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15-16시즌 이적 시장. (2) >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뭘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천재적인 전술안?
뛰어난 지도력?
화려한 언변?
넓은 시야?
냉철한 판단력?
현재와 미래를 보는 안목?
등등. 감독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손가락으로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이런 수많은 요구 능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꼽기엔 너무나도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이 유구한 전통인 vs 놀이를 쉽게 그만둘 리는 없는 법.
덕분에 소하도 상당히 많은 질문을 받았다.
“뭐가 가장 뛰어나야 하냐고요? 다 뛰어나야죠. 뭘 말이라고. 네? 하나만 꼽으라고요? 아니 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듣고 싶다면 전 운이라고 생각해요.”
대충 답변한 소하. 그래도 운이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긴 했다. 아무리 잘났어도 운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소하는 조금 부족했는지 한 가지 덧붙였다.
“다중작업 능력도 중요하죠. 일점돌파 전술은 축구판에서 먹히지 않거든요.”
의외의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모 전략게임의 프로선수도 아니고 멀티태스킹 능력이라니? 소하다운 뚱딴지같은 소리였지만 의외로 많은 감독은 소하의 답변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중작업 능력이 필요할까? 그것은··· 소하의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씨발. 경기 준비하랴, 이적 시장 준비하랴 선수훈련 세션 준비하랴. 존나게 바쁘구만.”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금 서류 더미에 얼굴을 파묻는 소하.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고 소하의 몸은 하나뿐이었다.
감독에 집중된 과한 업무!
이것 때문에 점점 현대축구는 분담화가 되고 있었지만, 포츠머스는 사정이 달랐다.
거의 모든 업무가 소하를 통해 진행되는 상황이었으니까.
혹자는, 소하가 구단 내부의 권력 욕심이 너무 강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씨부렁거리는 개소리에 불과했을 뿐.
‘뭐? 권력? 니미 시발. 나도 감독 일만 하고 싶다고. 그런데 너희 같으면 구단을 한번 말아먹은 새끼들한테 고삐를 쥐여주고 싶겠냐고.’
브라이언을 위시한 프런트에 모든 권한을 넘긴다? 이건 말도 되지 않는다.
물론, 프런트에 유능한 사람도 있었지만 아직은 너무 극소수였다.
그렇다고 단장과 업무를 분담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다.
‘유해진은 아직 자기 공부에도 허덕이는 상황이니까.’
많은 도움이 되고는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유해진은 초보 단장. 특유의 성실함으로 선수 때보다 훨씬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 풋내기에 불과하다.
지금은 그저 소하의 뒤에서 얼굴마담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 됐지만 말이다.
‘아직은 내가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해. 우리 프런트는 성장이 더 필요하다.’
앞으로 최소한 3년. 3년은 코피를 줄줄 흘려줘야만 안심하고 힘을 나눠줄 수 있을 거다.
‘많은 인재가 무럭무럭 크고 있으니까. 뭐, 나만 서리맞은 거지.’
하여튼, 서울의 고급 호텔에서 세 가지 업무를 모조리 처리하는 소하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더 놀라운 건 이미 다음에 있을 중국과의 경기 준비와 훈련 준비를 대부분 마치었다는 사실.
비록 회귀라는 기적을 손에 넣었지만, 그 또한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이는 중이다.
괜히 ‘운’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운이 없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해서, 이번 시즌 이적 자금은 약 500만 파운드 정도로 예상됩니다.
널찍한 모니터에서 브라이언이 특유의 머리를 빛내며 보고를 마치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9,000km라는 물리적 거리를 극복한 화상회의 중이다. 주제는 당연히도 이적 시장.
“500만이요? 생각보다 적네요.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게다가 이번에 새끼 스폰서도 많이 받았다면서요.”
얼굴을 찡그리며 툴툴거리는 소하. 물론 500만 파운드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한화로 80억이나 하는 거금이니까.
이 액수는 유럽 내에서 10위 리그인 챔피언십 리그에서도 평균을 조금 웃도는 자금이기도 했다.
-···.
“더군다나 우리는 재정 건전성만큼은 잉글랜드 내에서도 최고일 텐데요. 운영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입을 이적 자금으로 전환할 수 있잖아요. 우린 빚도 없으니까.”
소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맥닐 구단주가 구단을 구매하면서 모든 빚을 탕감했기에 빚은 없는 상태.
게다가 소하의 등장으로 포츠머스는 엄청난 수입을 거두는 중이다.
빚도 없는데 들어오는 돈은 많다? 이적 자금이 넉넉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큼큼. 물론 감독님의 말씀처럼 저희는 상당한 현금을 가진 상황입니다.
“그런데요.”
-돈을 많이 벌었다고 모조리 다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미래를 위해서 투자할 부분도 있으니까요.
“이적료가 미래를 위한 투잔데요.”
-감독님의 말씀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그래도 선수만으로는 구단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디다 쓰려는데요?”
계속 공격적인 소하의 반문에도 브라이언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답변한다.
-프런트에도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해야 하고 노후화된 훈련시설 및 경기장 보수와 증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죠.
“···그건 나쁘지 않네요.”
순순히 인정하는 소하. 시설 보수는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더군다나 일손의 충원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항상 손이 모자라는 게 포츠머스의 상황이었으니까.
-하하. 역시 감독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잉글랜드로 복귀하시면 곧바로 자세한 명세서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
소하는 할 말을 잃었다. 기분이 나빠서? 아니다. 그저, 이 눈앞의 대머리가 일을 너무 잘해서 그렇다.
‘뭐지? 곧 죽을 날이 다가왔나? 그건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사람이 너무 바뀌었잖아?’
매우 협조적인 브라이언의 태도는 불안하기까지 하다.
‘···찜찜하군. 이 너구리 새끼가 아무 의도 없이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올 리가 없는데.’
브라이언이 우호적으로 나오자 오히려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소하. 자연스럽게 두 눈이 가늘어진다.
그 모습에 브라이언은 절로 헛기침이 나온다.
-흠흠. 무, 물론, 기타비용을 제하더라도 재정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역시 그렇죠?”
그러면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하를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포츠머스에 관한 일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는 미래를 봐야 할 때 아닙니까?
“···음?”
-감독님의 3년 계획이 성공하신다면 내년에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경쟁을 펼칠 겁니다.
“그렇죠.”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간다면 영입할 수 있는 선수들의 질 차이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때를 위해서 조금 저축해두자는 이야기입니다.
“···.”
브라이언의 말에 소하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간다면 접촉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와 질은 차원이 다를 테니까.
‘그때 팍팍 쓰기 위해 올해는 조금 아끼자, 이건데 말이야···. 나쁘지 않아.’
지금까지는 명성이 부족해 손대지 못하는 수많은 유망주를 입맛대로 골라올 수 있는 환경이 될 터. 그때 돈을 펑펑 쓰자는 계획은 어찌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혹자는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가면 얻는 수익으로 영입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좀 다르지.’
허더즈필드 타운 AFC는 16-17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며 2,500억을 손에 쥘 거라는 평을 받았고, 정확한 계산이었다.
그렇다고 승격하자마자 그 엄청난 금액을 받는 건 절대 아니다. 승격해서 1년 내내 벌어들일 돈을 예상한 것일 뿐. 즉, 승격한다고 돈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막상 올라가도 주머니가 휑하다는 이야기지.’
물론,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하다.
바로, ‘대출.’
미래에 2,000억을 벌 수 있는 게 확실하다면 은행에서 2,000억을 빌려주지 않겠는가. 어차피 회수가 확실하니까.
이 말은, 승격하자마자 공격적인 이적을 진행하는 신생팀들은 대출을 끼거나 구단주의 폭발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이 아니야.’
구단주가 막대한 지원을 해주리라 믿기도 어려울뿐더러 대출을 받는 건 소하 본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은행의 노예가 될 순 없다!’
소하가 바라는 진정한 포츠머스는 ‘훌륭한 재정 자립성을 지닌 강한 팀’이다.
마치, 동화책에서나 나올 이상적인 팀이지만 이미 소하의 인생 자체가 동화 아니던가.
‘적절한 대출로 구단을 발전시키는 건 좋다. 하지만···. 과연 우리 팀의 프런트가 잘할 수 있을까?’
아직 프런트에 불신이 강한 것도 대출을 꺼리는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구단도 아니고 포츠머스는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파산을 눈앞에 뒀던 구단이었으니까.
“나쁘지 않네요.”
-그래서 말입니다···.
역시나. 소하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한 모습을 보이자 브라이언은 말꼬리를 늘이기 시작했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 감독님의 방향성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방향성이라···.”
-즉, 이번에도 대규모 ‘임대’를 진행할 것인지 여쭤본 겁니다. 감독님은 그간 이적보다는 임대를 선호하셨으니까요.
브라이언의 질문은 보기보다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임대란, 즉 선수를 빌려오는 행위.
요컨대 단기적인 영입이었다.
그에 반해 이적이란 선수와 수년의 계약을 맺는 행위.
장기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는 큰 프로젝트였다.
즉, 브라이언은 이번 시즌의 이적 시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것이냐, 단기적인 관점에서 볼 것인지 물어본 거다.
“흐음.”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하는 소하. 일단 큰 그림을 그려둔 상태이긴 하다.
‘중앙 미드필더와 중앙수비는 빵빵해서 당분간 영입은 필요 없고···.’
소하가 그간 가장 공들였던 부분이 팀의 척추인 중앙 쪽이다.
이미 이쪽은 뛰어난 선수들도 한가득하다. 오히려 주전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 굳이 새로운 선수를 데려올 이유가 없다.
‘공격수도 문제없고.’
보통 원톱을 사용하는지라 중앙 공격수는 3명이면 차고 넘쳤다.
이미 조쉬 킹, 안토니오 그린, 존 말로리, 에링 홀란드. 이 4명을 보유한 포츠머스에 더 많은 공격수를 영입하는 건 낭비다.
게다가 현 주전인 조쉬 킹은 부상도 없는 강철 몸 그 자체인 선수. 안토니오 그린도 슬슬 재계약을 준비 중이라 공격수는 머릿속에서 지워도 된다.
‘그리고 미래에는 홀란드가 있으니까.’
훗날 무르익은 조쉬 킹과 에링 홀란드라는 두 주포를 가지게 될 터.
운만 좋다면 향후 10년 정도는 공격수 걱정이 없다.
‘이래저래 필요한 건 오른쪽 윙백, 그리고 좌우 윙어들. 그중에서도 오른쪽 윙백이 가장 급하다.’
오른쪽 윙백은 임대했던 엑토르 베예른이 아스날로 돌아갔고, 현재는 매튜 다이스 한 명밖에 없어서 가장 큰 구멍이다.
‘이번에는 이적으로 채우는 게 좋겠지.’
단기적인 방법인 임대로 계속해서 근근이 버티기에는 현대축구에서 너무나 중요한 포지션이다.
“오른쪽 윙백의 ‘이적 영입’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어요. 알고 있겠지만요.”
-그렇군요. 임대가 아니라 이적이라. 잘 알겠습니다. 그럼 감독님께서 사용하실 500만 파운드로 적합한 선수를 스카우트하겠습니다. 물론, 생각해둔 선수가 있으시겠지만요.
“글쎄요. 일단은 스카우트 보고서부터 받아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경기도 훌륭하게 치러주시길 기대하겠···.
-뚝.
브라이언의 작별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통신을 끊어버린 소하. 굳이 보기 싫은 얼굴을 더 볼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매우 예의가 없었지만 말이다.
‘흐음. 너무 잘 풀린단 말이지.’
통신을 끊은 소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일이 술술 잘 풀린다. 그래서 불안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던 때가 있었나? 이러면 꼭 무슨 일이 터지던데···. 아니지. 아니야. 재수 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말이 씨가 된다고.’
머리를 세차게 내저으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털어내는 소하. 그간 너무 고생했기에 드는 억하심정이라고 일축한다.
‘그럼 선수나 생각해보자고.’
한쪽 뇌로는 내일 있을 경기를, 반대쪽 뇌로는 영입할 선수를 생각하는 소하.
과연, 다중작업 능력이 감독에게 왜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그였다.
< 128화. 15-16시즌 이적 시장.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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