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06화 (106/306)

< 106화. 리그컵 결승전. (1) >

리그컵 결승전을 3일 앞으로 둔 포츠머스. 그동안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리그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6경기, 4승 2무.

무패행진!

평소 같은 소하의 지휘와 잔뜩 독이 오른 선수들이 이룬 쾌거였다.

“포츠머스의 우승은 이미 확실하다. 이것은 3살짜리 어린아이도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미 2위와 승점 차이가 20점이나 나기 때문이다.”

한 축구평론가의 평가.

별로 새로운 것도 없는 발언이었다.

그의 말처럼 포츠머스의 리그1 우승은 말 그대로 시간문제였을 뿐.

후반기에 들어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미끄러질 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직 3개월이나 남은 리그1 일정과 비교해 너무나도 싱거운 미래.

하지만, 포츠머스 팬들은 마냥 행복했다.

“하하하! 다음 시즌은 챔피언십 리그다! 우린 올라간다!”

“2연속 승격 및 우승! 정말 엄청난 팀으로 성장했어.”

“우리 할아버지도 보시지 못한 포츠머스의 최고 황금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몰라.”

“진짜로 성소하 감독의 3년 계획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야?!”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는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팀이 우승이 확실하다는데, 시기가 언제인지가 중요하겠는가. 그저 웃음이 떠나지 않는 긍정적인 부작용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포츠머스 팬들의 관심사는 이미 우승이 확실한 리그 우승 ‘따위’가 아니었다.

“리그컵 결승전!”

“여기서 이기면 우린 유로파리그에 진출이라고!”

“우리가 웸블리 스타디움의 티켓을 언제 예약해보겠어?”

“우리 아빠도 해본 적이 없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 할까 봐.”

첼시와 우승컵을 놓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일전!

모두가 리그컵 결승전 때문에 잠도 못 이루는 지경이다.

그러나 이미 승패에 대해서는 대부분 체념한 상태다.

“첼시는 너무 강하지.”

“에덴 아자르, 오스카, 존 테리, 피터 체흐, 파브레가스, 디에고 코스타. 그리고 디디에 드로그바까지. 체급 차이가 너무 커.”

“월드 클래스 선수가 즐비해. 우리 같은 3부리그 팀이 감히 어찌하기 힘든 상대지.”

너무나도 강한 상대의 실력 때문에 이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14-15시즌의 첼시는 몇몇 유망주를 제외하고선 특급선수들로 가득 찬 미친 팀.

이런 팀을 상대로 감히 승리를 장담한 구단을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포츠머스 팬들이 열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냥, 결승전에 나선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또에 당첨된 기분을 만끽했다.

이것은, 결승전 티켓 판매량으로도 여실히 드러났다.

“미친. 결승전이긴 하지만, 리그컵이라 매진이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FA 사무국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9만 석의 좌석을 자랑하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티켓이 매진됐기 때문.

“포츠머스가 런던에서 가까워서 그런가···.”

포츠머스와 런던은 겨우 한 시간 30분 거리. 마음만 먹으면 쇼핑하러 들락날락할 수 있는 거리다.

이렇게 가까운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결승전을 보러 가지 않을 포츠머스 시민은 있겠는가.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일주일을 굶더라도 어떻게든 직접 봐야 할 경기였다.

그리고 여기에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새로운 세력도 등장했으니.

“두 유 노 김치?”

“두 유 노 강남스타일?”

“두 유 노 케이팝?”

“두 유 노 해진 유?”

“두 유 노 유나 킴?”

‘두유노’를 외치며 포츠머스시와 런던을 헤집는 인파들!

바로, 한국인들이었다.

포츠머스는 현재 국민 구단.

감독-선수-단장. 이 세 명이 모두 한국인인 유일한 구단이었기에, 국민의 관심은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성소하 특집방송.]

[포츠머스에서 꽃을 피운 한국인의 힘!]

[축구계에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 한국인의 능력!]

[동화의 저자는 한국인.]

자연스레 지상파에서는 국뽕을 한껏 들이킨 특집방송을 줄줄이 연이어 방송.

질릴 만도 했지만, 매우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2절, 3절, 4절까지 이어나가는 현재다.

이런 상황에서 포츠머스가 기적적으로 결승전까지 올라가자 가만히 앉아있을 순 없는 노릇. 몸이 한껏 달아올랐으니까.

“우린 영국으로 간다!”

“직관 고고!”

“사인받아와야지!”

당연하게도 수많은 한국인이 잉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덕분에 포츠머스와 런던에서 태극기가 ‘유니언 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국기가 되었을 정도!

잉글랜드의 관광을 담당하는 영국 문화매체체육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관광객 숫자에 탭댄스를 추며 즐거워할 수밖에 없었다.

소하로부터 시작된 작은 반란.

이제는 영국을 휩쓸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존재하는 법. 몇몇 쓰레기들이 이런 호황을 틈타 더러운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

최창용.

나이 26세. 군필.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다.

이제 곧 거칠기 짝이 없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미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제··· 곧 최하층민 취준생으로 살다가 평범한 직장인이 되겠지.’

깊은 한숨을 내지르는 최창용.

26세의 젊은 청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운 한숨이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배경 화면 같은 인생이 됐을까.’

밋밋한 회색 같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는 청년이 어디 최창용뿐이겠는가.

2년 군대, 4년 대학이면 벌써 곧 30살.

뭘 할 새도 없이 앞으로의 인생을 선택해야할 무게감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20대 남자라면 누구나 다 느끼는 허탈감과 두려움. 그래도 그 힘들다는 군대도 어찌어찌 다녀오지 않았는가.

어떻게든 멘탈을 부여잡고 두려움과 싸우려던 최창용.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신의 복음과도 같은 말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꿈, 꿈이란 꾸는 것만으로도 원동력이 됩니다···. 정작 제일 두려운 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거예요.]

놀랍게도 최창용의 마음을 뒤흔든 말은 한 시사 방송에서 나왔다.

‘성소하 특집?’

성소하.

굉장히 독특한 이 이름은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기도 했다.

심지어, 요즘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이기도 할 정도!

물론, 최창용이 모를 리가 없다.

그나마 가진 취미라고는 축구시청밖에 없었으니까.

‘천재 중의 천재.’

그간 그저 신의 선택을 받은 천재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를 볼 때마다 평범한 자신이 더욱 작아 보여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숙연하고 간절해, 최창용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저런 사람들도 꿈을 이루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구나···.’

저런 천재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거늘. 평범한 자신은 죽을 각오로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직접 소하의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작은 용기의 시작이랄까.

탈각의 개기랄까.

‘그래, 어차피 인생 마지막 기회야. 내 작은 꿈이던 해외 축구 직관. 비록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루긴 힘들겠지만, 이것만이라도 이루어보자. 그래, 이참에 한 번 해보는 거야.’

결정은 단호했고, 행동은 빨랐다.

그간 학교에 다니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취업 준비기간에 쓰려고 모은 돈, 3백만 원.

최창용은 이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잉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저 꿈을 완성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일으킨 과감한 행동.

하지만, 최창용은 의외의 복병에 거센 공격을 당하게 되어 마음이 꺾일 처지에 놓이게 된다.

“네? 200파운드요?!”

200파운드, 한화 30만 원.

암표상이 부른 터무니없는 티켓 가격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 분명 리그컵 경기는 그리 비싸지 않다고 했는데···.’

보통 결승전 티켓값이 비싸긴 했지만, 정식루트로는 50파운드 안팎이다.

티켓이 전부 매진되어 어쩔 수 없이 암표상을 찾았건만.

4배를 올려버리는 암표상의 패기에 기가 질렸다.

“싫으면 말던가. 어차피 살 사람 많으니까, 시간 아깝게 질척이지 말라고!”

“···아, 아니에요. 여, 여기 돈 드릴게요. 가짜 표는 아니죠?”

배짱을 부리는 암표상의 태도에 그만, 백기를 들고 마는 최창용.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손이 벌벌 떨렸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씨발! 좆같은 암표상 새끼들!”

버럭. 소하는 구단 회의에서 거친 쌍욕을 내뱉었다.

구단주를 제외한 모든 중역이 모인 자리에는 격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모두가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짓는다.

암표상이란 축구판에 기생해서 선량한 축구팬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악질적인 벌레 같은 존재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중역이란 위치 때문에 말을 가려야 하는 처지인지라 지금 소하의 욕설은 묘한 대리만족을 주기도 했다.

“지, 진정하십시오.”

알버트 위버가 짐짓 말려보는 척하지만, 소하는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개새끼들. 없는 돈 모조리 긁어모은 한 청년의 꿈을 좆같이 방해하네. 이걸 듣고 어떻게 화를 참으라는 거에요?”

“큼큼. 아, 암표상은 해결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소하의 독기어린 시선을 받자 애써 시선을 회피하는 알버트 위버 기술 이사.

자신은 이번 사건과 별로 연관이 없는 부서이기에, 관련 부서인 홍보부의 벤스 모건에게 눈짓한다.

“···허헙.”

몸을 바들바들 떠는 벤스 모건.

평소에도 극히 두려워하던 소하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최악의 상황이었거늘.

잔뜩 독이 오른 저승사자에게 의견을 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도 어찌 됐든 답변을 내놓아야만 한다. 이곳은 소하뿐만 아니라 다른 중역들이 모인 자리였으니까.

“저··· 그게, 최대한 암표를 사지 말자는 배너를 거는 게 어떨지···.”

“씻팔. 그게 지금 사람 대가리에서 나올 해결 방법이에요?!”

크앙!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하. 성난 수사자가 따로 없다. 혹은, 여자 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남친 같은 분노다.

“아니, 이런 썅. 암표를 사지 말아야 한다는 건 개나 소나 다 알고요. 알면서도 표가 없어서 사는 거 아니에요.”

“그, 그래도 사지 말아야···.”

“아니, 한국에서 영국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이유가 경기를 보고 싶어서인데, ‘아 표가 없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시 비행기 타고 집에 가야징!’ 이러고 말라고요?”

“···.”

“제가 바라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손해를 입은 팬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비지땀을 줄줄 흘리는 벤스 모건.

‘아니, 왜 경기를 앞둔 감독이 이런 일에 나서서 지랄이야···.’

소심한 그는 속으로 열심히 소하의 욕을 해보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한다.

괜히 입 벌렸다가는 진짜로 옷을 벗어야 할 만큼 소하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왜요? 감독이 경기 준비는 안 하고 이런 일에 나서는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인데?”

“···아, 아닙니다.”

“맞잖아요.”

소하는 선의는 둔감하지만 남의 악의에는 민감한 인물. 벤스 모건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잘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 구단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그리고 전 감독이지만 이 프로젝트의 주축이죠.”

프로젝트란 포츠머스의 세계화.

이를 진두지휘하는 건 감독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소하였다.

“그렇죠.”

“감독님이 핵심이죠.”

“맞는 말입니다.”

모두가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브라이언마저도.

“우리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국 팬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이런 상황에서 암표상한테 뒤통수를 맞는다면, 지지기반이 무너지는 일이에요! 그러니 어찌 제가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요?”

소하가 강경하게 주장하자 중역들은 열렬히 긍정한다.

“옳습니다.”

“매우 중대한 사항이죠.”

“어떻게든 구단 차원에서 해결방안이나 보상을 내놓아야 합니다.”

물론, 문제의 근원인 암표상이란 잡초를 뽑아내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그들은 현 제도상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일단은 손해를 입은 팬들에게 보상을 줘서 해외 팬들의 실망감을 지워 줘야만 했다.

“경기 시작 전에 제 앞에 답을 내놓으세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해결방안을 가져다 바치라고 윽박지르는 소하. 이를 위해서 저들이 월급을 받아 가는 것 아니겠나.

소하가 직접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일은 그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래도 가만두고 볼 순 없는 일.

가능한 범주 내에서 최대한 노력해 보려고 한다.

“아, 그리고 에밀리아 씨. 그, 카페에 글을 올린 친구 이름이 뭐였죠?”

“최창용입니다.”

소하의 물음에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하는 에밀리아 존슨.

조금 혀가 꼬였지만, 상당히 준수하다.

“그럼 그 친구 개인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네?! 뭐, 뭘 하시려고···.”

당황하는 에밀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하는 씨익 웃는다.

“제 이미지 좀 팔아보려고요. 아니지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고나 할까.”

모처럼 정치인이 되어보기로 마음먹는 소하였다.

< 106화. 리그컵 결승전. (1) > 끝

ⓒ 블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