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15-16시즌 이적 시장. (1) >
기세등등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맞붙은 포츠머스와 부산.
각자의 목표는 달랐지만, 승리를 원한다는 마음가짐은 다르지 않았기에 치열한 경기가 예상됐다.
하지만, 경기의 양상은 두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놀라웠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4-4-2 포메이션으로 시작한 포츠머스. 4-4-2 특유의 ‘단순함’으로 부산을 손쉽게 요리하기 시작했으니까.
전반 7분.
도르트문트 이후로 리버풀보다 먼저 전방 압박의 대표가 된 포츠머스가 강렬한 압박을 시도, 부산의 진영에서 공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부숴버려!”
전방의 조쉬 킹에게 깔끔한 전진패스를 건네는 칼빈 필립스.
동시에, 조쉬 킹의 짝으로 선발로 출장한 존 말로리가 영리한 더미런으로 수비진에 혼란을 줬다. 실로, 완벽한 호흡!
“으아아!”
두 골을 넣지 못하면 선발 5경기 금지라는 어려운 임무를 가진 남자, 조쉬 킹.
괴성을 내지르며 부산의 수비수들을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 제압해버린다.
“와아아! 드디어 나왔다!”
“파워 킹!”
“속이 시원해지는 플레이야.”
우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관중들은 매우 좋아한다.
괜히 여름에 액션영화가 인기가 많은 게 아니었으니까.
단순, 무식, 과격, 파괴!
무더운 더위를 날려버리는 데에는 이만한 볼거리도 없었다.
-쾅!
수비수들을 모두 제압했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 조쉬 킹은 다리를 번쩍 들며 특유의 불꽃 슛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영거리 폭격.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서의 조쉬 킹의 강슛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반응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철썩!
몰려든 관중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내려 주는 소리와 함께 포츠머스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른 시즌에 포츠머스의 선제골이 나왔습니다! 강력한 압박 이후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기회를 그대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군요.]
[조쉬 킹, 듣던 모습보다 훨씬 무서운 선수입니다. 탱크가 돌진하는 듯한 묵직함이었습니다.]
피지컬로 유명한 잉글랜드 무대를 힘으로 제압한 것이 조쉬 킹이다.
가뜩이나 인종적 특성 때문에 신체적으로 달리는 판에 그를 부산의 수비수가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예견된 순서였다.
[과연, 성소하 감독이 호언장담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 포츠머스입니다.]
[휴식기 이후로 처음 맞이한 경기임에도 경기력이 상당하군요.]
유명 국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처럼 포츠머스의 모습은 시즌 중과 다를 바가 없다.
폐관수련의 대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포츠머스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몸이 100%가 아님에도 이 정도 파괴력이라니?’
‘아무리 봐도 경기력은 전성기와 비교해 한참 떨어져 보이는데.’
‘그렇다는 건···.’
팀의 저점이 높아졌다는 뜻이었다.
즉, 선수로서 팀으로서 한층 더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이를 증명하듯 포츠머스 선수들은 점점 경기 감각이 올라오는 듯 훨씬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전반 15분.
4-4-2 특유의 시원시원한 측면돌파로 다시금 부산의 진형을 초토화한 포츠머스.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도봉산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린다.
“나이스, 봉!”
목표는 당연하게도 조쉬 킹! 소하의 임무를 15분 만에 클리어할 절호의 각도가 나왔다.
하지만, 조쉬 킹은 예전의 그 조쉬 킹이 아니었다.
“선배, 발발 돌아다니기만 하느라 슛 쏘는 거 잊은 건 아니지?”
펄쩍 뛰어 모든 수비수의 관심을 끌어모은 조쉬 킹은 순간 노 마크 기회를 잡은 존 말로리에게 헤더 패스를 건넨다.
실로 그답지 않은 매우 영리한 플레이.
정말 저 선수가 무식하기로 유명해,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탈모를 유발한 조쉬 킹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직 슛은 내가 너보다 나아.”
코웃음을 치며 조쉬 킹의 헤더 패스를 깔끔하게 자기 소유로 만든 존 말로리.
-툭.
가볍게 골문을 향해 공을 밀어 넣는다.
조쉬 킹의 강슛과는 정반대인, 매우 효율적이고 정확한 슛!
슛은 마지막 패스다, 라는 격언을 절로 떠오르게 하는 깔끔한 골이었다.
[순식간에 추가 골을 득점하는 포츠머스! 정말 강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강한 팀이네요. 부산의 상태가 나쁜 편이 아닌데 말이죠.]
포츠머스의 압도적인 강함에 혀를 내두르는 해설과 아나운서. 그리고 축구관계자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은 공통으로 한 가지 거대한 벽을 느껴버린다.
‘이건··· 전술 이전의 문제다···!’
그렇다. 소하의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전술적 역량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고 고전적인 4-4-2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니까. 단지 지난 2년간 숙성된 전방 압박만 가미되었을 뿐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너무나도 압도적이다.’
이것이 바로 소하가 단순한 전술을 가져온 이유였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중2병 같은 대사를 읊조리는 소하. 그는 단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신이 없는 포츠머스라도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경기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
-삑! 삑! 삑!
성황리에 시작된 포츠머스의 투어 경기 1차전의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결과는 6-1.
포츠머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조쉬 킹은 전반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자신의 평가가 과대포장이 아니었음을 증명. 그 호쾌한 플레이로 강렬한 인상을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하하하! 전 예전의 조쉬 킹이 아니라고요. 네오-조쉬 킹이라고 불러주세요!”
물론, 아직 경기장 밖에서는 소하의 자비로운 주먹이 필요한 애새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여튼, 전반전에만 4-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포츠머스.
후반전에는 선수들을 대거 교체하며 편하게 경기에 임했다. 덕분에, 부산이 한 골을 넣긴 했지만, 이미 결정된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정말 감독님 말씀처럼 ‘수준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많은 비판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증명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조금 주눅 든 이한율 기자. 국내 축구 쪽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당연하게도 소하의 발언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가 이렇게 날이 선 질문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소감이랄게 있나요. 승리는 승리일 뿐이에요. 즉 이겨서 기쁩니다.”
일부러 진상을 부린 이한율의 질문에 시큰둥하게 답변하는 소하.
너무 맛이 약했다. 밍밍했다.
이 정도로 소하를 발끈하게 만들기에는 턱없이도 부족한 도발이었다.
물론, 모범적인 답변에 이한율은 더는 소하를 물어뜯을 순 없었다.
명분도 없었을뿐더러 소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지.’
암만 친 국내파라고 해도 눈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미래를 위해 꼬랑지를 내릴 필요를 아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 그래야지.’
히죽 웃으며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감상한 소하. 한껏 기분이 좋아진 그에게 다음 질문들은 일도 아니었다.
***
이어진 전북과의 경기. 부산과는 다르게 상당한 강팀이다.
솔직히 부산은 전북에 비하자면 약팀에 불과하다.
전북은 모기업도 현성이라는 빵빵한 대기업에, 성적도 줄줄이 따라와 2010년대의 국내리그를 지배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따라서 이번에는 포츠머스와 호각을 겨룰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고, 경기 초반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역시 전북! 부산을 박살 내 버린 포츠머스와 전반 20분까지는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는군요.]
[성소하 감독은 부산전과 마찬가지로 4-4-2 포메이션을 들고 왔지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맞춤 전술과 부산과 같은 이유로 활활 타오르는 승부욕.
이 둘의 결합은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켜 포츠머스를 고전케 했다.
“흐음. 만만치 않구만.”
전반 25분. 소하는 턱을 쓰다듬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국내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는 익히 알았지만 상정 외였으니까.
‘내가 조금은 국내리그를 무시했을지도 모르겠는걸?’
다른 팀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북만큼은 챔피언십 수준에는 도달한 모습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해볼까.’
이제야 해볼 마음이 생겼는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하. ‘축구는 감독 놀음’이란 말이 있듯이 감독의 영향력은 엄청났고 소하의 움직임에 경기장이 떠들썩거린다.
“오. 성소하 감독이 드디어 벤치에서 일어났어.”
“드디어 이리저리 고함치며 TV에서 보던 모습을 보여주는걸?”
“역시 전북이야. 성소하 감독의 진심을 끌어낼 팀이란 거지.”
역시,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스타다운 후폭풍이었다.
‘그냥··· 전술 변경 지시만 간단히 한 건데···. 왜 부끄럽지?’
그저 단순한 지시였을 뿐이었는데. 상상 이상의 호응을 얻자 괜히 뻘쭘해졌다. 흡사, 몰래 방귀를 뀌려고 엉덩이를 틀었는데 자리를 비키는 줄 알고 감사 인사를 받는 기분이랄까.
‘큼큼. 뭐···. 그러려니 하자.’
소하는 잠시 헛기침을 하며 경기장을 다시금 주시한다. 곧바로 퍼지는 소하의 지시! 포츠머스는 약속이라도 한 듯 변화무쌍한 위치변경에 성공한다. 실로 대단한 짜임새였다.
[대단합니다. 성소하 감독의 짧은 지시만으로도 전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대형을 갖추는군요.]
[이것이 바로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성 감독의 지도력이죠.]
일단 소하의 칭찬을 하고 보는 해설과 아나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에는 이것만큼 쉽고 편한 길도 없었다.
그리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단순한 지시만으로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보기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 드디어 나옵니다. 지금의 포츠머스를 만든 그 전술이에요!]
[시대를 앞서나간다고 평가받는 포츠머스 특유의 2-4-4시스템이 가동합니다.]
[단순한 2-4-4시스템이 아니죠. 경기 내내 W-M 혹은, 2-3-5시스템을 자유롭게 오가며 상대의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는, 대단히 공격적이고 진보한 전술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면, 드디어 포츠머스가 원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치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진짜 힘을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에요.]
해설과 아나운서는 침을 튀기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마치었다.
그만큼 잉글랜드를 떠들썩거리게 했던 포츠머스의 참모습은 그들조차 실제로 보고 싶은 모습이었으니까.
그리고 포츠머스는 그들의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켜주기 시작했다.
***
부산 6-1 승리.
전북 4-2 승리.
서울 3-1 승리.
3경기 13골 4실점.
그야말로 포츠머스가 잉글랜드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한 듯한 경기 결과였다.
더군다나 포츠머스는 엄연히 원정팀.
축구에서 홈과 원정의 차이는 상당히 유의미한 차이였고, 더군다나 9,000km라는 거리 차이도 있었기에 놀라운 경기 결과였다.
[‘수준 차이’를 여실히 느껴버리다.]
[성소하 감독과 포츠머스의 강함을 제대로 느낀 국내리그.]
[잘 싸웠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미디어들은 연신 입방정을 놀려댔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너무 일방적인 경기만은 아니었다.
전북은 2-2 동점까지 만들었으나 후반 중반부부터 무너져 버려 아쉽게 패배했고,
서울은 단단한 수비로 전반전 무실점이란 결과를 보여줬으니까.
단지, 소하가 아시아 축구의 약점인 ‘신체 능력’의 열세를 너무나도 잘 이용했을 뿐이었다.
‘말했잖아. 하부리그는 피지컬이 깡패라고. 아시아는 하부리그의 대명사지.’
암만 대한민국이 아시아인치고는 체격이 크다 해도 어디까지나 아시아인.
유럽의 덩치들에는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포츠머스로 예를 들면, 케빈 도슨과 찰스 말로리. 찰스 말로리야 잉글랜드산 불곰이기에 넘어간다 치더라도 케빈 도슨도 만만치 않다.
지적이고 모범생다운 외모지만 막상 그의 덩치는 찰스 말로리보다 컸으니까.
이미지 때문에 작아 보이는 편이었을 뿐.
아니, 다 떠나서 잉글랜드에서 수비수로 살아남기 위해선 큰 덩치는 필수였다.
‘괜히 덩치 큰 남자가 이상형인 나탈리가 반한 게 아니라고. 하긴, 그 덩치 큰 놈이 밖에서 쓰레기 줍고 있었으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여하튼 국내리그를 모조리 두들겨 패버린 소하와 포츠머스. 다음 상대인 일본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얘넨 더 약하잖아.’
나날이 강해지는 리그였지만 10년 후에도 피지컬을 극복하지 못한 축구다.
요컨대, 피지컬을 앞세운 소하에게는 더욱 쉬운 상대라는 뜻.
‘제대로 혼내줘야지. 암만 내가 혼혈이라도 일본에는 질 수 없지.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말이야···.’
한국인답게 단단히 작심한 소하.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모국은 신나게 패버리고, 일본은 살살 때린다? 바로 오늘부터 내 부모님은 이완용이 되는 거지.’
친일파는 죽어도 되기 싫었던 소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단단히 경기를 준비. 결과는 흡족하게 나왔다.
[포츠머스의 7-0 대승리. 일본의 기술 축구는 더 뛰어난 기술에 먹혀버렸고, 약한 피지컬은 단단한 암반에 부딪혀 가루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선수교체도 천천히 하며 최대한 리그 경기처럼 전력을 다했다.
그야말로, 시즌 중에 만난 것과 다름없었다는 이야기.
일본의 프로팀에겐 재난 같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막을 수 없었으니까.
‘자, 그럼. 마지막으로 중국전인데···. 후. 불안한걸.’
투어 경기의 마지막은 중국. 소하에게는 썩 달가운 이름은 아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중국 축구는 더럽기로 유명했으니까.
‘제정신이라면 지랄은 안 떨겠지.’
모두가 잠든 시간. 애써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이적시장 계획과 더불어 다음 경기 준비를 하는 소하. 감독이란 역시, 너무나 바쁜 직업이었다.
< 127화. 15-16시즌 이적 시장.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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