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11화 (111/306)

< 111화. 리그컵 결승전. (6) >

하루 전.

존 말로리는 소하에게 따로 부름을 받았다. 아직 선발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인지라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감독 사무실을 찾아간 존 말로리.

“왔냐?”

“···네 감독님.”

심상치 않은 소하의 분위기에 존 말로리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넌 내가 왜 계속 팀에 잡아두는지 아냐?”

“···.”

존 말로리는 소하의 질문에 좀처럼 답을 하지 못한다. 소하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이유를 몰랐으니까. 그저 막연한 추측을 가졌을 뿐이다.

“뭐···. 튜터링?”

한참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

그리고 이것은 정답이었다.

“정확해.”

“···.”

소하의 즉답에 존 말로리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과 확답을 받는 것은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 달랐으니까.

“넌 정말 아쉬워.”

작은 충격에 손끝을 떠는 존 말로리에게 소하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축구 지능은 프리미어 리그급이지만, 육체 능력은 프로레벨에서 간당간당하지. 솔직히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바로 프로미만일 거야.”

두 능력을 합쳐서 간신히 2부리그 선수 정도는 된다는 것이 존 말로리에 대한 소하의 평가다.

이래저래 축구는 신체 능력이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 아니,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다.

아마추어 수준의 신체 능력으로는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쓴웃음을 머금는 존 말로리.

알고 있었다. 부족한 신체 능력을 애써 머리로 보완하며 ‘하부리그의 인자기’로 불렸지만, 결국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형의 반만 닮았더라도···.’

형인 찰스 말로리는 알아주는 육체파 선수. 축구 지능이 부족해서 포츠머스와 손잡고 몰락한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년간의 프로 경험을 토대로 부족한 머리를 채우며 좋은 선수로 발돋움한 상태.

존 말로리와 정반대였다. 신체적 능력은 계속 떨어지기만 하지만 경험이란 계속 늘어나니까.

“너의 뛰어난 두뇌는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야. 알고 있겠지?”

“···네.”

젊은 팀의 특성상 경험이 부족하다.

경험이란 즉 축구 지능과 상관관계가 큰 요소. 이를 채워주기 위한 선수는 꼭 필요하다.

“돌대가리 같은 새끼들을 하루라도 빨리 사람으로 만들려면 너는 상당히 소중한 존재지. 다만, 경기장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자리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

“넌 주인공이 될 수 없어. 적어도 이 팀에서는.”

“···.”

소하의 선고.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네가 원한다면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주겠어. 정말이야. 꼭 붙잡고 싶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니까.”

“···.”

소하의 제안에 심한 번뇌를 느끼는 존 말로리. 문득, 은퇴하는 그 날까지 3~4부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용의 꼬리보란 뱀의 머리가 낫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넌 내 진정한 목표가 뭔지 아냐?”

“···유럽대항전 진출 아니에요?”

“아니.”

씨익 웃으며 바로 부정하는 소하.

유럽대항전 진출은 고작 과정에 불과하다. 진정한 목표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일.

“그, 그럼···. 프리미어리그로 승격?”

“아니.”

“서, 설마 챔피언스리그 출전이에요?”

존 말로리는 그의 상상력이 닿는 범위에서 최대한 높은 목표를 말해봤지만, 여전히 소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좀 더 써봐.”

“프, 프리미어리그 우승?!”

대경실색하는 존 말로리. 눈앞의 자신과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소하가 범인의 경지는 뛰어넘었다는 건 진작 알았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라니. 이딴 건 목표가 아닌 그저 허황한 꿈 아닌가.

“틀렸어.”

“···.”

“귀 파고 똑똑히 들어라. 선수 중에서는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니까.”

“알겠어요.”

자세를 가다듬으며 존 말로리는 소하의 입술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소하의 충격적인 발언에 그만, 사고회로가 정지해버린다.

“난 트레블이 목표다. 그것도 10년 안에. 아니지, 이제 8년이군. 잘만하면 시간을 더 단축할지도? 하하.”

“!?”

존 말로리는 귀를 의심했다. 트레블이라니. 트레블이라니!

축구 역사를 수놓은 수십, 수백만의 축구선수. 이들 중 트레블이란 위업을 달성한 선수는 한 줌에 불과했다.

맨정신으로는 포츠머스 같은 팀으로 트레블을 하겠다는 사람은 절대 없다.

그렇다면 농담이라는 건데, 그가 아는 성소하란 사람은 농담을 즐겨도 이럴 때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스윽.

존 말로리는 충격으로 인해 떨구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소하의 눈을 지긋이 바라본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소하의 눈빛.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감정이 휘몰아친다.

열정, 진심, 좌절, 사랑, 두려움, 희망.

그리고··· 광기.

‘이 사람은··· 진심이고, 미쳐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떠는 존 말로리. 그는 알 수 있었다.

성소하는 진심이고, 제대로 미쳐있다는 사실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해내려면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으니까.

“나와 함께 미쳐볼래?”

나직한 목소리로 너무나도 달콤하며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한 악마의 제안을 내미는 소하.

그리고, 존 말로리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받들겠습니다.”

***

전반, 21분.

아직 포츠머스와 첼시의 경기는 0-0으로 팽팽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중이다.

어디까지나 점수만 보자면 말이다.

[포츠머스가 예상과는 다르게 선전하고는 있지만, 첼시는 역시 첼시입니다.]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첼시의 파상공세에 시달리고 있어요. 중원에 좀 더 많은 숫자를 배치했지만,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은 오스카가 존재감을 과시하네요!]

오늘따라 유달리 몸이 가벼운 오스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브라질산 홍길동 같은 대활약으로 포츠머스는 점유율마저 내준 상태다.

때문에, 포츠머스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상황에 부닥친 상태.

[9 : 0]

단순한 슈팅 숫자만 봐도 압도적인 경기력 차이다.

지금까지 골을 허용하지 않았던 건 단지, 포츠머스 중앙수비수들의 리그를 뛰어넘는 실력과 노장 골키퍼 말콤 우드의 회춘모드 덕분일 뿐.

언제 골을 헌납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까지 왔다.

“역시 첼시는 너무 강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결과지.”

“그래도 수고했다.”

“오스카가 미쳐 날뛰네. 혼자 3인분은 하고 있는데?”

절망적인 분위기에 휩싸인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하지만, 의외로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계획대로야.’

‘아직도 펄펄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느려졌다.’

‘오스카는 엄청난 활동량에 비해 체력적으로 부족한 선수.’

‘초반보다 훨씬 굼떠졌어.’

착착 계획이 완성되는 중인지라 동요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애당초 전반전 내내 이루어져야 했던 목표가 조금 더 앞당겨졌기에 더욱 힘을 낸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오스카.

오늘따라 몸 상태가 좋아 마구 뛰어다닌 후폭풍이 벌써 찾아왔다.

애당초 가진 체력이 플레이 스타일에 기반이 되는 활동량에 미치지 못한지라 빠르게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은 2월. 한 시즌의 후반기이다. 이미 체력적으로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의 과열은 전반전 중반 만에 지쳐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즉, 슬슬 포츠머스에게 분위기가 넘어갈 시간이라는 뜻!

[어? 점점 포츠머스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입니다!]

[전반전 30분 내내 두들겨 맞던 포츠머스가 이를 악물고 버텨내어 다시 주도권을 회복하고 있어요.]

오스카의 발이 느려지기 무섭게 포츠머스가 다시금 주도권을 회복.

이제 거침없이 본래의 실력을 뽐내기 시작한다.

드디어 첼시 중원의 약점인 기동력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

게다가 오늘 특이하게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커너 러셀의 활약이 점점 조명된다.

[조금 지친 모습의 오스카를 대신해 빌드업을 주도해야 할 파브레가스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굉장히 독특하게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커너 러셀이 파브레가스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어요. 저 선수는 경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파브레가스와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아요.]

이로써 첼시의 중원은 마티치를 제외하고선 전부 다 무력화.

중원이 무너지면 결국 측면도 영향력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측면으로만 압축되는 결과였으니까. 알면 막기 쉬워지는 건 어느 종목에서나 통하는 법.

제대로 소하의 전술이 먹혀들어 갔다.

[중원에서 볼 전개가 되지 않으니 첼시의 공격이 매우 무뎌집니다.]

[너무 단순해졌어요. 중앙에서 공이 계속 뒤로 돌아가니까, 수비수들이 롱패스를 이용해 측면으로 벌려주기만 합니다.]

단순한 원 패턴이 돼버린 첼시의 공격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이를 절대 놓칠 사람들이 아니다.

두 눈을 빛내며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가 된 포츠머스.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왔다.

[개리 케이힐이 롱패스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미 포츠머스 선수들이 그의 플레이를 예측하는군요!]

[공의 낙하지점으로 포츠머스 선수들이 먼저 움직입니다!]

윌리안을 향한 개리 케이힐의 롱패스가 너무나도 쉽게 잭 해리슨과 스티븐 데커의 협력 수비에 막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포츠머스의 빠른 공세.

공을 잡아낸 잭 해리슨은 재빨리 스티븐 데커에게 패스.

스티븐 데커는 오른편의 마이클 반즈에게,

마이클 반즈는 공을 받아주기 위해 내려온 알리에게,

알리는 오른쪽 측면에서 아스필리쿠에타의 등 뒤로 돌아 들어가는 도봉산에게.

물이 흐르듯이 유연한 연계로 순식간에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한다.

“후우.”

순식간에 편안한 자리에서 크로스 기회를 맞이한 도봉산. 윙백이지만 윙어와 다를 바 없이 플레이 중인 그는 짧은 호흡을 한번 내쉰 뒤 정확한 크로스를 올린다.

목표는 중앙이 아닌 어느새 문전까지 쇄도한 델리 알리의 머리!

타고난 축구 센스로 한 박자 늦게 페널티 박스로 침투하는 것은 델리 알리의 특기 중에서도 특기. 이 특기가 제대로 발휘됐다.

도봉산의 크로스는 매우 정확했고, 알리의 서전트 점프도 타이밍이 매우 좋다. 전형적으로 골 냄새가 풀풀 나는 멋진 하모니!

-툭.

센스 넘치는 선수답게 니어 포스트가 아닌 공이 날아온 방향인, 파 포스트로 공의 궤적을 바꾸는 헤더를 시도하는 델리 알리.

그 모습이 마치 머리로 감아차기를 시도한 것처럼 보인다.

“오오오오!”

“제발!”

손에 땀을 흘리며 공에 시선을 못 박은 관중들. 느낌상, 이것은 완벽한 골인지라 이미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하지만.

첼시에는 전설적인 골키퍼가 골문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첼시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올 타임 10위 안에 들어가는 골키퍼, 페트르 체흐.

헤드기어가 상징인, 이 전설적인 골키퍼는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델리 알리의 헤더에 기어코 반응해냈다.

-툭.

그대로 골네트에 빨려가던 공을 손끝으로 쳐내는 데에 성공하는 페트르 체흐!

모 격투 게임의 인도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슈퍼세이브였다.

[페트르 체흐의 슈퍼세이브으으으으! 두 눈의 건강이 의심스러울 엄청난 세이브입니다!]

[이건 한 골 넣은 것과 다름없는 세이브에요. 어떻게 사람이 저걸 반응을 합니까!]

믿기지 않는 초월적인 선방 능력에 포츠머스 팬들은 머리를 부여잡았으며,

첼시 팬들이 오히려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며 환호한다.

그리고, 아직 경기는 멈추지 않았다.

[체흐가 쳐낸 공이 운이 좋게도 아스필리쿠에타의 발밑에 떨어집니다!]

[아스필리쿠에타, 곧바로 역습을 시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에덴 아자르의 앞으로 긴 패스를 시도합니다!]

다시 한번 정확한 패스를 받은 아자르.

이번에는 그를 방해하는 선수조차 없다. 그대로 툭툭, 유려한 드리블을 보여주며 골문 앞까지 쇄도.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한다.

“내가 막는다!”

포츠머스의 최후의 보루, 찰스 말로리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에덴 아자르 앞에 선다.

하지만, 이미 탄력을 받은 아자르를 혼자서 막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방향 전환 드리블에 그대로 녹아버린다.

그렇다면 이제 아자르를 막을 선수는 말콤 우드뿐. 케빈 도슨과 칼빈 필립스가 입에 거품을 문 채 달려오고 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툭.

자세를 낮춘 말콤 우드를 완전히 피해 가는 밀어차기를 시도하는 에덴 아자르.

결국,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골입니다! 골! 위기를 기회로 만든 첼시의 선제골이 터져 나왔습니다!]

[에덴 아자르 대단한 선수예요. 저런 기회를 놓치는 선수가 아니죠!]

“와아아아아!”

“아자르! 아자르!”

순간,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는 첼시 서포터들의 환성.

결정적인 위기를 곧바로 골까지 연결하는 믿기지 않는 모습에 이성을 잃었다.

“···응, 체급 빨 좆망겜.”

그림은 완벽했지만, 점을 찍지 못한 소하. 절로 투덜거림이 나왔다.

전반 35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리그컵 결승전은 점점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 111화. 리그컵 결승전.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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