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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30화 (130/306)

< 130화. 15-16시즌 이적 시장. (4) >

포츠머스의 의료진들은 서둘러 경기장에 난입했다. 상당히 굳어있는 그들의 표정은 상암과 포츠머스의 심정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으으으.”

왼쪽 발목을 부여 잡은 채 몸을 웅크린 조쉬 킹. 그를 서둘러 진단한 의료진들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심각하게 상황을 주시하던 소하에게 사인을 보낸다.

-절레절레.

세차게 내젓는 고개와 양팔로 X를 만드는 모습은 모든 이들의 심장을 내려앉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린. 일단 나가라.”

“네.”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안토니오 그린에게 투입을 명하는 소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가 따로 없다.

‘개새끼들이···.’

백번 양보해서 중요한 경기였다면 하나의 전략으로 넘어가 줄 순 있다.

하지만 이 경기는 단순한 ‘친선전’이었다. 경기의 승패보다는 경기 자체로 얻을 이익과 과정에 의의를 둔 친선경기였단 말이다.

이런 경기에서 저렇게 과격한 경기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거늘. 조금은 걱정하긴 했지만 정말 이렇게 막 나갈 줄은 소하의 예상 밖이었다.

“상태는 어때요?”

이윽고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조쉬 킹을 애써 외면하며 소하는 의료진에게 물었다.

“정밀검진을 해봐야 자세한 상태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뭔지는 얼추 예상을 할 수 있잖아요?”

“흐음. 일단 골절로 예상되긴 합니다. 즉, 인대도 심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하아.”

소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대파열 및 발목 골절이라니. 최소한 6개월짜리 부상 아닌가.

2년을 부상 한번 없이 건강하게 뛰었던 선수가 당했다기엔 상태가 너무 위중했다.

“시발. 죽일 작정으로 태클을 했다는 소리잖아?!”

으르렁거리는 소하. 절로 욕이 나왔다.

가진 거라곤 튼튼한 몸 밖에 없는 조쉬 킹이 저 정도 부상을 당했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단순한 경합 과정이 아니었단 증거이기도 했다. 경합 때문에 저 정도로 다친다면 현역 선수들의 절반은 의족을 달았을 터.

하긴 저 튼튼한 선수가 다치려면 고의로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후우. 일단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주세요. 보고도 잊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감독님.”

서둘러 조쉬 킹을 데리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의료진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한국의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잉글랜드에서도 완치할 수 없다고 선고했던 내 다리를 완전히 고쳐준 곳이기도 하지.’

낮은 의료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지표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의료계에 존경심을 표하는 소하.

조쉬 킹은 분명히 다시 일어날 거라고 굳게 믿으며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

“우우우우우!”

“꺼져라!”

“더티 차이나!”

조쉬 킹의 부상으로 잠시 중단된 투어 경기 마지막. 66,704석을 자랑하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야유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만석을 달성한 만큼, 야유소리도 역대급 볼륨을 자랑. 옆 사람의 목소리마저 듣기 어려울 만큼 비판과 비난이 폭주 중이다.

[아! 관중들이 화가 났습니다. 하기야 젊은 선수가 악의적인 ‘공격’으로 다친다면 분노를 참기 어렵죠.]

[중국팀은 스포츠정신과 동업자 정신을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고작 20세의 선수가 비명을 지르며 경기장을 떠났어요.]

해설과 아나운서도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중국팀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가 당한 일처럼 모두가 분개한다.

물론, 경기장 내의 포츠머스 선수들만큼은 아니었다.

“개자식들···.”

“쿵후를 하네?”

“참을 만큼 참았다.”

동료의 부상에 눈알이 돌아간 포츠머스 선수들. 그 거친 잉글랜드 하부리그에서도 이렇게 분노한 적은 없었다.

잉글랜드에서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위해 태클을 하는 건 매우 드물었으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우습게 보였나 본데···.”

“거친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줄게.”

“하, 감독님한테 혼나도 이건 못 참겠어. 불벼락을 맞더라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간다.”

포츠머스 선수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에 흉흉한 안광을 뿜어댔다.

평소 페어플레이를 중요시하는 포츠머스와는 정반대의 분위기.

그리고 포츠머스의 선수들도 거친 플레이라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이다. 그들이 뛰는 리그는 다름 아닌, ‘그 잉글랜드’였으니까.

단지 그들의 보스인 소하가 거친 플레이를 극히 싫어하기에 자제했을 뿐. 말랑말랑한 순둥이들이 아니다.

나이만 봐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이 가장 많은 팀 아니던가. 가장 혈기 왕성한 나이 때였다.

[이런, 경기가 너무 거칠어집니다. 포츠머스 선수들이 잔뜩 흥분했어요. 태클을 마구잡이로 난사합니다.]

[양 팀의 감독들이 선수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여요!]

원래 거칠었던 중국팀과 분노한 포츠머스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럴 때야말로 팀의 지도자인 감독이 나서서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할 때.

하지만, 중국팀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니, 양 팀 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

묵묵히 경기장을 바라보기만 하는 소하. 이상한 일이다. 분명 소하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조쉬 킹의 빈자리라···. 이거 이적 시장에 엄청난 변수가 생겼군.’

맞불 작전을 놓은 것이 아니다.

그저 시선은 경기장이었지만 사고는 미래로 향했을 뿐. 그만큼 조쉬 킹의 부상은 큰 위기였다.

‘애초에 오른쪽 윙백에만 투자하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꼬였어.’

원래는 가진 오백만 파운드를 모조리 쏟아부어 든든한 오른쪽 윙백을 영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팀의 주포가 쓰러지며 이적 시장 전략은 물론, 시즌 전반기에 대한 대대적인 전략수정이 필요한 상황에 부닥쳤다.

‘공격진이 빵빵하다는 평가는 어디까지나 킹이 버텨주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

조쉬 킹이 없다면, 절대 훌륭한 공격진이 아니다.

안토니오 그린은 공중볼 능력을 제외한다면 3~4부리그 수준의 선수.

존 말로리는 머리 회전이 빠르지만, 한계가 명확한 선수.

에링 홀란드는 재능은 확실하지만 아직은 너무 어린 선수.

즉, 든든한 조쉬 킹이 없다면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선수란 이야기다.

이들만 가지고는 승격을 달성하기엔 불가능한 법. 새로운 공격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전급 선수를 또 사와? 이건 말이 안 돼.’

조쉬 킹이 아예 시즌 아웃이 된 것도 아니다. 아직은 소하의 예상에 불과하지만 3~4개월쯤의 공백을 가질 뿐이었으니까.

여기서 킹급의 선수를 데리고 온다면.

훗날 선수단이 너무 비대해져 버린다.

‘비대해진 선수단은 재정 파탄의 지름길. 이 망할 구단은 한번 겪었던 일이야.’

잉여 선수가 생긴다는 건 한두 푼이 아닌 ‘주급’이 허공에 사라진다는 뜻이다.

영세구단인 포츠머스로서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임대인데. 임대로 조쉬 킹 급의 선수를 어떻게?’

미래의 지식으로 선수검색을 빠르게 진행해보는 소하. 아쉽게도 쉽사리 임대로 합류할 만한 수준급의 공격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방법이 있을 거다.’

소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경기장은 없다. 그렇게 깊은 고뇌에 빠져들어 가려는 순간.

흔들흔들.

소하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을 일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감독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아직 경기가 진행 중입니다!”

수석코치, 잭 밀러의 등판! 소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덕에 누구보다 먼저 소하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이다.

“아···!”

“일단은 지금 경기를 무사히 끝내고 나서 후일을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아, 미, 미안해요. 상황은 어떻죠?”

소하의 물음은 잭 밀러는 서둘러 심각하게 대꾸한다.

“아주 개판입니다. 빨리 감독님께서 손을 쓰지 않는다면 불이 날지도 몰라요! 대화재일 겁니다.”

밀러가 말한 화재란, 조쉬 킹의 뒤를 이어 또다시 발생하는 부상자다.

“큼큼. 알겠어요. 일단 전원 선수 교체를 준비해주세요.”

밀러의 말을 대번에 이해한 소하. 재빨리 대규모 선수 교체를 지시하며 경기장을 향해 고함친다.

“얘들아! 진정해라! 똥이 무섭다고 같은 똥이 되려고 하냐?! 멍청이들아?!”

크앙! 사자의 포효 같은 소하의 엄청난 고함에 눈이 돌아갔던 선수들은 금세 제정신을 차린다.

“어···. 어? 가, 감독님이 정신을 차리셨어.”

“하긴 같은 놈들이 될 순 없지.”

“부끄럽다.”

세상 무서운 거 없다는 듯 거친 태클을 일삼던 이들이 금세 꼬리를 내린다.

소하의 뛰어난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자신들도 ‘이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품고 있었던 덕분이다.

이 때문에 조금 가라앉는 경기장 분위기.

이 틈을 타 포츠머스는 대규모 교체를 실행한다.

[포츠머스가 많은 선수를 바꿔줍니다. 조쉬 킹을 대신한 안토니오 그린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하네요.]

[아쉬운 일이지만 좋은 판단입니다. 또 다른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소하와 포츠머스를 옹호하는 해설과 아나운서.

그리고 소하의 특별한 주문을 받은 교체선수들은 남은 후반전을 매우 느리게 가져간다.

경합을 최대한 피하며 축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경기를 펼치는 포츠머스.

소하의 주문으로 몸을 굉장히 사리다가 한 점을 실점하기에 이른다.

결국 경기는 2-1 포츠머스의 신승으로 마무리된다.

화려하게 시작해 온갖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흥행 성공으로 달려가던 포츠머스의 한국 투어 경기.

끝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마치, 잘나가던 시트콤이 커피 베네 로고를 띄우면서 사망 엔딩으로 끝난 격이었다.

***

“진단 결과 4개월은 경기에 나설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경기 종료 후, 소하가 제일 먼저 받은 보고 조쉬 킹의 상태였다.

“4개월이라···.”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다고요?”

친선경기에서 이런 부상을 당했는데 운이 좋다고 하다니.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닌지라 소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큼큼. 그게 말입니다, 보통 이렇게 심각한 발목부상은 인대와 근육도 엉망이 되길 마련입니다.”

“그런데요?”

“놀랍게도 뼈가 부서졌을지언정 나머지는 멀쩡하다는 겁니다.”

“음? 그게 말이 돼요?”

의학지식이 별로 없는 소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신체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대란 뼈와 뼈를 연결하는 섬유조직. 이런 부위가 뼈가 부서졌는데도 멀쩡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저도··· 처음 보는 상황이라. 뼈가 조각날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음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운이 좋다고 말한 겁니다.”

“···운이라···.”

“혹은 인간 자체가 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맞겠네요.”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하. 뼈가 부서진 것도 큰 부상이었지만 인대파열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뼈는 다시 붙었으니까.

한번 손상된 인대는 복구하기 불가능에 가까워,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도 부상 자체로만 보자면 매우 뼈아팠다.

“4개월이라···.”

뼈가 부러지는 것 정도야 한두 달이면 멀쩡해진다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수준이다.

축구 같은 격렬한 스포츠에 다시 임하기 위해선 좀 더 단단히 붙을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후우.”

안도와 스트레스가 섞인 한숨을 내뱉던 소하는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분노한다.

“개새끼들.”

인자강, 인간 자체가 강한 조쉬 킹이 이정도 부상이다. 즉, 다른 선수였다면 시즌 아웃도 충분히 가능한 부상이었단 말 아니던가.

“기자회견장에서 단단히 지랄해 주마. 어디 한번 잡종견의 개지랄이 뭔지 보여줄게.”

마음을 독하게 먹은 소하. 기자회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한다.

하지만,

“참으셔야 합니다. 대의를 잊으시면 안 돼요. 한 번만 참으면 됩니다. 한 번.”

“이대로 강력한 비판을 하신다면 조쉬 킹의 부상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꿈을 생각해주십시오.”

구단 프런트들의 만류가 쇄도했다. 딱히 난장을 피울 거라고 떠벌리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다 쉽게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렇게 중국과 척진다면, 정말 말 그대로 조쉬 킹의 부상은 개부상이었다.

“···.”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소하. 심상치 않은 걸음걸이로 기자회견으로 향했다.

***

‘그래. 앞만 생각하자.’

소하는 정말 꾹 참았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소를 버리는 것 정도야 별거 아니지 않은가.

성질부린다고 조쉬 킹의 부상이 하룻밤 만에 완치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2-1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중국축구의 수준이 말입니다. 점수만 보자면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중국축구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습니까?”

“···.”

앞뒤 사정거리지 않고 툭 던진 중국 기자의 ‘첫’ 질문.

이것은 소하의 하나 남은 이성과 인내심을 저 외우주 밖으로 날려버리는 스위치였다.

‘아니, 생각해보자. 대의가 뭐란 말인가? 구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야. 선수를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놈이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가식을 떨 수는 없는 거잖아.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딴 돈, 다른 데서 벌면 되는 거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자기 합리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의였다.

돈 앞에 굴복해 선수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구단과 감독을 어느 선수들이 따르겠냐는 거다.

돈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중국축구의 수준이요?”

“네! 상당히 강력했지요?”

씹어 삼키는 듯한 소하의 음색에도 태연하게 반문하는 중국의 기자.

이로써 플래그는 성립됐다.

“오늘로써 확신했어요.”

“네?”

“중국축구는 개쓰레기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축구단 말고 길거리 깡패랑 해도 이거보다는 수준 높았을 겁니다.”

“···.”

“제가 예언하는데, 중국은 월드컵 참가국이 211개국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말했잖아요. 쓰레기니까요. 아아, 아마도 중국이 월드컵에 나오는 그날이 축구의 종말을 선언하는 날이 아닐까 싶네요. 축구 종말의 날이랄까. 정말 두렵네요.”

기어코 작렬해버린 소하의 무자비한 독설! 무자비하게 말을 내뱉은 소하는 속이 시원한지 무척 편안한 표정이 된다.

물론, 이를 지켜보던 포츠머스의 관계자들은 얼굴을 감싸 쥐며 주저앉는다.

하지만, 그들 또한 속이 시원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 130화. 15-16시즌 이적 시장.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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