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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24화 (124/306)

< 124화. 전지 훈련. (2) >

“와! 드디어 왔다.”

“TV에서 종종 보던 거보다 훨씬 커.”

“이게··· 포츠머스구나.”

7월 초. 드디어 한국에 도착한 포츠머스.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은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명 팝스타가 왔다고 말해도 믿을만한 대축제의 장. 이에 포츠머스 선수들도 밝게 웃으며 자신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한다.

“안뇨웅 하세요우!”

“반괍숩니다.”

“아이 노우 킴치!”

“사뢍해요우. 연예가중···.”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서툰 한국어로 뭔 뜻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선수들의 모습은 큰 웃음을 선사했다.

물론, 이렇게 어리숙한 한국말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감독이 감독인지라 한국어를 따로 공부한 선수들도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1년 전에도 왔었지만 올 때마다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치안도 좋습니다. 훗날 한국에 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습니다.”

포츠머스의 주장이자 소하의 애제자, 케빈 도슨. 상당히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은 놀랍기 짝이 없다.

“거의 원어민에 가까운 한국어 발음이신데요, 한국어를 배우신 지 얼마쯤 되셨나요?”

“2년 정도 됐습니다. 매우 우수한 언어이기에 금방 배웠습니다. 다만, 영어와 문법상 순서가 반대로 조금 애먹었지만 말이죠.”

“···와···. 언어의 천재셨군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담당 인터뷰어.

언어란 2년 만에 완벽히 배울만한 학문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재능을 가지고 2년 내내 파고든다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케빈 도슨은 점점 잉글랜드 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한 뛰어난 축구 선수.

본업도 바쁜 와중에 이 정도로 새로운 언어에 익숙해졌다는 건, 보통 재능이 아니란 뜻이었다.

말 그대로, ‘언어의 천재’. 노력 이전의 문제였다.

‘새끼. 진로를 잘못 잡았나?’

소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저런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 왜 축구 선수를 한 건지. 그래도 놔줄 생각은 없다. 케빈 도슨은 큰 그림의 가장 중요한 선수였으니까.

그리고 의외의 선수도 상당히 유창한 한국어를 보여주며 팬서비스를 진행하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한국 낚시꾼들의 대장은 누구입니까? 한번 붙어보고 싶네요.”

놀랍게도, 마이클 반즈가 그 주인공이었다. 휴가 기간 내내 잉글랜드 최고의 낚시꾼 중 하나가 된 마이클 반즈.

‘무슨 대회에서 우승했다던데.’

대회명은 잘 몰랐지만, 축구 선수보다는 위대한 낚시꾼으로 명성을 높이는 중이다. 그런 그가 케빈 도슨 급은 아니지만, 한국어를 상당히 잘한다는 건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언제 한국어를 배운 거야?’

소하도 금시초문이라 꽤 놀란다. 하지만 이내 관심을 지운다.

‘뭐, 워낙 독특한 녀석이라···.’

마이페이스 기질이 강한 이상한 친구라 그냥 그러려니 한다. 대충, 한국 낚시계를 접수하고 싶나 보다 하고 넘어간다.

‘그래도 새끼들. 배운 대로 팬서비스는 잘하네. 내 세뇌가 제대로 먹혔어.’

흡족한 미소를 짓는 소하. 훗날 어떤 슈퍼스타처럼 팬을 개똥으로 취급한다면 주저 없이 내칠 생각이었다.

모처럼 따스한 기운이 소하의 눈가에 스며든 찰나. 조금 전부터 들리던 불협화음이 소하의 귀에 제대로 들린다.

“일없습니다.”

“···?!”

흠칫 어깨를 떨며 놀라는 소하.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귓구멍을 한번 후벼파고 귀를 쫑긋거린다.

“일없습니다.”

“···!!”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분명 선수 중에서 ‘일없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뭐야? 시발?’

인상을 와락 구기는 소하. 어떤 놈이 남한에서 문화어를 쓰는지 당장이라도 색출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곧 범인은 잡혔다.

“일없습니다!”

“푸흡. 재밌어!”

“어디서 배운 거예요?”

“아는 사람 중에 북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한 무리의 한국 팬들의 배꼽을 강탈 중인, 칼빈 필립스. 포츠머스의 미래이자, 잉글랜드의 미래로 평가받는 슈퍼유망주였다.

“너 뭐하냐?”

“앗 감독님!”

소하가 부르자 무척 반기는 칼빈 필립스. 점점 팀 내에서 사라져가는 십 대의 풋풋함이 남아있다.

“아니, 지금 뭐 하냐고.”

“네?”

칼빈 필립스는 소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목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간다.

사람들 시선이 미치지 않는 중앙으로 칼빈 필립스를 끌고 온 소하.

우악스럽게 칼빈 필립스를 풀어준다.

“켁. 왜, 왜 그러세요.”

“너 말이야···. 일없습니다, 그거 어디서 배웠어.”

소하가 눈을 샐쭉하게 뜨며 추궁하자 칼빈 필립스는 천진난만하게 대꾸한다.

“인터넷에서요. 이게 엄청 편한 말이더라고요. 그냥 할 말 없으면 이 말만 하래요. 뜻이 많던데.”

“그거···. 북한말인 거 아냐?”

“당연하죠. 한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있잖아요.”

“그런데도 쓴다고?”

“그러면 안 돼요? 어차피 같은 민족이라면서요. 지금은 갈라졌지만요.”

태연스럽게 반론할 여지가 없는 발언을 하는 칼빈 필립스. 이에 소하는 할 말을 잃었다.

“···.”

하긴, 한국에서 문화어를 쓰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칼빈 필립스의 말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다 떠나서 한민족이라는 사실 자체는 진실이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세계의 변경인 극동아시아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의 역사를 잘 안다고 칭찬해줘도 몰랐다.

“큼큼. 그, 그냥. 여,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그럼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이 진짜 모국으로 생각하는 나라잖아요. 기본이죠!”

“···윽.”

쾌활하게 웃으며 이쁜 말을 내뱉는 칼빈 필립스의 모습에 소하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내, 내가 쓰레기였어. 저 착한 녀석을 오해하다니.’

깊은 반성을 하는 소하. 칼빈 필립스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놀림이 다정스럽기 짝이 없다.

과연, 친구들과 상대편한테는 독설가지만 선배와 스태프들에게 온갖 사랑을 다 받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음? 잠깐. 저 선수는 누구지?”

“그러게. 포츠머스에 금발선수는 없지 않았나?”

“북유럽계 혈통은 확실히 없었지.”

꽤 훌륭한 팬서비스 와중에 저쪽 구석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기존 포츠머스 선수단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가 이목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근데 진짜 살벌하게 생겼다. 유소년에서 불러들인 선수인가?”

“아닐걸. 유소년 선수 중에 저런 분위기를 뽐내던 선수가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어.”

멋진 금발과 흉악한 얼굴의 부조화 때문에 더욱 무서워 보이는 한 선수. 그렇다. 바로 에링 홀란드였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입단 절차를 빠르게 끝내느라 아직 공식적인 발표도 하지 않은 선수라 의문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진또배기 축구 선수 같은데.”

“엄청난 재능일 거야.”

“조쉬 킹과 맞먹는 공격수일지도?”

외모만으로 이미 최고의 유망주 평가를 받는 에링 홀란드. 매우 외모지상주의적 평가였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2~3년만 지나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테니까.

“자자, 이제 슬슬 이동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사인회는 따로 공식적으로 시간이 마련돼있으니 그때 아쉬움을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포츠머스 선수들의 팬 친화적인 태도에 많이 지체된 일정에 진행요원들이 큰 목소리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들도 그에 따라 순순히 길을 열어준다. 이미 포츠머스 선수들의 서비스에 크게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호텔로 이동하시죠. 감독님과 선수들의 휴식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슬슬 제대로 준비된 장소로 향하는 포츠머스 선수단. 30분 남짓한 소동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언론에 큰 호평을 받기에 매우 충분했다.

***

포츠머스가 인천국제공항을 나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서울의 한 고급 호텔이었다.

14시간을 비행한 선수들에게 바로 훈련을 시작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더군다나 소하가 준비해둔 전지 훈련장소는 서울에서 몇 시간은 더 떨어진 곳이었다.

아직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모든 스태프진이 입을 다문 상황이다. 선수들이 장소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얘들아, 그거 봤어? 영상매체만 틀면 감독님 얼굴이 나오더라.”

“어. 버스에도 감독님 사진이 붙어있던걸?”

“혹시 감독님은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연예인이었나?”

“역시. 감독님입니다.”

짐을 풀며 식사 준비를 하는 선수들은 소하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떠든다.

오늘의 주제는, 소하는 정말 연예인인가에 대해서다. 매우 쓸데없고 영양가도 없는 논점이었지만 그들에겐 아무 상관도 없었다.

‘재미있으니까.’

재미만 있으면 만사형통! 항상 감독으로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던 소하의 전혀 다른 모습은 그저 재미있을 뿐이었다.

“막 서로 추격전 하는 방송에도 나왔던데. 거기서 몸개그를 하시더라고.”

“그거 점핑맨이라고 한국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야.”

“맞아. 그것도 상당히 유명한 연예인들만 나올 수 있지.”

“그렇다면 감독이 되기 전에는 연예인이셨다는 거야?”

점점 늘어나는 소하의 연예인 설.

물론, 이들의 쑥덕거림이 소하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다.

“뭔, 개소리야.”

한참 기자회견 준비를 하느라 바쁜 소하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연예인급 인기이긴 했지만, 그 길을 꿈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긴, 오해할만해. 이 몸의 위엄찬 자태는 연예인이라고 하기엔 충분하지.”

“···.”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선수들. 괜히 물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빠르게 일단락된 소하의 연예인 설.

그래도 선수들은 나중에 놀릴 건더기가 생겼다면서 음흉한 미소를 품었다.

***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딱히 별다른 환영 행사 같은 것은 아니다.

감독과 주장 단이 미디어에 조금 노출되는 정도일 뿐이니까.

이미 다른 선수들은 모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자율 휴식 중이었고, 소하만이 마지막 일정인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다.

“한국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감독님. 또 뵙네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또 만난 한국의 기자들. 좀 더 자리에 맞는 격식 있는 모습이다.

“너무 자주 뵙는 거 같네요. 그러니까 다음 휴가 때는 서로 피하는 게 어떨까요? 하하.”

소하의 농담으로 시작된 기자회견. 꽤 온화한 분위기로 전반부를 지나간다.

하지만 이 부드러운 분위기는 그저 예열이었을 뿐. 슬슬 때가 무르익자 본격적인 질문이 튀어나온다.

“한국을 전지 훈련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자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비판을 서슴지 않기도 합니다.”

묵직하고 날카로운 돌직구가 날아왔다.

꽤 공격적인 질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실제로도 현지 팬들도 굳이 한국에서 훈련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

“흐음. 글쎄요.”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에 소하는 상당히 평온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이게 진짜지. 매운맛이랄까.’

한 달 만에 맛보는 육식동물의 포효에 오랜만에 살이 떨린다. 이런 매콤함이 없다면 기자회견은 너무 지루할 테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흔히들 말하는 짭짤한 ‘쩐’을 벌기 위해 온 겁니다. 하지만, 찰랑거리는 건 어디까지나 뒷순위죠. 구단이 움직이는 방향은 항상 복잡합니다. 단순히 한 가지만 보고 움직이지는 않죠. 전 팀을 강화하기에 좋은 훈련장소가 한국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소하의 특유의 거침없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이 한국에서도 불을 뿜었다.

즉, 돈을 벌러 왔음은 인정, 그러나 주목표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정석이었거늘. 과연, 소하다웠다.

“역시 솔직하시군요.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이 팀을 강화할 좋은 훈련장소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7월의 한국은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해서 훈련지로는 좋지 않으니까요. 감독님도 한국인이시니까 잘 아실 겁니다.”

두 번째 돌직구가 작렬했다.

첫 번째 직구가 좌측담장을 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나이다운 투구였다.

혹은 무모한 투구였거나.

하여튼, 소하는 다시 한번 풀스윙으로 맞선다.

“맞아요. 한국은 덥고 습하죠. 전지 훈련지로는 최악일지도 몰라요. 저도 처음에는 거부할 생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와 구단은 이미 괜찮은 지역을 잡아놨습니다. 한여름에도 선선하고 시원한 곳이죠. 체력 훈련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소하의 말에 아직 제대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들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7월에 한국에서 선선하고 시원한 곳이 있다고? 체력훈련도 하기 좋은?

‘제주도···인가?’

많은 사람이 제주도일 거라고 예상한다. 딱히 유별나게 시원한 곳은 아니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나마 나았으니까.

“큼큼. 감독이 그 지역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하도 꼭꼭 숨겨두셔서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하. 당연하죠. 제 선수들도 아직 모르거든요.”

소하는 잠시 사악한 미소를 짓다가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쯤 꼭꼭 숨겨왔던 지역을 발표한다.

“바로 대관령입니다. 양떼목장 근처에요. 우리 팀은 해발 800m의 산속에서 부트 캠프를 시작할 겁니다.”

해외여행을 왔다는 즐거움에 빠진 선수들이 치를 떨만 한 발표였다.

< 124화. 전지 훈련.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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