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인기 스타. (1) >
-찰칵! 찰칵! 찰칵!
달팽이관을 거칠게 괴롭히며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셔터 소리.
-번쩍! 번쩍! 번쩍!
눈을 어지럽히는 싸구려 나이트클럽 조명보다 부산스러운 카메라 플래시.
“성소하 감독님! 성소하 감독님!”
연예인의 엉덩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극성팬 같은 기자들의 고함.
‘씨발.’
그래, 난 지금 지옥에 서 있노라.
***
10분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지옥이 펼쳐질 줄 꿈에도 몰랐다.
에어컨을 빵빵 틀고 뜨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려던 아주 건실하고 생산적인 계획에 가슴이 뛰었을 뿐.
‘이번에는 페이크까지 줬지.’
비행기표를 석 장이나 예매하며 모두의 눈과 귀까지 속였다고 생각했거늘. 다 병신같은 오판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내 정확한 입국 시간을 계산해 이미 진을 치고 있는 모습에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지만 붙잡혀버렸다.
“하··· 하하.”
헛웃음만 나온다. 내 아련한 꿈은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감독님! 질문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감독님! 고작 30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 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이 되신 비결이 뭡니까?!”
5일 정도 굶은 비글처럼 미친 듯이 달려드는 기자들. 여기까진 이해가 가더라도 다른 부분은 예상 이상이다.
“꺄악! 성소하 님이야!”
“성소하! 성소하! 성소하!”
“사랑해요! 성소하!”
“영국식 영어 한번 보여주시면 안 되나요?!”
“잘생겼어!”
웬 아이돌 콘서트의 빠돌이 빠순이들의 비명 같지 않은가? 일반인들마저 진을 치고 날 반겨주며 눈알을 붉힌 채 침을 튀긴다.
물론, 내가 엄청 유명해졌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뭐, 아예 인터넷이나 TV를 보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난 고작 이역만리의 섬나라에서 공놀이를 지도하는 감독에 불과하지 않은가? 생산성이라고 쥐뿔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난 볼펜 한 자루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만약 지금 당장 아포칼립스가 펼쳐진다면 난 지구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대충 식량만 축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 대신 좀비에게 물리는 조연1이겠지.
“어허! 먼저 기자회견이 우선입니다. 팬분들은 조금 기다리세요!”
“기자가 벼슬이냐? 딱 보니까 미리 약속을 잡은 거도 아니구만. 당신들이나 우리나 같은 처지야!”
“아니?! 이 사람이?!”
“뭐! 뭐!!”
설상가상, 아귀다툼까지 시작.
둘 다 똑같은 놈들끼리 치고받는 꼬락서니를 보니 손이 근질거린다.
그 있지 않은가. 테러리스트 3종 세트.
AK-47, 알라의 요술봉이라는 별명을 가진 RPG, 그리고 토요타의 픽업트럭.
이것 중에서 앞의 두 개를 들고 눈앞의 난장판 모조리 청소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후우···.”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가 먹고사는 것도 다 눈앞의 관심들 덕분인데.
프로의식을 다 잡으며 친절히 상대해 줄 수밖에 없겠지.
“자자, 서로 싸우지들 말고 차근차근 상대해 드릴게요. 먼저 기자님들부터 시작하죠. 아, 물론, 미리 약속에 없던 일정이니까 짧게 갈 겁니다.”
애써 영업용 미소를 띠며 사태를 순식간에 진압하는 데 성공.
하하. 나날이 연기 실력이 늘어나는 거 같단 말이야.
나중에 은퇴하면 배우라도 해볼까? 훗날 문어 게임이라는 드라마로 유명해지는 배우도 30대 중반에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배우의 길을 걸었잖아.
이 망할 감독보다는 적성에 맞을지도 몰라.
“감독님. 먼저, 우승 축하드립니다. 다 망해가던 구단으로 기적을 만드셨는데요, 비결이 무엇입니까?”
자기들끼리 빠르게 교통정리를 한 기자들의 첫 질문이 시작됐다.
허허. 거참. 기자 양반,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뇨? 다 망해가던 구단이라니. 마음 아프잖아.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제 뛰어난 능력 덕분이죠. 아, 여기에 팬들의 사랑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하하. 여전하시네요.”
한번 잡은 컨셉은 유지해야 하는 법.
그리고 꽤 돈이 된다. 조금씩 개인주의적인 사고로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나 같은 캐릭터는 시대의 흐름에 굉장히 어울렸으니까.
적당히 겸손하면서도 자기를 숨기지 않는 신세대 감독! 쪽팔리지만 이게 내 캐릭터였다.
“리그컵에서 아쉽게 첼시에게 패배하셨는데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
4달이나 지난 아픔을 다시 들추는 솜씨가 외과 의사의 메스를 놀리는 수준이다.
좀 제발, 그만 좀 떠올리게 해줘.
“앞으로 이 질문을 하시면 영원히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어요.”
“···큼큼.”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뭐,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열통 터지죠. 다음엔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미간을 좁히며 으르렁거려주자, 기자들은 찔끔거린다.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면 악의적인 기사로 고생한다지만 난 다른 경우다.
수많은 상황이 얽히고설켜 내가 압도적인 갑이었으니까. 꼬아도 참으라고.
“감독님, 며칠 전 잉글랜드의 대 스타인 나탈리 도슨과 밀회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요.”
“···네?”
아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왜 케빈 도슨의 마누라인 냇이랑 밀회를 가져?
씨발. 단순한 사적 모임이 바다를 건너서 밀회로 바뀌는 기적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서 그런 개소리가 나온 지 모르겠지만, 냇은 유부녀라고요. 그냥 친한 사이라서 밥 한 끼 같이 먹은 거예요. 그 자리에는 걔 남편도 있었어요!”
아니, 내가 왜 유부녀랑 불륜이라도 저지른 쓰레기처럼 변명할까. 뭐, 뭔가 잘못됐어···.
“아하. 그러니까 나탈리 도슨과는 사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긴 하다는 이야기죠?”
“···그, 그렇죠.”
제대로 물려버렸다. 어휴.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냇한테 조금 미안한걸.
이제 곧 인터넷 뉴스에 [대감독 성소하! 영국의 대스타, 나탈리 도슨과 절친한 사이로 밝혀져!] 같은 자극적인 기사가 줄줄이 올라올 테니까.
아 몰라. 다 네 잘못이야. 냇.
“감독님, 프리미어 리그의 중하위권 구단에서 감독님을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이건 또 뭔 헛소문이지? 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인데. 물론, 소문이 사실이든 진실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 나온 헛소문인지 모르겠네요.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일지라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전 포츠머스에서 뼈를 묻을 거예요.”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정도면 고려는 해볼게.
“같은 한국인인 도봉산 선수와 유해진 단장과의 사이는 어떠신가요?”
“당연히 좋죠. 셋이 합심해서 팀을 위로 올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챔피언십 리그에서도 우승을 노리실 건가요?”
“언제나 우승을 노립니다. 물론, 이제는 매우 어려워지겠지만요.”
4부, 3부리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 2부리그, 챔피언십 리그다.
이 동네는 구단 가치가 천억을 넘는 팀도 수두룩했으니까.
프리미어 리그에서 돈을 쓸어 담고 강등당한 덩치가 큰 바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복마전이 따로 없다.
해볼 자신은 있지만, 해낸다는 확신은 없다는 이야기다.
“감독님께서 언젠간 국가대표를 맡아주실 거라고 모든 국민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생각은 변치 않으셨나요?”
드디어 나왔다. 앞으로 내 감독 인생 내내 따라다닐 껄끄러운 질문.
여기서 단호하게 거절하면 천하의 매국노 ‘이완용’이 될 테고,
여기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면 월드컵이 다가올 때마다 한 입으로 두말하냐며 달달 볶을 거다.
뭐해도 외통수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 이럴 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전 아직 국가대표 감독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아직, 감독으로서 2년 차에 불과하니까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선배 감독님들이 많으시니, 그분들이 잘 이끌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뭐긴 뭐겠나. 남에게 폭탄을 돌리는 거지. 겸손한 척, 척추를 접으며 책임을 떠넘겨야만 내가 살아남는다.
“그럼, 이제 약속한 한 시간이 지났으니 기자님들과 즐거운 질문파티는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다들 동의하시죠?”
“···알겠습니다.”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는다. 이것이 협상의 기본이다. 만약, 협상을 어긴다면? 그땐 명분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니까 깽판을 쳐도 무죄가 성립되는 거다.
‘후우. 이제 두 번째 스텝으로 가볼까.’
첫 번째 퀘스트, ‘기자들의 질문을 처리하십시오’를 끝내고 두 번째 퀘스트로 들어갈 차례였다.
***
“감독님! 감독님! 같이 사진 찍어주세요!”
“이리 와 봐요. 어깨동무하고 찍죠.”
“꺄악!”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는 소하의 여성팬. 소하가 아는 사람만 알고 보이는 사람만 보인다는 썩은 미소를 짓자 거의 기절한 지경까지 텐션이 올랐다.
-찰칵.
다정한 포즈로 셀카를 남기는 소하와 여성팬. 인기 스타가 따로 없다.
“감독님 저도 같이 사진을···.”
“정확히 차렷 자세로 찍죠. 군대 다녀오셨죠? 받들어 총 자세라는 이야기에요.”
“···네.”
남성 팬과 여성 팬의 온도 차이가 매우 심했지만 몰려든 팬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대접하는 소하.
몇몇 프로 스포츠선수들이 보고 본보기로 삼아야 할 멋진 팬서비스를 선보이는 중이다.
“감독님 죄, 죄송한데 영어로 자기소개 한번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그···. 있잖아요. 영국식 발음이 너무 섹시해서요.”
“···.”
소하는 팬들의 요청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팬들이 왜 ‘영국식 발음’에 열광하는지 대충 눈치챘기 때문이다.
‘킹스맨···.’
2015년 2월에 개봉한 B급 감성이 넘쳐흐르는 스파이 영화!
이 영화 덕분에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영국 신사와 영국식 영어가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놈의 발음이 뭐라고. 미국놈들은 이상한 발음이라고 놀리기 바쁘다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엄하신 팬들의 요청인데. 들어줄 수밖에 없다.
“큼큼.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성소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Manners, Maketh, Man.”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영화 속 명대사까지 해주는 소하! 정말, 쇼맨십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의 감독일지도 몰랐다.
“꺄아아아악! 멋져!”
“이게 네이티브 발음이구나!”
“성소하! 성소하!”
당연하게도 팬들은 자지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들 같은 불청객을 이렇게 잘 대해주는 스타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후후후후. 다 내 지갑이니까. 지갑만큼 소중한 게 또 어디 있겠어?’
눈앞에 모인 사람을 지갑 취급하는 소하. 조금 비인간적이었지만, 실제로 이런 사소한 팬서비스만으로도 파급력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다.
발달한 기술 덕분에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도 1초 만에 알려지는 세상이었으니까.
곧 소하의 팬서비스는 랜선을 타고 전국에 뿌려질 테고, 이것은 곧바로 포츠머스의 인기로 이어질 거다.
‘인기는 곧 돈이지. 하하. 이러다가 S급 선수를 하나 사 올만한 이적 자금을 가지게 될지도?’
소하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에 빠진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락한 휴가가 첫날부터 망해버렸다는 상실감을 잊기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감독들만큼 이적 자금에 민감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모 축구매니저 게임에서도 든든한 이적료는 플레이어들을 미소를 짓게 만드는 법이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전 가봐야 하겠네요. 다들 아쉬우시겠지만,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요?”
친절히 팬들 하나하나 보살피던 소하는 눈치껏 작별을 고했다.
적당히 상대해주면 사람들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인파에 아득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사인하고 사진 찍어주는 지박령이 될지도 몰라.’
이미 10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 몸이 상당히 지친 상태다. 조금만 더 무리하면 창창한 30세라도 요절을 면치 못할 터.
다행스럽게도 팬들은 소하의 사정을 헤아려준다.
“자자, 이제 비켜드립시다. 감독님은 이제 막 귀국하셨다고요.”
“국보를 잃어버릴지도 몰라요.”
“길을 비키세요!”
볼일 다 본 팬들이 장내를 진압하기 시작, 곧이어 길이 열린다.
소하의 입장에서는 꽤 고마운 행동이었지만, 소하는 코웃음이 나온다.
‘가증스럽긴.’
이미 재미는 다 본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척하는 게 조금 고깝게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봬요!”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감사를 표하며 소하는 재빨리 공항을 벗어났다.
부스터라고 작동한 듯한 엄청난 속도의 걸음걸이!
순식간에 인파 속을 벗어난 소하는 해방감이 몰려들며 희망에 젓는다.
‘하하. 이제 난 자유로운 집 요정이에요!’
해리포터에 나오는 집 요정, 도비의 마음을 절절히 느끼는 소하. 하지만, 너무나도 이른 판단이었다.
“성소하 감독님이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를 대기시켜놨으니 따라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들의 싱그러운 봄비 같은 환영.
“···씨발. 이거 데자뷰인가?”
1년 전과 똑같은 레퍼토리에 소하는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 119화. 인기 스타.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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