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4-15시즌 후반기. (9) >
“역사적인 포츠머스의 리그컵 1차전 준결승전 승리!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
포츠머스의 홈구장인 프래튼 파크의 기자회견장인지라 축제의 장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오직 소하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무덤덤한 목소리로 당연한 책임을 이행했다는 태도를 보이는 소하. 점심시간에 점심을 잘 먹었다는 말투다.
물론, 연기다.
‘씨발! 야스!’
마음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행복에 차 있는 상태. 그의 속마음을 육성으로 내뱉는다면 바로 FA에서 징계를 내릴 거다.
품위와 프로의식에 어긋났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소하는 지금은 단지, 사령탑이란 자리에 앉아있는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자고로 윗사람이 해이해지면 아랫사람들도 퍼지지 않던가.
감독마저 방만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선수단에 자만이 뜰지도 모르는 일.
기쁜 순간에도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감독다운 모습이었다.
“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음에도 평범한 반응이신데요. 이길 거라고 알고 계셨나요?”
소하의 연기에 껌뻑 속아버린 휴고 어스틴 기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고작 29세의 나이에 이런 대범함이라니. 난사람은 난사람인가 싶다.
“당연하죠. 우리는 언제나 승리할 거라고 믿고 경기에 임하죠. 사실 선덜랜드를 이겼다는 건 그리 큰일은 아니에요. 우승을 노리는 팀에게는 말이죠.”
“대단하시네요. 자칫 방심하다가 2차전을 역전당하는 팀도 많았지만, 포츠머스는 그럴 거 같지는 않네요.”
“그럼요.”
의도한 대로 기자회견장의 질문과 답변이 흘러가자 소하는 매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난한 기자회견.
소하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침착한 태도로 일관하며 아직 준결승전이 끝나지 않았음을 무언으로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레드카드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기가 힘든데요, 오늘 심판의 판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그컵 준결승전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후반 89분의 레드카드.
한 장도 아닌 두 장이라 상당한 논란에 시달리는 판정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정확한 판단이었어요. 여기는 축구경기장이지 올림픽 유도경기장이 아니었으니까요. 아담 웹스터가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죠.”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밝히는 소하.
솔직히 거리낄 건 없지 않은가.
아담 웹스터를 통해 고의가 아닌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잘못은 잘못. 실수로 차로 사람 치었다고 죄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거친 항의를 하다가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리 케터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금 위험한 질문이다.
첫 번째 퇴장이야 명백하게 옳은 판정이었지만 두 번째 퇴장이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이것 또한 정확한 판단이죠. 오늘 주심은 완벽한 경기 진행을 보여줬어요.”
“···호오. 리 케터몰이 억울하다는 인터뷰까지 했는데도 감독님은 강경하시군요?”
“당연하죠. 리 케터몰의 인터뷰는 그냥 어린아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투정 부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솔직히 리 케터몰은 칼빈 필립스에게 고맙다고 따로 밥이라도 사줘야 해요.”
“네?”
“칼빈 필립스의 재치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거친 태클로 퇴장당해 그 자리에 없었을 테니까요.”
소하의 거침없는 독설.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승리 지상주의 소하라도 의도적인 거친 플레이는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아니, 혐오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
‘동지 의식도 없는 후레자식들.’
더티 플레이. 말로 잘 포장해서 플레이지 실상은 폭력적인 행위 아닌가.
실제로도 저런 거친 플레이를 당한 뒤의 선수는 부상이 없더라도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다.
심지어 칼빈 필립스는 소하가 처음으로 다른 구단에서 영입한 선수. 미래의 대들보로 여길 정도로 매우 아끼는 선수였기에 뿔이 단단히 났다.
“감독으로서 리 케터몰에게 충고 한마디만 하죠. 더티 플레이는 장점도 아닐뿐더러 사내다운 것도 아니에요. 그냥 부족한 실력을 감추기 위한 허세일 뿐. 쓸데없이 격투기를 연습할 시간에 뽈 한 번 더 차세요. 아니면 진짜 UFC로 가던가.”
으르렁거리는 소하의 마지막 답변.
이것은 선덜랜드와 2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상당한 화젯거리가 되었음은 당연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며 선덜랜드의 승부욕을 자극한 모습이 조금 소하답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소하는 조금 더 큰 그림을 봤던 것뿐이다.
‘···역시 감독님이야. 이런 자리에서도 날 위해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서주시다니.’
콩닥콩닥.
살짝 볼을 붉힌 칼빈 필립스.
멀리서 소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존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파란의 결과를 낳은 리그컵 준결승 1차전. 선덜랜드를 2-1로 제압한 포츠머스는 잉글랜드를 넘어 전 세계에 이름을 톡톡히 알리는 데 성공한다.
“뭐야? 포츠머스? 그 몇 년 전에 리그2로 강등당했던 팀 아닌가?”
“쯧쯧. 축알못 새끼. 그 팀이 불사조처럼 부활한 게 벌써 1년이 넘었어.”
“진짜?”
“그럼 구라겠냐? 한번 봐봐. 경기도 재밌어서 요즘 팬들이 늘고 있다고.”
끊임없이 늘어나는 구단 SNS의 팔로워 수!
곧 50만을 넘게 되는 너튜브 채널!
겹경사의 향연이었다.
TV 중계와 준결승전이라는 큰 무대는 그간 하부리그에 관심이 없던 축구팬들의 시선을 돌리기에 매우 충분했다.
축구 구단에게는 팬들의 숫자만큼 확실한 지표도 없는 법. 팬은 곧 돈이었으니까.
불어나는 구단의 주머니에 CEO, 브라이언이 홀로 축배를 들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는 소하에게도 매우 만족스러운 일. 이제 챔피언십을 바라보는 그에게 더 많은 수입이란 더 많은 이적 예산이란 이야기였다.
‘결국 축구는 돈 싸움이니까.’
더 많은 돈을 가진 팀이 이기는 법칙이 진리인 프로 스포츠의 세계.
소하가 아무리 똥꼬쇼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선수가 없으면 생존하기 힘든 거친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좋은 일이 연이어 펼쳐짐에도 소하의 얼굴은 밝지 못하다.
브라이언이 기뻐하는 게 불편서 그런 걸까? 아니다. 그저,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감독님. 감독님은 어느 팀이 결승전 상대였으면 좋겠습니까?”
바로, 리그컵 준결승전 2차전, 리버풀과 첼시의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앞서 펼쳐지는 두 거대구단의 진검승부. 1차전을 리버풀의 홈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터라 진짜배기 결전이었다.
“글쎄요···. 양 팀 다 너무 센 팀이라. 둘 다 떨어졌으면 좋겠는데요.”
밀러의 질문에 요상한 답변을 내놓는 소하. 집중한 모습에 비해서는 참으로 성의 없는 대답이다.
“···.”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밀러.
저딴 게 감독 입에서 나올 말인가.
두 팀이 다 떨어지는 경우는 절대 없다.
양 팀이 승부조작을 손잡고 진행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왜요. 양 팀 다 떨어지면 내일 있을 우리 팀 경기가 사실상 결승전 아니에요.”
“···그건 그렇죠.”
“후딱 우승해버리면 속이 편하죠. 자꾸 우리 팀 선수들에게 들러붙는 하부리그 날파리들이 모조리 떠날 테니까요.”
“···.”
‘우리도 그 하부리그 하루살이입니다만.’란 말이 입 밖까지 나왔지만 애써 참아본다.
“그래도 원하는 팀이 있을 거 아닙니까. 감독님이라면 이미 상황에 맞춰서 계획을 모조리 짜두셨을 거 같은데요.”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소하를 바라보는 밀러. 장난기 가뜩한 괴짜 감독이지만 능력의 끝을 알 수 없는 천재가 소하 아니던가.
분명히, 각기 상황에 따른 철두철미한 계획을 짜놨음이 분명했다.
“흐음···. 글쎄요. 일단 생각 좀 해보죠.”
“···아무런 계획도 없으신 겁니까?”
“당연하죠. 누가 올라올 줄 알고 미리 계획을 세워요. 게다가 우리도 2차전이 남아있거든요? 거기에 집중해야죠.”
“···그, 그건 그렇죠.”
정론으로 심통을 부리는 소하.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때는 항상 같은 이유였다.
‘계획이 없으니까.’
아무 생각 없었다는 걸 절묘하게 포장한 소하는 천천히 생각에 잠긴다.
‘리버풀과 첼시. 첼시와 리버풀. 어느 팀이 좋을까.’
실제 미래에서는 첼시가 2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 뒤 결승전에 진출한다.
그리고 이 기세를 이어 지금은 떨어진 토트넘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리버풀이 그나마 퍼런 놈들보단 낫지.’
리버풀도 강팀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은 굉장히 별로였다.
우루과이의 전설적인 포워드 루이스 수아레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난 빈자리를 전혀 채우지 못했다.
‘전설의 램발보 시절이지.’
20년대에도 리버풀의 흑역사로 거론되는 전설의 공격라인!
리키 램버트.
마리오 발로텔리.
파비오 보리니.
셋이 합쳐 한 시즌 동안 4골 1도움을 하는 전설을 넘어 신화로 기억되는 공격진이다.
다른 팀 팬들이 힘들다고 징징거릴 때마다, ‘우리 팀 공격진 램발보.’, 이거 한마디면 모조리 숙연해졌다는 전설을 만들기도 했으니까.
‘솔직히 램발보를 가동하는 리버풀은 충분히 해볼 만하지. 수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나마 잘하는 라힘 스털링은 아직 어린 데다가 팀을 떠날 궁리만 했으며,
대니얼 스터리지는 대단한 유리 몸이라 지난 시즌 준우승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약체화가 진행됐다.
‘그러니까 영입을 잘해야지. 보리니랑 랩버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발로텔리는 뭘 믿고 영입한 거야? 그 말썽꾸러기를 말이야.’
쯧쯧.
혀를 차는 소하.
자신이 감독이라면 마리오 발로텔리를 영입하느니 그냥 이웃집 철수를 영입하고 말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일단은 상대적으로 약한 리버풀이 결승전에 올라오면 좋죠.”
“역시 그렇죠?”
“그럼요. 게다가 첼시는 우리 팀이랑 같은 퍼렁 색이라 싫어.”
“···.”
또다시 말을 잃는 밀러.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적어도 모처럼의 결승전인데 홈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같은 파란색이면 어느 한 팀은 원정 유니폼을 입어야 했으니까.
“하여튼, 우린 지금부터 리버풀을 응원해야 해요. 난 콥이다! 우린 콥이다! 자 따라부르세요!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갑작스럽게 목청을 높여 리버풀의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는 소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지만, 밀러는 씨익 웃으며 따라부른다. 과연, 그 감독에 그 수석코치답다.
순식간에 소하의 감독사무실은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 된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노랫소리는 감독사무실의 문을 넘어 클럽하우스에 메아리치기 시작.
이상함을 느낀 직원들은 지옥의 장송곡 같은 노랫소리를 따라서 홀린 듯이 감독사무실의 문 앞을 찾는다.
“···어휴.”
“감독과 수석코치란 자리는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니까요.”
“스트레스를 푸시는 거니까···. 우리가 이해해주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혀를 차는 포츠머스의 직원들.
책임자란 직위의 무게감을 여실히 느끼며 자리로 돌아가는 그들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한가득했다.
***
포츠머스와 선덜랜드의 2차전 당일.
선덜랜드 AFC.
선덜랜드, 갈라진 땅이란 의미를 지닌 지역을 연고지로 삼은 구단이다.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타인위어 주에 있는 조선업과 광산업이 매우 유명한 도시가 바로, 선덜랜드다.
잉글랜드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대한 팬덤을 가진 선덜랜드 AFC.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캐슬과의 타인위어 더비의 주인공이기도 한 명문 중의 명문 구단.
훗날 슬픈 팬들을 위한 교향곡인 ‘죽어도 선덜랜드’의 주인공이 되기엔 매우 아쉬운 팀이다.
“와, 진짜 크긴 하네.”
“이런 구장 처음 와봐요. 진짜 엄청나게 크네요. 여기가 몇만 석이죠?”
“5만 석은 될걸?”
“정확히는 49,000석입니다. 잉글랜드에서 9번째로 거대한 구장이죠.”
선덜랜드의 홈구장,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도착한 선수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포츠머스의 홈구장, 프래튼 파크도 작진 않았지만 그래봤자 2만석.
5석에 육박하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비하면 동네 아침 운동장이었으니까.
“여기가···. 전부 꽉 찬다는 거죠? 후우. 긴장되네요.”
조금 긴장하는 선수들.
5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들 앞에서 뛰는 건 처음인지라 묘한 흥분감도 함께 찾아왔다.
“겁먹지 마십시오. 우린 저 붉은 물결 속에서 푸른빛을 잃지 않는 우리 팀의 원정 팬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케빈 도슨이 주장답게 나서며 선수들을 진정시킨다. 효과는 확실하다. 곧바로 다들 정신을 차리며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으니까.
‘···역시 주장 감이야.’
뚱한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보던 소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평소 같았으면 직접 나섰겠지만, 기분이 영 별로인지라.
‘시발. 리버풀은 내가 경기를 보기만 하면 져. 작년에도 그랬고.’
리버풀이 실제 역사처럼 1-0으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결승전은 상대는 첼시로 확정.
어려운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은 경기에 집중하자.’
머리를 흔들며 잡념을 떨치는 소하.
지금은, 눈앞의 리그컵 2차전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 103화. 14-15시즌 후반기. (9)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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