을 하는 에밀리아 존슨.
그녀가 돈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언인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다.
혹은, 한 사람만 모르던가.
하여튼, 잭 밀러와 에밀리아 존슨이 가장 두각을 내는 포츠머스의 인물들이란 사실엔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람 또한 존재했다. 그는 바로, 기술 이사이자 구단 내 협상가인 ‘알버트 위버’.
2년간 소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협상의 기술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바로 그였다.
‘와.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다. 같은 사람인 게 믿기지 않는군.’
‘또 하나 배워가는군. 저 얄미울 정도의 연기력! 협상은 연기력이 중요해.’
‘같은 편인 내가 봐도 부끄럽군.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도 저 정도로 드러눕진 않았어.’
‘썩은 미소라. 보다 보니 매우 정이 가는걸? 나도 연습해야겠어.’
‘조금 더 졸렬하게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점점 발전, 혹은 타락해가는 알버트 위버. 뭐가 됐던 그는 엄청난 협상가로 각성해버렸다.
“해서···. 500만 파운드 일시금에 훗날 우선 협상권을 드리겠습니다.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좋습니다.”
순식간에 300만 파운드를 깎아버리고 바르셀로나와 협상을 끝내버렸다.
실로 놀라운 협상력!
이는 소하에게서 배운 상대의 마음이 들었다 놨다 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우선 우선 협상권. 이건 바르셀로나로서는 군침이 돌 수밖에 없지.’
어느 특정 선수에 대한 우선 협상권이 아니다. 그저, ‘훗날 있을지도 모르는’ 허깨비 같은 미끼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 감독님은 유망주를 잘 키우기로 소문이 자자하신 분.’
훗날 바르셀로나에서 탐을 낼 만한 선수가 등장한다면? 그때 먼저 협상해주겠다는 권리였다.
그렇다고 아예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알버트 위버의 생각처럼 소하는 유망주 키우는데 도가 튼 사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큰 미끼다.
‘바르셀로나가 노린다면 수많은 다른 구단도 노릴 터. 그 아수라장에서 먼저 협상할 수 있는 권리는 큰 이득이다.’
이 권리로 200만 파운드쯤 깎아버린 알버트 위버. 그리고 ‘일시금’ 카드로 100만 파운드를 마저 깎았다.
종종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이적료를 일시금으로 지급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이 ‘할부’ 형태였다.
차근차근 몇 년 동안 이적료를 지급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일시금은 매우 드문 일.
이런 시장에서 재정적으로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던 바르셀로나에 일시금이란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일단 선수들의 주급을 내줄 현금 뭉텅이는 언제나 환영이었으니까.
[바르셀로나, 포츠머스의 구단 간 합의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개인 협상일 뿐.]
이러한 이유로 순식간에 결판이 난 아다마 트라오레의 구단 간 협상.
이제 남은 것은 기사의 내용처럼 개인 협상뿐이었다.
***
“환영한다.”
손을 맞잡는 소하와 아다마 트라오레.
아다마 트라오레의 개인 협상은 의외로 쉽게 끝이 났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선수가 굳이 프리미어 리그 팀을 배제하고 챔피언십 리그로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김용한을 소개받은 아다마 트라오레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었다.
“난 무조건 포츠머스로 간다.”
김용한의 우람한 근육을 연신 훔쳐보며 선언한 아다마 트라오레. 헬스에 미친 놈이란 특성을 제대로 공략한 소하의 승리였다.
‘게다가 우리는 떠오르는 샛별이니까.’
단순히 근육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하의 설명, 그러니까 애스턴 빌라의 암울한 미래와 포츠머스의 밝은 미래를 연신 비교하는 ‘설득’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비방이었지만···.’
썩은 미소를 한껏 짓는 소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용한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친구지만 가끔···.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자, 그럼 슬슬 기사나 봐볼까.”
소하는 한껏 들떠 공항 탑승구로 향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어···?!”
호쾌하게 스포츠 기사 탭을 누른 소하. 썩은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굳어버린다.
“음? 무슨 일이냐?”
갑작스러운 소하의 태도 변화에 의구심이 든 김용한. 그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또한 소하처럼 굳어버린다.
[포츠머스, 리버풀의 ‘마리오 발로텔리’ 임대 이적 임박!]
상상치도 못한 소식이었다.
< 133화. 15-16시즌 이적 시장.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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