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85화 (85/306)

< 085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4) >

1.

밀월 FC와 리그컵 3라운드 경기가 하루 뒤로 다가왔다.

이에, 포츠머스 FC의 서포터 그룹인 ‘폼페이 서포터 트러스트’, 약칭 PST는 긴급회의를 열었다.

“PST, 긴급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조엘 펠트만. 소하의 첫 기자회견장에서 과격한 모습을 보였던 PST의 대표 중에서 하나다. 그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회의의 주제를 꺼낸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주제는 간단합니다. 밀월의 훌리건들에게 우리 팀의 서포터들을 지켜야만 합니다!”

조엘 펠트만이 알록달록한 문신으로 도배된 두꺼운 오른팔을 치켜들며 부르짖자, 장내에 모인 PST 회원들도 열렬히 호응한다.

“옳소! 개 같은 깡패 새끼들을 모조리 격퇴해야 합니다!”

“평범한 원정 팬이 공격당하는 일만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녀석들은 분명히 유혈사태를 일으킬 거요. 놈들은 축구보다는 싸움에 관심이 많은 개새끼니까.”

“잉글랜드 서포터 문화의 종양 같은 새끼들!”

투지를 활활 태우는 PST.

이는 밀월의 훌리건들과 전혀 다른 투지였다.

그들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공격적인 투지를 불태웠다면, PST는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수비적인 투지.

성질이 정반대였다.

그래도, 다른 팀의 서포터였다면 그냥 피하자는 생각부터 했을 터. 맞서 싸우자는 의견을 모으는 PST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게, 포츠머스는 항구도시다. 그것도 ‘군항’. 군사적 목적을 가진 항구였단 이야기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의 루프트바페의 미친 듯한 공습으로 도시가 석기시대로 돌아간 적도 있다.

즉, 포츠머스인들은 한번 초기화된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울 만큼 질기고 강인하다는 뜻. 여기에, 외압에 굴하지 않는 대쪽 같은 면모도 다분하다.

밀월 훌리건의 공격은 외부의 공격. 이를 가만히 두고 본다면 포츠머스인의 자부심을 버린다고 여기는 그들이었다.

“자자, 진정하시길 바랍니다.”

과열된 분위기를 조금 진정시키는 조엘 펠트만. 영향력이 강한 그의 말에 PST의 회원들은 일단 그의 말을 경청한다.

“우리는 당연히 적에 맞서 싸울 겁니다. 하지만, 밀월 녀석들이 선전포고를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조엘 펠트만의 말에 한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반박한다.

“펠트만 씨. 놈들은 3년 전에 당한 패배를 잊지 않고 있을 거요. 내가 장담하지.”

3년 전, 11-12시즌.

아직 포츠머스가 챔피언십 리그에 있을 당시다.

밀월과 포츠머스는 손을 잡고 강등권 근처에서 허덕이고 있었고, 결국 둘이 만나는 단두대 매치가 벌어진다.

결과는 포츠머스의 3-2 승리.

펠레 스코어로 패배한 밀월의 서포터가 눈알이 뒤집혔다는 사실은 당연한 절차였다.

경기가 끝나고 평범한 팬들에게마저도 시비를 걸다가 결국 PST와 제대로 한판 붙게 되었다.

요컨대, 장외 2차전이랄까.

쉽게 말해 서포터끼리 패싸움을 벌였다는 불유쾌한 2차전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또다시 포츠머스의 승리.

하지만 포츠머스는 너무 승리에 심취했는지, 그 후 연달아 패배하며 강등을 당한다.

“그때 그 사건도 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던 것 아닙니까?”

“누가 먼저냐는 그들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소. 졌다는 사실과 복수하겠다는 독기만 남았을 테니까.”

“···후우.”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만큼 밀월의 훌리건들은 지독한 골칫덩이였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엘 펠트만이 의견을 묻자, 이번에는 그와 비견될 만큼 덩치가 큰 남자가 나선다.

이 사람의 이름 닐 포프. PST의 대표 중에서 하나이자, 강경파의 수장이었다.

“선제공격.”

전직 해군 출신인 닐 포프는 거친 음색으로 짧게 답했다. 이에, 그를 지지하는 강경파의 일원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맞장구친다.

“옳소. 당하기 전에 먼저 치는 것은 전략의 기본이오.”

“이미 한번 흠씬 두들겨 패줬던 녀석들이니 승리는 확실하다!”

“상대의 지휘부를 집중적으로 타격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가 있을 겁니다.”

전직 해군 출신이 다수포진 한 강경파들의 발언. 전쟁하겠다고 가정한다면 쓸만한 말들이었지만, 전쟁이란 최후의 수단이었을 뿐.

조엘 펠트만은 난색을 보인다.

“선제공격만은 안 됩니다.”

“겁먹었소?”

닐 포프의 도발에 조엘 펠트만은 미간을 좁히며 분노를 표한다.

“말조심하십시오.”

10일 정도는 굶은 불곰 같은 흉포함이 느껴진다.

“···.”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닐 포프. 요즘 포츠머스가 잘나간 덕에 유해졌지만, 조엘 펠트만이 바닷가의 식인 불곰이란 별명을 가졌던 남자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년 전 밀월과의 전쟁 때도 엄청난 활약을 했었지···. 잠시 잊었군.’

네덜란드 이민자 출신이 서포터즈의 대표가 된 것도 이때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 악명높은 금속노조의 쇠파이프질을 견디며 강냉이를 털던 모습은 곰, 그 자체였으니까.

“미안합니다. 내가 흥분해서 말실수했습니다.”

금세 분노 조절을 완료하고 사과하는 닐 포프. 저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식인 곰을 상대하기엔 군인 출신인 그로서도 두려운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척 아쉽습니다.”

닐 포프의 사과를 점잖게 받아들인 조엘 펠트만. 그는 주위를 한번 훑어보고서 말을 잇는다.

“오늘 저녁에 가졌던 경기전 기자회견장에서 성소하 감독이 당부했던 말들을 벌써 잊으신 것 같습니다.”

“···.”

“···.”

조엘 펠트만의 성토에 말을 잃는 PST의 회원들.

‘양팀 서포터들이 부디 건전한 서포터 문화를 지켜주시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평소 가벼운 태도를 벗어던지고 진중하게 입을 열던 소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의 감독은 분명히 건전한 서포터 문화를 지켜달라고 말했습니다. 망해가던 구단을 불사조처럼 부활시킨 감독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조엘 펠트만이 강하게 주장하자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열렬히 긍정한다.

PST 내부에서도 여러 파벌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었으니까.

“맞는 말이야. 성 감독의 부탁을 어긴다면 그건 후레자식이지.”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다.”

“성버지의 부탁을 잠시 잊었어···.”

심지어, 강경파의 수장인 닐 포프도 아차 싶은 표정으로 읊조린다.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군···.”

험악하기 짝이 없는 닐 포프도 공손해지게 만드는 소하의 영향력!

소하가 얼마나 포츠머스에서 사랑받으며 존경받는지 언뜻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쟁만은 안 되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중도파의 수장, 존 데이비스가 화두를 던졌다. 일단 선제공격을 절대 불가. 하지만, 밀월이 공격하리란 사실은 분명하다. 그냥 맞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조엘 펠트만. 강한 의지가 담긴 눈빛과 함께 한 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그냥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녀석들이 먼저 폭력을 쓰기 전까지는 어떤 모욕을 들어도 반응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최선의 한 수. 이 방법밖에 없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지는 않는다. 더러워서 피하지.

“포츠머스의 인내심을 보여주자고.”

“좋아. 우리 할아버지는 나치 새끼들의 폭격도 견디고 또 견디셨지. 이 정도쯤이야.”

“질기다는 건 우리 포츠머스의 자랑이기도 하니까.”

단합이 좋기로 유명한 서포터즈인 만큼 모두가 소매를 올려붙이며 해보자고 단결한다.

하지만, 한 사람만이 표정에서 근심을 지우지 못한 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놈들이 기어코 피를 본다면요?”

닐 포프의 우려 섞인 발언.

충분히 일어날법한 일이다.

이에, 조엘 펠트만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흉악하게 읊조린다.

“그땐···. 저희도 피를 봐야 할 때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것이 저희의 정체성이니까요.”

먼저 때리진 않는다. 하지만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려주는 것. 이것이 PST의 근본이었다.

2.

구단에는 꽤 여러 사람이 비지땀을 흘리며 구단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특히나, 시즌이 시작되면 정말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이 속한 부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지원팀이다.

지원팀. 말 그대로 팀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속한 곳이다.

축구화 관리, 유니폼 관리, 일정 관리, 시설 검진 등등.

단순한 육체노동이 주를 이루는 블루칼라 계층이 대거 속한 부서다.

그리고 구단 전용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 릭 브래드도 지원팀 소속이다.

꼭두새벽에 출근해서 오늘 운행할 버스를 손수 세차하는 릭 브래드. 그의 모습을 목격한 선수들이 버스에 오르며 인사를 건넨다.

“어? 브래드 아저씨! 오늘도 힘내세요!”

“오늘도 안전 운전하시길 바랄게요.”

“운전을 너무 잘하셔서 버스만 타면 잠이 오는 게 문제에요. 좀 밟아보세요.”

이상한 말도 섞여 있지만, 하나같이 고마움이 느껴지는 말들이다.

무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블루칼라 계층. 하지만 포츠머스만은 달랐다.

선수들은 물론, 구단의 관계자들 모두가 그들은 존중했으니까.

정말 일할 맛이 나는 직장이다. 존중을 받는다는 것. 이것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동기부여다.

‘참, 감독님이 바뀌고 나서 분위기가 달라졌어.’

사실 포츠머스도 예전에는 단순한 노동자들에게 무례를 범하는 선수가 꽤 있었다.

물론, 소하가 부임하며 모조리 사라졌지만 말이다.

“너희 부모님들이 너라는 인간의 부모라면, 이분들은 축구선수라는 직업의 부모님이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빨래해주고 챙겨주고. 부모님이 따로 없지 않냐? 즉, 이분들을 무시한다는 건 부모를 무시하는 패륜아 새끼라는 뜻이다. 난 패륜아 새끼가 축구선수로서 경기장에 뛰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다. 혹시라도 패륜을 저지른다면 내 모든 능력을 동원해 조져줄 테니 항상 조심하도록.”

소하의 살기 어린 협박과 세뇌.

이는 포츠머스 선수들의 정신을 계몽시켰다.

“어? 브래드 아저씨. 오늘도 운전 잘 부탁드립니다.”

마침, 소하가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건네며 버스에 오른다.

“허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목숨까지 거실 거까지야. 코앞인 런던에 가는 건데요. 어깨에 힘 좀 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감독님.”

흐뭇한 미소를 짓는 릭 브래드.

조카뻘의 나이인 젊은 감독이었지만 절로 존경심이 든다.

‘난 이 젊은이들을 위해 한 몸 다 바칠 거다.’

릭 브래드는 각오를 다잡으며 세차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3.

이안 할로웨이, 밀월 FC 감독.

지난 시즌 겨울에 공석이 된 밀월의 사령탑을 맡은 사람이다.

그의 별명은 승격전도사.

크리스털 팰리스를 프리미어 리그로 올려보낼 만큼 실력 있는 감독이었다.

‘뭐, 잘렸지만.’

프리미어 리그에 올려두자마자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한 이안 할로웨이 감독.

어쩔 수 없었다. 윌프리드 자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구멍은 너무나도 컸으니까.

그래도 승격이란 큰 업적을 달성한 감독이거늘. 은혜도 모르는 자식들이라고 화를 내도 모두가 인정했지만 이안 할로웨이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밝고 유쾌한, 낙천적인 사람이었으니까.

‘밀월이라···.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백수 신세가 된 지 3개월쯤 된 2014년도 1월. 밀월 FC에서 오퍼가 왔지만 바로 수락하지는 않았다.

‘거기 서포터들이 좀 그러니까···.’

밀월의 강성 서포터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았다. 같은 팀이라도 못하면 죽일 놈이었으니까.

‘그래도 백수로 지내는 거보단 경력을 이어나가는 게 좋겠지.’

낙천적인 그답게 조금 고민하다가 주저 없이 승낙했다. 그리고 그는 제대로 승격전도사의 면모를 보여줬다.

강등 위기의 밀월을 구해내며 밀월 서포터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축구팬들의 지지는 끓는 물 같은 것. 14-15시즌이 시작되고 초반 성적이 좋지 않자 온갖 욕은 다 먹는 중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내가 아직 살해 협박을 받지 않는 건 리그컵에서의 성적 덕분.’

리그컵에서의 좋은 성적은 발작 직전인 밀월 서포터들의 억제기였다.

‘무조건 이겨야 해. 그러기 위해선···. 독을 이용하는 수밖에.’

3라운드에서 만나는 포츠머스는 정말 강한지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안 할로웨이 감독도 공격 일변도를 추구하는 감독인지라 상성이 너무 좋지 않다.

변수 없이 창 대 창으로 붙는다면 경기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변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포츠머스는 강합니다. 하지만 서포터들의 도움이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한 팀이기도 합니다.”

경기 전날의 기자회견.

평범한 답변이었지만, 밀월의 극성 서포터들은 이안 할로웨이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깽판을 놔달라는 거지?”

“포츠머스에서 뛰는 애새끼들의 기를 힘으로 죽여놓으라는 뜻 같은데?”

“감독이 도움을 요청했으니 제대로 난장 한번 피워보자고.”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

팀의 승리를 위한다는 목표 아래 흉악한 계획을 세우는 밀월의 훌리건.

그들의 계획은 바로 다음 날,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4.

경기당일.

포츠머스의 선수단은 구단 전용 버스를 이용해 런던으로 향했다.

밀월의 홈구장 ‘더 덴’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기 위해 골목길로 진입하는 릭 브래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눈을 비빈다.

“저게 뭐지?”

골목길에는 두건을 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 아니겠나. 그것도 두 손에는 금속 파이프 같은 둔기를 든 채로. 순간, 릭 브래드의 머릿속에는 위험경보가 울린다.

‘이, 이건 위험하다.’

이곳은 악명높은 밀월의 홈구장 근처.

대충 봐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너무나도 유추하기 쉬웠다.

‘뒤, 뒤로 버스를 빼야 한다.’

판단은 빠르게.

행동은 더 빠르게.

운전기사의 모범이 될만한 훌륭한 대처였지만, 훌리건들의 행동이 더 빨랐다.

“버스 때려 부숴!”

“여기가 어디라고!”

“야 이 개새끼들아~!”

돌멩이를 던지며 금속 파이프를 버스에 휘두르는 훌리건들.

훗날, ‘포츠머스 FC 버스 테러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 085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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