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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25화 (125/306)

< 125화. 전지 훈련. (3) >

소하의 사악한 계획은 불행하게도 선수들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대관령이 어디야?”

“몰라. 발음하기도 어렵네.”

“서울 같은 대도시보다는 조금 한적한 곳이겠지. 그래도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관령이 어디인지 도통 감도 잡지 못했기 때문. 그저 적당히 넓은 평지가 펼쳐진 한적한 동네 정도일 거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 생각은 계속 이어진다.

“음? 뭐야 자꾸 동쪽으로 가는데?”

“지도 좀 봐봐. 한국의 동쪽에는 뭐가 있어?”

“오! 해수욕장이 많은 관광지가 많은데? 역시 전지 훈련은 관광지에서 하는 게 딱 좋지.”

“감독님이 보기보다 상당히 주변머리가 있으셔. 저렇게 엄해 보여도 우리를 참으로 아끼신다니까.”

자기들 멋대로 각본 쓰고 촬영까지 들어가는 창작 정신을 보여주는 선수들. 소하의 귀에도 그들의 행복회로 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쿠쿡···.”

사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잔인한 미소를 짓는 소하. 너무 신이 나서 관광버스 메들리로 시원하게 춤 한 번 재끼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점점 깊은 산속으로 향하는 진로와 사람 냄새가 옅어지는 풍경에 선수들은 모종의 불안감에 휩싸인다.

“음?! 뭐야. 왜 점점 산 위로 올라가는 거야?!”

“근처에 보이는 거라곤 산밖에 없는데? 저기 양 키우는 목장도 보인다.”

“자, 잠시 쉬어가는 건가? 그 뭐랄까. 관광코스라는 이야기지.”

“도, 돌아가자고 말해보자.”

이제야 소하의 목적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포츠머스의 선수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아니, 도착하든 말든 그들의 운명은 바꿀 수 없었다.

“자아. 도착이다. 우리들의 부트 캠프가 시작될 장소지.”

“···.”

“···.”

선수들은 해맑게 웃으며 도착을 알리는 소하의 모습을 보며 부들부들 떤다.

“너희도 알겠지만 여기는 대관령이라고 한다. 강원도 강릉시와 평창군을 잇는 높이 832m의 고개지. 매우 습하고 더운 한국의 7월에도 선선한 곳이다! 훈련하기 딱 좋은 곳이지.”

“···.”

“···.”

선수들이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흥이 나는지 쉬지 않고 쾌활하기 지껄이는 소하. 신이 잔뜩 났다.

“우리는 이곳에서는 흔한 양 떼를 키우는 목장 한곳을 빌렸다. 어때? 한시라도 빨리 저 대자연 속에서 훈련을 개시하고 싶지?”

“···.”

“···.”

“그리고 시설은 걱정하지 마라. 유명한 식품기업이 운영하는 목장이라 이미 사전 협의는 끝내놨으니까. 아주 편할 거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된다고? 어때? IT강국의 위엄이?”

모두가 휴가를 떠난 한 달간, 일에 묶인 망자가 된 포츠머스의 프런트가 흘린 땀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은 소하의 말에 동의하지 않나 보다.

“우, 우린 이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승격을 달성할 수 있다고요!”

“마, 맞아요. 외부 평가는···.”

몇몇 선수들이 용기를 쥐어짜서 반론을 펼쳤다. 그들도 눈 막고 귀 막고 살진 않았으니까. 외부의 평가가 어떤지는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았다.

[포츠머스의 승격은 확실시.]

[지난 시즌, 포츠머스는 몇몇 챔피언십 리그의 팀들과 맞붙었고 모두 승리했다.]

[프리미어 리그 팀들도 경계할 수준의 팀 완성도. 승격은 이미 따놓은 것과 다름없다.]

등등. 언론과 미디어는 포츠머스의 승격을 매우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선수들도 이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 외부에서 바람을 넣는 바람에 소하가 그토록 우려하던 ‘자만’이 선수들에게 깃든 것이었다.

‘평범한 자만도 아니지.’

소하가 정의한 자만이란 질병은 종류가 두 가지다.

본인도 알며 티를 내는 자만과 본인도 모르고 티를 내지 않는 자만.

전자의 경우라면 개인 면담이나 명단제외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후자라면.

후자라면 손쓸 방법이 없다. 선수의 무의식 속에 은밀히 파고든 질병이니까.

애초에 자만이란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힘들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말이지.’

고립된 산속에서의 전지 훈련.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에게는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고 덕분에 무의식이 튀어나온 거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

병을 발견했으면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 그리고 이 고립된 지역은 치료소로서도 제격이었다. 자고로 요양소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 법이었으니까.

게다가 오지에서의 합숙 훈련이란 고리타분한 방법은 이런 상황에서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자만을 품은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모두 한곳을 목표로 삼게 만드니까. 잡생각이 들기 어려운 산속에서 공만 차다 보면 다시 근원을 찾을 터.’

소하는 고리타분한 올드스쿨 방식을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효율성 문제였을 뿐. 비효율적이라서 꺼리는 것이었지만 효과가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낡은 방식’이 더 효율적인 상황도 있었고 바로 지금이 그때였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냐?”

“···.”

소하의 물음에 묵묵부답하는 선수들. 그런 그들을 한 번씩 쓱 훑어본 소하는 목소리를 높여 반복한다.

“정말 우리가 외부에서 떠드는 거처럼 손쉽게 프리미어 리그로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냐?”

“···.”

계속 이어지는 침묵. 이에 소하가 직접 답을 내려준다.

“맞아. 이대로라면 승격 자체는 달성할 거야. 최악의 상황이 덮치지 않는다면 말이지.”

최악의 상황이란, 주전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하거나 정말 운이 없어 이길 경기를 모조리 지는 경우의 수다.

매우 확률이 낮지만 고려 정도는 해야 할 경우.

“···?!”

“네?!”

“큼큼.”

물론, 선수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한다. 소하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자만’이었으니까.

그랬던 소하가 오히려 자만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근데···. 정말 그걸로 된 거냐?”

“···.”

“정말 승격만으로 만족하냐는 뜻이야.”

“···.”

다시금 침묵에 빠진 선수들. 그들은 잠시 고민에 빠진다.

‘승격만 하면 되었나?’

‘프리미어 리그 복귀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걸 목표로 삼아도 충분한 거 아닌가?’

‘승격 이후라고···?’

선수들은 동공이 흔들리며 갈팡질팡한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는 소하는 그들에게 답을 내려준다.

“내 장담하지. 지금의 우리 수준으로는 신의 기적이 내리지 않는 이상 프리미어 리그에 복귀하자마자 강등당할 거다.”

“···!!”

“···!!”

“덧붙이자면 아주 처참하게 털리고 조롱받을 거야. 단 5승도 하지 못하고 멍청이들이나 머무는 챔피언십 리그로 복귀하겠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토트넘을 이기고 첼시와 호각을 겨뤘다고? 그건 다 요행에 불과하다.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리그에서 만난다면 숨도 못 쉬고 압살당하겠지.

“너희들은 1년 뒤면 프리미어 리그로 간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맞아. 그런데 한 가지는 잊었어.”

“···.”

“바로, 우리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가다듬기 위한 시간이 겨우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야. 씨발, 겨우 1년이라고. 1년 뒤에는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아는 거대 클럽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이름난 명문클럽은 물론이고, 중하위권을 전전하거나 생존왕 타이틀을 지닌 구단들도 포함된다.

맨날 두들겨 맞는 역할이라 간과하기 쉽지만, 프리미어 하위권 팀의 재정 상황은 어지간한 리그의 한 시즌 재정과 맞먹는 수준이니까.

더군다나 프리미어 리그는 그 막대한 수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리그.

돈이 곧 힘인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정점에 서 있는 거인들이다. 약한 팀이라고 무시하는 크리스털 팰리스 같은 팀만 해도 한 해에 이적료로만 수백억을 쓰는 리그란 말이다.

이들을 지금 같은 실력과 마음가짐으로 상대한다? 미래가 뻔했다.

무척 밝아 보이는 미래를 가진 포츠머스였지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크나큰 장벽에 부딪힌 상황.

“···그래 맞아. 우리가···.”

“멈춰있을 상황이 아니었어. 너무 승격만 바라봤던 거야.”

“···강등당하는 아픔은 더는 싫다.”

“진짜 1년밖에 남지 않은 거구나···.”

소하의 호통에 작은 깨달음을 얻은 선수들. 서로 느끼는 강도는 달랐지만, 적어도 한 가지. 한가지 만은 모두가 동의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감독님 말이 맞아.’

조금 불만스러웠던 외지에서의 전지 훈련. 이에 대한 불만 따위는 모두가 내던져버렸다.

‘그래. 오늘은 이 정도면 대성공이야.’

조금 눈빛이 진지해진 선수들을 바라보며 만족하는 소하. 말 한마디로 사람을 바꿀 순 없다. 그래도 바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15일간의 전지 훈련. 워낙 외지인지라 소하의 말처럼 선수들은 완벽히 훈련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아니, 훈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할 게 축구밖에 없다.”

“염소 털이나 깎던가.”

“우유 짜는 것보다는 축구가 재밌지.”

사방팔방이 산이다.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천혜의 요새. 이 때문에 선수들은 해외여행 기분을 포기하고 소하의 독려처럼 축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심지어, 일과시간이 끝난 자유시간에도 말이다.

“할 게 없으니까···.”

“그래도 잠자는 시간 내내 축구 이야기를 하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인 거 같아.”

“균형을 잃었을 때 볼을 제대로 컨트롤 하는 법은 뭐죠?”

해외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합숙 훈련이 포츠머스에 펼쳐졌다. 선수들도 생소한 경험이라 낯설긴 했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동료들과 축구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많이 배운다.’

‘모처럼 모든 시간을 축구에 쏟아붓는 거 같아.’

축구선수라도 온종일 축구 생각만은 할 수 없는 법. 오히려 축구를 일로만 생각하는 선수도 많았다.

그래도 포츠머스 선수들은 최소한 자기 직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류.

이런 마음가짐과 소하의 극단적인 처방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즉, 상정 이상으로 빠르게 경기 감각을 찾았을뿐더러, 예상 이상의 큰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대관령은 여름에도 시원하긴 했지만, 기후가 훈련하기 썩 좋은 편이 아닌 장소.

특히나, 강풍은 체력훈련과 기술훈련, 전술 훈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바람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할만하네.”

거친 강풍을 거친 몸싸움으로 여기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당연하게도 균형을 잃거나 외부의 강한 충격에도 자신의 플레이를 지속할 능력이 부쩍 성장했다.

이것은 즉, 점점 강해질 상위리그의 압박에 대비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

소하의 바람처럼 느리지만 빠르게, 미래에 도전할 준비를 완료하는 포츠머스였다.

***

드디어 산에서 내려온 포츠머스.

그들이 다시금 서울에 얼굴을 들이밀자 잠잠해졌던 언론과 미디어가 떠들썩거린다.

[대관령에서 폐관 수련을 마친 포츠머스. 풍기는 냄새가 달라지다.]

[기어코 시작되는 투어 경기. 첫 번째 상대는 부산.]

[과연 잉글랜드를 떠들썩하게 만든 빛나는 초신성의 실력이 어떤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다.]

[막상막하의 경기가 예상된다. 비록 포츠머스가 객관적인 전력은 근소 우위겠지만 국내리그는 이미 시즌 중이다. 경기 감각의 차이는 승부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 것.]

포츠머스가 훈련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곧 투어 경기가 시작한다는 뜻.

관심은 포츠머스의 기이한 훈련법보다는 국내리그 팀과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에 쏠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내 축구관계자들은 호각을 예상. 소하의 코웃음을 유발했다.

“뭐? 호각? 호오가악?!”

어이없어하는 소하.

국내리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여겨졌을 뿐이다.

‘물론, 국내리그가 아시아에서 최상위권이란 평가는 백번 동의해. 하지만, 아시아 축구는 아시아 축구일 뿐이야.’

몇몇 국내리그 팬들은 국내리그를 챔피언십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의 사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하가 보기엔 그것은 과대평가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리그1과 챔피언십 리그의 사이지.’

일단 가장 큰 척도인 재정적인 부분에서는 챔피언십 리그의 상대도 되지 않는다.

혹자는, 챔피언십 리그나 프리미어 리그 하위권 팀들의 경기를 보면서 ‘어? 경기력 별론데? 우리랑 비슷하잖아?’라고 생각하며 국내리그의 수준을 올려칠지도 모른다.

‘이건 상대하는 팀의 수준 때문이지.’

50점과 50점짜리 팀의 대결과 10점과 10점짜리 팀의 경기가 비슷해 보인다고 같은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국내리그의 레전드가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어. 딱 그 정도 수준 차이야.’

팀 내 선수인 도봉산이 유달리 빛나는 재능이었을 뿐. 국내리그 선수가 프리미어 리그로 바로 가서 활약하는 건 거의 없는 경우였다.

‘안 되겠어.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겠군.’

자만을 싫어하는 소하답게 국내리그의 자만을 고쳐주기로 단단히 마음먹는 소하. 이는 기자회견장에서도 명백히 밝힌다.

“쉽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준 차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즉, 저희가 절대 돈만 벌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주겠다, 이 말이죠.”

대뜸 선전포고를 날려버린 소하. 덕분에, 가뜩이나 엄청난 기대를 받는 투어 경기는 덕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125화. 전지 훈련.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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