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14-15시즌 마무리. (2) >
포츠머스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되었다. 리그컵 결승전에서 패배한 이후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며 파죽지세로 리그를 평정하기 시작.
그 모습은 마치 푸른 해일이 작은 난쟁이 마을을 덮치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포츠머스가 또 이겼습니다!”
“리그컵 결승 이후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어요!”
“남은 한 경기만 이기거나 비기면 포츠머스의 우승과 동시에 승격이 확정됩니다!”
“대단합니다! 아직 8경기나 남았는데요.”
리그가 한 달 반이나 남은 시점.
포츠머스는 2위인 브리스톨 시티와 승점 21점 차이를 달성. 3부리그를 말 그대로 깨부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제 포츠머스는 하부리그에서 머물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그들을 빨리 위로 보내는 것이 하부리그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축구 평론가들의 극찬!
농담이 아니었다.
어떤 상대를 만나던 기본적으로 3골 정도는 넣어주면서 가지고 놀았으니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수비적으로 나오든 공격적으로 나오든 그냥 위풍당당하게 정면에서 박살을 내며 진격을 멈추지 않는 모습!
포츠머스의 행보는 말 그대로 진격의 푸른 거인이었다.
특히나, 수많은 선수가 각성한 와중에도 몇 차원이나 위에서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다.
원래도 잉글랜드에서 나온 괜찮은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던 조쉬 킹이 그 주인공이다.
“내가 틀렸다. 난 그저 조쉬 킹이 많고 많은 하부리그 유망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으며 이제 전 세계가 그를 집중조명할 날이 다가왔다.”
“그저 리그 수준보다 뛰어난 피지컬로 단기 임팩트를 남기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완벽하게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의 머리는 유인원에서 슈퍼컴퓨터로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결승전 이후로 무언가 마음가짐이 달라진 조쉬 킹. 그동안 어린 선수다운 치기 어린 태도가 많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진지하게 축구에 임하기 시작했다.
“존 말로리를 두 번째 스승으로 여기도록. 네 성장에 엄청난 자극제가 될 거다. 그저 그런 선수가 될지, 다시 한번 첼시를 만났을 때 그 첼시가 두려워할진 너한테 달렸다.”
본격적으로 조쉬 킹을 존 말로리에게 붙인 소하. 존 말로리의 지능과 조쉬 킹의 피지컬이 드디어 융합을 시도한다는 이야기였다.
문과 무의 결합!
어떤 괴물이 탄생할지 정말 두렵고도 기대되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사건이 큰 도움을 줬다. 단지, 한 번의 패배로 조쉬 킹이 그간의 태도를 한 번에 벗어버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 도움이란, 소하가 3월의 시작과 동시에 선수단에 소개한 한 어린 선수였다. 금발을 휘날리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 16세의 소년.
‘에링 홀란드’의 포츠머스 견학이었다.
***
한 달 전, 3월.
패배의 아픔을 향상심으로 승화시킨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는 활기가 넘실거렸다.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해!”
“바빠 죽겠지만 힘들지 않아!”
“세계 곳곳에서 전화가 오고 있어. 난 분명 한가한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어.”
이 넘실거리는 활력은 훈련장뿐만 아니라 프런트도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으로 세계에 이름을 당당히 알린 포츠머스는 유례없이 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처럼 선수단보다 프런트가 바쁜 상황을 연출한 포츠머스. 만약, 시즌 시작 전의 조직개편 및 확장이 없었다면 그대로 퍼졌을 거다.
“흥. 모처럼 브라이언이 제대로 된 일을 했군. 뭐, 고장이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법이니까. 재수가 좋았어.”
서리가 어릴 정도로 냉정한 소하의 평가. 훌륭한 성과에 비해 매우 짠 평가였지만, 소하에게 칭찬 비슷한 말이 나왔다는 건 상당히 놀랄 일이다.
브라이언이 숨만 쉬어도 공기가 아깝다고 깎아내리던 게 소하였으니까.
하여튼, 모처럼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프런트 덕분에 소하도 일이 줄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이것저것 신경을 쓰느라 뒤질뻔했는데 말이야.’
선수단뿐만 아니라 구단 전체를 감독하는 소하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좋은 현상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프런트가 짐을 덜어준다고 하더라도 포츠머스의 거대한 프로젝트에는 소하가 핵심 중에서도 핵심.
선수단 일 말고도 많은 부분을 소하의 손을 한번 거치고 나서 결정되는 상황이다.
요컨대, 소하가 없다면 포츠머스는 정전에 걸릴 거란 이야기다.
이토록 매우, 매우 중요한 핵심 부분인 소하.
그랬던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가, 감독님 어디 계셔요!?”
“그, 글쎄요?!”
“아, 아까 점심시간에 차 끌고 어디 가시던데요.”
“아마도 점심시간 끝나기 5분 전쯤이었을 거에요.”
“···.”
갑자기 사라진 소하.
가끔 종종 어디론가 사라지긴 했지만, 시국이 시국인 상황에서 사라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 가신 거야?!”
“내일이 경기인데 자리를 비우는 감독이 있다?!”
“진짜 천재는 다들 괴짜라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포츠머스의 직원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렇게 업무가 일시적으로 마비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소하의 오래된 현성자동차에서 만든 중형차가 클럽하우스의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너무 빨리 왔나?”
여유롭게 차에서 내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소하. 그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던 직원들은 혈압이 올라 목덜미를 잡는다.
“···.”
“일단 달려가서 자초지종이나 물어보죠.”
“업무시간을 한 시간이나 땡땡이친 사람의 표정이 아니야···. 거의 개선장군이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둘러 소하에게 다가가는 직원들.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잔소리는 왕창 퍼부어줄 기세가 만연하다.
하지만,
“히익!”
“저, 저거 뭐야!”
“사···람?”
시험 성적표를 받은 엄마 같은 기세로 소하에게 달려가던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친다.
소하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린 한 인물 때문이었다.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금발.
외우주의 외계행성에서 지구를 점령하라고 워프시킨 듯한 전투적인 거구!
그 거구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압도적이면서도 흉악하기 짝이 없는 얼굴!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살육 기계였지.
그리고 소하는 겁도 없는지 그 전투 기계의 어깨를 툭 치며 실실거린다.
“오. 마침 사람들이 널 반겨주려고 왔네. 저거 봐봐. 네 멋진 외모에 다들 기겁하잖아.”
“그러네요. 사람 같지 않은 외모에 너무 놀랐나 본데요? 후후. 이 몸의 매력이란.”
“···.”
소하와 함께 등장한 인물은, 자기를 노르웨이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믿는 16세의 대형 유망주.
에링 홀란드였다.
“다음 시즌부터 함께 지내게 될 프런트 직원들이야. 좋은 사람들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
“당연하죠.”
“아! 한 명 빼고. CEO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개자식인데, 이름은 브라이언이야. 구단에 몇 없는 대머리에 말쑥한 옷차림이라 금방 알아보기 편할 거야.”
“아···. 그 메시지로도 종종 언급하셨던 악의 축 말이죠? 알겠어요.”
이상한 소리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태연하게 클럽하우스에 입장하는 기묘한 커플. 그 모습을 얼빠진 채로 바라보던 직원들은 황급히 정신을 되찾는다.
“자, 잠깐만요. 그분은 누구시죠?”
용기를 낸 한 직원이 소하와 홀란드의 진로를 막아서며 질문을 던졌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들을 회색곰에게서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토끼 엄마가 따로 없다.
“아! 이 친구요?”
그러든지 말든지. 소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미소로 말을 이어간다.
“다음 시즌부터 우리 팀에서 뛰게 될 선수예요. 오늘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빨리 우리 팀을 견학하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죠. 아주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예요. 내 취향이야.”
“서, 선수라고요?”
“당연하죠. 영화배우를 근무시간에 데려올 만큼 제가 막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
소하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할 말을 잃어버린 용기가 있는 직원.
너무 뻔뻔한 태도도 충격이었고,
영화배우 운운은 더더욱 충격이었다.
“하여튼 이 친구가 다음 시즌부터 뛰게 된다는 건 어지간해서는 비밀로 해주세요. 외부에는 말이죠.”
“아, 알겠습니다.”
떨떠름 하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하는 직원들. 감독이 선수를 데려오는 거야 당연한 일이라 뭐라고 태클을 걸만한 건더기가 없다.
게다가,
‘와···. 저 정도 외모면 축구 실력은 이미 보장된 거지.’
‘자유계약 선수인가? 처음 보는 선수이긴 한데. 유럽 변방 리그에서 오래 뛰던 선수인가보다. 뭐랄까. 축구력이 느껴져.’
‘축구에 진심을 쏟았을 거야. 그거 말고는 인생에 답이 없을 테니까.’
이미 외모만으로도 실력을 인정해버렸다. 에링 홀란드의 외모는 정말 축구에 진심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렇게 직원들을 이해시킨 소하와 에링 홀란드.
총총걸음과 성큼성큼 걸음을 통해 곧바로 한참 선수들이 훈련 중인 훈련장으로 찾아갔다.
물론, 이쪽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저거 뭐야?”
“요즘 호위용 안드로이드라도 파나? 와, 축구에만 빠져있었더니 기술발전이 엄청나다는 걸 깜빡했어.”
“대단한 위압감입니다.”
“감독님 지인이야?”
“흐음. 마음에 드는 외모입니다.”
조금 이상한 반응도 있었지만 다들 훈련을 멈추고 상당히 놀라워한다.
그리고 이어진 소하의 소개에는 더더욱 놀라워했고.
“다음 시즌부터 같이 뛰게 될 어린 선수다. 미리 얼굴 좀 익혀두라고 데려왔다.”
어린 선수라는 말에 한 번 놀랐고 다음 시즌부터 같이 뛰게 될 거란 말에 두 번 놀란 포츠머스 선수들.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던 선수들은 곧 침착함을 되찾고 질문을 퍼붓는다.
“몇 살인데요?”
“16살. 2000년생이라고! 밀레니엄 세대의 선수 주자라고 할 수 있지. 라이스는 이제 막내에서 벗어났네. 축하해.”
“어디에서 뛰었는데요?”
“아직 프로 데뷔는 못 했어. 유소년팀은 브뤼네 FK야. 저 멀리 노르웨이에 있는 팀이지.”
“사람 맞나요?”
“···시발 그게 질문이냐?”
등등. 수많은 질문을 정면에서 돌파하는 소하. 그렇게 여러 질문을 분쇄한 소하에게 결정적인 마지막 질문이 다가왔다.
“뭐, 다른 건 됐고. 선수라면 우리 팀에 어울릴만한 수준인지가 중요하죠. 포지션은 어디고 실력은 어느 정도죠?”
자신보다 거대한 에링 홀란드의 자태에 위기감을 느낀 조쉬 킹이 예리한 질문을 날렸다.
강력한 적수를 만난 듯한 잔뜩 경계하는 태도! 머리가 둔할지는 몰라도 감각만은 예민한 짐승 같은 모습이다.
“포지션은 공격수야. 즉, 너와 포지션이 겹친다는 이야기지.”
“···실력은요?”
“그거야··· 한번 뛰어보면 알겠지? 어때 미니게임 한판 할래?”
이미 에링 홀란드와 이야기를 마친 제안을 건네는 소하. 물론, 그 사악한 계획에 넘어가지 않은 선수는 없었다.
“좋아요! 한번 뛰어보죠! 야, 경기장으로 따라 와봐. 네가 그렇게 축구를 잘한다며?”
콧김을 내뿜으며 에링 홀란드를 부르는 조쉬 킹. 결과는 조쉬 킹이 참패했다거나 하는 만화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괴물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뽐내며 선수들의 좋은 자극제가 되었을 뿐.
아니, 모두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훨씬 실력이 뛰어난 동료들이네요. 모이 근질거리는데요?!”
생각보다 뛰어난 동료들의 실력에 투지를 불태우는 에링 홀란드.
그 모습에 소하가 썩은 미소를 지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팀에 새로운 선수란 언제나 좋은 영향력을 뽐낸다.
특히나, 엄청난 재능 덩어리라던지, 이미 세계에 이름을 당당히 알린 선수라면 효과는 더더욱 좋다.
그리고 에링 홀란드는 두 가지 예시 중에서 전자에 해당.
재능으로는 역대급이라고 평가받던 델리 알리마저도 조금 빛이 바래져 보이는 에링 홀란드의 재능은 기폭제가 되었다.
“질 수 없다. 질 수 없어···!”
육체적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조쉬 킹. 놀라웠다. 자신보다 빠르고 자신보다 힘이 좋았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
하드웨어가 안 되면 소프트웨어로 승부를 봐야 하는 법. 이것이 바로, 조쉬 킹이 본격적으로 존 말로리의 가르침을 받게 된 원인이었다.
게다가 다른 선수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지라 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포츠머스의 상승세는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상승했다.
이로써 3부리그를 완벽히 제패한 포츠머스. 곧 다가올 리그의 향방을 조기에 결정하는 경기는 이미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 116화. 14-15시즌 마무리.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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