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리그컵 결승전. (9) (수정) >
조쉬 킹의 멋진 역전골!
소하는 정상급 수비수를 연달아 물리치며 돌진하는 조쉬 킹에 모습에 모처럼 전율이 일었다.
‘···멋졌다.’
비록 판을 짠 건 소하였지만 수행하는 건 선수다. 상당한 난제를 부여했지만, 기어코 해내는 조쉬 킹의 성장에 박수를 보내지 않기가 힘들다.
‘2년이라. 그간 많이 컸네.’
18세의 애송이에서 20세의 청년이 된 조쉬 킹. 단순무식하고 아직 애새끼 같은 면이 다분하지만, 축구선수로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음이 분명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우승컵이 조금은 보일지도···.’
소하는 자기도 모르게 금기를 어기고 만다. 아직 30분이나 남았음에도 우승하는 모습을 떠올리다니.
휙휙.
세차게 머리를 흔드는 소하. 이러면 안 된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남은 30분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고 지금은 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떠오르는 황금빛 미래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다시금 냉정한 감독의 모습으로 돌아온 소하.
첼시의 공격으로 재개된 경기를 심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를 계산한다.
‘솔직히 내가 먼저 할 건 별거 없다. 이대로 현상을 유지하거나 수비적으로 바꾸던가.’
일반적인 방법이다.
한 골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앉거나,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첼시의 반응을 살펴보거나.
‘하지만 내려앉는 건 기각. 첼시를 상대로 30분이나 버틸 수비력이 안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첼시가 지금같이 묵직하게 경기를 운영하지는 않을 터.
본격적인 공세를 취할 거다.
그리고 이것을 30분 동안 수비적인 전술로 막아낼 역량을 포츠머스는 가지질 못했다.
‘그렇다고 현상 유지가 쉬운 것도 아니야.’
이미 반쯤 시체가 된 양쪽 윙백들.
남은 교체 카드 2장을 모조리 윙백의 교체로 사용한다면 어찌어찌 굴러가겠지만 뒤가 없다.
‘그래도. 일단 도봉산은 바꿔줘야 해.’
에덴 아자르라는 월드 클래스 선수를 60분이나 상대한 도봉산이 이미 넝마가 된 지 오래. 이렇게 무리하다간 부상의 악령이 덮쳐올지도 모른다.
‘바꿔줄 만한 선수는 매튜 다이스와 엑토르 베예린.’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일취월장 중인 어린 선수들이다.
스타일은 정반대.
누구를 투입하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뀐다.
‘정말 선택의 연속이구만.’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뱉는 소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감독의 자리에서 선택하는 건 힘들기 짝이 없다.
혼자만 책임지면 편할 텐데.
자신의 선택으로 수십 명의 선수가.
수백 명의 관계자들이.
수천, 수만 명의 팬의 미래를 바꾼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자르를 막으려면 베예린이 낫다. 매튜 다이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로···..’
결국 소하의 선택은 엑토르 베예린.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는 몰랐지만 주사위는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
후반 65분.
포츠머스의 역전 골이 나오고 나서 5분 뒤에 변화의 물결이 닥쳤다.
먼저 움직인 건 놀랍게도 포츠머스.
지칠 때로 지쳐 중앙선 위로 올라가는 것조차 포기한 도봉산이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포츠머스의 두 번째 선수 교체입니다. 도봉산이 나가며 아스널에서 임대해온 엑토르 베예린이 들어오는군요.]
[당연한 선택입니다. 도봉산 선수는 이미 너무 지쳐 보였거든요.]
“수고했다.”
터덜터덜, 벤치로 걸어들어오는 도봉산의 어깨를 두들기는 소하.
“분하네요.”
도봉산은 짤막하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교체에 대한 불만이 아닌, 교체를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자신에 대한 분노다.
“···넌 아직 창창해. 꾸준히 노력하면 체력적인 부분도 놀랍도록 향상될 거다.”
“어떻게든 따라잡겠어요.”
두 눈을 활활 불태우며 주먹을 움켜쥐는 도봉산. 다른 동료들에 비해 부족한 체력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10분. 혹은 15분.
그 정도만 더 버텨줬다면 팀이 훨씬 편하게 승리를 굳힐 수 있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다른 선수보다 1년 늦게 소하의 훈련을 받기 시작한 도봉산의 한계였다.
[결국 교체 카드를 먼저 사용한 포츠머스가 또다시 한 장 사용하면서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첼시의 움직임이 기대되는군요. 제 생각에는 무리뉴 감독은 포츠머스의 교체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마도 곧바로 반응을 할 겁니다.]
장내 해설의 날카로운 지적.
거의 예언에 가까운 지적이었다.
‘지금이다···!’
소하가 쥔 패가 모조리 까발려질 때까지 참고, 또 참았던 무리뉴 감독.
드디어 두 눈을 빛내며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첼시가 바로 반응합니다! 기다렸다는 듯한 모습인데요!]
[오스카를 빼주고 존 오비 미켈을 투입합니다! 그리고, 네마냐 마티치와 하미레스를 바꿔주는군요!]
65분 내내, 끌려가는 와중에도 단 한 장도 사용하지 않던 교체 카드를 2장이나 사용하는 주제 무리뉴 감독.
그동안 꿈 뜨던 모습과는 천차만별이다. 실로 번개 같은 반응속도! 이 교체는 단순한 선수 교체가 아니기도 하다.
[첼시가 4-2-3-1 포메이션에서 4-3-3 포메이션으로 바꿀 생각인가 봅니다.]
[그렇죠. 존 오비 미켈이 원 볼란치로 서며 포백 보호와 볼배급을 맡을 거예요.]
그리고 소하는 이토록 빠른 주제 무리뉴 감독의 반응에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당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1분 만에 대응 방안을 보여줄 리가 없었으니까.
이 말은 즉, 소하의 선택은 무리뉴 감독이 기다리던 기회라는 이야기였다.
‘존 오비 미켈. 요상한 선수지만 확실히 우리 팀에게는 치명적인 선수다.’
존 오비 미켈.
별명은, ‘등지고 딱딱’.
혹은 ‘축구 물리학자’.
이 선수의 장점은 단 한 가지다.
엄청난 ‘볼 키핑’ 능력.
탄탄한 기본기와 함께 단단한 신체 능력으로 공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선수다.
‘지금 우리 팀의 우세는 커너 러셀이 볼배급을 맡은 파브레가스를 잘 물고 늘어졌기 때문.’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세계구급 패스와 창조성을 지녔지만, 압박에 약한 선수.
압박의 대가인 커너 러셀의 전담마크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경기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투 볼란치에서 원 볼란치로 전술을 바꿀 첼시의 볼배급을 맡은 존 오비 미켈은 압박에 유달리 강한 선수야.’
즉, 커너 러셀을 공격형 미드필드의 자리에 놓으며 첼시를 어렵게 만들었던 소하의 노림수가 백지로 돌아간 거다.
이렇게 된다면 특수한 임무를 맡은 커너 러셀은 경기장에서 붕 뜨게 될 터.
선수 한 명이 없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는 이야기.
외통수였다.
게다가, 같이 투입된 하미레스는 엄청난 활동력을 지닌 선수.
다소 기동력이 부족한 파브레가스와 존 오비 미켈의 단점을 잘 메꿔주며 첼시의 중원에 힘을 실어 줄 거다.
그리고, 소하의 예측은 곧바로 경기장에 나타났다.
[첼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다소 고전을 면치 못하던 중원에서 볼이 돌아가기 시작하는군요!]
[존 오비 미켈! 신기한 선수예요! 커너 러셀과 델리 알리의 압박을 굉장히 쉽게 풀어 내버립니다!]
압박을 즐기는 남자, 존 오비 미켈.
커너 러셀과 델리 알리를 손쉽게 요리하며 패스가 좋은 파브레가스에게 패스를 건넨다.
“좋아.”
경기 시작, 70분 만에 모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그가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는 포츠머스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드디어 파브레가스의 놀라운 창조성이 발휘됩니다.]
[마치, 공중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야에요. 이런 시야를 가지고 저토록 세밀한 패스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믿기지 않는 일이죠.]
그간 커너 러셀에게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단단히 작심이라도 한 듯, 날카로운 패스를 마구마구 뿌려댄다.
“버텨!”
“우린 할 수 있다!”
거센 첼시의 공격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내 보지만 점점 뒤로 밀려난다.
그래도.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틴다면 역사적인 첫 우승컵을 들 수 있다는 희망을 부여잡으며 악착같이 버텨내는 포츠머스.
그 모습은 경기를 바라보는 포츠머스 서포터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힘내라! 조금만 더 버텨!”
“할 수 있다! 너희는 할 수 있어!”
“더 목소리를 올려! 우리의 힘을 건네줄 기세로 악쓰란 말이야!”
어떻게든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목에 핏대를 세운다.
이렇게라도 외친다면 조금이라도 힘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
이 작은 바람이 정녕 도움이라도 됐는지, 몇 차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음에도 후반 85분까지 버티는 데 성공한다.
[경기가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남은 정규시간은 5분. 추가시간까지 생각해보면 10분 정도 남았을 거 같습니다.]
[글쎄요. 상당히 점잖은 경기였기에 추가시간은 3분 정도일 겁니다. 요컨대 8분 남았다는 이야기죠.]
10분과 8분.
고작 2분 차이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2만 시간의 차이다.
충분히 지적할만한 요소.
[슬슬 양 팀의 감독들이 마지막 남은 교체 카드를 만지고 있을 거 같은데요.]
[아마도 골이 필요한 첼시가 먼저 움직일 거 같습니다.]
실제로, 소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버티고 있었고 주제 무리뉴 감독은 슬슬 교체를 마음먹는 중이다.
‘마지막은···.’
교체할 선수를 깊이 고민하는 무리뉴 감독. 하지만 곧, 경기장에는 큰 이변이 불어닥친다.
“윽···.”
볼을 처리하는 와중에 헛발질하며 넘어져 버리는 잭 해리슨.
몸이 너무 지쳐버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기회다.’
이를 놓칠 첼시의 선수들이 아니다.
곧바로 골을 탈취한 윌리앙이 과감한 측면돌파를 시도. 거침없이 포츠머스 선수들을 따돌리며 순식간에 페널티 박스 안까지 들어왔다.
결정적인 컷백 찬스!
하지만 아쉽게도 14-15시즌의 윌리앙은 마무리가 좋지 않은 선수.
어영부영 공을 끌다가 컷백을 시도하지 못하고 공을 뒤로 보낸다.
첼시 팬으로서는 매우 어처구니없는 마무리였지만 오히려 이것이 변수를 만들어냈다.
-툭.
윌리앙이 건넨 패스를 다이렉트로 감아 차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슛이었지만 묘하게 잘 감겨 들어갔다.
-휘리리리리릭.
엄청난 회전을 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파브레가스의 중거리 슛.
모두가 숨을 멈춘 채 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슛을 바라봤고, 곧이어 결과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텅, 철썩!
골포스트를 맞추며 그대로 골네트를 갈라버렸다.
첼시의 극적인 동점 골.
[골입니다! 골! 첼시가 후반 86분 드디어 동점 골을 만들어냅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완벽한 중거리 슛이었습니다. 윌리앙의 백패스가 이런 결과를 만들지는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다시금 요동치는 웸블리 스타디움. 이제 결과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개에 쌓이게 됐지만, 소하는 머리를 감싸 쥔다.
‘졌다.’
이대로 무승부로 정규경기가 마감된다면 연장전으로 들어갈 터. 연장전으로 들어간다면 이미 가진 패를 모두 사용한 소하로서는 이길 수가 없었다.
‘이건 안 돼. 후우.’
소하답지 않게 패배에 눈이 캄캄해진다. 이대로 포기해버릴까? 하지만 아직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감독님. 할 수 있습니다.”
“저흰 믿어요.”
수석코치 밀러와 벤치에서 대기 중인 선수들. 그리고,
“아직 할 수 있다! 우린 할 수 있다!”
“성소하! 마지막으로 마법을 부려줘!”
“더! 더! 목소리를 올려!”
수만 명의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포기할 순 없다.’
재빨리 제정신을 차린 소하.
곧바로 선수 교체를 지시한다.
“우린 연장전에 가지 않는다. 안토니오 그린 너의 머리를 믿는다.”
“네!”
과감하기 짝이 없는 소하의 선수 교체.
이참에 모든 선수에게 버럭 소리치며 공격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우린 공격한다! 다 앞으로 튀어 나가!”
남은 시간은 7분.
소하는 이 7분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단단히 작심했다.
붕 떠버린 커너 러셀을 안토니오 그린으로 교체. 헤딩이라는 무기까지 장착하고선 악착같이 공격에 공격을 거듭한다. 결코 연장전으로 가지 않겠다는 의지!
‘훗. 재밌는 감독이군.’
소하를 곁눈질하며 빙글 웃는 주제 무리뉴 감독. 그는 절대 만만치 않은 감독이었다.
[디에고 코스타를 빼고 디디에 드로그바를 투입하는 주제 무리뉴 감독!]
[이것은 세트피스와 공중을 노린다고 봐도 괜찮겠죠. 공수 둘 다에서 말이에요.]
무리뉴 감독의 대응은 참으로 시기적절했다. 비록 37세의 노장이었지만 여전히 공중볼에는 신에 가까운 선수였으니까.
게다가 디디에 드로그바라면 큰 경기에서 강한, 클러치 능력이 엄청난 선수.
이런 큰 무대에서 큰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하는 선수다.
그리고 곧 이 교체투입은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포츠머스의 파상공세가 한풀 꺾이며 첼시에게 소유권이 갔어요. 아! 아자르의 뛰어난 드리블이었지만, 코너 아웃이 되는군요. 코너킥입니다.]
[슬슬 주심이 시계를 바라보는군요. 아마도 정규시간 마지막 공격이 될 거 같습니다.]
추가시간 3분. 경기 내내 엄청난 영향력을 선보인 아자르가 얻어낸 코너킥.
키커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목표는 당연히···.’
한 선수밖에 없다.
-뻥.
최대한 디디에 드로그바가 움직이는 영역을 향해 정확한 코너킥을 시도한 파브레가스.
경기의 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정확도의 코너킥은 포츠머스 선수들을 제압하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디디에 드로그바에게 정확히 향한다.
-철썩.
말콤 우드가 반응도 하지 못할 강력한 헤더 슛이 작렬. 그대로 공이 골망을 가른다.
[디디에 드로그으으으으으바! 역전 골을 뽑아냅니다!]
[결승전의 사나이! 37세의 나이로 첼시에 돌아와 팀에게 우승컵을 안겨줍니다!]
-삑! 삑! 삑!
바로 울리는 경기 종료 휘슬.
동시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경기장에 엎어진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눈물을 머금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한 발짝만. 단 한 발짝만 더 다가갔다면.
역사를 새로 쓸 수가 있었는데.
반쯤 손에 쥐었던 우승컵이 저 멀리 사라지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
이것은 소하도 마찬가지.
그답지 않게 눈을 질끈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몰아 내쉰다.
‘더 잘했어야 했어.’
선택의 연속. 아무리 회귀자라 할지라도 결국 선택에 따라 변하는 미래는 알지 못한다.
만약 도봉산을 조금 더 늦게 빼줬다면?
그전에 조쉬 킹의 투입을 5분 정도 더 늦게 투입했다면?
엑토르 베예린 말고 매튜 다이스를 선택했다면?
남은 30분을 다른 전술로 헤쳐나갔다면?
가정의 연속.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소하의 마음을 쉬지 않고 어지럽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후회해봤자 늦었다. 결과는 나왔으니까.
“후우···.”
깊은 한숨을 멈추지 못하는 소하. 축구란 정말 어려웠다.
***
경기 종료 후 라커룸 문 앞.
조금 뒤늦게, 흐트러진 감정을 애써 추스른 소하가 모습 드러내었다.
‘분명 많이들 실망했겠지.’
포츠머스 선수단은 젊다.
젊다는 건 그만큼 평균적으로 감정적인 기복이 크다는 뜻. 분명히 초상집 분위기가 따로 없을 거다.
‘···어떻게 다독여줘야 할까.’
짐짓 고민하는 소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애당초 위로란, 자기 자신부터가 멀쩡해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남을 위한 말을 해줄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게다가 소하는 지금 큰 그림을 다시 그리느라 머리의 지끈지끈 아픈 상태다.
‘후우···.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로파리그에 무조건 진출했어야 했는데. 다 꼬여버렸어.’
상금도 상금이지만, 유로파리그 진출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에 실패했다는 건 그동안 세워왔던 대전략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이야기.
참으로 난관이 아닐 수 없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녀석들을 북돋아 줘야지.’
누군가를 위로할 마음의 여유는 부족했지만, 애써 의무를 이행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서 문을 연다. 영혼이 없는 말이라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으니까.
덜컥.
모처럼 긴장한 채 라커룸으로 들어온 소하. 대단히 무거운 분위기가 예상되었지만, 이게 웬걸. 소하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어? 뭐야? 감독님 오셨어요? 설마 울고 오신 건 아니죠?”
“힘내세요. 다음에는 무조건 이길 테니까요. 저 멍청이 조쉬 킹이 한 골 더 넣어주기만 했어도 이긴 거였어요.”
“맞아요. 제가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 거예요. 좀 더 가르쳐주세요!”
델리 알리, 칼빈 필립스, 조쉬 킹.
세 명의 악동들이 소하에게 달라붙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으며,
“감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기필코 우승해보도록 하죠.”
“뭘 의기소침 해있나? 넌 최고였어. 다음번에 복수하면 되는 거다. 프리미어 리그로 갈 거잖아?”
케빈 도슨과 찰스 말로리는 훗날을 도모하자며 어깨를 두들겼고,
“울적해 보이시는데, 저랑 낚시나 가서 마음을 풀어보죠?”
“심신 단련에는 요가가 최고입니다. 끝나고 한판 뛰러 가시겠습니까?”
마이클 반즈와 스티븐 데커는 이때다 싶어 취미 활동을 권유한다.
이 외에도 모든 선수가 웃으며 소하에게 몰려들어 미래를 함께 꿈꾼다.
“감독님 이번에는 절 빼셨지만, 다음에는 꼭 써달라고요! 그때까지 절대 떠나지 않겠어요.”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더 짚어주십시오.”
“앞으로 체력훈련을 더 해주시기로 한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기필코 다음에는 아자르의 콧대를 꺾어버릴 겁니다.”
“엄청난 성장을 이룰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그러니까 꼭 다음 결승전에는 절 선발로 써주십시오!”
“으아아! 짜증 나네요. 다음엔 무조건 복수할 겁니다.”
어느새 패배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앞을 바라보는 멋진 자세로 일관하는 선수들.
“감독님. 감독의 자리란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안 되는 법입니다. 같이 다시 올라가면 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잭 해리슨의 잔소리까지.
그 험난한 역할로 풀타임을 뛴 그는 사색이 되어있었지만, 미소는 잃지 않았다.
“···.”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소하.
여러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서 휘몰아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뽐내는 건, 다름 아닌 기쁨.
‘새끼들···.’
역으로 선수들에게 위로를 받을지 몰랐다.
이렇게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강인한지도 몰랐다.
‘녀석들을 과소평가 한 건 나 혼자였단 말인가···.’
소하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천천히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선수들이라면. 어떠한 역경이 몰아치더라도 버텨낼 수 있겠지.
그래, 다시 한번 달려가 보자.
‘아니지. 계속 달려보자.’
바뀐 건 없었다. 잠깐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지라도. 일으켜줄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새, 새끼들이 처발리고서 웃고 있긴! 다들 포츠머스까지 뛰어서 돌아가고 싶냐?”
선수들에게 감동하였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기 위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하.
그 모습에 포츠머스의 라커룸에는 패배한 팀답지 않게 웃음꽃이 감돌았다.
< 114화. 리그컵 결승전. (9) (수정)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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