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00화 (100/306)

< 100화. 14-15시즌 후반기. (6) >

경기 초반.

포츠머스와 선덜랜드는 치열한 중원 싸움이 한창이다.

기본적인 기초 실력이 높은 프리미어리그의 팀, 선덜랜드.

하지만 이들의 기본 전략은 수비 지향적인 전술이었다. 프리미어리그는 덩치가 거대하고 포악한 맹수가 우글거리는 살벌한 리그였으니까.

요컨대 공격적인 플레이는 팀에 썩 자연스럽지 않은 옷이라는 뜻이다.

그에 반해 포츠머스는 선덜랜드와는 정반대의 팀이다. 누굴 만나던 항상 공격하는 매우 공격 지향적인 팀의 스피릿.

덕분에 포츠머스는 선덜랜드의 틈을 잘 파고들었고 3부리그 팀이 1부리그 팀과 막상막하로 경기를 치르는 상황까지 잘 이끌었다.

[포츠머스가 참으로 용맹하기 그지없습니다. 리그1 팀이 프리미어 리그 팀에게 두려움을 못 느끼는 거 같아요!]

[조금씩 떨어지는 개개인의 실력을 팀으로서 잘 메꾸고 있습니다. 적어도 팀으로서는 실력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한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평가.

여기에, 팀의 포메이션 차이 때문에 점점 주도권은 포츠머스로 향한다.

4-3-3과 4-4-2.

4-3-3이 4-4-2의 상성 상 우위이다.

중앙에 미드필더가 3명인 4-3-3과 겨우 2명인 4-4-2.

단순히 숫자만 봐도 4-4-2가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으니까.

물론, 4-4-2의 강점인 측면플레이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포츠머스가 매우 영리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공을 측면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제대로 된 압박을 펼치네요.]

[자신들의 유리한 전장인 중앙에서 상대를 가둬두고 나가지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선덜랜드, 답답하겠는데요?]

유리한 지형을 싸울 장소로 정하는 능력은 명장의 기본 조건.

소하는 선덜랜드가 함부로 측면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경기를 제어하는 중이다.

“좋아! 바로 그거지! 잘하고 있어. 그렇게만 계속해! 잘한다!”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평소에 하던 대로,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선수들을 보며 소하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피치 위에서는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성향이 아닌 소하.

그랬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이번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알려줬다.

“감독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허헛.”

유달리 열정적인 소하의 반응에 잭 밀러 수석코치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선수들이 실수했을 때나, 골을 넣었을 때를 빼고는 냉정하게 경기장을 주시하던 소하 아니던가.

이토록 열정적인 모습 2년 가까이 곁에서 보필한 밀러로서도 처음 봤다.

“무슨 소리예요? 전 항상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요.”

퉁명스럽게 툴툴거리는 소하.

자신만큼 열정적인 사람이 어디 있냐고 따지는 듯하다.

“···열정이요?”

“그럼요. 열정이요. 열정이 없었으면 이 빌어먹을 구단에서 하루도 버틸 수 없었을걸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직각 사과를 시도하는 밀러.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괜히 하부리그에서 힘 빼기 싫은 거였으니까 오해하지 말라고요. 열정의 남자! 이게 바로 접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밀러.

좀체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열정이 없었다면 이런 자리로 망한 구단을 이끌지도 못했을 테니까.

***

전반 20분.

소하의 열정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포츠머스 선수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경기장을 누빈다.

같은 프리미어리그의 팀이라고 설명해도 이해할만한 훌륭한 경기력.

이에, 선덜랜드 선수들은 당황한다.

특히나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리 케터몰이 그 주인공이었다.

‘뭐지? 꼬맹이 주제에 제법이잖아?!’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리 케터몰.

그의 마음속에서 ‘꼬맹이’라고 지칭한 포츠머스의 선수는 바로, 칼빈 필립스였다.

‘뭐야? 이 자식은. 겨우 리그1 수준에서 뛸만한 유망주가 아닌데···?’

어느 정도 실력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상정 외였다.

이미 성인 선수인 자신과 비교해서도 꿀리지 않는 신체조건.

겉보기에는 약해 보였는데, 막상 몸을 부딪쳐보니 단단한 암석이 따로 없다.

게다가 20분 내내 한 번도 몸을 멈춘 적이 없음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은 눈을 의심케 한다.

‘숨조차 가빠지지 않았어. 뭐 하는 녀석이야?! 도핑이라도 했나?’

심한 억측까지 나올만한 신체 완성도다. 하지만, 칼빈 필립스의 신체적 능력은 두 번째 장점일 뿐.

그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 아니었다.

‘패스. 녀석의 패스는 정말 뛰어나다···! 이미 패스 하나만큼은 프리미어리그 급이야.’

짧은 패스, 긴 패스 가리지 않고 정확도와 속도가 훌륭하다.

심지어 균형이 무너져도 이는 변함이 없을 정도. 리 케터몰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게다가 경기를 잘 읽는다.’

눈을 감는다면 노련한 중견 선수를 상대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이 녀석이 핵심이군.’

리 케터몰이 눈빛을 번뜩인다.

마이클 반즈도 뛰어난 패서였지만, 포츠머스 중원의 핵심은 칼빈 필립스가 분명했다.

공수 양면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었으니까. 정확한 판단이다.

‘훌륭한 선수가 될지도 모르겠군.’

새삼스럽게 칼빈 필립스를 바라보는 리 케터몰. 왠지 모르게 은은한 살기가 느껴진다.

‘좀 밟아놔야겠어.’

리 케터몰.

1년에 3번이나 ‘다이렉트 퇴장’을 당할 만큼 거친 선수.

성질머리도 더럽기로 유명하다.

이런 그의 특기는 성격과 매우 어울리게도 ‘더티 플레이’. 거친 플레이로 상대 선수를 위축시키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

‘아직 어린놈이니 더 잘 통하겠지.’

먹잇감을 발견한 승냥이의 모습이 따로 없다. 매우 비신사적인 플레이였지만, 늘 하던 거라 나쁜 짓이라는 자각도 없다.

사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더티 플레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방법을 권장하는 곳도 많았으니까.

“나이스 패스!”

마침, 칼빈 필립스가 케빈 도슨이 건넨 패스를 받는다.

‘지금이다! 녀석이 패스를 뿌리기 전에 한 대 갈겨줘야겠군.’

자연스럽게 칼빈 필립스의 다리를 걷어차기 위해 접근한다.

이미 눈은 공이 아니라 칼빈 필립스의 다리에 고정된 지 오래다.

하지만, 야생보다 험난한 포츠머스에서 버텨온 칼빈 필립스는 만만치 않은 친구였다.

-휙.

“엇?!”

카드를 각오하고 있는 힘껏 태클, 아니, 로우킥을 후렸건만. 허공만 가르고 말았고, 그대로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쿠당탕.

“너무 뻔했어요.”

그리고 들려오는 칼빈 필립스의 목소리. 리 케터몰을 공격을 간단한 드래그 백으로 피한 뒤다.

“무슨?!”

“너무 살기를 풀풀 풍겨서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니까요. 이 정도로는 절 기습하지 못해요. 아마추어 아저씨. 허접.”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는 칼빈 필립스.

“뭔 개소리야···?!”

벌떡 일어나 필립스의 등을 쫓아가는 리 케터몰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그가 어찌 알까.

포츠머스의 서식하는 최상위 포식자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기 감지’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는 걸.

‘감독님의 기습에 비해서는 너무 하수였어. 대놓고 노리는데, 피하지 못하는 게 더 어렵지.’

물론, 소하가 리 케터몰이 비열한 행위를 할 거라고 주의를 시킨 덕분이기도 했다.

[칼빈 필립스가 리 케터몰을 완전히 무력화시킵니다! 드디어 선덜랜드의 중원에 구멍이 생겼네요!]

[당황하는 선덜랜드 선수들. 수비형 미드필더가 파이널 서드까지 드리블할 줄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리 케터몰이 시도한 암살의 실패.

이는 곧바로 선덜랜드를 지탱하던 2명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 중원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단단하고 치밀하게 원정경기를 진행하던 선덜랜드가 처음으로 보인 틈!

영리한 칼빈 필립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확실히 벌려놨다.

‘누구에게 줄까.’

모처럼 선덜랜드 진영까지 올라온 칼빈 필립스. 빠른 속도로 주위를 둘러본다.

‘패스 길은 세 가지야.’

왼쪽의 도봉산.

중앙의 조쉬 킹.

오른쪽의 잭 해리슨.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상당히 위협적인 기회가 될 거다.

‘공격은 도봉산을 중심으로 해라.’

찰나 간 고민하던 칼빈 필립스의 뇌리에 꽂히는 소하의 조언. 칼빈 필립스는 소하의 조언이 떠오르자마자 고민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린다.

“받아요!”

좌측 측면으로 침투 중인 도봉산에게 대각선 전진 패스를 찔러넣는다.

-촤악.

도봉산과 경합 중인 상대 선수의 속도까지 계산한 완벽한 패스.

-탁.

정확히 도봉산의 발에 안착한다.

“좋았어.”

볼턴과 프리미어 리그에 있을 때도 받아보지 못했던, 훌륭한 패스에 도봉산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칼빈 필립스의 멋진 패스가 도봉산의 발밑에 정확히 안착했습니다. 과연,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슬쩍 속도를 줄이는 도봉산.

그의 특기인 현란한 발놀림을 이용해 슈팅각을 만들려는 걸까?

충분히 가능성이 큰 선택지이다.

‘안쪽이다···!’

빠른 판단을 내린 선덜랜드의 오른쪽 풀백, 세바스티안 라르손. 도봉산을 따라 속도를 줄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도봉산의 노림수.

“됐어.”

허벅지 근육을 쥐어짜 폭발적인 가속을 보여주며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동안 해왔던 피지컬 트레이닝이 빛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수비수와 거리를 벌리고 컷백을 시도할만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멋진 장면이다.

[엄청난 폭발력입니다! 도봉산에게 저런 가속력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장내 아나운서의 환호성을 뒤로 한 채, 도봉산은 곧바로 낮고 날카로운 컷백을 시도한다.

-촤락.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를 가르는 예리한 컷백. 그 끝에는 조쉬 킹의 오른발이 이미 장전을 마치고 불을 뿜을 준비가 됐다.

-쾅!

조쉬 킹의 전매특허, 대포알 슛.

전함의 함포 같은 폭발력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골망을 찢어발긴다.

[골입니다! 리 케터몰의 무모한 가로채기 실패가 그대로 골까지 연결됩니다!]

[조쉬 킹의 리그컵 5번째 골! 리그를 넘어 리그컵에서도 득점왕에 도전하는 조쉬 킹입니다!]

“우오오오오오!”

포효하는 조쉬 킹!

전반 21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포츠머스의 선제골이 드디어 터진 순간이었다.

***

“좋았어!”

조쉬 킹의 멋진 선제골에 소하는 침을 튀기며 흥분했다.

보다 강팀을 상대할 때 선제골만큼 좋은 것은 없었으니까.

‘좋아, 계획대로야.’

선제골을 넣은 포츠머스.

소하에게는 이제 매우 유리한 선택지 두 가지가 생겼다.

이대로 계속 공격적으로 나가거나,

조금 내려앉아 역습을 노리거나.

무엇을 선택하든 선덜랜드로서는 답답한 순간이다.

점수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라인을 올리고 더욱더 공격적으로 해야 했으니까.

이것은, 포츠머스의 공격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뜻과 똑같은 말이었다.

‘일단은 현상 유지를 하자.’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소하. 일단은 지금처럼 공격적인 전술을 유지하기로 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추가 골을 넣을 기회가 될지도 몰라.’

조금 위험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리턴이 크다.

여기서 한 골 더 넣는다면 결승전으로 가는 티켓을 반쯤 손에 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요컨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딱 소하의 스타일이다.

‘그리고 상대는 체급이 큰 팀. 지금은 어찌어찌 비등한 경기를 하고 있지만, 2차전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지금 끝장을 봐야 변수가 사라진다.’

2차전은 선덜랜드의 홈구장에서 펼쳐진다. 잉글랜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선덜랜드의 홈구장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란 어려운 일.

오늘 경기에서 아예 끝내버리는 것이 최고의 판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축구란 계산처럼 흘러가지 않는 스포츠.

때때론 모난 공이 튀어나와 자기 마음대로 경기장을 휘저었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모난 공은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등장한다.

[재개된 경기, 선덜랜드의 공격으로 시작됩니다!]

[공을 받고 바로 전방으로 공을 길게 뿌리는 선덜랜드! 너무 안일한 공격작업 아닐···.]

장내 아나운서를 말을 잊지 못했다.

안일하고 어설픈 전방 긴 패스를 저메인 데포가 유려하게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으니까.

전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공격수다운 환상적인 플레이!

“와. 미친. 저 똥볼을 자기 걸로 만드네. 역시 레전드는 레전드야.”

혀를 내두르는 소하.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 불안감은 곧바로 현실로 실체화된다.

[멋진 능력으로 공을 차지했지만, 주위에 선수가 없습니다. 뒤로 공을 보낼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요.]

[케빈 도슨이 등에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아무리 저메인 데포라지만, 몸을 돌릴 순 없을 겁니다.]

모두가 불가능을 외치는 상황.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선수를 축구계에서는 레전드라고 불렀다.

-툭.

한번 트래핑한 공을 슬쩍 공으로 띄우는 저메인 데포. 뒤에 케빈 도슨이 서 있음에도 주저함이 없이 터닝 슛을 시도한다.

-틱.

케인 도슨의 어깨를 맞고 굴절되는 저메인 데포의 무모한 슈팅.

이는, 단단히 준비하던 포츠머스의 골키퍼, 말콤 우드에게 혼란을 선물했다.

-철썩.

타이밍을 잃어 몸을 날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을 바라보는 말콤 우드.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골, 골! 골입니다! 저메인 데포의 환상적인 개인플레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만 동점 골을 넣었습니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었군요. 굴절되면서 말콤 우드가 반응조차 하지 못했어요. 참···.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엄청난 운과 실력이네요.]

“···.”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소하도 마찬가지. 조금만 시간을 줬다면 완전히 경기를 끝낼 수 있었기에 더욱 입맛이 쓰다.

“그래. 쉽게 가지는 못하겠지.”

소하는 모처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전반 22분.

2분에 만에 한 골씩 주고받은 포츠머스와 선덜랜드의 경기 결과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 100화. 14-15시즌 후반기.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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