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15-16시즌 이적 시장. (5) >
기자회견이 끝나고, 대한민국에서는 수십, 수백 개의 기사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성소하 감독, ‘중국 축구는 쓰레기.’]
[성소하 감독, ‘인류애가 없는 민족답게 축구에서도 동업자 의식이 없어.’]
[대노한 성소하 감독, ‘중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을 바에는 자살하고 만다.’]
[‘축구는 무협지가 아니다.’ 거듭 이어지는 성소하 감독의 통렬한 비판!]
[단단히 뿔이 난 성소하 감독. 투어 경기를 엉망으로 완결지은 중국팀에게 속 시원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소카콜라’, ‘나에겐 돈보다는 선수의 안위가 우선.’]
소하의 첫마디는 그저 몸풀기였을 뿐.
기자회견 내내 중국팀의 욕을 하다가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 퇴장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한국인 특유의 걸쭉한 욕설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의를 차리는 ‘척’하면서 날려대는 폭언은 예술에 가까운 평을 얻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단순히 소하와 중국팀의 감정 불화로 끝나지만은 않았다.
[이것이 알고 싶다, 스포츠계에서 중국 시장의 영향력.]
상상 이상으로 일이 커져 버렸다. 상정 외의 대단한 파장을 일으키게 되어 ‘이것이 알고 싶다’, 특별편까지 제작. 성황리에 방영을 시작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거 모자이크 처리랑 음성변조 되는 거 맞죠?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축구관계자로 보이는 한 인물이 방송화면 한쪽을 모자이크로 일그러뜨리며 등장했다. 몇 차례나 신원 비밀을 부탁한 그는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속이 시원했어요. 요즘 중국을 이렇게 대놓고 욕할 사업체가 어디 있겠어요? 다들 중국 눈치를 보느라 쩔쩔매죠.
-그 말씀은···?
-스포츠도 사업이에요. 그리고 사업가가 중국이랑 척 진다는 건 장사 접겠다는 뜻이죠. 그만큼 중국 시장의 수입은 어마어마해요. 광고 단가만 봐도 열 배 차이도 쉽게 나는 시장이니까요. 돈을 벌라면 당연히 쩐주 앞에서 설설 기어야죠.
비록 상암에서 벌어진 경기였지만, TV 중계의 광고 수입은 엄청났다. 훗날 괜히 많은 유럽의 명문 구단들이 ‘중국몽’을 꿈꾸는 게 아니었다.
-다만, 솔직히 말해서 중국과의 비즈니스는 정말 불편하죠. 꽌시를 위시한 이상한 인간관계와 자신들이 언제나 갑이 되고 싶어 하는 갑질은 상대하는 처지에서 정말 열이 뻗쳐요. 설설 기며 온갖 비위를 맞춰줘야지 그제야 생색을 내면서 계약을 맺어주죠. 자기도 이익을 보는 계약에서도 말이죠.
기업 간의 계약이란 ‘상호이익’이 전제로 깔린 행위다. 즉, 서로 얻어가는 게 있다는 것. 누군가가 동냥 주듯 해주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사업체는 결국 이익을 좇아야 하니까요. 이 모든 걸 감내할 만큼 중국 시장의 영향력은 매우 크거든요.
13억의 인구수.
이는 엄청난 경제력을 가지게 됐다.
과장하자면, 대한민국 강남 부자들이 몇천만 명이나 있다는 이야기다.
한 나라 인구수 정도의 거부들. 돈이 될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중국 시장을 내동댕이치는 행위는, 웹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화끈한 모습이죠. 엄청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하네요.
나름대로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인터뷰를 마치는 신원미상의 인물.
그리고 계속해서 ‘이것이 알고 싶다’ 팀은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자이크 맞죠? 시원한 욕이었어요. 성소하 감독님은 직업을 잘못 고른 것일지도 몰라요. 유능한 래퍼가 될 수도 있었는데요.
-소문에는 중국팀에게 모종의 거래가 왔다고 해요. 다 의도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감독으로서 낙제점일지도 몰라요.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포츠머스 프런트는 골치가 아프겠어요.
-이로써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하던 포츠머스의 기세도 한풀 꺾이겠네요.
그저 좋기만 한 옹호론,
말도 되지 않는 보이는 음모론,
사실에 입각한 비판론,
냉정하게 미래를 바라보는 예측까지.
등등. 상당히 여러 반응이 나왔다.
이래저래 미국 다음의 초거대 나라를 맹렬히 비판하는 건 놀라운 일이라는 방증이었다.
“흥.”
대형 사고를 친 뒤 영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소하. 끊임없는 중국 매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콧방귀만 뀌며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금 열광했지만, 구단 내부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
7월 말. 챔피언십 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투어를 마치고 온 포츠머스는 겉보기에는 매우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외부에서 멋대로 판단한 착각일 뿐. 대형 사고를 친 소하가 클럽하우스에 얼굴을 들이밀자마자 긴급회의가 열렸다.
대외적인 명목은 ‘이적 대체위원회’였지만, 실상은 소하의 청문회라고 봐도 좋은 자리다.
참여한 인물들도 쟁쟁하기 그지없다.
포츠머스의 CEO, 브라이언를 위시한 구단의 이사들이 총집합했다.
여기에 각 단의 단장들까지.
작년 새롭게 선수단 단장으로 부임한 유해진의 얼굴도 보인다.
구단주 리처드 맥닐을 제외한 포츠머스의 모든 별이 총집합! 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 명의 남자, 소하에게 쏠려있었다.
“감독님, 이번 사건으로 중국 측의 광고회사에서 환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감독님. 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금 참으셨어야 합니다.”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한 대전략이 깨어졌습니다. 대책을 마련해 두셨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포츠머스 관광을 거부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구단 운영진의 조심스러운 비판 섞인 질문들. 소하가 암만 구단 내의 영향력이 크다 해도,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일 뿐이다.
구단의 체계를 평범한 회사로 설명하자면, 차장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부장은 단장이 있어서 아쉽게도 달지 못한 정도.
물론, 상무, 전무 같은 이사진보다 영향력이 큰 부장이었지만 말이다.
“자자, 일단 다들 조용히 합시다. 감독님의 말을 먼저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브라이언.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꽃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발 새끼가.’
소하는 어금니를 세차게 깨물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지만, 꾹 참는다. 일단, 저지른 죄가 있으니까.
세계화를 부르짖었음에도 세계화에 큰 변수를 만든 건 변명이 불가능한 큰 실책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이도 아니고 소하 자신이 제일 잘 알았으니까. 적당히 참아야 할 시점이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일단, 변명하지는 않겠어요.”
싱긋 웃는 브라이언을 한번 꼬아준 뒤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다.
“큼큼. 가, 감독님.”
“이, 일단 조금 반성하는···.”
“무, 무슨 방도라도 마련하신 겁니까?”
개선장군 같은 태도에 역으로 당황하는 이사진들. 혹시나? 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 성소하 감독님이니까.’
‘하긴, 정치적 감각은 감독의 재능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람이었지.’
‘역시 감독님이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고를 칠 위인이 아니지. 괜히 망한 구단을 부활시킨 사람이 아니라니까.’
역시, 성소하를 외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감에 부푼다. 물론, 소하는 그들의 망상을 이루어줄 마법사는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뭔 대책이요. 그냥 열 받아서 내지른 건데요? 아저씨들 화낼 때 이것저것 다 생각하고 내질러요? 아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뚱한 답변을 내놓은 소하. 눈빛에는 헛된 망상을 품지 말라는 경고까지 담겨있다.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불릴만한 뻔뻔함이 아닐 수 없다.
“···.”
“···.”
“···.”
할 말을 잃은 이사진들. 길 가다가 당첨된 로또 용지라도 주웠다고 믿을만했던 브라이언도 웃음기를 쫙 빼고 머리를 내젓는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리 큰일이 아니라는 점이죠.”
소하는 브라이언의 썩은 표정을 잠시 즐기다가 말을 잇는다.
“일단, 회사는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거예요.”
슬슬 웃으며 소하는 미리 준비한 여러 가지 서류 더미를 꺼낸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 쪽에서는 최악의 이미지를 가지게 됐죠.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어떨까요?”
소하가 성의가 없게 나눠준 서류를 받아보는 구단 경영진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해한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른 나라에서의 호감도는 올랐다는 조사에요.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진 않았겠죠. 중국이 비호감 국가라서 살았어요.”
“···.”
기업은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축구 구단이란 특수한 기업은 더더욱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상품이 아닌, 이미지를 파는 기업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비호감 국가인 중국을 욕했다고 이미지에 큰 타격을 얻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광고 계약금 환급은 개소리니까 그냥 넘어가도 되겠죠?”
싱긋.
헤실헤실 웃는 소하. 계약서가 어디 공중화장실의 휴지도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환급 요구는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줄 뿐이었다.
“또한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소하는 또다시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 모두에게 나눠준다.
“보세요.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면 다른 나라의 관광객이 오르는 흥미로운 지표가 보일 거예요.”
“···.”
“사실, 해외여행 가보시면 알 거예요. ‘아 저 새끼 몰상식하네’ 싶으면 백중 90은 중국인이니까요. 오히려 줄어드는 게 관광지 입장에서는 좋은지도 몰라요.”
소하의 말에 중역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소하가 말한 경험은 한 번쯤은 겪었으니까.
몇몇은 이번 여름휴가 때 겪은 일이라 감탄사마저 나오며 긍정하자, 소하는 썩은 미소를 짓는다.
‘후후. 계획대로군.’
그럴싸한 자료들과 그럴싸한 언변으로 정작 중요한 문제를 잊게 하는 악랄한 수작이 너무 잘 먹혔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는 소하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한 번 꼬아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브라이언. 유일하게 소하의 수작질에 넘어가지 않은 그는 침착하게 의표를 찌른다.
“언제 이런 자료를 다 준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훌륭하시군요. 하지만, 중국 시장 공략 실패 때문에 일어날 수입 감소와 세계화가 난관에 부딪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
너무나도 날카로운 공격에 소하는 썩은 미소를 지은 채 굳어버렸다. 여기에 대해서는 딱히 답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말을 하긴 해야 하는 법.
그때 당시 느꼈던 마음가짐을 모두에게 전하기로 한다.
“물론 금전적인 면에서는 손해를 보겠죠. 하지만, 만약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글쎄요? 돈을 많이 벌었겠죠.”
싱긋 웃으며 맞받아치는 브라이언. 소하는 그의 미끈한 대머리에 뚫어뻥을 꽂는 상상을 하며 반론을 펼친다.
“돈을 벌었겠죠. 그리고 선수들과 서포터들의 마음은 잃었을 겁니다.”
“!!”
소하의 말에 브라이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길지 않은 소하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대번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돈이 아니에요. 그건 단지 수단일 뿐이죠. 수단을 위해 목적을 버릴 순 없었어요. 이게 다입니다.”
소하가 마저 말을 마치자 모두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길이 험난해진다고 종착지를 바꾸는 우를 범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의 말씀은 백번이고 천 번이고 옳습니다.”
순순히 소하의 말에 동조하는 브라이언. 무슨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꼬투리를 잡으려면 골백번도 더 가능했으니까.
“그래도 약간의 보여주기식 징계가 필요하다 봅니다.”
“···그건 그렇죠.”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소하.
감정대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건 조직에서는 큰 위협이다. 만약, 이번 사건이 소하가 아닌 평범한 스태프였다면?
그냥 끝나지는 않았을 거다.
즉, 이건 소하가 아닌 다른 직원들에게 감정적으로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렇다 해도 구단에서 가장 중요하신 감독님에게 벌을 주기도 그렇죠. 솔직히 말해, ‘해준 게 얼만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
점점 불안해지는 소하.
‘저 새끼가 왜 저러지. 뭔가 단단히 준비한 거 같은데.’
너무 악의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 할지도 모르지만, 소하는 이번에도 옳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이 감독님의 너무 많은 업무부담으로 생긴 사건이라고 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신 거겠죠.”
“···?”
“때문에, 우리는 감독님이 짊어진 업무를 일정 부분 나눠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뭐, 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적 시장에서 조쉬 킹의 빈 자리가 매울 선수의 영입은 저희 프런트에서 진행해볼까 합니다.”
“···.”
결국 목적이 있었다. 축구팀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인 이적 시장에서의 영입 권한을 노린 브라이언의 노림수였다.
“물론, 이번 시즌만 실험적으로 해보자는 겁니다.”
소하가 발작하기 1초 전, 재빨리 브라이언은 선수를 쳤다.
“만약 성과가 좋지 않다면 바로 다음 시즌부터는 발을 빼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잘 풀린다면 이래저래 좋을 겁니다.”
“그건 인정해요.”
어차피 언젠가는 나눠줘야 할 권한이다. 구단이 커질수록 모든 것을 소하가 관리할 수는 없었으니까.
근 2년 동안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괜히 소하가 휴가 때마다 쉬고 싶다고 난리를 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순간 갑자기 권력을 부여하기도 애매한 법. 예행연습은 필요했다.
‘유해진도 동의했군.’
소하는 슬쩍 묵묵히 그를 바라보는 유해진을 훔쳐봤다. 유해진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미안함이 가득하다.
‘그래,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지. 어차피 정치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법. 이번에는 조금 내어줘야겠군.’
어찌 보면 큰 실수를 이 정도로 합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부디 괜찮은 선수를 영입해주시길 바랄게요. 아시겠지만···.”
나직이 말을 줄이는 소하. 뒷말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알겠습니다. 성에 차지 않는 선수라면 감독님은 절대로 기용하지 않으시겠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번 믿어보죠.”
순순히 소하와 브라이언이 합의를 끝내자 회의장은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들의 예측으로는 피바람이 몰아치는 칼춤이 한번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진짜 목적인 이적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죠. 감독님께서는 오른쪽 윙백을 원한다고 하셨는데, 생각해둔 선수가 있으십니까?”
이제야 본 의제로 넘어간 대책위원회. 브라이언의 물음에 소하는 당연히 준비되어있었다.
“아다마 트라오레.”
2015년, 현 바르셀로나 B팀의 이단아였다.
< 131화. 15-16시즌 이적 시장.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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