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리그컵 결승전. (5) >
충격적인 소하의 선발 명단!
양 윙을 윙백으로 사용하며,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사용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명단에 축제 분위기던 포츠머스 시민들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내가 잘못 본거지?”
“성소하 감독이 장난기가 많긴 하지만 결승전에서 이럴 줄이야···.”
“다 생각이 있다고 믿고 싶지만···. 이건 진짜 모르겠다.”
“이번 시즌 26골이나 넣은 조쉬 킹이 후보라니. 이길 생각이 있다고 보긴 힘들지 않나···.”
말을 잊지 못하는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정상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무슨 비책을 준비했다 치더라고, 조쉬 킹이 빠지고 존 말로리가 선발 출장한 것은 설명이 힘들었으니까.
“일단은 공격적인 전술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잭 해리슨은 몰라도 도봉산은 단 한 번도 윙백 자리에 서본 적이 없는 선수입니다. 게다가 수비력이 좋은 선수는 절대 아니죠. 말만 윙백이지 윙처럼 뛸 것입니다.”
“조금 이해가 어려운 선발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바로, 첼시라는 높고 거대한 산을 공격으로써 정복하겠다는 의지라는 겁니다.”
전문가들도 설왕설래가 오갔지만 그나마 일반인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소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아차렸으니까.
하여튼, 독특한 소하의 선발 명단은 경기 시작 전에 가지는 짧은 기자회견에서도 거론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
제일 먼저 질문을 받게 된다.
“감독님, 오늘 특별한 선발을 준비해 오셨는데요, 의도가 무엇입니까?”
형식적인 인사 따윈 버려둔 채 곧바로 돌직구를 날리는 기자들.
그들이 얼마나 궁금해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암. 다들 매우 궁금하신가 보네요. 별거 있겠어요? 이기기 위한 선발이에요.”
나긋하게 일반적인 답변을 내놓는 소하. 작은 하품까지 하는 모습은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라는 태도다.
“죄송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기겠다는 건지 조금이라도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도 소하의 답변은 궁금증의 ‘궁’자도 풀어주지 못했다.
조금 더 자세한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단. 직업의식을 넘어 개인적인 궁금함을 풀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넘실거린다.
“구체적이라. 공격으로 첼시를 이겨볼 생각이에요. 그럼 전술 이야기는 여기서 끝!”
빙글 웃으며 질문을 일축하는 소하. 상당히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답변이었지만 기자들은 더 물어보기 힘들었다.
그 첼시를 이기기 위한 비장의 술책을 함부로 떠벌릴 감독이 존재할 리는 없었으니까. 여기서 더 물고 늘어진다면 예의와 상식을 한참 벗어난 일.
최악의 상황에는 완전히 소하의 눈 밖에 날지도 몰랐다. 요즘 한참 상한가를 연일 갱신하는 스타에게 버림받는다면 앞으로의 기자 인생에 먹구름이 낄 터. 기자들은 애써 본능을 숨기며 더 추궁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건졌지 않았는가.
‘포츠머스는 공격적으로 첼시를 상대한다···!’
이것만으로도 수천 자의 칼럼을 쓸 만큼 소재가 훌륭했기에 기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본격적인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포츠머스의 라커룸.
처음 써보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라커룸인지라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처음 맛보는 선발 명단도 어색함을 더욱 가중한 상태.
선수들에게서 묘한 기운이 감돈다.
“자, 귀 파고 똑똑히 잘 들어라.”
그러든지 말든지. 소하는 호쾌하게 작전을 다시 한번 주입한다.
“출발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는 공격한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이것은 이미 주지 받은 사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는 명확하게 설명 들은 바가 없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무조건 공격한다고 해서 첼시의 수비를 뚫어내지는 못한다.”
끄덕끄덕.
선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고개를 격하게 흔들면서 긍정한다.
첼시의 수비는 세계적인 팀들도 쉽사리 뚫어내지 못하는 강철 방패였으니까.
“시건방지게 공격하다가는 뚫기는커녕 방패에 맞아 이빨이 털리겠지. 때문에, 우리는 전반전 내내 방패에 흠집을 내는 작업을 진행할 거다.”
잠시 숨을 고르는 소하. 이 틈을 타서 선수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감독님의 말을 들어보니 노리고 있는 선수가 있어 보이네요.”
“맞아요. 한 명 잡고 몰매 때리는 건 감독님 특기잖아요.”
“누굴 괴롭힐 작정이죠?”
소하와 거의 2년을 함께 보낸 선수들답게 아주 잘 파악했다.
“좋아. 좋아. 2년쯤 채찍질을 받다 보니까 너희들도 생각이란 걸 하게 되었구나?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소개해도 부끄럽지는 않겠어.”
사악하게 웃으며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날리는 소하. 잠시 라커룸에 웃음이 감돈다. 조금 전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느샌가 사라진 상태.
분위기 잡는 실력만큼은 나날이 신선의 경지에 오르는 소하였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오스카’다. 일단 첫 번째는 말이지.”
오스카.
14-15시즌 첼시의 핵심 선수라고 봐도 절대 과언이 아닌 선수다.
시즌 초반, 첼시의 선두질주에 크게 관여했던 팀의 기어 역할이다.
“우선 우리는··· 녀석의 체력을 빨아먹을 거다. 아주 너덜너덜하게 말이지.”
어느새 입가의 웃음기를 싹 지운 채 열정적으로 전술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소하.
선수들도 그 열정에 전염되어 두 눈빛을 빛내며 소하의 말에 빠져든다.
단, 한 명을 빼고선 말이다.
“···.”
중요한 경기전 전술 지시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한 선수. 그 선수는 바로, 오늘 충격적인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조쉬 킹이었다.
***
호루라기가 울리기 몇 분 전.
소하와 무리뉴 감독은 드디어 대면했다.
악수를 하며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반갑습니다. 무리뉴 감독님.”
“나도 반갑습니다. 성소하 감독.”
소하를 꽤 좋게 봤는지 점잖은 미소를 지으며 받아주는 주제 무리뉴.
전설적인 감독답게 왠지 모르게 후광이 어린 듯한 분위기다.
‘와. 이게 바로 트레블을 한 감독의 위압감이군.’
소하의 목표는 포츠머스와 함께하는 트레블이다. 그런 소하에게 ‘이미’,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무리뉴 감독은 그가 바라던 목표 지점.
목표를 눈앞에 두니 자기도 모르게 승부욕이 줄줄 새어 나온다.
‘이기고 싶다. 이긴다면,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증거일 테니까.’
소하라고 어찌 꿈에 대한 의심이 생기지 않을까. 그것도 보통 꿈이 아닌 일반인들은 절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이런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홀로 걸어 나간다는 건, 미궁 속에서 눈을 감고 탈출구를 찾는 일과 다름없는 일.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쪽이 확실한가?’
‘다른 선택을 하면 더 확실할지도?’
‘출구까지 거리가 어떻게 되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표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물론, 소하는 이런 회의감이 들 때마다 더욱더 큰소리를 떵떵 치면서 의욕을 불태우며 초심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가끔은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알아야 마음이 놓이는 법.
이번 주제 무리뉴 감독과의 결전은 소하가 품은 원대한 꿈이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는지 알아볼 좋은 기회였다.
“상당히 재미있는 전술을 가져왔더군요. 기대됩니다.”
불꽃이 번쩍 튀는 소하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무리뉴 감독이 빙글 미소를 짓는다.
“인터뷰는 잘 봤습니다. 솔직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덕분에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싱거운 경기는 재미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우리가 이긴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겁니다.”
무리뉴 감독의 자신만만한 승리 선언.
이에, 소하도 지지 않고 맞선다.
“글쎄요. 결과는 까봐야 아는 거죠. 나중에 패배를 기분 좋게 인정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만만치 않은 소하의 반격.
경기에서 질 때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말을 빙글 돌리는 무리뉴 감독을 저격한 발언이다.
괜히 ‘무졸렬’이라는 별명이 붙은 감독이 아니었으니까.
“그 말 그대로 돌려주겠습니다. 나중에 팀이 약해서 졌다는 변명은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상을 와락 구기는 소하.
3부리그 팀을 이끄는 감독에게 하기에는 너무 염치없는 발언 아닌가.
‘역시 무리뉴야.’
3살짜리 어린아이에게 팔씨름을 이기고 잘난 척하고도 남을 파렴치한 태도.
하지만 소하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상대가 누구든지 승부라는 본질에 진심으로 임하는 모습이지. 과연, 괜히 4대 리그를 모조리 정복한 사람이 아니야.’
냉정한 승부사적 기질.
상대가 누구더라고 무조건 이겨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몇몇 사람들에는 속이 좁아 보일지는 몰라도,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했다.
“하여튼 즐거운 경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요.”
마지막 말을 마치고 서로의 벤치로 돌아가는 소하와 주제 무리뉴.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전장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삐익!
드디어 전반전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수용인원 9만 명의, 웸블리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선공은 포츠머스.
중앙선에서 공을 주고받은 포츠머스는 천천히 공을 뒤로 돌려 적응기를 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를 상대하는 첼시의 선발은,
[GK: 페트르 체흐.
LB: 세사르 아즈필리쿠에타.
CB: 존 테리.
CB: 개리 케이힐.
RB: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MC: 세스크 파브레가스.
MC: 네마냐 마티치.
AMC: 오스카.
LAM: 에덴 아자르.
RAM: 윌리안.
ST: 디에코 코스타.
SUB: 티보 쿠르트와, 퀴르트 주마, 필리페 루이스, 존 오비 미켈, 하미레스, 로익 레미, 디디에 드로그바.]
골키퍼를 제외한 채 완벽한 풀 주전으로 나왔다. 보기만 해도 포츠머스로서는 살 떨리는 진용.
실제로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선두를 질주하며 우승을 눈앞에 둔 선수단이었다.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첼시와 포츠머스. 포츠머스와 첼시가 맞붙는 리그컵 결승전!]
[이런 큰 경기에서 처음 뛰어보는 포츠머스이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이군요!]
크게 긴장하지 않고 평소대로 공격작업을 시작하는 포츠머스.
압박을 그리 강하게 가져가지 않는 무리뉴 감독의 특성상 생각보다 쉽게 쉽게 상대 진형까지 공이 운반된다.
‘뭐야, 생각보다 파이널 서드까지 쉽게 와버렸네?’
이상함을 느끼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생각보다 할 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려고 할 때.
곧바로 첼시의 진면목이 나온다.
‘···매섭다!’
첼시는 자신의 진영으로 포츠머스가 들어오자마자 강맹한 압박을 시작했다.
특히나, 첼시의 낮은 위치에서 시작하는 압박의 선봉장인 오스카의 활동량이 엄청나다.
[오스카 선수의 활발한 활동력이 슬슬 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경기장에 풀어둔 보더콜리 같아요. 경기장 이쪽저쪽,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오스카의 활발한 압박은 첼시가 가진 수비 전술의 핵심!
마티치와 파브레가스의 부족한 기동력을 메꿔주며 수비적인 안정감을 더해주는 좋은 플레이다.
‘하지만, 이건 이미 알고 있지.’
조금 당황했던 선수들은 마이클 반즈를 중심으로 금세 침착함을 되찾는다.
‘일단 공을 천천히 돌린다. 최대한 상대 진형에서 오래 머무는 거야.’
소하가 지시했던 대로 최대한 첼시의 진형에서 공을 오래 소유하는 포츠머스.
상당히 재미있는 모습이다.
아무리 포츠머스가 제법 공을 찬다고 할지라도, 첼시를 상대로 그들의 진형에서 점유율을 유지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이것은 오늘의 독특한 포메이션 덕분이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 포츠머스의 진형은 3-4-2-1.
여기서 원톱 밑의 2를 담당한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적극적으로 링크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즉 극단적인 중앙집약적 전술이라는 뜻. 요컨대, 중원에서만은 항상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축구는 숫자 싸움이지.’
2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이용한 중원에서의 수적 우위는 상대적으로 열세인 포츠머스가 공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오늘 굉장히 독특하게도 중앙 수비수로 나온 칼빈 필립스의 역할도 눈여겨볼 만하다.
[칼빈 필립스는 명목상 중앙 수비수긴 하지만 거의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는군요?]
[맞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프백 같은 움직임을 가져가 주는군요. 쉬지 않고 움직이며 중원을 담당한 선수들의 선택지를 늘려주고 있어요!]
단순한 중원 숫자만 봐도 포츠머스가 5, 첼시가 3. 두 명이나 많은 상태다. 아무리 오스카가 뛰어난 선수일지라도 공을 뺏기는 매우 힘든 일. 오늘의 독특한 선발 명단은 5명이 협력해 오스카의 체력을 완전히 방전시키기 위한 소하의 첫 번째 포석이었다.
물론, 단점이 없는 전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
중원에 힘을 강하게 준 만큼 측면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아! 잭 해리슨이 돌파를 시도하다가 이바노비치와 윌리안의 협력 수비에 공을 빼앗깁니다!]
[좋지 않아요.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가진 만큼 측면에선 힘을 쓰지 못하죠!]
여실히 드러나는 문제점!
공을 탈취한 윌리안은 반대편에서 쇄도하는 에덴 아자르에게 긴 패스를 시도.
정확히 아자르의 발밑에 안착한 공과 함께 치명적인 역습의 시작이 된다.
[아자르가 공을 잡았습니다!]
[에덴 아자르! 속도를 올리며 역습의 템포를 올립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에덴 아자르.
이를 막기 위해 도봉산이 달라붙어 보지만 쉽지 않다.
-휙휙휙.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도봉산을 달고서 포츠머스의 페널티 박스까지 공을 끌고 온 에덴 아자르.
“헤이.”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척하다가 디에고 코스타에게 패스를 건넨다.
[좋은 위치에서 공을 잡은 디에고 코스타! 슛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물론,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꼽히는 원톱인 코스타에게는 쉬운 일이다.
포츠머스의 수비가 달라붙기 전에 한 박자 빠른 슛을 시도하는 디에고 코스타!
-텅!
툭 감아 찬 공이 골대 상단을 강타하며 골라인 아웃이 되었다.
[정말 아깝습니다! 전반 7분. 첼시의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역습이 나왔습니다.]
[공격을 주도하던 포츠머스는 간담이 서늘해졌을 겁니다.]
매우.
매우, 매우 위협적인 장면이었다. 무리한 돌파를 시도한 잭 해리슨에게 소하의 불호령이 떨어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장면!
하지만, 의외로 소하는 다른 일에 신경을 집중하는 중이었다.
“야, 넌 오늘 온종일 내 옆자리에서 경기를 본다.”
“···.”
현재 소하의 관심사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어 큰 충격에 빠진 조쉬 킹이었을 뿐.
“안 와?”
명령을 했음에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조쉬 킹의 모습의 소하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어, 어차피 뛰지도 못하는데 왜, 왜 가야 하죠?”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살기가 진득한 상황이었지만 조쉬 킹은 미약한 발악을 시도해봤다.
평소였다면 눈도 껌뻑하지 못했을 것을. 킹이 얼마나 상심했는지 알 수 있는 행동이다.
“미쳤냐? 마지막으로 말한다. 닥치고 내 옆자리에 앉아.”
기어코 소하의 입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소하의 마지막은 진짜 마지막. 여기서도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영원히 끝이다.
“···.”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조쉬 킹. 반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소하의 옆자리에 착석한다.
“잘 봐라. 멍청아.”
소하는 그런 조쉬 킹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잘 보라고. 넌 지금부터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네 동료인 존 말로리와 존 테리만 바라보는 거야.”
“···네?”
소하의 주문에 고개를 슬쩍 들며 멍청하게 되묻는 조쉬 킹.
“멍청한 새끼야. 넌 존이 어떤 임무를 맡고 선발에 나선 거 같냐?”
“···.”
“다 너를 위해 저 자리에서 뛰는 거다. 그것도 모르고 자빠져서 징징거릴 거면 당장 자리에서 꺼져.”
“···무, 무슨 말이죠?!”
우악스러운 소하의 말에 조쉬 킹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존 말로리가 도대체 어떤 임무를 맡았단 말인가.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녀석은 순순히 받아들였단 말이다. 널 위해서 경험치 물약이 되기로 했단 말이지. 녀석은 지금 존 테리가 어떤 선수인지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경기장에서 뛰는 거다.”
“네?!”
조쉬 킹은 깜짝 놀랐다. 믿어지지 않는다. 소하의 말대로라면 선수로서 자존심을 내팽개쳤다는 뜻이었으니까.
“너도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주인공이 될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말해. 목표를 수정해야 하니까.”
“그 말씀은···?”
“그래. 첫 번째 목표는 오스카고 두 번째 목표는 존 테리다. 돌대가리인 널 위해 풀어 말해주자면 네가 존 테리를 이기는 게 두 번째 목표다.”
“···.”
소하의 거침없는 답변에 입을 꾹 다물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경기장을 바라보는 조쉬 킹. 단 한순간도 존 테리의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래. 너도 이제 애새끼 티를 벗을 때가 되잖냐.’
소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조쉬 킹을 바라보다 다시금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언제나 당근만 줄 순 없는 노릇. 가끔은 매가 필요한 법이었다.
< 110화. 리그컵 결승전.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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