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2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1) >
1.
꽤 놀라운 일이다. 아직 팀에서 국가대표가 나오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겼으니까. 일단 기자회견이나 하자. 잔뜩 기다리고 있을 테니.
“드디어 오셨다.”
“조금 늦어지길래 무슨 일인가 했지.”
“워낙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 오늘 기자회견은 취소하는 줄 알았어.”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기자회견장에 얼굴을 내비치자 기자들이 놀라워한다.
하. 아니, 이 사람들아 내가 왜 기자회견을 취소해. 진짜 날 완전 미친놈으로 보는구먼. 섭섭하다, 섭섭해.
“먼저 승리 축하드립니다. 상대적으로 훨씬 강팀인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그것도 원정경기에서 깔끔한 승리를 하셨는데요. 이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휴고 어스틴 기자의 첫 질문. 원동력이라. 뭐 별다른 게 있겠나. 더 잘하는 팀이기 때문이지. 기레기 냄새가 풀풀 나는 양반치고는 얌전한 질문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경기에서 이기는 이유는 실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죠. 즉, ‘실력 차이’라는 이야기에요.”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노리치 시티보다 포츠머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새끼 진짜. 말꼬리 잡고 빙글빙글 돌리는 거 보소. 기자회견이고 뭐고 뚝배기 깨버리고 싶네.
“두 번 말하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분명 실력 차이로 이겼다고 했는데요?”
“잘못 들었나 하고 확인차 여쭤본 겁니다. 하긴, 실력이 달리는 팀이 승리를 쟁취할 순 없는 법이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자 다시금 현란한 입놀림으로 압박을 벗어난다.
아무리 봐도 저 인간은 직업을 잘못 고른 거 같아. 축구선수를 했으면 잉글랜드의 메시였을 텐데.
“‘실력 차이’를 낸 가장 큰 요인은 도봉산 선수의 부활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이는데요, 그동안 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명단제외를 하셨던 겁니까?”
“그렇게 보이셨다면 그게 맞겠죠. 다른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래도, 큰 이적 자금을 소모하며 영입한 선수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줘서 기쁘실 거 같습니다.”
“글쎄요. 전 금액에 상관없이 선수들에게 일정한 기대를 하고 있어요. 도봉산 선수가 오늘은 잘하긴 했지만, 제 기대에 완벽히 부합하진 않아요.”
내가 그에게 바라는 건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좀 더 먼 미래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지.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섣부른 칭찬을 할 수는 없다.
“정말 기대치가 높아 보이시는군요. 그렇다면, 이번에 ‘국가대표’에 뽑힌 선수들에게도 크게 기대하고 계실 거 같은데요.”
웅성웅성.
휴고 어스틴의 말이 끝나자 기자회견장에 소란이 일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가 없고 구단 측에만 통보한 내용을 저 인간이 어떻게 알까. 참으로 용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눈여겨봐야겠어. 사심을 가득 넣어서 말이야.
“어스틴 기자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 거죠? 국가대표라니요?”
“3일 뒤에 시작되는 A매치 휴식기에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선수가 포츠머스에 있단 말인가요?”
“아직 공식발표는 없었는데요?”
“감독님! 감독님도 알고 계신 건가요? 표정을 보아하니 아셨던 거 같은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주 제대로 지랄이 났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끝난 경기가 아닌 국가대표로 쏠렸다. 난 폭탄을 터뜨리고 아가리를 봉인한 기레기 새끼를 흘겨보며 입술을 뗐다.
“큼큼. 일단 조용히 해주시죠.”
“···.”
“···.”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터라 큰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효과는 좋았다.
“공식발표는 내일이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밝힐 수밖에 없군요. 맞아요. 우리 팀에서 국가대표에 발탁된 선수가 있어요.”
“누군가요? 몇 명인가요?”
“성인 대표팀인가요?”
사실을 실토하자 언제 조용해졌냐는 듯 득달같이 달려든다. 에휴 피곤해.
“먼저, 성인 대표팀은 아니에요. U21 대표팀이죠.”
3부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성인 대표팀에 뽑힐 리가 있겠나. 프리미어 리그나 다른 나라의 1부리그에서 날고 기는 선수는 너무나도 많다.
리그1에서 국가대표에 발탁되려면 경기당 2골은 넣어야 할 거다.
“U21 대표팀에 선택을 받은 선수는 총 3명. 조쉬 킹, 델리 알리, 칼빈 필립스. 이 세 명이에요. 어찌 보면 당연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진작에 뽑힐만한 실력이었으니까.
성인 무대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는 10대 선수들은 우리 팀 선수 말고는 극히 드물다.
“정말 축하드릴만한 일이군요!”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포츠머스에도 드디어 국가대표선수가 탄생했군요!”
“서포터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흥분할 일이네요.”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축하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이해는 된다. 국가대표 선수의 숫자는 곧 클럽이 얼마나 체급이 큰지 보여주는 지표였으니까.
물론 U21 국가대표라 성인 대표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가벼이 여길 일도 아니다.
U21 국가대표란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갈 유망주들이라고 낙점받았다는 증거. 미래의 국가대표급 재능을 보유했다는 뜻이었다.
십 년 가까이 단 한 번도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지 못한 포츠머스로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여러 축하의 말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지만, 실상은 탐탁지 않다.
휴고 어스틴이란 기레기 새끼 때문에? 아니다. 놈은 적절히 선을 타는 놈이라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그저 국가대표에 선수가 뽑혔다는 게 싫을 뿐. 괜히 국대경기 뛰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뒷목 잡고 쓰러질 일 아닌가. 영원히 안 뽑혔으면 좋겠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팀의 핵심 선수들이 국가대표에서, 많은 것을 배워온다면 정말 호재 아닙니까?”
“동의해요. 수준 높은 선수들과 훈련을 받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클래스가 높아지길 마련이죠.”
코칭 수준이야, 미래를 아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겠냐만 동료들의 수준이 달라진다.
현 U21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최고 재능은 ‘라힘 스털링’.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참가했던 선수지만, 대회 중에 동료인 웰벡과 클럽에서 놀던 게 들통나서 강등당했다.
그래도 실력만은 리버풀의 소년가장을 맡을 만큼 뛰어난 선수. 이런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다 보면 얻는 것이 적지 않을 거다.
다만, 유흥 같은 이상한 것만 배우지 않길 바란다. 만약,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지옥을 선사해 줄 예정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리그컵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1라운드에서 강적을 꺾으셨는데요, 앞으로 이 대회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목표는 누누이 말해왔든 우승.
하지만 아직 대중에 공개하기에는 이르다.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가는 데까지 가 봐야죠. 운이 조금만 따른다면 어디든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할 법한 평범한 대답으로 기자회견을 마치었다. 너무나도 정석적인 답변이라 아무도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기레기, 휴고 어스틴.
이 새끼만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눈빛을 빛낸다. 뭔갈 알고 있지만 참아준다는 재수 없는 표정.
안 되겠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날 잡아서 저 새끼 뒤 좀 털어야겠다.
2.
경기 종료 후 오늘의 MOM으로 꼽힌 도봉산 또한 수많은 기자가 달라붙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당연하게도 그간의 명단제외와 예전 모습을 되찾은 이유.
“폼을 되찾은 이유는 역시, 성소하 감도의 지도 덕분인가요?”
“네. 두말할 거 없이 감독님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고민 하나 없이 즉답하는 도봉산. 이에 기자들은 눈빛을 빛내며 연이어 질문을 퍼붓는다.
“성소하 감독의 도움이라. 그렇다면 그의 지도가 3년 동안 받아왔던 도움보다 훨씬 좋았다는 이야기인가요?”
이 말은 즉, 다른 인간들은 얼마나 무능하길래 3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냐는 뜻.
영민한 두뇌를 지닌 도봉산도 말의 뜻을 이해하고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한다.
“···3년간 저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톰 밀러의 살인 태클. 그 이후로 정말 많은 사람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선수 도봉산이 아닌 사람 도봉산을 보살펴주었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성 감독님을 만나기 전까지 버틸 수도 없었을 겁니다.”
소하의 충격요법은 어디까지나 그간 쌓아왔던 약의 효과를 터뜨리는 촉매였을 뿐. 애당초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챔피언십 리그급 선수의 실력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병에는 병에 어울리는 약이 존재합니다. 감기에 걸렸는데 소화제를 먹는다고 나을 리가 없으니까요. 3년간 제가 가진 질병은 성질을 바꾸었고 다른 처방이 필요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성 감독님이 이를 알아차리고 알맞은 처방을 내려 주신 겁니다.”
미래를 아는 소하였기에 가능한 처방전이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현재,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도봉산의 진심이 느껴졌는지 주제를 바꾸는 기자들. 도봉산은 평범하게 ‘포츠머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꾼다.
“전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원하는 것이고 감독님이 원하는 것이니까요.”
먼 옛날, 10대 시절. 학업마저 포기하며 진심으로 꿈꾸었던 목표.
26세의 도봉산은 다시 한번 그 꿈을 꾸어보기로 각오를 다졌다.
3.
다음 날, 국가대표에 합류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선수들을 배웅하는 포츠머스 선수단.
“하하하! 난 국가대표라고요! 존 선배, 이제 당신은 내 밑이야!”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 뽑힌 3인 방중 하나인 조쉬 킹이 신이 나서 정신을 놓고 날뛰었다.
그간 혼자만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조쉬 킹은 존 말로리 앞에서 오두방정을 떠는 중이다.
“···사우스 게이트 감독의 눈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존 말로리. 이 새끼는 툭하면 왜 날 가지고 지랄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지만,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렸다.
‘새끼. 축하한다.’
존 말로리도 포츠머스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뛰어왔던 선수. 망해가는, 형이 사랑하는 구단의 모습을 보며 속이 좋지만은 않았다.
‘다 무너진 구단에서 U21이지만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5명이나 나오다니. 정말 호재야.’
심지어 이번에 한솥밥을 먹게 된 도봉산은 이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
여기에 앤디 로버트슨도 스코틀랜드 U21 국가대표에 뽑혔다.
3부리그에 속한 구단 주제에 국가대표 선수를 5명이나 보유하다니. 믿기지 않기도 했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잘 다녀와라.”
“다치지 말고. 자식들아.”
“놀다 오지 마라, 우린 그동안 훈련 빡세게 하면서 너희들 자리를 노릴 테니까.”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는 선수들. 말은 다르지만 떠나는 동료들이 잘되길 간절히 바란다.
“깝치지 말고 잘 다녀와라. 가서 쓸데없는 거 배우고 오면 뒤질 준비 하고.”
소하만 윽박질렀을 뿐.
누가 봐도 농담이 아닌, 진심이 흘러넘친다. 이에 가벼운 마음으로 대표팀에 합류하려던 선수들은 바짝 마음을 졸인다.
이래저래, 국가대표가 됐든 말든 소하의 손길이 필요한 그들이었다.
4.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그의 성을 번역한 ‘남대문’으로 불리는 감독이다.
생각보다 대한민국에서 친숙한 감독이다.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7년 전 07-08시즌에 이대박 선수를 미들즈브러에 영입한 사람이었으니까.
훗날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팀을 맡기도 하는 이 감독은, 사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포츠머스의 선수들을 눈여겨보았다.
‘흐음. 아주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군. 경기를 할 때마다 성장하는 게 느껴져.’
델리 알리는 대충 겉만 봐도 재능 덩어리였고, 칼빈 필립스는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이 돋보였다.
하지만 조쉬 킹 만은 조금 애매했다. 나이답지 않은 우월한 피지컬로 하부리그를 깨부수는 선수는 흔했으니까.
‘내 착각이었어. 조쉬 킹은 영리한 선수다. 힘을 쓰는 법도 잘 알고 움직임도 좋아.’
대단히 큰 착각을 하는 사우스게이트 감독. 소하가 피를 토하는 노력으로 코딩을 한 덕분이란 걸 짐작도 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3인방을 발탁할 마음을 먹은 건 반년 전. 하지만 지금에서야 뽑은 건 여러 외적인 요인이었다.
‘국가대표 감독이란 무엇을 해도 공격의 대상이니까.’
국가대표 감독은 흔히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린다.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큰 부담이 생기는 자리라는 뜻.
쉽게 말해 뭘 하든 욕을 먹는지라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위치다.
‘1부, 2부리그 선수들도 많은데, 3부, 4부 선수를 발탁한다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름도 없는 선수를 기용한다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튀어나올 것이 뻔했다. 과장 보태지 않고 인맥 기용이란 매도를 당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때를 기다리던 사우스게이트 감독.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는 모르지만 언젠간 이들의 실력이 잉글랜드 전역에 알려질 거라고 기대했고,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우연히 성사된 포츠머스와 노리치 시티의 리그컵 1라운드가 TV에 중계됐으니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훌륭한 경기를 선보이며 그들의 실력을 만천하에 알렸다.
‘노리치 시티는 준 프리미어 리그급 팀. 이런 팀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순간 선수 발탁에 근거가 생긴 거다.’
확실한 근거가 존재한다면 어떤 외풍이 몰아쳐도 막아낼 든든한 방패가 된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원하던 최상의 시나리오. 그가 쌍수를 들며 경기가 끝나자마자 구단에 발탁 통보를 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후. 기대되는군.’
한껏 기대에 부푼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감독에게 재능있는 원석을 깎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었으니까.
다만, 인생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망각했을 뿐이었다.
< 082화. 14-15시즌 리그1 전반기.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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