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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15화 (115/306)

< 115화. 14-15시즌 마무리. (1) >

아쉬운 결승전 패배. 젊은 감독과 젊은 팀에게는 극독이 될 법한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순서였기에 기자회견장에 몰린 기자들은 과연 소하가 어떤 태도로 인터뷰를 진행할지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평소보다 5분 정도 늦게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소하.

모두가 침통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진리를 깨달은 붓다의 모습이랄까. 보기만 해도 경건해지는 향냄새 같은 태도에 기자회견장은 술렁인다.

“···뭐지? 너무 편해 보여.”

“경기에 지는 날에는 엄청나게 저기압이던 감독 아니었나?”

“내가 본 결승전에서 진 감독 중에서 가장 온화한 얼굴이야.”

“응? 경기에서 이긴 거로 착각한 건가?”

“너무 충격이었나 봐. 혹은 한 발 뺐나?”

자기들 좋을 대로 마구 떠드는 기자들. 그 모습에 소하는 콧방귀를 끼며 싱긋 웃으며 투덜거린다.

“질문 없어요? 저 그냥 들어갑니다?”

목소리마저 온화함 그 자체. 벌써 봄이 찾아온 듯한 훈훈한 따스함이 어렸지만, 속에는 짐승의 이빨 같은 날카로움이 숨어있다.

이에, 기자들은 손사래를 치며 기겁한다.

“아, 아닙니다.”

“서, 설마요. 빠, 빨리 수, 순서대로 질물을 시작하세요!”

“어허. 지금 감독님을 앞에 두고 뭐 하는 겁니까!”

소하는 한다면 하는 인물. 엉덩이를 슬쩍 떼며 협박하자 서둘러 기자회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그래도 다잡은 경기를 놓친 결과는 매우 아쉬우실 텐데요.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휴고 어스틴의 첫 질문.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뱉은 질문이지만 속뜻은 뻔했다.

졌는데 기분 어떰? 정도랄까.

이를 제대로 알아들은 소하는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시발 거. 심정이 어떻긴 좆같지. 졌는데 너 같으면 콧노래 흥얼거리며 탭댄스를 추겠냐?’

놀랍도록 뛰어난 포츠머스 선수들의 향상심으로 다시 ‘으쌰 으쌰’ 해보자는 좋은 분위기가 되었지만 진 건 진 거다.

선수들도 졌다는 사실보다는 ‘졌지만, 다음에는 이기고 만다’라는 욕망이 더욱 커서 분위기가 반전된 것뿐.

패배의 상처는 가슴 속 깊게 새겨져 있었고, 아직 피를 줄줄 흘리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이런 질문은, 애써 감춘 상처를 외부에 공개하며 ‘배때기에 구멍이 좀 큰데, 칼침 맞은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는 거다.

실로, 잔인하며 간악하기 짝이 없는 공격!

“···심정이라···.”

잠시 으르렁거리는 소하.

잔인한 공격에 당당히 맞선다.

“분하고 짜증 납니다. 무척 실망스럽죠. 이것이 솔직한 제 심정이에요.”

거침없는 소하의 솔직한 심정 표현에 휴고 어스틴은 눈빛을 빛내며 다시금 우회 공격을 시도한다.

“···감독님의 전략은 전설적인 감독인 주제 무리뉴 감독을 압도했었습니다. 즉, 선수들에게 실망했다는 뜻인가요?”

자극적인 기삿거리를 뽑아내기 위한 교묘한 측면 공격.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도 전술적인 움직임만 보자면 이번 결승전은 소하의 승리였으니까.

“아니요.”

하지만 소하는 표정을 굳힌 채 즉시 반박했다.

“이 패배는 오롯이 저의 패배에요. 제가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 겁니다. 수 싸움에서 완전히 주제 무리뉴 감독에 졌어요. 그저 못난 감독을 잘 따라와 준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낼 뿐이에요.”

단호한 어조로 선수들을 감싸는 소하.

받은 게 있다면 주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받은 소하가 이런 언론의 공격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그렇군요. 자, 잘 알겠습니다.”

한 번 더 개소리해보라는 소하의 도전적인 눈빛에 깨갱거리는 휴고 어스틴. 슬쩍 한발 뒤로 물러나며 질문을 마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타 기자들의 속사포 같은 질문 세례. 소하는 오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친절히 답변한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이 압도적인데요. 다음 시즌에도 우승컵을 노리실 건가요?”

“당연하죠. 저흰 언제나 우승컵을 원하며 또 그것을 노릴 준비가 되었죠.”

“비록 아쉽게 패배했지만, 이것 또한 한편의 동화라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게 봐주는 평가이긴 하지만 전 동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굳이 장르로 표현하자면 다큐멘터리라고 봐주세요. 하하.”

동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는 현실적이냐 아니냐의 차이.

소하는 포츠머스가 결승전 무대에 오른 것은 운이 아닌 당당한 실력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거다.

“선수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저보다 훨씬 좋은 반응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로 돌아가 훈련을 하고 싶어 하더군요.”

사실이다. 패배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한 선수들이 훈련해도 되냐고 물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이번 패배가 포츠머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거 같습니까?”

“흐음.”

턱을 매만지며 조금 생각을 정리하는 소하. 이내, 명쾌하게 답변을 내놓는다.

“패배는 아쉽지만 이미 우리가 원하던 것은 모두 얻었습니다. 경기 내적으로, 외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만이 있을 거예요. 제가 예언하죠.”

거침없는 소하의 발언!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곧 만천하가 알게 되었다.

***

소하의 예언은 그대로 일어났다.

비록 우승컵을 차지했을 때의 반응보다는 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결승전에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기의 목표는 달성한 것과 다름없었다.

[아쉽게도 기적을 써 내리지 못한 포츠머스. 그런데도 그들의 빛나는 모습은 축구계의 또 다른 미화를 남겼다.]

[거대구단 첼시와 호각으로 맞선 약소 클럽 포츠머스. ‘축구공은 둥글다’라는 격언을 다시금 일깨웠다.]

[어떻게 다 망해가던 포츠머스는 첼시와 호각을 겨룰 정도로 성장했을까? 그 비밀을 파헤쳐보자.]

[연일 급증하는 포츠머스에 관한 관심도. 거대 기업들의 움직임이 포착되다!]

[우승팀보다 준우승팀이 더욱 관심받는 이상한 경기 결과.]

3부리그 주제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이 확실시되는 첼시를 고전하게 한 포츠머스.

보통 경기도 아니었고 시종일관 압도하며 종료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까지 아무도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치열한 경기내용은 축구계에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영국 내에서는 연일 포츠머스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으며,

유럽의 축구계에도 포츠머스란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

포츠머스의 위상은 단 하루 만에 몇 단계나 수직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대한민국. 여기에서는 그야말로 축구팬들이 이성을 잃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연일 포츠머스를 언급했다.

“진짜 인간승리 아니냐? 2년 전만 해도 법정관리를 받던 팀이 첼시랑 비등한 경기를 펼치는 게 말이 안 돼.”

“법정관리가 뭐야?”

“쉽게 말해 빨간딱지가 붙었다는 거야. 아주 제대로 망했다는 이야기지.”

“와···. 진짜 소름 돋는다. 멋있어. 나도 포츠머스나 응원해야겠다.”

“츄라이. 츄라이. 심지어 포츠머스는 공식 SNS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도 지원한다고.”

“역시 국민구단.”

승리자가 찬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패배자에게 연민의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

아쉽게 패배해버린 포츠머스에 연민을 품은 사람들이 팬으로 돌변하며 무시무시하게 세를 불려 나간다.

여기에 친아시아 정책은 입소문을 탔고 대한민국을 제외한 아시아 팬들의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가속화됐다.

“아시안에게는 최고의 축구 클럽!”

“포츠머스는 아시아의 구단!”

“차별 없이 모든 팬을 챙겨주더라고. 코쟁이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볼 줄 몰랐어.”

“아시안이면 포츠머스를 응원해야지.”

리그컵 결승전을 찾은 수많은 아시아 팬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가지기 시작.

순식간에 포츠머스의 팬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거대해졌다.

그리고 팬덤의 크기란 경제적 가치와 정확히 비례하는 법.

포츠머스의 유니폼이나 경기장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기 위한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의 포츠머스는 겉만 보기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팀입니다. 중계도 어려운 3부리그 구단이니까요.”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것은 저희가 기업인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인이란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 아닙니까?”

“···옳은 말입니다.”

“포츠머스의 성장세는 매섭습니다. 게다가 다음 시즌이면 챔피언십 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요컨대, 주식으로 치자면 지금이 저점매수를 할 시점이란 뜻입니다.”

온갖 통계를 들이대며 열띤 설득을 시도하는 각 기업의 전략실 직원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눈을 의심케 할 정도의 우상향 지표는 기업들이 지갑을 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진행하세요. 어떻게든 포츠머스와 계약을 따내야 합니다.”

수십 개의 기업이 서둘러 포츠머스와 접촉하기 위해 몸이 달아오른다.

이토록 바쁜 와중에 한 기업인은 소하같은 썩은 미소를 짓는다.

“후후후후. 너무 늦었어. 당신들은.”

현성 그룹의 셋째아들 이준석!

다른 사람들보다 1년 먼저 움직인 그로서는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이 그저 유쾌할 뿐이었다.

‘이로써 후계자 경쟁은 내가 한발 앞서나가겠군.’

이준석은 저 멀리 잉글랜드에 있을 소하에게 감사의 미소를 보냈다.

***

다시 리그에 전념할 시간이 찾아온 포츠머스. 리그컵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만나게 된 상대는 노츠 카운티였다.

전반기 전적은 0-0 무승부.

노츠 카운티의 원정경기에서 상당히 고전했던 포츠머스였다.

때문에, 경기에 앞서 많은 축구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예측한다.

“노츠 카운티의 승리가 보입니다. 포츠머스는 치열한 결승전 때문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니까요.”

“더군다나 결승전에서의 아쉬운 패배는 아직 팀에게 상처로 남아있겠죠. 정신적으로 불안할 겁니다.”

“번-아웃이란 현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결승전에 쏟아낸 포츠머스는 조금 무력한 모습을 보일 겁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었기에, 한번 태우고 나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바쁜 리그 일정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포츠머스가 약세에 처했다는 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홈경기라도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포츠머스의 콧대를 꺾을 절호의 기회다.”

노츠 카운티의 감독과 선수들은 물론이요, 서포터들 까지 승리를 기대하며 단단히 경기를 준비한다.

딱히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포츠머스를 꺾는다면 얻어가는 것이 많았으니까.

‘절대강자가 약해진 틈을 타 승점을 얻어낸다면 순위경쟁에서 크게 유리하다.’

‘연일 화제인 포츠머스를 눌러버린다면 상업적 이익이 따라올 거다.’

‘요즘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 너무 기고만장해서 고까웠는데, 이번 경기에서 이기고 평생 놀려줘야지.’

조금 유치한 서포터들의 생각.

하지만, 꽤 치명적이다.

이번 경기의 결과에 상관없이 포츠머스의 승격은 확실히 된다.

즉, 노츠 카운티가 승격하지 않는 이상 만난 일이 없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1승 1무를 거둔다면 적어도 노츠 카운티가 포츠머스를 압살했다는 증거. 다시 설욕할 기회도 없을 테니 영원히 노츠 카운티 서포터들은 포츠머스 서포터들에게 우위를 점하는 거였다.

요컨대,

전적 199패 1승, [최근 전적 1승]

같은 느낌이었다.

“흥. 어디 해보라지.”

물론, 선의에는 무감각하지만, 악의에는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소하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시작된 오랜만의 리그 경기.

포츠머스의 홈구장은 늘 그렇듯, 만석을 달성하며 엄청난 열기를 보여줬다.

아쉬운 결승전 패배는 서포터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똘똘 뭉칠 계기가 되었던 거다.

그리고 소하와 선수들도 이에 열렬히 응답. 피로감, 번아웃? 이딴 게 뭐냐는 듯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준다.

-삑! 삑! 삑!

[경기 종료! 포츠머스가 홈에서 노츠 카운티를 7-0으로 뭉개버립니다!]

[이건···. 이건···. 체급 차이가 너무 컸어요.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충격적인 결과네요.]

압도적인 경기 결과!

경기내용마저도 압살해버렸다.

노츠 카운티는 슈팅을 단 한 개도 때리지 못하고 그대로 침몰했으니까.

“한국에서는 이런 속담이 있어요.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라는 속담이죠. 속에 쌓인 울분을 풀어야 했던 차였는데, 참 운이 없었네요. 노츠 카운티는.”

싱글빙글 웃는 소하의 기자회견.

고소해 죽겠다는, 무척이나 얄미운 표정이었다.

소하의 말처럼 단순히 화풀이로써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첼시와 호각으로 싸웠던 경험은 돈을 주고 못 사지. 이제 우리 팀 선수들은 차원이 달라질 거다.’

뛰어난 선수들과 맞붙으면 선수들은 세 가지로 나뉜다.

좌절하거나,

아무 생각 없거나,

배우거나.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모두가 후자를 택했고 진화를 시작했다.

이젠 정말로 허물을 벗고 엄청난 덩치를 가지게 된 것. 더는 3부리그에서 포츠머스를 상대할 팀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우. 그럼 후딱 리그 우승을 확정 지어 볼까.’

남은 리그 경기는 17경기.

3달 남짓한 시간 동안 치열한 순위경쟁이 기다려졌지만, 소하는 단 한치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무한한 자신감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 115화. 14-15시즌 마무리.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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