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5화. 14-15시즌 개막전. (3) >
1.
포츠머스의 홈구장 프래튼 파크는 개막전에 어울리게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3달 만에 지상 위에 다시금 펼쳐진 푸른 바다. 경기 시작 전에 앞서 여러 논란이 붉어졌지만,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일단은 미친 듯이 목소리를 높여 응원에 집중한다.
[오늘도 포츠머스의 홈구장은 만석을 달성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열기입니다.]
[열정, 하나만큼은 포츠머스를 따라올 팀이 몇 없죠.]
장내 아나운서마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열정. 팀이 잘 풀릴 때만큼 신이 나는 사람들은 서포터말고 없을 거다.
[감독과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성소하 감독이 오늘은 슈트를 입고 나왔군요.]
[보기 드문 모습이니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개막전이라고 신경을 쓴 모양이에요. 항상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던 감독 아닙니까?]
1년 중 개막전에만 입는다는 전설의 복장. 장내 아나운서를 이를 놓치지 않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러자,
“성소하! 성소하! 성소하!”
“포츠머스의 신이 등장했다네!”
“잘생겼다!”
“성소하를 의회로!”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뿜는다.
선수들보다 훨씬 집중조명을 받는 소하. 포츠머스에서 그의 입지가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포츠머스의 선수들도 이제 제법 농익은 분위기를 내뿜네요. 작년 이맘때쯤에는 풋내기 냄새가 났는데 말이죠.]
[지난 시즌 우승을 경험하면서 선수로서, 한 남자로서 성장했을 겁니다. 조쉬 킹 보세요. 일 년 전에는 빼빼 마른 애송이로만 보였지만, 지금은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포츠머스 선수단에서 소하를 제외한다면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역시나, 조쉬 킹이었다.
이번에 4년[email protected]계약을 맺은 구단의 성골 유스!
지난 시즌 혜성같이 등장해 매 경기 골을 넣은 초신성!
그의 호쾌한 슛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의외지만,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얻어 그의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렸다.
[포츠머스 팬들이라면 조쉬 킹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야말로 노력의 결정체이니까요.]
[체형이 바뀔 정도로 노력하는 선수를 그 누가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허약해 보이던 그가 이젠 찰스 말로리만큼 당당한 덩치를 가지게 됐잖아요.]
일 년 전만 해도 키만 크고 빼빼 말랐던 조쉬 킹. 그간 웨이트 트레이닝과 식단관리를 통해 듬직한 덩치를 가지게 됐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변화.
사람들이 껌뻑 속기 딱 좋았다.
실상은 그저, 헬창이 된 것이었지만 외부인이 보기에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것.
역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자 그럼 2014-2015 리그1 개막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삐익!
드디어 시작된 리그1 개막전.
원정팀인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선공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포메이션은 4-4-1-1. 잉글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4-4-2 포메이션에서 공격수 한 명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한 칸 내린 진형.
혹은, 4-2-3-1에서 양쪽 윙포워드를 한 칸씩 내린 진형이기도 하다.
즉, 4-4-2의 와이드함과 4-2-3-1의 중앙집약적 성향의 절충안이었다.
4-4-2 특유의 사이드 공격을 진행하되, 공격형 미드필더의 선수가 공수 연결고리를 도맡으며 경기를 조율하는, 현시대에선 상당히 많은 팀이 사용하는 전술이었다.
이에 맞서는 포츠머스의 진형은 4-3-3 포메이션. 현재나 미래나 가장 많은 팀이 사용하는 진형이다.
[오늘도 포츠머스는 4-3-3 대형인데요, 양쪽 윙포워드를 사용하는 전술은 친선경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해법을 찾은 걸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성 감독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실패한 전술을 다시 들고 올 리는 없습니다.]
소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장내 아나운서들의 믿음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보답받는다.
[아! 확실히, 해결방안을 가져왔습니다! 역시 성 감독이에요.]
[2-3-5 시스템은 유지하지만, 3과 5를 구성하는 선수들이 달라졌네요. 이거면 전혀 다른 맛이 나지요.]
포츠머스의 공격 진형은 전과 같은 2-3-5 시스템. 삼각형을 항상 유지해야 하는 현대적인 공격축구에는 가장 완성형에 가까워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선수는 전혀 달라졌다.
기존에 인버티드 윙백이란 역할을 맡던 측면 수비수들이 거의 윙어와 다를 바 없이 매우 높게 올라가며 공격에 가담했고,
메짤라 역할로서 하프 스페이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던 양쪽 미드필더들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비슷한 높이에서 빌드업에 가담.
하프 스페이스는 양쪽 윙포워드들이 전담하도록 바꾸었다.
[이렇게 되면, 사이드 돌파에 능한 포츠머스의 윙백들이 제대로 활약할 판이 깔린 거죠.]
[이제야 선발 기용이 이해됩니다. 미드필더 진이 자연스럽게 내려오게 되면서 전진성 높은 선수들로 꾸린 것이었군요.]
해설자의 분석은 정확했다.
기존보다 낮은 위치에서 시작하는 미드필더들. 때문에 커너 러셀이나 마이클 반즈같은 수비적인 성향의 선수들이 선발이라면, 미드필더 진에서 공격진의 거리가 멀어진다.
즉, 미드필더와 공격진의 간격이 멀어진 만큼,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들로 그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소하의 노림수는 완벽히 통했고, 포츠머스는 친선경기의 어리숙한 모습은 버리고서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통했습니다. 감독님. 이 난제를 이렇게 풀어내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밀러 수석코치가 침을 튀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시방편에 불과해요.”
“네? 임시방편이요?”
“약점이 많거든요.”
“약점이라 하면···?”
소하는 슬쩍 원정팀 벤치를 흘겨보며 밀러의 질문에 답을 해준다.
“이렇게 바꾸면 측면 수비가 헐거워져요. 양쪽 윙백이 최전방까지 올라갔으니까요.”
“그건 미드필더들이 커버해주면···. 아! 힘들겠군요?! 저희 미드필더들은 커버를 빠르게 해주기엔 조금 더 높은 위치니까요.”
“바로 그거에요! 진짜 감독으로 데뷔하셔도 되겠는데요?”
소하는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나이를 40살이나 먹은 아저씨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사실은 전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정석인 인버티드 윙백을 활용한 중앙 빌드업은 측면 수비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애초에 측면 수비수들이니까 훨씬 익숙하기도 하고요.”
현대축구의 공격은 측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강팀이든 약팀이든.
이 때문에 아무리 공격적인 전술이라도 항상 측면 수비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변칙적인 소하의 전술은 측면이 너무 약했다.
“셰필드의 나이젤 클러프 감독이 이를 늦게 알아차리길 바랄 수밖에 없죠. 우리는 그 전에 앞서나가야 해요.”
“그렇군요···. 이제 선수들을 믿을 수밖에 없군요.”
나이젤 클러프 감독은 잉글랜드 내에서도 상당한 인정을 받는 감독.
최소한 후반전에는 대응책을 마련할 거다. 따라서 어떻게든 전반전에 앞서 나가야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선수들은 소하의 의중을 완벽히 파악한 듯 거침없이 맹공을 퍼붓는다.
특히나 1년 6개월 만에 선발로 출장한 스티븐 데커는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비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아! 등번호 8번 스티븐 데커가 공을 끊어냅니다. 포츠머스에는 정말 낯선 등번호에요.]
[전 포츠머스의 8번이 공석인 줄 알았습니다. 다시금 미드필더의 상징인 번호를 경기장에서 보니까 좋군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을 뒤로하며 스티븐 데커는 왼쪽 측면으로 롱패스를 뿌린다.
-슈욱.
묵직하게 뻗어가는 전환 패스.
왼쪽 윙포워드, 라이언 프레이저의 주발인 오른발에 정확히 안착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패스 스킬.
훌륭한 패스를 받은 라이언 프레이저.
그의 주특기는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
기술이 매우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작고 단단한 체구로 파워풀하게 밀고 들어가는 드리블러다.
거침없이 셰필드의 측면 수비수와 1대1 대결을 펼치며 안쪽으로 깎아 들어간다.
‘쳇. 공을 너무 끌었다···!’
하지만.
두툼한 수비진을 혼자 힘으로 깨부수기엔 아직은 역부족.
금세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이럴 땐 슛이지.’
당황한 라이언 프레이저는 어찌할 줄 몰라 그대로 똥볼을 후린다.
-팡.
당연히 수비수에 걸리는 되지도 않는 슛.
동료들은 물론, 소하마저 뒷목을 잡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플레이였다.
“···감독님. 아직 어린 친구군요.”
“배울 게 아직 많은 친구예요.”
탄식을 내뱉는 밀러의 말에 소하는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읊조렸다.
저래 보여도 훗날 프리미어 리그에서 찬스 메이킹을 백 개 가까이하며 열 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하는 선수다.
“그나저나 스티븐 데커는 오늘 굉장히 좋아 보이네요. 드디어 우리 팀의 8번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뭐, 애초에 실력만은 남부럽지 않은 녀석이니까요. ‘몇 번’ 사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죠.”
스티븐 데커.
전형적인 잉글랜드형 미드필더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스타일을 가진 선수.
훌륭한 패스 능력.
왕성한 활동력.
빼어난 킥력.
그야말로 잉글랜드형 미드필더의 표본인 만능형 미드필더.
이 스타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무장점의 작은 육각형.
다 잘하는 큰 육각형.
다행스럽게도 리그1 수준에서의 스티븐 데커는 후자 유형의 만능형 미드필더였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팀에 엄청난 힘이 되어줄 뛰어난 플레이임은 확실했다.
“흠. 이번엔 오른쪽.”
다시금 공을 잡은 스티븐 데커.
그의 선택은 잭 해리슨과 엑토르 베예린의 오른쪽 측면이다.
이번에는 왼발로 멋들어진 중거리 패스를 선보인다.
[이번에도 멋진 패스를 넣어주는 스티븐 데커! 왼발도 굉장히 잘 사용하는군요?]
[스티븐 데커의 가장 특별한 능력입니다. 그는 보기가 드문 양발 미드필더이니까요. 정말 부상만 없다면 상대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양발잡이.
한국 선수 중에는 꽤 많은 선수가 양발잡이라 그리 생소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잉글랜드는 다르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양발을 모두 자유자재로 선수는 드문 편이다.
그리고 양발을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건 정말 그 어떤 능력보다 뛰어난 장점.
플레이를 선택할 방향성이 두 배로 증가했다는 이야기라 어느 팀이라도 양발잡이 선수를 탐낸다.
대표적으로 네드베드와 지단. 그리고 축구 온라인 게임의 191/88 양발, 마른 체형. 대걸레 머리만 봐도 유저들이 치를 떤다는 굴멘. 아니, 루드 굴리트.
마지막으로 또 한 명.
한국 축구팬과 토트넘 팬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수, 이정재도 양발잡이로 유명하다.
양발의 파괴력이 이들이 여실히 증명.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데커란 선수가 포츠머스의 강력한 무기임은 부정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건강하다면 말이다.
[스티븐 데커가 공격을 진두지휘합니다. 박스에서 박스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정말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줍니다!]
[경기장 내에서는 단점이 보이지 않아요. 정말 리그1에서는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예요.]
경기 초중반, 부상에서 돌아온 스티븐 데커의 맹활약에 힘입어 포츠머스는 엄청난 공세를 퍼붓는다.
이제 슬슬 골을 기대해봐도 될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다시금 공을 잡은 스티븐 데커가 눈을 빛낸다.
‘보인다.’
좌우 측면이 아닌 중앙에서 빛이 나는 유일한 패스길.
이는 거듭되는 좌우 측면공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두툼한 중앙에 금이 가며 생긴 거다.
그리고 그 길의 종착점에는 조쉬 킹이 골문으로 쇄도 중이다.
‘넌 믿을 만하지.’
너무나도 좁은 길목이라 패스에 성공해도 공을 빼앗기기 십상. 하지만 스티븐 데커는 조쉬 킹을 믿었다.
-뻥.
팔을 학처럼 뻗으며 최전방의 조쉬 킹에게 긴 패스를 연결한다.
“나이스 패스!”
그동안 땀 흘리며 노력한 기초훈련의 성과!
상당히 묵직한 패스였지만, 깔끔하게 트래핑에 성공한다.
[조쉬 킹! 조쉬 킹이 패널티 아크 근처에서 공을 잡습니다!]
[매우 깔끔한 트래핑이에요. 조쉬 킹 선수가 또 성장했어요. 저 정도로 뛰어난 기술은 없었는데 말이죠.]
모두가 감탄한다. 기술이 부족하다는 단점마저 극복하다니. 이제는 이 어린 선수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두려워질 정도였다.
“재수가 좋았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솔직히 데커의 패스가 좋았던 거 아닐까요? 감독님.”
“그게 훨씬 더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소하와 밀러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평가할 뿐.
그도 그럴 게, 어제만 해도 트래핑을 하는 건지, 다이렉트 패스를 하는 건지 구분이 어려울 수준이었으니까.
‘녀석의 장점 중 하나긴 하지.’
소하만이 눈치챈 조쉬 킹의 숨겨진 장점 하나. 바로, 실전에서 강하다는 것.
훈련에서는 잘하는데 실전만 들어가면 못하는 선수들은 상당히 많다.
이는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
하지만, 조쉬 킹은 그런 부분에선 상당히 강했다.
정신 무장이 단단해서? 아니다.
그저, 단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단순명료한 목적 하나. 이것이 실전에서 그를 강하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한 골 넣어버려라! 킹아!”
힘차게 조쉬 킹을 독려하는 소하.
이에 보답하는 조쉬 킹은 수비수들의 방해를 순수한 피지컬만으로 벗겨낸다.
“으라차차차!”
괴성을 지르며 어깨싸움만으로 중앙수비수들을 떨쳐낸 조쉬 킹.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포알 강슛을 선보인다.
-쾅!
굳이 골키퍼와 1대1 기회에서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지만, 보는 맛은 확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호쾌한 슈팅은 골키퍼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골네트를 꿰뚫는다.
-철써억!
[골입니다! 골!]
[전반 21분. 드디어 포츠머스의 선제골이 나왔습니다! 14-15시즌 리그1의 첫 번째 골은 조쉬 킹이 장식합니다!]
“조쉬 킹! 조쉬 킹! 조쉬 킹!”
“포츠머스의 함포!”
“HMS 포츠머스!”
열광하는 포츠머스 서포터들.
조쉬 킹의 슬라이딩 셀레브레이션에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날뛴다.
“좋았어!”
마찬가지로 소하도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쥔다.
‘저 정도는 해줘야지. 네가 받아 가는 주급이 얼만데.’
금세 이성을 되찾고 투덜거리는 소하.
그래도 해줘야 할 때 해주는 조쉬 킹이 사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 075화. 14-15시즌 개막전.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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