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97화 (97/306)

< 097화. 14-15시즌 후반기. (3) >

“우와. 죽인다. 때깔 봐봐.”

“이거 타고 다니면 멋 좀 나겠는데?”

“우리 구단이 돈을 잘 벌기는 하나 봐.”

리처드 맥닐, 포츠머스 구단주가 기부한 버스를 바라보며 모두가 감탄했다.

기존의 버스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서 프리미어 리그의 팀이 보유한 버스 못지않았으니까.

솔직히 겉만 보자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의 버스였다. 평균적으로 가난한 팀이 많은 리그1에서 끌기에는 과분할 정도.

덕분에 선수들은 물론이고 구단 관계자들 모두가 사진을 찍으며 좋아한다.

한 사람만 빼고.

“흐음. 관리를 잘했네.”

다른 사람들과 정반대인 소하의 무덤덤한 평가. 당연한 걸 이제야 보유했는데 좋아할 이유가 있겠는가.

오히려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욱 큰 욕심을 부린다.

‘다음에는 전용기다···!’

큰 야망을 지닌 소하. 사실 언젠가는 필요한 시점이 오긴 할 거다. 유럽대항전에 단골로 나서게 된다면 비행기는 친구가 될 테니까.

맨날 전세기만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진짜 거대 구단이라면 전용기 한 대쯤은 있어야 성에 찰 것이다.

물론, 아예 감정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냥 긍정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말이야···.’

소하는 버스를 바라보며 불만을 품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왜 버스 외장에 내 그림을 그려둔 건데. 진짜 개쪽팔리네.’

푸른색 바탕에 현 포츠머스 선수들과 소하의 얼굴이 페인팅 되어있는 버스는 그저 수치 그 자체.

심지어 밀월전의 셔플댄스를 추는 모습이다. 어찌 쪽이 팔리지 않을 수가 있으리.

‘취향 한번 고약한 노친네야.’

괴이한 취향이었다. 소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차라리 포츠머스의 레전드들을 그리는 것이 더 멋지지 않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소하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했을 뿐. 이미 구단은 소하를 준레전드 취급할 지경에 이른 걸 몰랐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뭘 하나 이룬 것도 없으니까. 아직 3년 계획의 절반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놀랍도록 무시무시한 향상심이다.

자기가 정한 성과 이외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과감함.

이것은 다양한 천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던 특성이기도 하다.

회귀를 거치면서 보통 사람의 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천재로서 각성 중인 소하.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마치고 2015년으로 향해 걸어나가는 그의 등이 유달리 커보였다.

***

2015년. 1월.

잉글랜드 인들에게는 새해라는 의미만큼이나 겨울이적시장의 시작은 큰 관심거리였다.

좋은 성적은 유지하기 위해서.

나쁜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이제 긴 리그의 절반을 끝내고 반환점을 도는 여정.

겨울이적이상은 이 여정의 결과를 바꿀만한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팀은 아무것도 안 할 거에요.”

새해를 맞이해 열린 기자회견장.

소하는 여지없이 겨울이적시장에서 아무런 행동도 가지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겨울만 되면 성 감독의 지갑이 얼어붙지.”

“별로 기대도 안 했어.”

“사실 영입이 별로 필요한 상황은 아니잖아. 선수단도 온전히 전력을 보전 중이고.”

“맞아. 겨울이적시장은 선수들의 몸값이 비싸지. 어지간해서는 지갑을 닫는 게 좋아.”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영입한 선수 중에 성공한 선수가 드물기도 하니까.”

약간 불만을 가진 서포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긍하는 눈치.

하지만, 다른 구단들은 아니었다.

제일 먼저, 몇 달 전부터 포츠머스의 경기마다 따박따박 스카우트를 보내던 토트넘.

무관의 상징이지만 체급만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구단이 가장 먼저 신호탄을 터뜨렸다.

“델리 알리를 영입해야 합니다.”

포체티노 감독은 선수의 이적을 결정하는 기술회의에서 강경하게 주장했다.

델리 알리라는 재능에 완벽히 빠져버린 그였기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델리 알리는 이번 시즌에 계약을 체결한 선수입니다. 포츠머스가 쉬이 내줄리가 없습니다.”

“계약 기간이 4년 6개월이 남았습니다. 게다가 포츠머스는 그리 돈이 궁하지 않은 구단. 최소한 1000만 파운드에서 15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발생할 겁니다. 어디까지나 구단에서 수락한다면 말이죠.”

당연하게도 토트넘의 프런트는 난감하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청소년 국가대표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고는 하나, 아직 빅리그 경험이 없는 선수.

이런 선수에게 15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지불하기에는 리스크가 컸으니까.

하지만 포체티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델리 알리를 1500만 파운드에 살 수 있다면 공짜로 산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는 근시일 내로 돈 주고도 못 사는 선수가 될 겁니다.”

강경하게 주장하는 포체티노 감독.

이에, 토트넘의 프런트는 일단은 수락한다.

“알겠습니다. 일단 포츠머스에게 관심을 표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포츠머스는 거절할 테니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들의 추천으로 사령탑에 앉힌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엔 모양새가 좋지 않다.

때문에 포체티노 감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흉내 정도는 내보는 토트넘.

그런데 이게 웬걸.

포츠머스의 영입 전권을 한손에 쥔 소하가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 아니겠나.

“좋아요.”

“···네?”

“좋다고요. 한번 사보라는 건데. 싫으면 말고요.”

“아, 아닙니다. 그럼 이적료로 어느 정도 금액을 생각하시고 게신지···?”

의외의 상황에 어리둥절한 토트넘의 기술팀. 일이 너무 쉽게 풀려 불안감마저 몰려왔고 그들의 감은 정확했다.

“5000만 파운드. 노 네고.”

“네?”

“5000만 파운드. 노 네고.”

“자, 잠깐만···.”

“5000만 파운드. 노 네고.”

“아니 감독님 잠시···.”

“6000만 파운드. 노 네고.”

“···.”

앵무새같은 소하의 반응에 미련 없이 백기를 들었다.

5000만 파운드. 한화 800억.

6000만 파운드. 한화 940억.

이 말은 그냥 팔지 않겠다는 뜻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저 돈이면 차라리 검증된 슈퍼스타를 사고 말지, 미쳤다고 십대 유망주를 사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토트넘은 신축구장을 준비하느라 저만한 돈도 없었다.

“흠···. 어쩔 수 없군요.”

순순히 포기하는 포체티노 감독.

사실, 애당초 영입에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포석일 뿐.

지속적인 관심을 보낸다면 선수 측에서 이적을 원할지도 몰랐으니까.

차근차근 뜸을 들이려는 수작이었다.

“돈도 없는 새끼들이 이지랄 하는 거 보니까 꿍꿍이가 있구만.”

하지만 소하의 감을 피해갈 순 없는 법.

포체티노 감독의 의중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알리의 정신개조를 진행한다.

“야. 그 소문 들었어? 포체티노 감독은 나보다 훨씬 더 무섭대.”

“···정말요?”

1일 차 세뇌. 포체티노 감독에 대한 험담.

“야, 그 소문 들었어? 토트넘에 가면 대머리 회장이 죽을 때까지 다른 구단으로 보내주지 않는대.”

“···정말요?”

2일 차 세뇌. 토트넘 CEO에 대한 험담.

“야, 그 소문 들었어? 토트넘에 들어가면 우승컵을 절대 얻지 못한대.”

“···위험한 곳이군요.”

“그렇지. 무관DNA라는 건 정말 무섭거든.”

“맞아요. 그리고 프로선수로서 우승컵을 얻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거겠죠.”

3일 차 토트넘의 무관본능에 대한 험담.

사실에 근거한 중상모략이라 델리 알리의 머릿속에는 점점 편견이 자리잡는다.

‘진짜 토트넘은 별로일지도? 갈 거면 아스널이 낫지. 첼시나.’

토트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실로 소하다운 악랄한 정신개조.

토트넘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에게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포츠머스 선수에 대한 다른 구단의 관심은 델리 알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현재 포츠머스에서 재계약을 미루는 중인 찰스 말로리가 그 주인공.

포츠머스에서 10년이나 보낸 이 베테랑 선수는 포츠머스의 레전드 취급을 받는 선수다.

“찰스 말로리는 구단의 레전드야. 그가 은퇴하면 구단에 동상을 세워줘야 해.”

“팀이 가장 좋을 때와 가장 나쁠 때를 모두 경험한 살아있는 역사!”

“연이은 강등에도 꿋꿋이 의리를 지킨 충성스러운 선수지.”

소하가 미래를 바꾸지 않았다면.

감독에게 반기를 든 선수로 낙인찍혀 기억조차 되지 못했거늘.

이제는 완전히 구단의 레전드가 되었다.

소하 또한 이런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

“맞아. 찰스 말로리는 구단에 없어서 안 될 존재지. 새끼, 내 덕을 많이 봤어. 영원히 모르겠지만.”

자화자찬으로 귀결하는 놀라운 포장 솜씨!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 비록 찰스 말로리가 검은 머리는 아닐지라도 검은 머리 짐승은 믿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재계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소하의 분노를, 서포터들의 걱정을 야기한다.

심지어 재계약이 난황이란 소문에 다른 구단에서 구애를 보내는 상황까지 처하자, 소하는 담판을 짓기 위해 개인 면담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원하는 게 뭐냐?”

단도직입적인 소하의 추궁.

갈 땐 가더라도 이유나 듣고 가자, 라는 전투적인 태도다. 소하는 은혜도 모르는 짐승에게는 가차 없는 남자.

찰스 말로리를 판매하는 것도 감수할 생각이다.

“···난 아직 계약이 많이 남았다. 2년 6개월이나 남았지.”

“근데?”

“어차피 나는 지금도 챔피언십급 주급을 받고 있어.”

“그렇지. 우리팀이 챔피언십에 있을 때 재계약을 했으니까.”

“그럼 굳이 재계약을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응?!”

이건 또 뭔 개소리란 말인가.

요컨대, 돈을 더 받기 싫어서 재계약을 거부했다는 말이다.

프로선수가 더 많은 연봉을 거절한다고? 없는 일을 아니지만 보기 쉬운 일도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은퇴할 구단은 포츠머스밖에 없다.”

소하를 안심시키는 찰스 말로리. 그럼에도 소하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돈. 좋지. 하지만 난 공차는 걸 그만두더라도 앞으로 먹고 살 만큼 벌었어. 내가 바라는 건 명예다. 명예는 돈 주고도 사기 힘들지.”

“···그렇지.”

“재계약은 하지 않는다. 팀을 떠나지도 않고. 여기서 남아 포츠머스의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

“···정신 나갔구나?”

“너와 비슷한 거지.”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 소하와 찰스 말로리.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 찰스 말로리였기에, 포츠머스의 계약 담당들이 혼란에 빠질 만도 했다.

하지만, 소하에게만은 예외.

소하는 찰스 말로리가 짊어진 부담감을 대신 짊어진 남자 아니던가.

속내를 터놓을 유일한 사람이었다.

“알겠어. 내가 구단에 말하도록 하지.”

의외로 쉽게 해결된 찰스 말로리의 계약 건.

이튿날 포츠머스의 지역지에는 한 기사가 1면을 장식한다.

[제2의 미스터 포츠머스, 찰스 말로리. 재계약을 거부한 것은 그저 임금을 동결하기 위함이 밝혀져.]

포츠머스 팬들의 가슴을 불타게 할 행복한 기사였고, 당연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미쳤다. 미쳤어. 찰스 말로리 유니폼 사러갑니다.”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것도 자신의 나이 때문이라던데. 실력이 떨어지면 주급삭감계약을 맺기 위해서.”

“진짜 동상 세우자.”

“오늘부터 모금 들어간다.”

찰스 말로리.

선수들 사이에서는 ‘무서운 형’으로 불리었지만, 서포터들에게는 ‘포츠머스의 로맨티시스트’라고 불리게 된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결과!

이래저래 축구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건 이런 선수들이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기 때문 아닐까 싶은 사건이었다.

***

새해의 첫 주가 지나고 어느 정도 2015년이란 무게에 무덤덤해지는 시간.

포츠머스에는 신년답지 않게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곧 리그컵 4강전. 그러니까 준결승전의 추첨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팀은 당연하게도 4개 팀.

포츠머스, 선덜랜드, 첼시, 리버풀.

포츠머스를 제외하고선 전부 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팀이다.

“후우. 제발 선덜랜드!”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히 바라는 소하와 포츠머스의 일동들.

아무리 생각해도 준결승전에서 첼시와 리버풀을 이길 방법이 없다.

준결승전까지 왔다면 그들도 진심으로 대할 것이 뻔했으니까.

최고의 방향은 역시나 선덜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이기는 하지만 중하위권이라 해볼 만한 팀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위의 두 팀보다는 해볼 만하다는 뜻.

선덜랜드로 포츠머스보다 체급이 열 배는 큰 팀이다.

곧 추첨이 시작되자 간절히 기도문을 외우던 일동들의 입이 봉인된다.

소하마저도 긴장한 상태.

[리그컵 준결승전 대진! 선덜랜드와 포츠머스! 리버풀과 첼시입니다!]

“됐어! 됐어!”

“가자아아아!”

“바로 이거지! 바로 이거야!”

“결승이 눈앞에 보인다!”

추첨이 발표되자 환호성으로 가득 차는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

심지어 선수들도 남아서 지켜본 덕에 소란은 두 배 이상이다.

‘그렇지. 그렇지.’

얼굴에 한껏 썩은 미소를 그린채 주먹을 불끈 쥔 소하.

맨날 재수 없는 일만 터지더니 이제야 운수가 트이나 보다.

‘선덜랜드라.’

소하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팀이다. 그 유명한 다큐인 ‘죽어도 선덜랜드’의 주인공이었으니까.

‘어디 한번 해볼까.’

기쁨도 잠시. 결승전으로 가기 위해 판을 짜는 소하. 그의 얼굴에는 어느덧 진지함이 가득 들어찼다.

< 097화. 14-15시즌 후반기.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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