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9화. 리그컵 1라운드. (3) >
1.
도봉산은 내 목소리에 담긴 분노를 느꼈는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
“왜? 기분 나빠?”
“아, 아닙니다.”
당황한 표정을 애써 지우며 대답하는 도봉산. 그의 말처럼 얼굴에는 분노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난 무척 실망스럽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도봉산의 심리상태는 엉망이라는 증거였으니까.
4경기 연속 명단제외.
무관심한 감독의 태도.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개인 면담.
이 정도까지 밀어붙였으면 화가 나야 정상이지 않은가? 내 앞에 한때 빛났던 재능은 큰 부상으로 인해 자아마저 사라진 듯싶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래, 일단 이건 넘어가고 훈련성과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하자.”
도봉산의 훈련성과. 나쁘지 않다.
내가 지시한 피지컬 훈련도 어느 정도는 따라왔고 나머지 훈련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고작 반쪽짜리 성과였을 뿐.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잘 적응하면서 따라오고 있어. 그렇지 않나?”
“최대한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정말? 내가 보기엔 아닌 거 같은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자, 도봉산은 그저 눈을 내리깔며 ‘모범생’처럼 대꾸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솔직히 그럴 마음이 있는지 심각하게 의심이 되는데.”
“···.”
“내가 특별히 지시한 웨이트 트레이닝도 반쪽짜리 성과만 내고 있잖아?”
“···.”
“상체만 빡세게 하면서 하체는 하지도 않는 주제에 열심히 한다고 변명한다니. 나 놀리는 거 맞지?”
“···.”
내가 으르렁거리자 도봉산은 어떠한 변명도 꺼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당연하다. 사실이었으며 변명할 여지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 증거로 상체는 꽤 다부져졌지만 다리는 여전히 소녀소녀하다.
뭔, 여름철에 해수욕장에서 여자나 꼬시려는 상체충도 아니고 말이다.
“네가 왜 하체 운동은 하지 않는지 내가 맞춰볼까?”
“그, 그건···.”
“다리가 걱정돼서 그러겠지. 이미 3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다리에 무리가 가는 게 무섭잖아. 맞지?”
“···아, 아닙···.”
“아니라고 하지 마. 거짓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증거는 수두룩하게 많아.”
증거는 정말 많다. 예를 들면,
“네 주특기는 뛰어난 스킬과 민첩성을 활용해서 과감한 드리블을 시도하는 거였지. 하지만 훈련장에서 그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어.”
“···.”
“슬라이딩 태클이라도 한 번 들어오면 다음부턴 사전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패스를 건네줬지. 혹자는 이걸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스타일로 바꿨다는데 다 개소리야. 그저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일 뿐이니깐.”
“···.”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공만 잡으면 무의식적으로 부러졌던 오른 다리를 보호하려 하지. 너무 티가 나.”
“···.”
사실을 조목조목 짚어주자 도봉산은 고개를 숙인 채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는다.
그도 잘 알겠지. 겉으로는 숨기고 있던 공포이자 트라우마였으니까.
“물론, 이것도 다 고려해서 널 영입한 거야. 충분히 극복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틀렸어.”
내가 틀렸다. 이 선수의 마음속 어둠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물론, 지금도 리그1 수준보다는 잘하는 선수다.
아니, 최소한 프리미어 리그의 문턱에는 다다른 실력이다. 이따금 교체 출장을 하며 한 시즌에 한두 개 정도 공격포인트를 올려주는 후보선수 정도는 되겠지.
전력 외 선수와 선수단 선수 사이에 있는.
하지만 내가 도봉산에게 바라는 건 그 정도가 아니다. 훨씬 더 잘해줘야만 한다.
“난 내 생각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에게 실망하지 않아. 내가 이끌어 주면 생각했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이게 감독의 역할이다.
아무리 비싼 선수라도.
아무리 저렴한 선수라도.
아니, 어떠한 가격이라도.
원해서 데려온 선수라면 내가 바라던 수준으로 충분히 끌어올려야만 한다.
그럴 능력이 나에게는 있었고 그럴 자신도 충분했다.
“하지만, 겁쟁이는 내가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
“겁쟁이요···?”
“그래. 겁쟁이. 그래서 난 미친 듯이 화가 끓어 올라.”
“죄송합···.”
또다시 죄송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도봉산의 모습에 그만, 조금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죄송하다고 하지 마! 넌 내가 왜 화가 났는지도 정확히 모르잖아! 그럼 말해봐, 내가 왜 화가 났는지.”
“그건···. 제가 아직 부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야!”
버럭. 난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이 자식은 아직도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정확히 모른다.
“내가 맡은 선수만 수십 명이야. 고작 선수 한 명이 사춘기 계집아이같이 군다고 이렇게 화가 날 것 같아?”
“···.”
“잘 들어. 난 그저 택배가 잘못 와서 화가 난 거야. 분명, 상암동 미친개를 주문했는데, 상암동 늙은 개가 왔네? 그것도 중성화 수술까지 해서. 배달이 빵꾸났는데 화가 나겠어, 안 나겠어?”
“···.”
“이해는 돼. 거친 태클로 비판받던 네가 한창 잘나갈 때 거친 태클을 당해 다리가 부러져졌으니까. 천벌 받은 기분이겠지.”
거친 플레이는 좋지 않다. 스포츠맨십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큰 부상 이후로 도봉산은 거친 플레이와 함께 ‘투쟁심’이란 마음도 지워버렸다.
“아직 절박하다고 느끼지 않는 거야? 아직 과거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날아다니던 그 모습에 취해있는 거야? 혹은 같은 한국 국적의 감독이니까 뭘 해도 주전 자리는 따놨다고 자만하는 건가?”
위기감이 없다. 정점에 다다를 뻔했다가 아쉽게 미끄러졌음에도 다시 그 자리를 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좆까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빌어. 난 감독이야. 고작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팀을 말아먹을 선수는 쓰지 않아.”
단언컨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조건은 내 선수기용과 영입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회초리를 더 들었으면 더 들었을지언정 말이다.
“그리고 이참에 말해 두는데 외부에서 하는 소리는 다 개소리야. 어차피 비싼 돈 쓰고 영입했으니 널 기용할 거라고 하는 잡소리들이 대표적이지.”
“···.”
“330만 파운드? 그거 이미 원금 회수했어. 널 이대로 계약 기간이 끝나기 하루 전까지 주전자만 나르게 해도 나에게 어떠한 위험도 오지 않아.”
물론, 큰돈을 쓴 선수를 사용하지 않고 성적이 망한다면 큰 위험이 다가오겠지. 하지만, 최소한 리그1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더욱 열받는 건, 네가 면전에서 감독의 입으로 이런 소리를 듣고도 똑같다는 거야!”
“···!”
무언갈 깨달은 듯한 도봉산. 썩은 동태눈깔 같은 공허한 눈동자에 이채가 어린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늙은 개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3년 내내 주전자만 나르게 될 거라는 폭언에도.
분노조차 일지 않는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조금은 깨달은 듯싶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조금 인지를 한 수준일 뿐.
“뭔가 조금 느꼈나?”
“네···.”
“그러겠지. 이렇게 내가 강하게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넌 변하지 않아. 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자책에만 빠졌으니까.”
도봉산. 3년이 지났어도 이 선수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부러진 다리는 다시 붙어 더욱 단단해졌지만, 부러진 마음은 더욱 잘게 바스러져 회복할 수 없을 지경까지 왔다.
이런 선수, 아니, 이런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난 감독이지 심리치료사가 아니다. 물론 감독의 중요한 업무 중에는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조절하는 일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통제 수준일 뿐. 죽은 마음을 되살리는 능력은 내 능력과 내 업무 밖이다.
내가 네크로멘서도 아니고 시체를 살려낼 방법은 없지 않은가.
이건 오로지 혼자 극복해야 하는 일.
감독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는 그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다.
“···기회를 주마.”
“···.”
“이틀 후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널 선발로 기용하도록 할게.”
“···.”
“너도 알겠지만, 무척 중요한 경기야. 리그컵 우승은 우리의 목표이니까. 그리고 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교체를 하지 않는다고도 약속하지.”
“···알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도봉산.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란 사실을.
솔직히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압박감을 줘서 알을 깨려는 수작일 뿐.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경기라면 어떻게든 반전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중압감에 못 이겨 완전히 망가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2.
노리치 시티와 경기당일.
놀랍게도 이번 경기는 리그컵 1라운드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요즘 한참 잘나가는 포츠머스.
삐끗해서 강등당했지만 간간이 프리미어 리그에 모습을 비추던 노리치 시티.
리그컵 1라운드에서 만나기엔 너무나도 빠른, 맛있는 경기다.
덕분에 프리미어 리그 상위 팀이 아니라면 전혀 없던 TV 중계마저 잡혔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부수입을 획득.
“아주 좋네요. 다 돈 벌려고 하는 일 아닙니까. 앞으로도 계속 우리 팀 TV 중계 좀 많이 해주시죠. 하하.”
덕분에 경기전 짧은 기자회견에서의 표정이 무척 밝은 소하였다.
그리고 경기 시작 두 시간 전.
드디어 발표된 선발명단.
[GK-말콤 우드.
LB-앤디 로버트슨.
CB-찰스 말로리.
CB-케빈 도슨.
RB-엑토르 베예린.
DM-마이클 반즈.
CM-스티븐 데커.
CM-델리 알리.
RW-잭 해리슨.
LW-도봉산.
ST-조쉬 킹.
SUB: 재커리 뱅크스, 아담 웹스터, 네이선 아케, 데클렌 라이스, 칼빈 필립스 라이언 프레이저, 존 말로리]
기어코 선발명단에 오른 도봉산의 이름에 한국축구 팬들이 열광했음은 당연했다.
“드디어 도봉산이 출전이야.”
“와. 드디어 나오는구나.”
“어떤 의미일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서 선발 출장을 하는 거니까.”
“중요하지 않긴. 소문으로는 성소하 감독의 최우선 목표는 리그컵이라는 말도 있어.”
“억측하지 말자. 드디어 뛸 몸 상태가 되었기에 기용한 거겠지.”
친선경기에는 물론, 시즌이 시작한 지 한 달이 가까이지만 모습을 비추지 않던 도봉산. 그의 등장은 일대 소란을 일으키기에 매우 충분했다.
“쫄지 말고 하던 대로 해라. 암만 프리미어 리그에 자주 승격하는 구단이라도 지금은 챔피언십 팀일 뿐이야.”
라커룸에서 소하는 따로 특별한 말을 선수들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하라고 말했을 뿐.
“걱정하지 마세요. 강등당해서 분위기도 좋지 않은 팀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죠.”
“평소처럼 박살 낼게요.”
“좋은 말씀입니다. 평소처럼만 한다면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한번 해볼 만합니다.”
“일관성은 프로에게 중요한 덕목임을 감독님께서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시는군요.”
소하의 스타일에 익숙한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정말, 팀 분위기 하나만큼은 잉글랜드 내에서도 상위권이다.
지난 시즌 내내 열심히 승부욕에 관해서 코딩한 보람이 느껴지는 모습.
“···알겠습니다.”
아쉽게도 선발선수 중 한 명만은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물론, 이 선수는 도봉산.
언뜻 보면 중압감에 먹혀버린 모습 같기도 하다.
하지만, 소하는 그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다른 선수들에게 몇몇 지시를 내리기만 한다.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 이를 눈치챈 선수들도 도봉산 근처에서는 언동을 조심한다.
한 가지 큰 불안 요소를 내포한 포츠머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으며 경기장에 입장한다.
[드디어 도봉산 선수가 노리치 시티의 홈구장 ‘캐로우 로드’에서 시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봉산 선수는 과거 프리미어 리그에서 노리치 시티와 경기했던 경험이 있는 선수죠. 이를 염두에 둔 성 감독의 선발 기용으로 보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그럴싸한 해설.
실상을 모르는 처지에서는 가장 신빙성이 높은 해설이었다.
[자, 그럼 모두가 기대하는 노리치 시티 대 포츠머스, 포츠머스대 노리치 시티의 리그컵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됩니다!]
-삐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노리치 시티의 홈구장 캐로우 로드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시작된 리그컵 1라운드 최고의 경기. 전반전 초반은 상대적 강팀인 노리치 시티가 거센 공격을 퍼부으며 포츠머스를 압박한다.
과연, 괜히 포츠머스와 체급이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팀이 아니다.
여기에 홈구장이란 버프까지 있는 터라 정말 매섭기 짝이 없다.
풍전등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기에 처한 포츠머스. 하지만, 위기는 가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전반 10분. 맹공을 퍼붓던 노리치 시티는 어처구니없는 패스 실수를 저지른다.
[아, 이게 뭔가요. 왼쪽에서 뿌려준 전환 패스가 상대 팀 선수인 도봉산 선수의 발밑에 정확히 안착하는군요.]
[눈 뜨고 보기 힘든 패스입니다.]
끓어오르던 관중들마저도 일순 조용해지는 치명적인 실수!
노리치 시티에게는 정말 믿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츠머스에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직 리커버리를 하지 않은 조쉬 킹은 곧바로 전방으로 쇄도했으며,
이는 반대쪽 윙포워드인 잭 해리슨도 마찬가지.
단 한 번의 패스 실수로 공격진과 수비진이 같은 숫자라는 최고의 역습상황이 만들어졌다.
[행운의 기회를 잡은 포츠머스의 도봉산 선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선택지는 두 가지.
전방의 조쉬 킹에게 패스를 주거나, 그대로 공을 몰고 가는 것. 둘 다 어떻게든 좋은 상황을 만들 선택지이다.
하지만.
도봉산은 잠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바짝 얼어있다.
이 모습에 소하는 작게 읊조린다.
“가능성··· 제로···.”
사형선고.
싸늘해진 소하의 눈빛과 목소리는 이미 도봉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
이대로 포츠머스에서의 미래가 끝날 위기에 처한 도봉산. 이제 모든 건 그의 발끝과 마음에 따라 달렸다.
< 079화. 리그컵 1라운드.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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