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14-15시즌 후반기. (11) >
역사적인 포츠머스의 리그컵 결승전 출전! 이는 포츠머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물론, 축구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장.
평소보다 2배는 많은 기자가 각자의 랩톱과 카메라를 들고 사정없이 소하를 바라본다.
흡사, 어린이날 선물을 바라는 아이들 같은 모습. 충격적이고 기적적인,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인 소하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미치겠다는 얼굴이다.
어찌나 들떴던지 소하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 공세가 펼쳐진다.
“감독님! 정말,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역사의 한편을 장식하셨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의례적인 첫 질문.
축하와 함께 팀을 이끄는 감독의 마음을 물어보는 모범적인 질문이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1차전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까? 기자들의 관심이 파도처럼 몰린다.
다행스럽게도 소하의 반응은 여타 다른 감독들처럼 긍정적이다.
“기쁘네요. 이 성과는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과 스텝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할게요.”
싱긋 웃으며 답변을 내놓는 소하.
선덜랜드의 패배에 동정심을 느껴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기쁜 건 기쁜 거다.
“모처럼 정말 기뻐하시는군요. 솔직히, 감독님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습니다. 걱정도 했어요. 오늘도 의외의 반응 보이시면 어쩔까 하고요.”
“하하. 제가 모두가 기뻐하는 자리에서 눈치 못 챙기는 멍청이는 아니거든요.”
“당연하죠. 기적을 쓴 감독님께 멍청이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자의 말처럼, 세상천지에 소하 보고 멍청이라 할 사람은 결코 없다.
2년 전만 해도 법정관리에 시달리며 해체 위기에 놓여있던 구단이 포츠머스 아니던가.
말 그대로 빨간딱지가 클럽하우스에 붙은 상황이었다.
기둥뿌리조차 뽑힌 폐가를 멋들어진 스위트룸으로 바꾼 사람에게 감히 ‘멍청이’란 단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 만약, 소하가 멍청이라면 세상천지 대부분 사람은 원숭이라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만큼 소하가 보여준 모습은 인정하지 않기가 어려울 만큼 뛰어났다.
“이건 기적이라도 불러도 될 업적입니다. 단순히 선수들과 스텝들이 잘 따라와 주는 거로는 이루기 매우 힘든 일이죠. 다른 영업비밀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특별한 업적이란 보통의 방법으로는 달성하기 불가능한 법.
기자들은 소하의 특별한 구단 운영의 노하우를 알고싶었다.
“영업비밀이라···. 굳이 있다면 모두가 같은 꿈을 꾸도록 노력했을 뿐이죠.”
“같은 꿈을 꾸게 한다라···. 정말 그것만으로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소하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기자들.
꿈이라는 추상적인 말만으로 지금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면 세상에는 기적이 범람할 거다.
하지만, 소하의 생각은 달랐다.
꿈을 좇았기에 여기까지 왔지 않은가. 꿈을 꾸었기에 과거로 돌아와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럼요. 보통 꿈이 아니에요. ‘모두가 한 가지 꿈’을 바라봤기에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거죠.”
소하의 진중한 말에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다만, 휴고 어스틴은 포기하지 않고 반론을 펼친다.
“···단지 꿈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니까요. 이루지 못한 꿈 따위,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냉정한 세상의 한 편을 설명하는 휴고 어스틴.
무언가 아픈 과거가 있기라도 한 걸까. 평소 능글맞게 인터뷰를 진행하던 그답지 않게 굉장히 감정적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휴고 어스틴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는 소하. 잠시 격정적인 어스틴의 눈동자를 상대하다가 시선을 천장으로 돌리며 말을 잇는다.
“꿈, 꿈이란 꾸는 것만으로도 원동력이 됩니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달릴 수만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존재하는 거죠.”
“···.”
“정작 제일 두려운 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거예요. 포츠머스에 처음 왔을 때가 그랬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모두가 한 가지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우린, 언제나 꿈을 좇을 겁니다. 몽상가처럼요.”
사랑하는 포츠머스를 재건하겠다는 꿈.
위대한 선수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꿈.
좋아하는 감독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꿈.
부상 전으로 돌아가 부활하겠다는 꿈.
구단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꿈.
각기 목표가 달라 보이는 꿈이지만 이것들의 종착역은 같다.
‘승리.’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이기고 이기다 보면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
별거 없다.
포츠머스란 구단에 머무는 수십 개의 각기 다른 꿈.
이것을 하나의 꿈으로 이어주는 것은 승리였을 뿐이니까.
소하가 항상 외치던 승리라는 가치는 모두의 꿈을 이어주는 최후의 조각이었다.
“···뭔가···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답변이네요.”
가볍고 유쾌하던 평소의 소하답지 않은 모습에 기자들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간 영화 같은 부활과 기적에 심취해 외면했던 것.
바로, 소하의 양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얼핏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걸 이겨낼 수 있었을까?’
조금 공감하기만 했어도 엄청난 난도에 호흡이 가빠졌거늘.
워낙에 천재적인 솜씨를 보여주던 사람인지라 잊고 있었다.
그도 한 사람에 불과한 어린 청년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꿈을 이루는 것에 접근했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조금은 책임감을 놓아도 될 거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기자.
하지만, 소하가 누누이 말했듯이 아직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요. 우리의 꿈은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아직 얻은 건 아무것도 없고 이룬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니까요. 우린 1등을 해서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생각이에요.”
“!!”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어요.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요.”
더 높은 목표,
트레블.
이 역사적인 업적은 아직 밝힐 수가 없다. 너무나 허황한 꿈인지라 모두의 비웃음을 살 테니까.
리그컵 따위, 그저 진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 소하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작은 과제였을 뿐이었다.
***
암만 포츠머스가 117년 만의 쾌거를 달성했다고 할지라도 ‘리그 레이스’라는 쳇바퀴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리그컵 결승전은 2월 17일.
즉, 약 한 달여 남은 시간은 리그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이야기다.
현재 순위표는 압도적인 포츠머스의 독주 체재가 완성된 상태다.
1위, 포츠머스 FC.
17승 5무 3패. 승점, 56점.
2위, 브리스틀 시티 FC.
14승 4무 7패. 승점 46점.
3위, MK던스.
14승 3무 8패. 승점 45점.
4위,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3승 5무 7패. 승점 44점.
5위,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
12승 8무 5패. 승점 44점.
6위, 애크링턴 스탠리 FC.
14승 1무 10패. 승점 43점.
7위, 로치데일 AFC.
12승 6무 7패. 승점 42점.
압도적인 포츠머스의 1위 자리 수성.
그와 반해 2위부터 7위까지 승점이 4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치열한 리그1의 상황이다.
굉장히 독특한 리그 25라운드까지의 결과. 이것은 으레 그렇듯, 독주하는 팀이 생길 시에 벌어지는 순위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승격팀들의 유쾌한 반란은 리그1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상태. 포츠머스의 우승을 제외하고선 도저히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도가니탕이다.
‘애크링턴이 재밌네.’
순위표를 바라보며 리그의 상황을 분석하는 소하는 고소를 머금었다.
‘14승 1무 10패라니. 진짜 상남자 팀이네. 저게 팀이지.’
심지어 상위 팀들에게는 대부분 승리를 거둔 성적이다.
요컨대, 죽어도 공격적으로 나서다가 약팀에게는 철퇴를 맞고 강팀에게는 매운맛을 보여줬다는 이야기.
이 어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으리. 아주, 매우 소하의 취향이었다.
‘파이팅하십쇼.’
마음속으로 애크링턴의 감독에게 응원을 보내는 소하. 딱히, 자신의 팀인 포츠머스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애들이 갑자기 미쳤으니까.’
결승전 진출한 직후.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다 같이 각성을 해버렸다. 기존선수는 당연했고, 임대 선수들마저도 말이다.
“개인 훈련 시간을 늘리고 싶습니다.”
“안 돼. 몸에 무리가.”
“아직 여력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제 신체 데이터를 확인해보십시오. 분명 시간을 늘릴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겁니다.”
“그러네. 그럼 따로 훈련 세션을 마련해볼게.”
자진해서 훈련을 늘려달라는 선수들이 폭증했으며,
“팀훈련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개인 훈련은 팀 훈련에서 잘하기 위한 밑거름이지.”
“오전 훈련은 실전이다. 아니, 실전이 오전 훈련이다.”
오전의 팀 훈련에서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악착스러움을 보여줬다. 얼핏 보면 모두가 모 만화의 외계 전투종족처럼 몸에서 노란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습이다.
‘뭐지?! 단체로 풀이라도 빤 건가?!’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소하마저 어리둥절할 정도!
그리고 소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급한 성격. 직접 알아보기 시작했고, 곧 밀러에게서 답을 듣는다.
“감독님의 기자회견이 엄청나게 와닿았나 봐요.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죠.”
“···중2병 같은 말이었을 텐데요···.”
머리를 긁적이는 소하.
사실, 당시에는 자기도 모르게 감회에 빠져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터라 상당히 부끄러워는 중이었으니까.
“글쎄요. 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멋진 말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
“허헛. 걱정하지 마십시오. 녹화본으로 제대로 저장해놨습니다. 이건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줄 겁니다.”
“우욱···. 그러지 마세요···.”
소하는 속이 안 좋다는 듯 배를 부여잡으며 질색했다.
그걸 녹화본까지 떠서 가보로 삼겠다니. 올해 들어서 가장 소름 돋는 말이었다.
그리고, 밀러마저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결승전에 나가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있을 훈련과 리그 경기에서 감독님의 눈에 띄어야 해.’
‘어떻게든 날 선발로 뽑지 않을 수 없도록 멋진 모습을 보여줄 거야.’
‘임대 신분으로 친정팀도 가지지 못하는 우승컵을 얻게 될 기회!’
결승전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망!
선수로서,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뛰는 것은 꿈이자 목표다.
하지만, 결승전에 뛸 수 있는 선발선수는 오직 11명뿐.
너무나도 자리가 적다. 이를 위해서는 남은 한 달여 간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아야 선발 티켓을 얻지 않겠는가.
이 티켓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이래저래 개이득.’
전반적인 사항을 얼추 파악한 소하는 썩은 미소를 지었다.
선수들의 욕망은 곧 경기력의 향상이란 황금알을 낳았으니까.
당분간 포츠머스의 기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
시간은 언제나 흘러간다.
거대한 블랙홀 근처에 가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똑같이 말이다.
잉글랜드의 남부 도시, 포츠머스도 마찬가지. 시간은 누구도 막을 수 없게 꾸준히 흘러가 어느덧 바라고 바라던 그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난 요즘 식욕도 없어.”
“자꾸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건 왜 그런 걸까. 오늘만 8번째야.”
“아랫배가 묵직한 게, 병원이라도 찾아가 봐야겠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근데, 사장님도 마찬가지더라고. 다들 쉬래.”
포츠머스시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았다.
바로 ‘긴장’이라는 전염병.
일생일대의 대전을 앞둔 포츠머스의 시민들은 몸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병원을 쉴 새 없이 찾았다.
물론, 대부분이 아무런 이상도 없었지만 말이다.
“···조용하네요.”
“···전 요즘 불면증이에요.”
“···그냥 자고 일어나면 3일이 지나가 있으면 좋겠어요.”
“사장님의 빛나는 머리가 보고 싶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도 마찬가지.
대전을 앞두고 엄청난 업무에 시달리는 중이었지만, 몸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무거웠을 뿐.
너무나도 긴장한 터라 다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CEO 브라이언마저도,
“어서 오세요! 손님! 그런데···. 왜 오신 거죠? 면도하시려고요?”
“아, 아닙니다. 제가 정신을 놓았군요. 잘못 찾아왔습니다.”
머리를 잘라주는 이발소를 실수로 찾을 정도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다니.
어지간히도 긴장했나 보다.
“후우. 떨린다.”
“아! 빨리 웸블리에서 뛰고 싶다.”
“기대된다.”
“최고의 몸 상태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선수들은 긴장한 선수들이 적다. 특히나 부담감을 자양분으로 생각하는 델리 알리를 필두로 한 십 대들의 패기가 선수단에 큰 도움을 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도 한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아!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감독 사무실에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소하.
강남 건물주의 외동아들 같은 태연함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였다.
< 105화. 14-15시즌 후반기. (11)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