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4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3) >
1.
우리 팀의 9월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일정이 그냥 망했다.
조금 늦춰진 리그컵 1라운드가 가장 큰 원인이다.
9월 10일.
리그1 5라운드,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
9월 13일.
리그컵 2라운드, 크루 알렉산드라 FC와의 홈경기.
9월 17일.
리그1 6라운드, 노츠 카운티 FC와의 원정경기.
9월 20일.
리그1 7라운드, 브래드포드 시티 AFC FC와의 원정경기.
9월 23일.
리그1 8라운드, 크루 알렉산드라 FC와의 홈경기.
9월 29일.
리그1 9라운드, 올덤 애슬레틱 AFC와의 홈경기.
총 19일 동안 총 6경기나 진행하는 미친 일정. 심지어, 리그컵 2라운드에 승리한다면 리그1 8라운드와 9라운드 사이에 리그컵 3라운드 경기가 잡힐 예정이다.
이렇게 된다면 19일 동안 7경기를 하는, 전설적인 일정이 완성된다.
씨발. 무슨, 일정만 보면 모든 대회에 출전하는 프리미어 리그 팀의 박싱데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도 나오지 않는 미친 일정.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
선수단의 깊이.
감독의 역량.
사실 선수단의 깊이가 가장 중요하다. 스쿼드 뎁스. 더블 스쿼드 급 선수단을 보유했다면 꽤 해볼 만했으니까.
하지만 우리 팀은 부족한 부분은 없었지만, 선수단이 두껍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부족하지는 않은 정도.
그렇다면 내 능력을 본격적으로 시험받는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성소하 감독이 가진 능력의 본격적인 시험 무대. 과연 그는 이 지옥의 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전술적 역량과 선수단 관리 및 육성은 이미 증명됐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어떨까?”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과한 일정에 무너진 팀은 수없이 많다.”
“경험이란 능력이 가장 필요한 시련. 아직 2년 차에 불과한 성소하 감독에게는 혹독한 가을이 될 것.”
매우 당연하게도 기자 새끼들은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래 이거지. 없으면 섭섭하지.
늘 따라오는 부정적인 평가.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증명’해서 그들의 의견을 정면으로 박살 내는 일에 재미가 붙었다.
“그럼 릭트쇼, 아니. 트릭쇼를 시작해볼까.”
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지옥의 일정 중 첫 경기,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2.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포츠머스와 리그2에서 제대로 자웅을 가렸던 팀이다.
이들의 8월 성적은 상당히 준수.
2승 1무 1패로 승격팀답지 않게 상위권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돌풍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가 승격한 팀이지만 강한 이유는, 지난 시즌 강력한 팀에게 많이 맞아봤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의 평가.
정확했다. 포츠머스란 매우 공격적이고 하부리그에서는 체급이 큰 팀과 맞서 싸우던 경험은 상위 리그에서도 큰 자산이 되었던 것.
“불편하지만 부정하긴 힘들군.”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의 사령관, 러시 윌콕스 감독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많이 배웠고 잘 써먹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과거를 답습하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이긴다···!”
다시금 투지를 불태우는 러시 윌콕스 감독. 대 포츠머스 전술을 완성하기 위해 소하의 발언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지옥의 일정이라, 동의해요. 어지간한 팀이라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정이죠.”
“어떻게 팀을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평소처럼 강한 압박을 가져간다면 선수들이 버티지 못할 텐데요.”
“그렇죠. 따라서 경기 스타일을 조금 느슨하게 가져갈 생각이에요.”
경기전 소하의 기자회견.
이를 유심히 지켜본 러시 윌콕스 감독은 혼란에 빠졌다.
‘수상하다···!’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든 건 의심. 아무리 봐도 ‘그 성소하’가 자신의 전술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미심쩍었다.
‘기만책이다. 포츠머스는 분명히 평소처럼 공격적으로 나올 거야.’
평소 소하를 예의주시하던 러시 윌콕스 감독은 기만책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진짜라면···?’
작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더욱 가능성이 큰 곳에 승부수를 던져보기로 한다.
지난 시즌 더블을 당한 복수를 하기 위해 잔뜩 날을 간 러시 윌콕스 감독과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의 선수들.
포츠머스의 맹공을 최대한 막아내다가 역습을 하겠다는 전략을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는 소하의 트릭쇼였다.
-삑! 삑! 삐익!
[경기 종료됩니다. 포츠머스의 1:0 신승! 조금 지루한 경기였지만 나름대로 감독들의 노림수가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전후반 90분.
길고 느긋한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환호하는 포츠머스 선수들.
그와 정반대로 귀신에 홀린 듯이 눈이 풀린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의 선수들.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분명 엄청난 속도의 경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늘. 느릿하게 볼을 돌리며 신중하게 운영하는 포츠머스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후반전 중반에 코너킥 득점을 허용하고 져버렸다.
“좋은 승부였어요. 러시 윌콕스 감독님. 더욱 강해지셨는데요?”
“···날 속였군···!”
러시 윌콕스 감독은 어금니가 부서지라 입을 앙다물며 소하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속이긴요. 정말 섭섭한 말씀이시네요. 전 분명히 기자회견장에서 밝혔었을 텐데요.”
“···.”
빙글 웃는 소하의 낯짝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는 러시 윌콕스.
“다음에는 그런 잔재주가 통하지 않을걸세.”
“기대하도록 하죠.”
겸손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소하의 태도에 러시 윌콕스 감독은 고개를 돌리며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 피식 웃는다.
‘역시, 포츠머스는 강하군.’
경기가 끝나고 보니 너무 안일한 판단이었다. 포츠머스는 느린 템포의 점유율을 우선으로 하는 축구를 하지 못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생각이다. 포츠머스에는 패스가 뛰어난 선수가 매우 많은 팀.
점유율 위주의 축구를 하기엔 최적의 팀 아니던가. 오늘 경기의 MOM인 마이클 반즈만 해도 느린 속도에 어울리는 선수였거늘. 완전히 심리전에서 말려버렸다.
‘상대에 너무 신경 쓴 탓에 우리 팀의 색을 잃어버렸다. 이건 보완해야겠군.’
패배 속에서도 성장할 방법을 모색하는 러시 윌콕스 감독. 어쩌면 이번 세계선에는 훨씬 더 좋은 감독으로 발돋움할지도 몰랐다.
3.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의 원정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포츠머스.
3일 뒤에는 바로 리그컵 2라운드 경기가 예정되었다.
상대는 크루 알렉산드라 FC.
3부, 4부리그 같은 하부리만 전전하는 클럽이라 그리 유명하지 않은 구단이다.
지금은 리그1 소속. 포츠머스와 같은 리그에 속했지만, 먼저 리그컵에서 맞붙게 되었다.
“리그컵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대회에요. 이번에는 후보 선수들이 나와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될지도 모르죠.”
“하긴 지난 시즌에도 리그컵은 빠르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셨죠.”
“그렇죠. 이번 시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다시금 펼쳐진 소하의 트릭쇼.
지난 시즌이란 예가 있었기에, 크루 알렉산드라의 스티브 데이비스 감독은 마음을 놓아버린다.
‘하긴. 포츠머스에게 TV 중계도 없는 리그컵 경기는 중요도가 낮다. 그의 말처럼 주전을 쉬게 해 줄 요량이 분명해. 일정이 빡빡하니까.’
리그컵 2라운드의 선발은 후보와 주전을 섞은 1.5군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 핵심 선수가 모두 포함된 가장 강력한 선발진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겠나.
‘당했다!’
소하에게 속아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스티브 데이비스 감독.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경기는 시작되었으니까.
[경기 종료! 포츠머스가 리그컵 2라운드에서 5-1,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3라운드로 진출합니다!]
포츠머스의 압도적인 승리!
소하의 트릭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을 뿐.
훗날 감독보다는 사기꾼이 어울린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게 되는 트릭쇼가 연이어 펼쳐졌다.
“리그컵 2라운드에서 하셨던 말과는 다르게 모든 주전을 내보내셨습니다. 다가오는 노츠 카운티와의 원정경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시다시피 리그는 가장 중요한 대회에요. 그리고 우리 팀의 가장 큰 장점은 젊다는 거죠. 이 말은 즉, 체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에요. 체력에 여유가 있으니 전력으로 상대할 거예요.”
사실에 근거한 거짓말. 이는 노츠 카운티의 사령탑 션 더리 감독에게 혼란을 주었다. 더군다나 앞선 경기에서의 소하의 발언들은 더더욱 혼란을 가중했다.
‘진심이다. 리그를 버리는 감독은 없으니까.’
하지만, 포츠머스는 임대선수를 대거 기용한 2군 팀을 선발로 내세우며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친다.
심지어 이들은 프리미어 리그 팀의 검증된 유망주들. 리그1에서도 약체인 노츠 카운티로서도 버거운 상대였다.
[경기 종료! 0-0으로 이 지루한 경기가 막을 내립니다.]
토트넘의 라이언 메이슨이 델리 알리를 대신해 공격을 이끌었지만 아쉽게도 합이 맞지 않았다.
몇 번의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그대로 무승부로 마감. 5연승을 달리던 포츠머스의 연승행진이 아쉽게도 종료되었다.
다음 경기는 브래드포드 시티 AFC와의 원정경기.
“아쉽게도 연승행진이 끝났습니다. 비주전 선수를 대거 선발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축구란 항상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전 최선의 선발을 고려했고 제가 원한 결과를 맞이했다고 생각해요. 원정경기에서의 무실점 무승부. 절대 나쁜 결과가 아니에요.”
굉장히 설득력 있는 발언에 질문을 건넸던 기자마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브래드퍼드와의 원정경기에서도 같은 선발을 사용할 계획이십니까?”
“전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해줘야 할 의무가 있죠. 지난 경기에서 쉰 선수가 나와 경기를 이끌 거예요.”
“그렇다면 원정경기에서 자주 보여주시던 점유율 축구를 하시겠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아요.”
확답하지 않는 소하. 확률이란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그는 여지없이 트릭쇼를 펼쳤다. 선발은 주전선수들이 맞지만, 점유율 따위는 개나 주고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는 포츠머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경기 속도에 당황한 브래드퍼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4-0 완패를 당한다.
그리고 이어진 크루 알렉산드라와의 재회. 이미 리그컵 2라운드에서 뒤통수를 한번 거하게 맞은 터라 귀를 막았지만, 호기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만 트릭쇼를 들어버린다.
“리그컵 3라운드의 대진이 결정되었습니다. 챔피언십 리그의 밀월 FC인데요, 이를 대비해 주전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하실 예정인가요?”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리그컵 경기를 위해 정규리그 경기를 가벼이 여기지는 않을 거예요.”
“전에도 이런 말씀을 하시고 리그컵에 전력을 다하시지 않았나요?”
“어디까지나 체력관리와 경기 감각 조절 차원이었을 뿐이에요.”
기름칠한 미꾸라지가 따로 없는 소하의 혓바닥. 굉장히 그럴싸했고 이는 귀를 막지 못했던 스티브 데이비스 감독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맞는 말이야. 그리고 이제 슬슬 진실을 말할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소하의 패턴은 진실-거짓-거짓-거짓. 슬슬 진실을 말할 시간이 아니던가.
‘구라에도 리듬이 있는 법이니까.’
이미 소하의 트릭쇼에 정신이 혼미해진 스티브 데이비스 감독.
‘리듬’이란 신빙성 없는 근거에 현혹되어 경기를 준비한다.
포츠머스가 진심일 때는 정말 강력한 공격이 예상되는 바. 게다가 원정팀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포츠머스의 홈구장인 프래튼 파크에서의 경기다.
자연스럽게 수비적인 전술을 준비한 뒤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또 속아버렸다.
[포츠머스가 홈구장에서 2-0, 깔끔한 승리를 거둡니다. 임대선수가 대거 포함된 경기였지만, 지난 경기에서 합을 맞춘 덕을 보았는지 훌륭한 경기력이었습니다.]
다시금 나온 느린 템포의 전술.
여기에 후보 선수들의 대거 투입.
장내 아나운서의 말처럼 경기를 한번 뛰어본 덕분에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무난한 승리를 거둔다.
“성소하 이 개자시이이이익!”
울부짖는 스티브 데이비스 감독.
두 번이나 연속으로 속아버리며 심리전에 완벽히 패배해 버린 자신을 자책한다.
“흐음. 이제 밀월 FC와 리그컵 3라운드로군.”
2~3일에 한 번씩 펼쳐진 5경기에서 4승 1무라는 미친 성적을 거둔 소하.
트릭쇼를 앞세워 선수들의 체력마저 온전히 보전한 포츠머스는 좋지 않은 명성을 얻은 밀월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까다로운 상대인데···.’
경기력이 뛰어나서? 아니다.
좋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된 이유인 악성 서포터들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악성 서포터, 훌리건. 이들의 본고장인 잉글랜드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악질 종자들이 모인 곳이 밀월 FC다.
포츠머스가 라이벌 웨스트햄은 아니었으나, 좋지 않은 상황이 우려된다.
포츠머스의 서포터들도 성격이 만만치 않으니까.
‘제발 유혈사태만 없길.’
소하는 금속노조와 부둣가 노동자들의 피 튀기는 혈전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 084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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