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83화 (83/306)

< 083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2) >

1.

국가대표에 끌려간 다섯 명은 모르겠지만, 남은 선수들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특히나, 우리 팀의 상당수를 차지한 임대 신분 선수들. 이 녀석들의 눈빛은 각성을 넘어 독기가 어릴 정도다.

“나도 빡세게 훈련해서 국가대표 들어간다.”

“아니, 3부리그 구단에서 3명이나 뽑아간다고? 얼마나 잘 가르쳐주는 거야?”

“잠시 들리는 팀이어서 설렁설렁했는데, 잘못 생각했어.”

어지간히 프로의식이 뛰어나지 않다면 임대생이 임대팀에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보통 겨우 1년. 혹은 임대복귀 조항이 발동되면 몇 달 머물지도 못했으니까.

더군다나 보통은 상위구단에서 임대 오는 터라, 어디까지나 경기 경험에 초점을 맞출 뿐. 훈련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의 짱짱한 감독과 코치진이 심혈을 기울인 훈련 세션.

3부리그에 속한 영세구단의 주먹구구식 구닥다리 훈련 세션.

이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나도 썩 임대선수들에게 신경을 크게 쓰는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남의 팀 선수일뿐더러 의욕도 없는 놈들 데리고 뭘 하기엔 내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며 의욕도 생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옛말.

애들이 의욕을 보이자 나도 모르게 의욕이 충전됐다. 역시나, 감독이란 직업의 수많은 매력 중에서도 ‘선수의 성장’은 최고니깐.

내 힘으로 폐급새끼를 사람 새끼로 만드는 재미! 직접 해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오늘은 베예린이나 지도해볼까. 일단 비건이 되지 말라는 세뇌부터 시작해서···.’

엑토르 베예린. 훗날 비건으로 전향하는 독특한 선수다.

이 때문에 실력이 엉망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실력이 엉망이 된 원인인 부상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채식이니까.

그래도 운동선수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 우리 팀의 식단으로 불상사를 미리 방지해줘야 벵거 감독님을 만나도 얼굴을 들 수 있겠지.

‘휴우···. 그나저나 녀석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정신없이 베예린에 대한 설계를 하다 보니, 문득 국가대표에 불려간 머저리 3인방이 떠오른다.

워낙 개성이 독특한 녀석들이라 사고나 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뭐, 사고 치면 두 번 다시 발탁되지 않을 테니까. 나한텐 좋지. 다치지나 마라.’

난 개고생을 하고 있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업무에 몰입했다.

2.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9월 첫 A매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들뜬 마음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그가 제일 기대했던 선수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포츠머스의 10대 3인방.

성인 무대에서도 검증된 자원이라 훌륭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포츠머스의 3인방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 가장 큰 기대를 했던 칼빈 필립스. 기대처럼 처음으로 국가대표에서 발탁되었지만, 침착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처럼 열심히 할게요.”

어린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침착함! 심지어 경기장 내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선보인다.

‘이미 패스하나만 보자면 성인 대표급에서도 먹힐 수준이야···.’

그의 패스 실력은 이미 10대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했다. 여기에 신장은 작지만 탄탄한 체구를 활용한 뛰어난 수비 능력과 엄청난 활동량.

이대로 성장한다면 2~3년 뒤에는 국가대표팀에 승선이 확실한 수준이다.

‘완벽한 선수야. 포츠머스의 성소하 감독이 아주 제대로 된 물건을 키웠군.’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절로 아빠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했음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가 경기장에서 입을 열자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아빠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잘 좀 패스해봐. 우리 할머니가 더 좋은 패스를 하실 듯.”

“집에서 밥 굶기냐? 몇 분 뛰었다고 벌써 커버에 늦어?”

“진짜, 넌 어떻게 국가대표에 뽑혔냐? 감독님 아들이야?”

“하···. 말을 말자. 넌 안 되겠다.”

폭풍같이 펼쳐지는 지독한 독설!

처음 몇 번은 아무 말 없이 봐주지만, 한계점을 넘는 순간부터는 지독스럽게 독설을 퍼부었다.

당연히도 그의 독설을 얻어맞은 선수는 멘탈이 완전히 붕괴. 원래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한다.

아무 잘못이 없었다면 변명이라도 했겠지만 다 사실이라 반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독설을 날리는 칼빈 필립스가 실수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뭐, 이런 선수도 필요하니까.’

그래,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훈련 태도도 좋고 경기력도 아주 훌륭했으니까. 그리고 칼빈 필립스처럼 경기장 내에서 기강을 확실히 잡아줄 선수는 꼭 필요하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필요악이랄까. 이렇게 해줘야 팀의 저점이 높아진다.

그런데, 델리 알리부터는 조금 문제가 컸다.

‘이 자식은 의욕이 없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10대~ 20대 초반의 선수가 모인 곳에서도 빛나는 재능. 놀라웠다. 훈련에서도, 연습경기에서도 재능이 흘러나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한평생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축구계 인물로서. 수많은 선수를 만나보았지만 델리 알리의 재능은 두 손으로 꼽힐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오늘 몸이 안 좋네요. 조금 쉬어도 될까요?”

꾀병은 일상이었으며,

“아, 오늘 훈련은 다 했다. 모바일 게임이나 조져볼까.”

개인 훈련 시간은 그에게는 개인 게임 시간이었다. 기나긴 축구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던 ‘게으른 천재과’. 델리 알리는 분명히 이쪽 계통으로 보였다.

‘그런데 또 단지 게으르기만 한 것도 아니란 말이야.’

게으른 천재. 이들은 보통 기초훈련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축구보다는 유흥에 머리가 깨진 선수들이다.

그런데, 델리 알리는 절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초훈련에 시간을 투자하는, 보통과 궤를 달리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것도 상당히 절박한 표정으로.

“기초훈련은 무조건 해야지. 안 그러면 밀고자가 신고해서 난 죽은 목숨이니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발언!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말만 들어보면 기초훈련을 하지 않으면 누가 자신을 죽인다는 건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란 말인가?

심지어 대니 웰벡이나 라힘 스털링 같은 선수들이 던지는 유흥의 유혹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상한 놈이야. 저런 유형은 선수는 처음 본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몰랐다.

포츠머스에서 멀어지며 델리 알리의 자아가 튀어나온 것을.

그리고 그 튀어나온 자아마저도 여전히 29세의 젊은 감독에게 속박되었다는 것을.

‘그래, 델리 알리도 어떻게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어찌 됐든 축구보다 게임에 의욕을 가지는 선수였지만, 압도적인 재능은 이 단점을 상쇄했으니까. 심지어 경기장에서도 이 재능은 그대로 보여줬다.

선수단에 가벼운 충격을 선사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는 터라 이 정도는 허용범위였다.

‘조쉬 킹. 이 새끼···. 아니지. 큼큼. 침착하자. 이 선수는 도저히 모르겠다.’

가장 기대가 컸던 선수, 조쉬 킹.

18세의 나이로 리그2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세의 나이로 현 리그1에서도 득점왕 유력후보도 평가받는 대형 유망주다.

기대했던 대로 그의 장점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 빠르고 강하며 민첩하다.

흡사 야생동물 같은 선수.

그리고 이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내놓으라 하는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U21 국가대표 내에서도 신체 능력 하나만큼은 비교가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나한테 대드는듯한 느낌이랄까.’

순박한 얼굴과는 다르게 반항아 기질을 가진 듯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 처음에는 진짜 반항하는 거라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킹! 여기서는 상대 수비진을 달고서 왼쪽 대각선으로 3M쯤 더미런을 해주면 공간이 생긴다.”

“옛 썰!”

대답만은 우렁찬 조쉬 킹.

아쉽게도 우렁찬 대답에 비교해 행동은 전혀 달랐다.

“아니, 앞으로 가야지, 그리고 왜 오른쪽인데?”

“네? 그럼 말을 해주셨어야죠.”

“뭐, 뭐라고?”

귀가 의심스러웠다.

침투 시에 해야 할 움직임을 지도 중인데 꼭 앞으로 가야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당연하니까.

심지어 오른쪽으로 움직인 이유도 상대편 수비수의 왼쪽으로 움직이라고 한 거로 알아들었다고 한다.

‘뭐지? 개기는 건가?’

지시 불이행. 선수가 감독에게 반항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다.

당연히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뽑혔는데, 감독에게 대드는 놈이 있을 줄이야···.’

아주 대찬 놈이었지만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다.

축구계는 별의별 놈들이 다 있는 곳.

시즌 중에 성폭행 혐의로 감옥에 갇히는 작자들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을 축구계에서 구른 인물. 이런 유형의 선수들을 어떻게 조련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일단, 저 반항아 기질을 매서운 훈련으로 꺾어줄까.’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식 반항아 조련법 1단계.

[나 홀로 외딴 섬.]

간단한 방법이다. 반항아에게만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불합리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주문하는 것.

이는 수치심을 느끼게 해 반항적인 행동을 자제하게 유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곧 깨닫는다.

막상 벌칙성으로 주어진 고강도 체력훈련이나 기초훈련에 정말 열심히 임했으니까. 그것도 웃으면서.

오히려,

“감독님! 다음에 더 시킬 실 건 없습니까! 뭐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그래.”

“감독님! 10바퀴는 부족한데 2배를 늘린 20바퀴를 뛰고 오겠습니다!”

“···너, 너만 좋다면···.”

“감독님! 힘이 남아도는데 웨이트를 조금 더 하고 쉬겠습니다.”

“무, 무리하지 마.”

“감독님! 감사합니다. 저만 이렇게 따로 훈련을 배정해주시다니. 관심받아서 기쁩니다.”

“···.”

관심을 준다고 정말 좋아한다. 처음에는 뇌 정지가 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물과 맞닥뜨린 듯한 충격이었다.

‘곧 깨달았지···. 저 녀석은 그냥 돌대가리란 사실을···.’

밤을 새우며 고민하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드디어 조쉬 킹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저 돌대가리.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붙인다면 모든 상황이 설명되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모처럼···. 벽이 느껴진다.’

이들과 만난 지는 겨우 3일.

고작 3일 만에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스트레스성 원형탈모까지 찾아왔다.

‘완전히 속았다.’

제대로 속아버렸다. 경기장 내에서의 실력만을 보고 발탁을 결정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문득, 이들을 자신마저도 껌뻑 속게 할 정도로 잘 지도한 포츠머스의 젊은 감독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당신은 대체···. 어떤 싸움을 해온 겁니까···?’

그저 경외감이 들었다. 이런 구제 불능인 선수들을 국가대표에 선발하게 할 만큼 잘 포장하다니. 인간의 포장 솜씨가 아니었다.

‘인정한다. 현시대에서 가장 재능 넘치는 젊은 감독은 성소하 감독이야.’

솔직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소하에 대한 평가에 부정적인 태도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말도 되지 않았으니까.

어쩌다 운이 트였고, 화젯거리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과대평가했다고 보는 게 더 신빙성이 높았다.

하지만, 포츠머스의 3인방을 경험해보니 오히려 과소평가를 당한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존경심마저 생긴다.’

깊은 한숨을 내뱉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나름대로 감독직에 자신감이 넘쳤건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깨닫고 벽을 느껴버리는 그였다.

3.

A매치 휴식기가 끝났다. 일이 바빠 따로 경기를 챙겨보지 못했지만,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녀석들은 경기를 잘 치렀다고 한다.

심지어 조쉬 킹은 데뷔 경기 데뷔골까지 장식. 역시 재능은 재능이다.

6년 동안 열심히 굴리고 굴려야지.

다만, 이상한 건 선수들이 복귀하기 전날, 의문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

[당신을 존경합니다.]

짧지만 강력한 뜻을 담은 메시지.

이 메시지의 주인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었다.

딱히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어떤 그림인지 대충 견적이 나왔다.

‘돌대가리, 자만충, 독설가. 이 셋 잼민이한테 굉장히 시달렸나 보군.’

아마도 혼이 쏙 빠져났을 거다.

그러니까 이참에 다시는 뽑지 말기를 바란다. 선수단 운영에 차질이 생기니까.

“돌아왔습니다. 대표팀도 수준이 별거 없더군요.”

“감독님! 국가대표 감독님이 조금 멍청한 거 같아요.”

“저, 기초훈련은 하루도 빠짐없이 했어요. 엄청 열심히 임하고 왔다고요. 다른 애들이 증명해줄 거예요.”

2주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3인방.

꽤 신선한 경험이었는지 표정이 굉장히 밝다.

“헛짓거리한 건 아니지? 스털링 같은 새끼랑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거나···.”

일단 시작은 의심부터. 공들여 만든 밥에 잿물이 부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스털링이요? 걔 뛰는 모양이 이상해서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던데요.”

“재수 없어요. 난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얼마나 뻐기던지.”

“저한테 계속 말을 걸긴 했는데, 게임 하느라···가 아니라 감독님 말이 떠올라서 무시했어요.”

델리 알리가 멍청하게도 죄를 실토했지만, 일단은 넘어가자. 적어도 내 충고를 가벼이 여기진 않았으니까. 한번 봐줘도 되겠지.

“그래. 잘했어. 그런 애랑은 같이 노는 게 아니야.”

난 진심으로 녀석들을 칭찬했다. 좀 놀면 어떤가. 나쁜 길로 빠지지만 않으면 되지.

“그럼 다시 달려보자. 훈련장에서 다들 기다리는 중이니까. 어서 가자.”

“넷! 역시 저는 감독님의 지도가 제일 좋아요. 다른 사람들은 너무 못 가르치거든요.”

“밖에 나가면 고생이죠. 우리 팀만큼 제 수준에 어울리는 동료들을 찾기는 너무 힘드니까요.”

“자아가··· 다시 사라진다···.”

나름대로 행복한 표정으로 쫄래쫄래 훈련장으로 향하는 녀석들.

다시 국가대표로 불려갈지는 잘 모르지만, 이젠 우리 팀의 앞날에 모든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었다.

A매치 휴식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리그 레이스의 시작이었으니까.

< 083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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