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07화 (107/306)

< 107화. 리그컵 결승전. (2) >

결승전이 이틀 남은 시점.

한참 결승전 이야기로 분주할 때, 포츠머스의 지역지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소하의 행보가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었다.

[최창용 씨에게 결승전 특별석 입장권을 선물한 포츠머스의 프런트와 성소하 감독.]

[성소하 감독의 자국인 사랑.]

[최창용 씨뿐만 아니라 이번 암표 상인들에게 피해받은 해외 팬들에게 일정 금액을 보상한 포츠머스.]

[성소하 감독, “먼 나라까지 저와 우리 팀을 응원해주러 오는 해외 팬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껴요.” 해외 팬들의 가슴을 뭉클거리게 만들다.]

본격적으로 구단 차원에서 보상을 시작한 포츠머스.

소하는 한술 더 떠서 최창용을 직접 찾아가 정치인 같은 웃음을 지으며 특별석 입장권을 건네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당연하게도 지역지 1면에 소하의 썩은 미소가 게재. 기자회견까지 열어버리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암표 시장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프로 스포츠의 존재 의의는 보러 와주는 팬들 덕분이니까요.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무조건 예방해야 하죠. 즉, 암표는 근간을 해치는 절대 악입니다. 하지만, 구단의 주머니 사정도 한계가 있는 법. 이번에는 구단 차원에서 보상했지만, 다음번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지 말고 신고하세요.’”

싱긋 웃으면서 기자회견을 마치는 소하의 모습은 가증스러운 정치꾼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일부 소수의 불만쟁이들은 해외 팬들의 지갑을 노린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라고 비판했지만 소하는 가볍게 일축한다.

“행동하지 않는 위선자보다는 행동하는 위선자가 1억 배는 나은 사람이죠.”

소하의 단호한 대답. 이는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입만 둥둥 떠다니는 위정자들보단 훨씬 좋지 않은가. 의도가 뭐든 결국 ‘피해자들에게 보상’이란 결과가 나왔으니까.

“맞아. 좀 생색내는 거 같아도 해준 게 어디야.”

“성소하, 그는 신인가? 빛인가?!”

“우리 감독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지.”

“포츠머스는 한국어로 안내해 주더라고. 영어를 잘 몰라도 괜찮더라. 역시 국민구단이야.”

호평이 줄줄이 나왔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해외 팬들에게도 보상을 해줬기에 소하와 포츠머스의 이미지는 ‘빛’ 그 자체가 되었다.

물론, 구단의 곳간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미래를 보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오···. 괜찮은 팀인데? 귀국하면 친구들에게도 포츠머스에 대해서 알려줘야겠어.”

“멀리서 찾아와주는 해외 팬들의 소중함을 잘 아는 구단이야. 감동인데?”

“항상 현지인만 챙겨서 섭섭했는데, 이 팀은 응원할 맛이 나네.”

한국뿐만 아니라, 기타 아시아 국가의 극소수 팬들의 마음마저 잡아버렸다.

이들은 분명, 거대한 불꽃을 일으킬 불씨가 되었을 터. 한국을 제외한다면 아직은 미약한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데 선봉에 설 것이다.

게다가 의외로 포츠머스 현지인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현지인을 차별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에 오히려 미소를 짓는다.

“뭐···. 고객님들한테 잘하는 건데, 우리가 불만 가질 건 없지.”

“그냥 전액 부담해주라. 사람 좀 더 몰려오게.”

“이번에 대출이자 다 갚았다. 웰컴투 포츠머스!”

이유는 단 한 가지.

손님은 왕이었기 때문.

포츠머스는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다.

소하가 집권하고 나서 세 배 이상 급증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포츠머스 시민들의 실질적인 행복을 채워줬다.

‘돈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만, ‘행복은 어느 정도 돈이 필수적이다.’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관광도시에 관광객이 급증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포츠머스에서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연일 상한가를 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하의 해외 팬 우대정책에 불만을 내뱉을 포츠머스 현지인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으로 더더욱 늘어날 관광객 수는 몇천, 몇만 파운드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단돈 몇십 파운드에 배가 아플 리가.

적어도 포츠머스의 시민들은 무엇이 이득인지는 파악할 눈치는 가졌다.

그리고 소하와 포츠머스의 행보는 의외의 인물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그 인물은 바로 결승전 상대인 주제 무리뉴, 첼시의 감독.

평소 재담꾼이자 독설가인 그의 입에서도 호의적인 평가가 나왔다.

“포츠머스의 행보는 꽤 훌륭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3부리그 팀의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 또한 성소하 감독의 말에 찬성합니다. 암표는 뿌리를 뽑아야 하는 일입니다. 경기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이런 일에 신경을 쓰는 성소하 감독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상대편에게 독설을 날리는 취미를 가진 무리뉴 감독이었지만, 이례적일 정도로 훈훈한 말을 건넸다.

그를 안다면 꽤 놀라운 일이다.

‘내가 보기에 벵거는 관음증 환자.’

‘벵거는 실패 전문가.’

‘라니에리는 변화하기에 늙은 감독.’

‘자케로니는 기억상실에 걸렸다.’

‘리피 감독은 지적능력이 떨어진다.’

등등.

입만 열었다 하면 선을 넘는 독설을 줄줄이 내뱉어냈거늘. EPL의 전설적 감독인 무리뉴도 암표 문제에 관해서는 소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물론, 호의적인 말만 내뱉은 건 아니었다. 평소의 무리뉴 감독의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성소하 감독이 일전을 앞두고 다른 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나중에 패배해서 ‘암표 문제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혹은 이미 패배를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기 외적인 문제에 신경 쓸 시간에 나를 상대할 방법이나 찾아봐라, 정도의 뜻이다.

체급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3부리그 팀을 상대로 내뱉은 도발과 다름없는 말.

혹은, 상대가 3부리그일지라도 절대 방심하지 않고 제대로 찍어 눌러버리겠다는 당찬 말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논란을 많이 낳은 무리뉴 감독의 발언이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암표 사건도 일단은 수습한 현재. 소하에게 남은 유일한 과제는 첼시를 상대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

“포츠머스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수비를 굳건히 해야 한다.”

“수비적으로 나올 것이 분명한 포츠머스. 선덜랜드와의 2차전에서 보여준 수비력은 상당했기에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보인다.”

“체급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평소처럼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대패를 면치 못할 것.”

대다수 전문가들은 소하가 이끄는 포츠머스의 결승전 전술에 대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백배는 넘게 차이가 나는 체급을 상대로 위풍당당하게 맞상대할 순 없는 노릇. 권투로 치자면, 플라이급이 헤비급과 붙는 격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리그컵 준결승전 2차전에서 보여준 포츠머스의 수비는 상당히 훌륭해, 전문가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이렇듯 모두가 ‘어떻게 수비를 해야 할까’를 논의할 때, 소하 역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 중이다.

“흐음.”

소하는 각종 보고서의 홍수 속에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그답지 않은 굉장히 고뇌에 찬 모습이다.

“이길 방법이 없군. 승리는 불가능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소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의 포츠머스로서는 첼시 FC라는 강적을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태도다.

“가, 감독님···.”

옆에서 같이 전력분석을 하던 밀러 수석코치가 그 읊조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소하가 누구던가. 자존심만은 세계 최고의 감독이었거늘. 그의 입에서 나온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짐짓 목소리를 높이며 소하를 격려하는 잭 밀러 수석코치.

평소의 둘의 역할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하하, 지금 절 위로해주시는 거예요?”

밀러의 독려가 싫지 않았는지 훈훈한 미소를 머금는 소하.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뱉은 사람치고는 두 눈동자는 아직도 승부욕으로 번들거린다.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아직 포기는 하지 않았다고요.”

“네?”

이건 또 뭔 개소리란 말인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며 종이를 찢어발기고 포기한 모습을 보였거늘.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있잖아요. 불가능하다고 도전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호오. 그렇다면 불가능에 도전할 비책을 찾으셨다는 말입니까?!”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깜짝 놀라는 밀러. 소하가 생각해낸 계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얼굴이다.

“궁금하시나요?”

“빨리 말씀하십쇼!”

“아, 알았어요.”

멱살이라도 잡을 밀러의 흉포한 기세에 소하는 찔끔거리며 재빨리 말을 잇는다.

“무리뉴 감독의 전술은 뻔해요. 철저한 실용주의자답게 극한의 실리 축구를 할 거예요. 아무리 3부리그의 팀이 상대라고 할지라도요.”

수비축구로 유명한 주제 무리뉴 감독.

정확히 표현하자면 극단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감독일 뿐이다.

실리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공격을 완전히 틀어막는 게 첫 번째 단계였으니까.

“수비를 단단히, 그리고 최전방의 디에코 코스타와 첼시의 핵심이자 프리미어 리그의 새로운 왕, 에덴 아자르를 앞세워 우리의 엉덩이 뒤를 매섭게 후벼파겠죠.”

굉장히 뻔한 전술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상대할 방법이 없다.

‘단순한 것이 최고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포츠머스와 비교해 훨씬 더 강팀인 첼시의 단순한 방법은 알고도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

“그렇죠. 솔직히 전 어떻게 에덴 아자르를 막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밀러는 혀를 내두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덴 아자르.

훗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역사상 최고의 ‘먹튀’로 이름을 남기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른 선수다.

원래 재능 하나로 먹고사는 선수들은 나이가 깡패지 않던가. 24세의 펄펄한 나이의 아자르는 그야말로 ‘크랙’ 그 자체.

게다가 현 시즌인 14-15시즌은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달고 미친 듯한 활약을 수년간 이어나가는 시작의 시즌.

PFA, FWA,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를 모두 수상하는 3관왕을 달성하며 왕좌에 앉는 시즌이기도 했다.

“밀러 아저씨. 에덴 아자르를 정말 막지 못할 거 같나요?”

“···네? 그, 그야 방법은 있겠지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소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질문하자 밀러는 순순히 수긍했다.

프리미어 리그의 강팀들도 살살 녹이는 괴물을 어떻게 막으란 말인가.

3부리그인 포츠머스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거의 자연재해가 따로 없을 거다.

“말을 들어보니 감독님은 방법이 있으신 거 같은데···.”

소하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작은 희망을 품는 밀러. 하지만 소하는 그 작은 희망을 발로 짓밟아 버린다.

“아니요. 아저씨 말이 맞아요. 못 막아요. 하하.”

“···.”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면서 또다시 뒤통수를 얼얼하게 후려버렸다.

“가, 감독님 지금 농담할 때가···.”

“맞아요. 농담할 때가 아니죠. 그리고 농담도 아니에요. 현실을 인정한 거죠. 아자르는 못 막는다. 이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예요.”

“네?”

“그러니까, 막을 수 없는 선수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건 시간 낭비란 거죠.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후후.”

“···.”

소하의 헛소리에 잠시 머리에 과부하가 온 밀러는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방법이 스쳐 지나간다.

“서, 설마···. 감독님.”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도 읊는다더니. 밀러 아저씨도 이제 금방 제 생각을 꿰뚫어 보시는군요.”

음흉한 미소를 짓는 소하.

악동이 따로 없다.

“맞아요. 아자르는 막지 않을 거예요. 아니, 애초에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며 카운터 펀치를 날려서는 절대로 첼시를 이길 수 없어요.”

“···.”

“요컨대 수비적으로 하면 결국은 승리가 불가능하다. 이게 제 결론이에요.”

수비적으로 나선다는 일반적인 방법을 소하가 고려하지 않을 리는 없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수비적으로 나서는 건 정석이었으니까.

변칙적인 수를 자주 쓰는 소하라도 정석을 바탕으로 수작을 부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첼시를 상대로 수비적으로 나서서는 이길 수가 없다.

그간 만들어왔던 팀에 잘 어울리지도 않는 옷일뿐더러, 첼시에게 훨씬 더 잘 어울렸으니까.

“상대의 장기로 승부를 건다면 당연히 지죠. 우린 절대로 첼시만큼의 실리 축구를 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한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은 작습니다. 대패를 당할지도 몰라요!”

결승전에서의 대패.

이것은 선수단에 굉장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다.

생각해보라.

꿈에 그리던 웸블리에서 5-0 대패를 당한 선수들의 마음이 어떨지.

석 달 남은 리그에도 차질이 생길 거다.

최악의 상황엔 승점 20점 차이가 좁혀질지도 몰랐다.

“맞아요. 이길 가능성은 극히 낮죠. 그래도··· 0%와 1%. 이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무에서 유가 된 거니까요.”

“···가, 감독님···.”

밀러는 반론을 그만두었다.

이글거리는 소하의 눈빛에 압도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밀러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거였다. 부임 첫날 자신에게 내기를 제안하던 저 승부사 같은 모습. 저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반해버렸던 것이었다.

1%보다 낮은 확률의 승리를 얻기 위해 99%의 거대한 위험부담을 짊어지는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하. 좋습니다. 감독님. 까짓것 어디 한번 해보죠!”

“바로 그거예요. 역시 전술 천재!”

서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는 소하와 밀러. 그렇게 투지를 불사르던 밀러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핵심적인 부분을 찌른다.

“그런데요, 저희가 첼시의 수비를 뚫을 수 있을까요?”

“···.”

밀러의 질문에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는 소하.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소하는 이윽고 답을 내놓는다.

“어렵죠. 하지만···. 선수들이 각성해준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예요.”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존 테리.

게리 케이힐.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첼시의 강력한 4백. 이를 상대하기 위해선 소하의 전술 말고도 선수들이 한 차원 높은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 107화. 리그컵 결승전.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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