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5화. 14-15시즌 후반기. (1) >
1.
소하 개인에게는 행복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주일 후.
다시금 소하가 지휘봉을 잡은 포츠머스는 11월의 남은 일정을 패배 없이 마무리 짓는다.
11월 23일.
셰필드 유나이티드 FC를 홈으로 불러들여 3-2 승리.
11월 26일.
애크링턴 스탠리 FC의 원정으로 떠나 2-2 무승부.
11월 30일.
요빌 타운 FC를 홈구장 프래튼 파크로 불러들여 5-0 대승.
2승 1무, 10득점 4실점이라는 포츠머스다운 공격축구를 보여주며 정상궤도로 단숨에 안착했다.
“어때요? 참 쉽쥬?”
능글맞게 웃으며 밀러를 바라보는 소하. 밀러를 놀리는 게 어지간히도 재밌나 보다.
“그, 그만 하세요···.”
보름 가까이 소하에게 시달린 밀러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버틸 만하다.
‘잉글랜드 국적의 퍼거슨.’
‘뚱보 무리뉴.’
‘키 작은 클롭.’
‘전술 천재.’
등등.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별명으로 부르지는 않았으니까. 당분간은 감독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 밀러였다.
하여튼, 밀러의 놀라운 감독 실력에도 불구하고 금방 다시금 원래 모습을 되찾은 포츠머스.
마냥 무난한 보름을 보낸 것만은 아니다. 장기부상에서 돌아온 매튜 다이스의 선발복귀는 상당히 큰 관심과 우려를 낳았으니까.
정확히 반년 만에 선발 출장하는 매튜 다이스. 그간 틈틈이 교체를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렸지만 전 같은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입은 큰 부상은 성장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것. 우리가 알던 매튜 다이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몸이 상당히 무거워 보여. 한 참 중요한 시기에 큰 부상은 악재였지.”
“그 날카롭던 킥력도 한풀 꺾였어. 이젠 장점이 없는걸?”
“이번 시즌은 베예린의 뽕을 뽑아야 해. 그리고 다음 여름 이적시장에 새로운 매물을 찾아야지. 성 감독은 좋은 선수를 잘 찾으니까.”
평론가와 팬들의 비판.
소심한 성격을 가진 매튜 다이스가 악영향을 받았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난 이제 정말 끝난 걸까.’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관심종자 기질을 가졌지만 어디까지나 좋은 관심을 받고 싶었을 뿐.
부정적인 관심은 절대로 바라지 않았기에 세간의 시선은 독이 되었다.
이대로 잠깐 빛나다가 사그라지는 수많은 유망주 중에 한 명이 될지도 모르는 일.
‘흐음. 애가 맛이 갔군! 빠른 케어가 필요하겠어.’
하지만 소하가 누구던가. 애써 포텐을 터뜨린 선수를 그냥 내버려 둘 위인이 아니다. 이적료 한 푼 들이지 않은 구단 유스라는 보물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법.
곧바로 멘탈 관리에 들어갔다.
“다이스야. 지금 많이 힘들지?”
평소 그답지 않은 인자한 웃음. 흡사 석가모니가 그에게 잠시나마 깃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하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많이 힘드네요.”
소하가 건넨 전설의 차를 홀짝이며 매튜 다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부상 전에만 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던 사람들이 이렇게 돌변하다니.
섬세한 마음을 가진 그로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래 인간이란 동물이 그래. 백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참지 못하는 족속들이니까.”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소하의 염세적인 말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매튜 다이스. 거친 프로의 세계를 헤쳐나가기엔 너무 마음이 여리다.
“글쎄. 난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가족이나 지인 중에 그런 새끼들이 있으면 손절해야겠지. 하지만, 관중들은, 팬들은 그럴 수 없어.”
“···.”
“그들은 네가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대가를 내는 거니까. 프로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따끔한 충고를 날리는 소하. 좀전의 살아있는 부처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엄하기 짝이 없는 학생부 선생님의 모습이다.
“···그렇군요.”
매튜 다이스는 조금 실망했다. 그들을 욕해주고 동감하며 위로해줄 줄 알았으니까. 역으로 혼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소하는 매튜 다이스의 기분에 맞춰 딸랑이를 흔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매튜 다이스의 여린 마음은 앞으로의 프로 생활에서 큰 약점이 될 터.
조금씩 교정을 해줘야 소하나 매튜 다이스,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었다.
그래도 채찍을 줬으면 당근도 줘야 잘 달리는 법.
울적해진 매튜 다이스에게 소하는 곧바로 당근을 꺼내든다.
“그리고 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네?”
“지금의 역경을 딛고 부활한다면 전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만한 환호와 찬사를 듣게 될 테니까. 안 그래?”
“···!”
“게다가 아스널에서 애지중지하는 선수와 주전 경쟁에서 이긴다면··· 포츠머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널 주시할 거라고!”
이브를 꼬드기는 사악한 뱀의 유혹이 따로 없다. 그리고 매튜 다이스는 이브만큼이나 순수한 청년.
곧바로 눈을 빛내며 외친다.
“맞아요!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그렇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 이게 바로 모두의 주목을 받을 절호의 기회잖아요!”
“그럼. 그럼.”
“게다가 베예린은 이미 명성이 높은 선수! 경쟁에서 이긴다면 진짜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지도 몰라요. 알겠어요. 한번 싸워볼게요!”
“···이 못난 감독이 항상 뒤에서 널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내도록 해.”
“넵!”
기운을 제대로 충전한 매튜 다이스는 부리나케 감독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분명, 개인 훈련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은 보지 않아도 훤했다.
하지만, 의도했던 대로 매튜 다이스의 동기부여를 성공적으로 마친 소하의 얼굴은 썩 좋지 않다.
“···순수한 건지 단순한 건지 모르겠네. 이거 조쉬 킹한테도 써먹은 건데. 얘한테도 잘 통하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소하. 점점 휘하의 선수들이 조쉬 킹에게 오염되어 무뇌아가 되는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을 뿐.
기운을 차린 매튜 다이스는 애크링턴 스탠리와의 경기에서 선발복귀를 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팀은 아쉽게도 무승부를 거뒀지만, 예전의 모습을 거의 다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어진 요빌 타운 FC와의 경기에서는 완전히 본래의 모습을 회복.
MOM으로 선정되며 세간의 비평을 찬사로 뒤바꾸는 데 성공한다.
[매튜 다이스의 완벽한 부활! 포츠머스의 마지막 퍼즐은 19세의 어린 청년이었다.]
[정반대의 장점을 가진 매튜 다이스와 엑토르 베예린. 포츠머스의 강력한 두 가지 무기가 되다.]
[세계적인 유망주인 엑토르 베예린과 비등한 경기력을 보유주는 포츠머스의 유망주, 매튜 다이스는 누구인가?]
[마술사 성소하 감독. 그가 전혀 다른 두 가지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면 상대 감독들은 두통에 시달릴 것.]
직선적이고 빠른 발을 가진 베예린.
횡적이고 준수한 킥력을 지닌 다이스.
소하가 다른 장점이 있는 두 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상대팀에게 혼란을 유도할 것은 뻔한 일.
가뜩이나 강력하던 포츠머스가 범접 불가능한 팀으로 변모할 거란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도 의외의 소득이 발생했다.
‘뭐야···. 제법 잘하잖아?’
다이스에 활약에 자극을 받는 한 남자.
바로, 엑토르 베예린.
훗날에 채식주의와 패션을 축구보다 앞에 두는 선수였지만 지금은 열혈 축구소년이다.
게다가 바르셀로나와 아스널의 유소년 출신으로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상태.
그런 그에게 3부리그의,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본인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는 것은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질 수 없다. 아무리 임대라지만 3부리그의 유망주에게 주전을 빼앗길 순 없어. 내 자존심 문제야.’
열의를 활활 태우는 엑토르 베예린.
당연하게도 훈련장에서의 성과가 올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래저래 아스널 팬들과 아르센 벵거 감독도 흐뭇한 미소를 지을만한 사건이었다.
2.
12월. 잉글랜드는 프리미어 리그와 하부리그를 가리지 않고 바쁜 일정이 잡히는 달이다.
특히나 포츠머스는 리그컵 경기로 인해 밀린 리그 일정 때문에 리그 경기만 8경기를 치른다.
여기에 EFL 트로피 조별 예선과 리그컵 8강까지. 한 달 동안 10경기라는 살인적인 일정 완성됐다.
꼬박꼬박 3일에 한 번씩 펼쳐지는 경기 일정. 체력적인 부담이 없을 수가 없는 극한의 상황이다.
“너무 과한 일정이야. 이러다가는 선수들이 부상을 면하지 못할 테지.”
“암만 하부리그지만 너무 한 거 아닌가? FA에서는 경기 수를 줄여야 해.”
“경기력이 분명히 떨어질 거야. 지금 1위라도 방심할 순 없겠는걸.”
“성소하 감독이 두통에 시달릴 게 뻔해. 도대체 답이 없는 상황이잖아.”
극한의 일정에 너도나도 걱정 섞인 한탄을 내뱉는다. 소하에 대한 걱정마저 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소하는 웃고 있었다.
“뭐,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자고.”
이번 시즌의 계획이 잘 풀린다면 다음 시즌 유로파 리그에 참가하게 될 거다.
그렇다면 내년 이맘때쯤에도 이 정도 일정이 잡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미리 경험해둔다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선수들이나, 소하 자신에게도.
“우리 팀은 당분간 완벽한 로테이션 체제로 들어간다. 빡빡한 일정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잘 따라와라.”
소하는 늘 그랬듯이 답을 찾아왔다.
완벽한 로테이션 체제.
소하가 가져온 답안지는 평범한 로테이션이 아니었다.
“A팀과 B팀으로 나눈다. 그리고 팀마다 주전과 비주전을 내 마음대로 섞을 테니 당분간 한 몸이라고 생각해라.”
주전 팀과 비주전팀이 아닌 주전과 비부전이 섞인 혼합팀 두 개.
이것이 소하가 가져온 살인적인 일정에 대한 해법이다.
“괜찮을까요? 이렇게 하면 저점은 낮아질지 몰라도 고점 또한 낮아질 텐데요.”
이에, 잭 밀러 수석 코치가 나름대로 예리한 지적을 했다.
“호오. 밀러 아저씨. 상당히 일리가 있는 발언인데요?”
무척 놀라는 소하.
밀러에게 이런 주변머리가 있을 줄을 정말 몰랐다는 태도다.
“···저, 절 뭐로 보시는 겁니까···!”
“장난이에요. 맞아요. 저점은 높아지겠지만 고점은 낮아지겠죠. 풀주전을 가용했을 때 비해 70%쯤? 아니다. 65%쯤 실력을 내겠죠.”
축구는 팀 스포츠.
그중에서도 가장 조직력이 중요한 종목이기도 하다.
이런 종목에서 선수가 절반이나 바뀐다면 조직력 면에서 큰 악영향이 있을 거다.
“그럼···.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지 않을까요? 체력을 관리하기에는 좋겠지만요.”
전력의 65%.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는 아무리 강한 포츠머스라도 고전을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맞아요. 고전하겠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인제야 다른 팀들과 비슷한 체급이 됐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아하! 그렇군요.”
“그런 거죠. 우리 팀이 리그1에서는 워낙에 체급이 좋은 팀이었으니까요.”
소하가 이런 방법을 채택한 것은 체급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체급이 커야지만 선택할 방법이었다.
“평소처럼 질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이기진 못하겠죠. 그래도 이런 지랄 맞은 일정에서 이길 경기 이기고 비길 경기 비기는 것만으로도 이득이에요. 어차피 승점은 앞서니까요. 좀 져도 돼요! 벌어둔 게 있으니까.”
소하의 호언장담은 곧바로 현실로 이어졌다. 완벽한 로테이션 체제로 들어선 포츠머스는 평범한 경기력으로 12월을 보내기 시작했고, 결과도 평범했다.
리그 7경기 2승 3무 2패.
황금 비율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겉보기에는 꽤 심심한 결과였지만 일정을 생각해보면 매우 훌륭한 성과.
여기에 Q.P.R과의 리그컵 8라운드도 승리로 장식해서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12월이었다.
3.
12월 25일.
다른 사람들에겐 축제의 날이다.
바로, 크리스마스였으니까.
하지만 소하에게는 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날이었다.
“경기가 하루 남았군.”
뭐겠나. 경기 전날이지.
빡빡한 일정 탓에 크리스마스 휴가도 없는 포츠머스. 소하는 사기가 떨어질 것을 걱정해 선수들에게는 간단한 훈련을 명령하고 사무실에서 경기 준비에 매진하는 중이다.
-똑똑.
하루에도 최소 10번은 듣는 노크 소리.
이제는 환청마저 들릴 만큼 지겨운 소리이기도 하다.
“들어와요.”
심드렁하게 내방을 허락하는 소하.
자동응답기의 안내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무미건조하다.
워낙 자주 말하는 말이라 이제는 무조건반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감독님! 큰일 났습니다!”
소하의 심드렁한 반응과는 정반대로, 사무실을 찾은 인물은 오두방정을 다 떤다. 붉게 변한 얼굴은 그가 얼마만큼이나 당황했는지 여실히 알려준다.
이에, 소하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고개를 들고 방문자를 바라본다.
“응? 뭔데요? 아니지. 관리팀장님이 저한텐 어쩐 일로···?”
관리팀. 구단의 사소한 일을 도맡는 부서. 축구단의 속한 소하와는 별로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그게···.”
소하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관리팀장, 벤 왓슨. 마른침을 한번 삼킨 그는 사실을 실토한다.
“사, 사장님께서 이번 일은 감독님만이 해결할 수 있겠다고 하셔서요.”
“···네? 브라이언 그 대머리 새···, 아니지. 사장님이요? 좋아요. 말해보세요.”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소하. 그래도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브라이언이 자신에게 일을 떠넘긴 건지 궁금해졌기에 순순히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게 말입니다···. 버, 버스가 고장이 났습니다! 움직이지 않아요!”
관리팀장 벤 왓슨의 폭탄선언.
일단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구단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가 고장이 났다면 원정경기를 치르는 데 큰 문제가 생기니까.
더군다나 내일은 원정경기.
당장 이동할 수단이 없다는 건 벤 왓슨이 호들갑을 떨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씨발.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말하는 거야. 망할 대머리 새끼가?!’
그저 어이가 없는 소하였다.
그는 그냥 감독이었으니까.
< 095화. 14-15시즌 후반기.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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