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6화. 14-15시즌 개막전. (4) >
1.
먼저 실점한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나이젤 클러프 감독. 귀로 듣기만 하고 눈으로 보기만 했지, 직접 상대해 보는 건 처음이라 적지 않게 놀란다.
‘이것이 명성이 자자한 포츠머스의 공격 본능인가?’
빠르게 나온 득점은 아니었지만, 골로 이어지기까지의 파상공세는 정말로 강력하고 두려웠다.
‘평가는 갈리지만 젊은 천재라는 사실은 확실하군.’
나이젤 클러프.
노팅엄 포레스트의 전설이자 명감독인 브라이언 클러프의 아들.
이 때문에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는 발이 굉장히 넓다.
하부리그 감독들부터 프리미어 리그의 감독들까지. 상당히 많은 축구계 인사들과 친분을 가진 그는 소하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천재, 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앞으로의 축구판은 그가 주도할 것.’
‘다른 건 몰라도 선수 보는 눈과 육성하는 능력만큼은 최상급.’
‘현시대에서 가장 기대되는 감독.’
‘야바위꾼.’
‘운으로 명성을 얻은 거품.’
‘장사치.’
소하의 평가는 극과 극.
그를 극도로 칭찬하는 사람과 극도로 평가절하하는 사람 이 두 분류만 존재했다.
어쩔 수 없었다.
평소의 행실과 더불어 너무 믿기지 않는 성과를 올리는 중이었으니까.
‘이게 야바위꾼의 실력이라면 난 야바위꾼만도 못한 감독이다. 그렇다면 지휘봉을 내려놔야겠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운으로 보여주기엔 소하가 만든 포츠머스란 팀은 너무 강하고 매서웠다.
계속해서 삼각형을 만들며 끊이지 않는 빌드업을 보여주는 전술적 형태.
이를 수행하는 선수들의 뛰어난 능력.
강한 압박에도 지칠 기색이 없는 젊은 선수단.
그저 강하고 또 강했다.
도저히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원정경기에서의 선제골 실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흐음.’
예리한 눈으로 재개된 경기를 지켜보는 나이젤 클러프 감독. 얼마쯤 지나자 그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간격이 넓다···!’
3과 5의 간격은 촘촘.
하지만, 수비인 2와 미드필더인 3의 간격이 불안할 정도로 넓다.
이러면 중앙은 어찌어찌 막아내도 측면수비가 너무나도 취약해지거늘. 이해할 수 없는 틈이다.
‘의심스럽군.’
소하같은 뛰어난 감독이 저런 허점을 보이는 전술을 개막전에 사용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는 함정을 위해 의도한 것일까?
혹은 정말로 소문으로만 들리던 불안 요소일까?
함정일지도 몰랐다. 과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소하의 능력은 함정을 약점으로 위장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잠시 고민을 하는 나이젤 클러프 감독.
이내, 결정을 내린다.
‘함정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일단 보이는 틈을 찔러보자.’
일단 한번 보이는 약점을 찔러보기로 한다. 어차피, 이대로 가만히 두들겨 맞고만 있다면 경기를 뒤집긴 어려웠으니까. 다만, 바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역공은 후반부터. 경기중에 변화는 오히려 추가 실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상당한 경험을 갖춘 감독답게 신중하게 후반전을 노린다.
축구의 이변은 언제나 후반전에 일어났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이었다.
2.
전반 29분.
드디어 나이젤 클러프 감독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상하다.
내 팀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올 줄 알았거늘. 오히려 조금 더 웅크리며 단단한 수비태세를 꾸린다.
“이상하네요. 감독님.”
밀러 아저씨도 이변을 눈치챘는지 의아한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뭔가 눈치챈 것처럼 보이지 않았나요? 그런데 수비적으로 나서다니요. 착각이었나 보네요.”
“글쎄요.”
나이젤 클러프 감독은 그렇게 만만한 감독이 아니다.
약점을 눈치챘음이 분명하다.
“눈치를 챘네요.”
“네? 그걸 어떻게···?”
“봐봐요. 수비적으로 돌아선 듯싶지만,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가 약간 측면으로 빠지면서 뒤로 물러섰잖아요.”
“호오. 그렇군요.”
“진짜 웅크릴 생각이었다면 그냥 내렸을 거예요. 저렇게 측면으로 빠진다는 건 약점을 언제든 노려보겠다는 의지죠.”
나이젤 클러프 감독의 생각이 얼추 이해된다. 이제 겨우 15분 남은 전반전. 이 시간에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후반전을 노리겠다는 생각이겠지.
다만, 그저 두들겨 맞을 순 없으니 슬쩍 측면에 압박을 주며 추가 실점을 막겠다는 뜻이다.
“미드필더 진이 저 묘한 위치 변경에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네요.”
“그럴 거예요. 측면이 약점이라는 건 선수들이 더 잘 알 테니까요. 상당한데요?”
나이젤 클러프 감독은 작은 변화는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묘한 위치에서 호시탐탐 측면을 노리는 움직임은 우리 팀 선수들이 쉽사리 공격을 진행할 수 없도록 압박감을 주었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감독님.”
“일단 이대로 가죠. 운 좋게 한 골 더 넣을지도 모르잖아요.”
내 결정은 일단 현상 유지.
압박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압박감이었을 뿐.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그 증거로 경기는 계속해서 우리 팀이 주도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었으니까.
충분히 추가 골을 넣을 만한 분위기다.
1대0과 2대0은 전혀 다른 경기 아니던가. 한 골만 더 넣어준다면 나이젤 클러프 감독이 후반전에 무엇을 준비해오든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물론, 이대로 전반전이 끝난다면 나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3.
전반전은 1-0으로 포츠머스에는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전반 막판, 라이언 프레이저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다시 한번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날려버린 것이 화근.
그렇게 시작된 후반전.
나이젤 클러프는 소하의 예상대로 상당한 변화를 몰고 왔다.
공격적인 3백으로 변환.
이는 포츠머스의 약한 측면을 노리겠다고 선포한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와야지.”
나이젤 클러프 감독의 전술 교체는 이미 소하의 예상 범위 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소하도 선수교체와 전술 변경을 단행한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변화에 포츠머스도 응답합니다!]
[전반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라이언 프레이저를 대신해 안토니오 그린이 후반전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안토니오 그린의 투입.
이는 공격작업을 단순하게 가져가며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킹아, 감독님이 너 왼쪽 윙어로 서래.”
“네? 일단 알겠어요.”
하프 타임 때 미리 숙지시켜둔 변화라 군말 없이 따르는 조쉬 킹.
[그리고 델리 알리가 빠지며 아담 웹스터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포메이션 변화도 시도.
셰필드와 마찬가지로 3백으로 변화를 준다. 그것도 상당히 수비적인 변화.
이는 바로 경기에서도 드러났다.
3백일지라도 공격에 미친 듯이 가담하던 앤디 로버트슨과 엑토르 베예린이 오버래핑을 자제하며 수비적인 움직임을 가져갔으니까.
[오, 포츠머스답지 않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입니다.]
[예전 같았다면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을 텐데요. 이번 시즌에는 성 감독이 대전략을 바꾼 것 같군요.]
장내 해설의 분석은 얼추 맞아떨어졌다. 그들의 말처럼 소하는 큰 그림을 보고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중이었으니까.
소하와 포츠머스의 이번 시즌 목표는 리그컵 우승. 즉, 토너먼트다.
토너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수비와 경기 운영이다.
그리고 달라진 대응법은 이를 숙련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클롭 감독도 변화를 줬으니까.’
미칠듯한 전방 압박으로 엄청나게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던 클롭의 리버풀.
하지만, 젤리코 부바치 수석코치와 결별하며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전방 압박과 공격의 강도를 낮추며 때로는 수비적인 운영으로 조금 더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리고 결과물은 확실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스탄불의 기적 이후로 기어코 유럽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념을 조금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지.’
게다가 리그컵에서 만날 상대들은 대부분 포츠머스보다 전력이 강한 팀들.
이들을 상대로 항상 공격적으로 나서기는 힘든 일이었다.
즉,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수비를 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
소하는 2년 차를 맞이해서 선수들에게 공격 외의 다른 축구를 알려주고 싶었다.
‘근데 더럽게 재미없긴 하네.’
자연스레 늘어지는 경기에 소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역시나, 수비 중심의 축구는 성질에 너무나 맞지 않는 소하였다.
4.
경기 종료.
전반전 조쉬 킹의 결승 골에 힘입어 한 골 차이로 간신히 승리한 포츠머스.
지루했던 후반전이었지만, 어떻게든 셰필드의 공격을 막아내며 승리를 따내었다.
“잘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하는 소하.
썩 마음에 드는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겼으면 된 거다.
그리고 이어진 경기 후 기자회견.
분위기는 아리송하다. 이기긴 했지만, 포츠머스답지 않은 늘어지는 경기는 적응이 어려웠으니까.
“리그1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상당히 치열한 경기였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이겼으니 만족해요.”
“그 말의 뜻은 결과는 만족하지만, 과정은 만족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기자의 예리한 질문에 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기대치에는 도달하지 못한 경기력이었으니까요. 솔직히 재미없는 경기였어요.”
의도적으로 수비를 지향적인 축구를 시도했지만, 공격이 너무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수비도 잘 풀리지 않았으니.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오늘 선발에 관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마이클 반즈가 오늘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선수가 있었다면 더 쉽게 경기를 했을 거라는 평이 많습니다.”
마이클 반즈.
기술은 뛰어나지만 피지컬이 너무 부족해 실패한 선수.
소하의 손에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란 새로운 역할을 맡으면 다시금 주목받는 선수였다.
게다가 소하의 지도로 지난 1년간 따라다니던 약점을 상당히 극복.
전진성은 부족하지만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 강점을 보여주는 중이다.
즉, 아직 칼빈 필립스보다 수비적으로 뛰어난 마이클 반즈가 선발이었다면 나머지 선수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지 않냐는 뜻이었다.
“흠. 그럴지도 모르죠.”
조금 미간을 찌푸리는 소하.
선발에 대한 비판은 일류 감독들도 항상 따라다니지만, 썩 달가운 존재는 아니다.
이것은 엄연히 감독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었으니까.
“혹시, 마이클 반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겁니까?”
“아니요. 매우 건강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좋아하는 바다낚시를 즐기러 갈 수 있을 만큼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소하는 대답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며 말을 잇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저 이기기 위한 선발이었을 뿐이에요.”
동적인 마이클 반즈로 선발로 썼다면.
아직 완벽하지 않은 전술에서의 공격작업은 정말 어려워졌을 거다.
물론, 수비적으로는 단단함을 유지했겠지만,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
공격과 수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소하는 공격을 골랐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그래도 경기에 승리하셨으니 감독님의 선택이 옳았을 겁니다. 이어서, 오늘 스티븐 데커의 활약이 무척 뛰어났습니다. 그의 얼굴을 개막전에서 보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소하의 표정이 점점 굳자 재빨리 탈압박을 시도하는 휴고 어스틴 기자.
탈압박 솜씨가 리오넬 메시의 뺨을 후릴 정도다.
‘제법인데?’
한 번만 더 마이클 반즈에 관해 물어봤으면 면박을 주려고 했건만. 매우 적절한 시점에서 펼쳐진 현란한 드리블 능력이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압박이 오기 전에 패스로 사전에 차단하는 스타일이었다면,
휴고 어스틴은 압박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재간으로 풀어내는 스타일로 보인다.
이래저래 새롭게 자주 마주칠 기자는 조금 더 기레기다운 면모가 있나 보다.
“솔직히 저도 몰랐어요. 알다시피 그는 몸이 조금 허약한 친구니까요.”
“하하하.”
“푸흡.”
좀 전의 질문에 험악해진 분위기를 농담으로 풀어주는 소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망가뜨려서 얻을만한 이득은 없었으니까.
“하하. 그렇죠. 스티븐 데커가 멀쩡한 몸으로 90분을 소화했는데요, 이는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컨디션 관리 시스템 덕분인가요?”
새롭게 도입한 컨디션 관리 시스템.
별거 아니다. 이번에 김용한의 추천으로 도입한 필라테스와 요가를 지칭하는 내용일 뿐.
“아직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서 이것 덕분에 데커가 건강해졌다고 확답하긴 어렵네요. 그래도 앞으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소하는 새로운 관리 시스템의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운동이든 교정이든 첫 한 달이 가장 효과가 좋지 않던가. 스티븐 데커도 몸이 아주 편해졌다고 칭찬하면서 열렬한 요가맨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꺼내지 않기가 힘듭니다. 바로, 도봉산 선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33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투자해 팀에 데려왔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히 적응 문제인가요? 혹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겁니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포츠머스 서포터들은 물론,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이슈.
월드컵 득점자이자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빛이 났던 재능, 도봉산.
그를 사용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해명을 해야만 했다.
두리뭉실하게 넘어간다면 온갖 억측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올 터.
미리 방지해야만 한다.
“흐음. 많은 사람이 도봉산 선수에 관해 큰 관심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충분히 이해된다는 태도로 말문을 여는 소하. 지금까지는 답변을 거부했지만, 이번 기회에 궁금증을 해소해줄 요량인가 보다.
“제가 그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해요. 아니, 감독이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 이유는 뻔하죠.”
소하는 단호한 표정으로 냉정하게 말을 잇는다.
“그의 실력은 우리 팀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소하의 폭탄선언.
이는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감독이 주도해서,
감독이 추천한 단장이 영입을 진행한,
330만 파운드짜리 고액선수를,
실력 부족이라고 평가한다는 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
누워서 침 뱉기란 말이다.
“···그, 그렇다면···.”
“그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얼굴 보기가 힘들 거라고 장담합니다.”
거침없는 소하의 마지막 답변.
이는 경기에서 승리했음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며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 076화. 14-15시즌 개막전.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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