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88화 (88/306)

< 088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7) >

1.

소하가 기자회견을 통해 세 치 혀로 밀월을 신명 나게 두들겨 패기 10분 전.

포츠머스 서포터즈 트러스트, 약칭 PST는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완전히 참패해버린 밀월의 훌리건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모두 우리 팀의 원정 팬들을 지켜야 합니다.”

“이미 경기장 출입구에서 포츠머스 시민들을 모두 한데 모으고 있습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도록 지역 SNS에도 광고를 올려뒀죠.”

“밀월 측에게 티켓 구매자 명단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양인들도 보호해야 합니다. 성 감독과 같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온 관광객일지도 모르니까요.”

이미 경기 종료 5분 전부터 일사불란하게 모든 준비를 진행하기 시작한 PST.

전직 해군 출신이 많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그 좋아하는 경기도 마다하고 일반인들의 안전을 위해 한 몸 바치는 군인정신! 하지만, 손이 너무나 부족하다.

한 손으로 열손을 막을 순 없는 법이니까. 낙오자가 생겨 화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발,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기를 신에게 빌 수밖에 없다.’

비전문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기도일 뿐.

그리고 기도가 신께 닿았던 것일까. 때마침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온다.

“런던 광역 경찰청, 지역 경찰부에서 파견을 나왔습니다.”

런던 경찰의 추가 증원이 도착.

그 숫자는 무려 300명이나 된다.

버스 테러를 미리 방지하지 못한 덕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

이로써, 전문인력까지 대거 합류하게 되었고 철통방어가 완성됐다.

밀월의 과격 서포터들이 감히 폭력을 행사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이제 됐다. 모두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거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환호하는 PST.

모든 준비가 끝나자 전쟁 한번 치른 듯한 피곤함 몰려온다.

하지만, 일은 예상외로 흘러간다.

“씨발. 집이나 가자.”

“6-0이라니 수치다.”

“이렇게 경기에서 발리고 싸움박질한다면 쪽팔린 일이지.”

“술이나 퍼마시자.”

“경기장 밖에서도 졌고 안에서도 졌다. 뭐하러 싸워?. 이미 완벽히 졌는데.”

“바람피운 여친한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비굴한 일이다.”

공격적인 밀월의 서포터들이 대패로 전의가 완전히 꺾여버린 것. 흔한 시비도 걸지 않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선술집으로 향했다.

비슷한 수준의 팀도 아니었고,

상위리그의 팀도 아니었으며,

하부리그의 팀에게, 근소한 차이도 아닌 6골이나 먹히고 진 것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큰 충격을 받으면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던가. 밀월의 서포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싸움이고 나발이고 그저 알코올의 힘을 빌려 이 충격을 지우고 싶을 뿐이었다.

“후우.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PST의 대표 조엘 펠트만. 노력이 무산된 허무함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결과였으니까.

이제 PST에 남은 일은 하나였다.

“그럼···. 우리도 선술집으로 가서 실컷 퍼마셔 봅시다!”

“좋습니다!”

“마시고 죽어보자고!”

“가자!”

며칠간의 고생을 뒤로 한 채 환한 얼굴로 포츠머스를 향해 떠나는 PST.

물론, 이들이 마시는 술은, 밀월 서포터들의 쓴맛 나는 알코올이 아닌 달콤한 승리의 축배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2.

포츠머스 FC와 밀월 FC의 이야기는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었다.

[성소하 감독과 도봉산 선수가 탑승한 버스가 테러 사건에 휘말리다! 범인은 아직 잡히지는 않았지만, 과격 서포터인 ‘훌리건’의 소행으로 보여.]

자극적으로 확 끌리는 제목의 기사.

이는 기재 10분 만에 10만 뷰를 달성하는 데 성공. 이후 1시간 만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번 사건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영화 훌리건즈 봤냐? 거기 나오는 팀인 밀월이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라고.

-진짜 미친 새끼들이다.

-인종 차별성 테러 아니냐?

-혐지인들 인성 수준.

-‘그 구단’.

-저도 밀월 FC의 연고인 버몬지 구에 가봤는데, 절대 가지 마세요. 인종차별 장난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범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밀월 FC SNS는 ‘코리안 키보드 워리어’의 집중포화를 맞고 다운이 되는 사태까지 이어진다.

-어글리 코리안. 내가 쪽팔린다. 진짜.

-구단이 무슨 책임이야.

-너희나 테러범이나 똑같아.

-하여튼 키보드 앞에서는 세상 무서운 거 없이 군다니까. 직접 현지에 가서는 아무 말도 못 할 놈들이.

이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속출했지만, 소수의 의견일 뿐. 사실, 구단 측에서 잘못한 점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는 사건 아니던가.

이성적인 척하면서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우월감을 느끼려는 족속들이었다.

물론, 이들도 금방 진압되었다.

-개소리 그만해라. 서포터즈의 자정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구단의 방관도 한 몫 거드는 중이니까.

-진짜 갓 쓰고 ‘에헴’거리는 새끼들만 보면 명치 존나 세게 때리고 싶더라.

-뚝배기 터진 소리 하네. 혐지인 이세요?

-훌리건 새끼들 한국말 잘하네.

-네 다음 매국노.

순식간에 매국노라는 프레임을 쓴 채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다. 명백한 피의자를 변호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이래저래 버스 테러로 인해 분노가 들끓는 대한민국. 국민구단이 된 포츠머스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다른 의미로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바람을 품게 되었다.

‘무조건 이겨라.’

이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공통으로 품은 바람이었다.

이래저래 인간이란 동물은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당연했으니까.

그리고, 알다시피 5,000만 국민의 소망을 멋들어지게 이루어주는 소하와 포츠머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포츠머스의 압도적인 승리. 6-0 대승.]

[성소하 감독의 거침없는 기자회견. ‘정의는 승리한다.’]

[축구로 정의를 논하다. 성소하 감독의 재치 있는 기자회견.]

[매서운 혓바닥, 성소하 감독의 무차별적인 폭격. 지금까지 이런 매콤함은 없었다.]

[말단 직원까지 책임지는 성소하 감독의 리더십. 대한민국 최고의 리더로서 각성하다.]

봇물 터지듯 연이어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권선징악이란 명확한 이야기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기 만발 아니던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바로 이거지. 이 맛에 액션영화를 보는 거 아니겠어?

-이게 바로 대한민국식 참교육이다.

-빛의 심판(물리).

-[오피셜] 성소하 감독 치매 증상 발생.

└지는 법을 잊어버려···.

-우리 할머니도 성소하를 알더라.

└작년 설에 혹시 성소하 감독 아냐고 물어보니까, 할머니가 갑자기 거수경례 하면서 검은 머리 정의의 사도라고 열 번 외치더라.

온라인에서는 이를 두고 엄청난 드립이 터져 나오기 시작. 소하는 본의 아닌 게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일명 성소하 신드롬.

이에,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방송국들은 일제히 소하의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기에 이른다.

“성소하 감독이 이번 사건을 다루는 모습에는 일종의 의지가 보입니다.”

“어떤···?”

“바로, 박해에 대한 저항이죠.”

“박해에 대한 저항이요?”

자칭, 사회심리학 전문가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진행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러자, 사회심리학 전문가는 거침없이 당당한 태도로 설명을 시작한다.

“네, 성소하 감독은 알다시피 혼혈입니다. 그리고 혼혈은 어느 나라에나 은연중에 차별을 받기 마련이죠.”

일단은 맞는 말이다. 자고로 혼혈이란 어느 나라에서도 차별을 받는 법.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요?”

“차별이란 일종의 박해입니다. 즉, 성소하 감독은 박해를 이겨내는 저항정신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죠.”

이건 개소리였다. 소하가 감독이 되기로 한 것은 저항정신이고 나발이고 그저 포츠머스를 사랑했기 때문이니까.

“또한, 테러라는 악에 굴하지 않는 모습은 같은 의미라고 봐도 괜찮죠. 요즘 세상이 어떻습니까,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렇죠.”

“이런 상황에서 성소하 감독은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테러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저항정신을 보여줌으로써 힘든 사람들에게 밝은 메시지를 전한 겁니다.”

“아하···. 역시 대단한 사람이네요.”

“이래저래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사람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말단 직원인 운전기사를 위해 모든 힘을 쓰는 것도 저항정신이거든요. 프롤레타리아를 지키는 프롤레타리아 정신! 대단합니다.”

이건 소하에게 맞아도 되는 말이었다. 프롤레타리아는 개뿔. 소하는 그저 열을 받았고 그걸 혓바닥으로 갚아준 것뿐이었으니까. ‘맞은 만큼 때려준다.’ 굳이 표현하자면 굉장히 원시적인 행동이었다. 석기 시대에서나 통할 법한.

“···.”

이런 헛소리를 어머니에게 통해 전해 들은 소하.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금 경기 준비에 들어간다.

“지랄한다.”

4.

밀월 FC를 완전히 부숴버린 소하 사단.

9월의 마지막 일정인 올덤 애슬레틱 AFC와의 홈 경기마저 승리로 장식한다.

결과는 2-1. 주전선수들의 대부분을 쉬게 했지만 체급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로써 8월과 9월, 두 달 동안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위업을 달성. 리그컵 포함, ‘12경기 11승 1무 0패’라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훌륭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심지어 12경기 동안 24득점 3실점을 기록하는 등. 경기력을 봐도 흠잡을 곳이 없다.

단순 계산으로 8득점당 1실점.

역사를 뒤져봐도 프로리그에서 이 정도 위력을 보여주는 팀은 찾기가 어려웠고,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미쳤어. 이미 포츠머스가 우승이야.”

“리그1에 처박혀 있기엔 너무 아까운 팀이다. 빨리 올라가자.”

“고작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내가 알던 포츠머스가 아니야.”

“선수 하나하나가 전부 다 탈 리그1 급이야. 지금 당장 프리미어 리그로 가도 강등은 안 당할걸?”

과한 평가까지 나올 정도로 완벽한 두 달간의 여정이었다.

너무나도 강해진 포츠머스.

이것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2년 차에 들어서며 가속이 붙은 유망주들의 성장 속도.

원래 선수의 능력은 10대에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심지어 소하가 모은 선수들은 훗날 세계급 선수들. 여기에 미래를 아는 소하가 적합한 훈련을 달아주자 무서울 정도로 이미 수년은 앞서나간 실력을 보여주는 중이다.

둘째, 성인 선수들의 성장.

케빈 도슨을 위시한 성인 선수들의 스텝업도 큰 이유다. 축구선수란 꾸준히 30세까지는 성장했고, 소하가 이번에도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셋째, 도봉산과 유해진의 합류.

유해진의 조언은 선수들의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미쳤고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중이다.

게다가 도봉산은 원래 프리미어 리그급 선수. 트라우마 때문에 실력이 퇴보했을 때도 챔피언십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다.

이런 선수가 각성하자 정말 무서운 실력을 보여줬고 이것은 다른 선수들의 향상심을 촉진했다.

‘질 수 없다.’

‘공 좀 차네. 그래도 1년 뒤면 내가 더 잘 찬다.’

‘호오. 저럴 땐 저렇게 컨트롤 하면 되는구나.’

‘드리블 좀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한두 단계 수준이 높은 선수의 존재.

이는 돈을 주고 사기 힘든 큰 자원임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선수의 존재만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얻게 했으니까. 330만 파운드가 한 푼도 아쉽지 않은 활약이었다.

넷째, 변화가 거의 없는 선수단.

선수단의 변화가 적을수록 팀워크의 유지가 쉬운 법. 몇몇 백업용 선수들을 임대했을 뿐인 포츠머스. 주전을 온전히 보전한 덕분에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지경에 올랐다.

‘이쯤에 패스를 주면 있겠지.’

굳이 경기장을 훑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는 반 박자 빠른 플레이를 가능케 했고, 경기력에 큰 도움을 줬다.

상대 선수가 반응하기도 전에 플레이가 이루어지니 어찌 막을 수 있으리.

마지막으로 익숙해진 소하의 전술.

이는 실점 수만 보아도 나온다.

3실점. 지난 시즌과 비교가 어렵다. 드디어 선수들이 전술의 완전히 숙지하고 틈을 보이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후후후. 점점 완성되는군.’

훌륭한 팀 상태에 썩은 미소를 연신 날리는 소하. 그간 여러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팀을 성장시킨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축구의 신은 소하가 행복한 모습을 싫어하는 존재. 연신 달고 살던 썩은 미소도 오래가지 못했다.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이는 포츠머스에게 또다시 난관이 닥쳤으니까.

리그컵 4라운드 추첨.

이제 16팀밖에 남지 않았어도 포츠머스는 다시 한번 최악의 상대를 만나게 됐다.

‘토트넘 홋스퍼.’

1년 뒤, 독일의 ‘바이언 04 레버쿠젠’에서 뛰던 이정재 선수를 영입하며 명실상부한 국민구단으로 발돋움하는 거대 구단이었다.

< 088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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