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74화 (74/306)

< 074화. 14-15시즌 개막전. (2) >

1.

개막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언제나 북적이는 잉글랜드의 베팅 삽(Betting Shop)은 또다시 발을 디딜 곳이 없을 만큼 북적이기 시작. 이쯤 되면 시즌 시작 전은 그냥 명절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포츠머스시에도 곳곳에 베팅숍이 있지만, 가장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항구 근처의 작은 가게다.

작년부터 명소라고 명성을 크게 얻은 곳.

한국으로 치자면, 로또 1등을 줄줄이 배출하는 판매점과 비슷한 느낌이다.

[폼페이 샵]

24/1의 배당률이 터진 기적의 장소.

평범한 항구 노동자를 너튜브 스타로 전직시킨 직업소개소.

포츠머스에서 베팅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는 명소.

가게에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TV 화면 속 베팅정보방송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마침, 리그1에 관한 내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리그1 우승팀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결과가 정해진 리그는 몇 없습니다. 공은 둥글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번에는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하는 것과 비슷한 스토리 아니겠습니까?”

“‘그 팀’은 아직 뮌헨 급의 팀이 아니에요. 훨씬 변수가 많은 팀이죠.”

‘그 팀’이란 당연히 포츠머스.

모두가 승격은 이미 확정이고 우승을 하냐 못하냐를 걱정하는 팀이었다.

[포츠머스 FC – 2/1

MK 던스 – 5/1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0/1

브리스틀 시티 FC 15/1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1]

우승 배당률.

이 지표만 봐도 포츠머스의 우승은 보지 않아도 확정인 수준이다.

“배당률만 봐도 알겠지만, 포츠머스의 우승은 확정적입니다.”

“아니죠. 정말로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면, 2/1이란 높은 배당이 나오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우승할 팀인데, 걸어서 두 배나 먹는다는 이야기니까요.”

“맞는 말씀이시긴 합니다. 절대강자였다면, 더 낮은 배당률이 나왔겠지요.”

“2/1. 굉장히 애매한 배당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고 좋은 베팅을 하시길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자, 가게 안의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는다.

“씨팔. 뭔 걸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일부러 배당 조작하려고 이 지랄 하는 거 아니야? 포츠머스에 너무 많이 걸면 배당률 떨어지니까?”

“그런데 확실히, 2/1는 좀 애매한 배당률이긴 해. 절대강자였으면 1/3이나 1/4, 1/5 정도 나왔겠지.”

2/1.

걸면 원금과 원금의 2배를 받는 배당.

엄청 높은 배당은 아니지만, 그래도 낮은 배당도 결코 아니다.

애매하기 짝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포츠머스에는 불안 요소가 있다는 점.

하지만, 이 불안 요소를 그 누구도 확실히 꼬집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를 싸매는 베터들.

-덜컥.

이때 한 남자가 가게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쫘악.

사람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남자를 위해 길을 터준다.

“리 바이런이야.”

“3천 파운드로 7만2천 파운드를 번 포츠머스 최고의 베터.”

“그냥 팬심 베팅이 얻어걸린 사람 아닌가? 방송 보니까 실력은 별로였어.”

“베팅의 B자도 모르던데.”

리 바이런.

일 년 전만 해도 평범한 항구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베팅 너튜브를 개설해서 한참 잘나가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

어떤 사람들은 천재적인 베터라고 칭찬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은 사기꾼이라고도 평가했다.

“흠흠.”

잠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 리 바이런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당당한 걸음으로 베팅용지를 잡는다.

그리고 과감히 3만 6천 파운드를 포츠머스에 걸어버린다.

3만 6천 파운드.

한화로 6,000만 원에 가까운 거액.

배팅 상한이 없는 영국에서도 일반인이 이 정도로 큰 금액을 거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어떠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 확신에 가득 찬 베팅!

사람들은 그 위풍당당한 태도에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이런 씨, 포츠머스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이봐요, 도대체 어떤 근거입니까?”

“포츠머스의 불안 요소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야?”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고. 따도 겨우 두 배야! 잃으면 3만 파운드가 날아간다고!”

다시금 시끌벅적해진 베팅숍.

리 바이런은 이 소란을 음미하다가 조금 조용해졌을 때 입을 연다.

“여러분들 베팅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뚱딴지같은 소리부터 내뱉는 리 바이런. 베팅이 뭐겠는가, 그냥 도박이지.

조금 순화해서 말하자면, 경기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한 조미료 정도?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전 베팅을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 마음이 포츠머스라고 외쳤으니 포츠머스에 건 것뿐입니다.”

얼핏 보면 베팅은 즐겨야 한다는 도덕책에서나 나올법한 소리.

실상은 그냥 팬심으로 베팅했다는 말이다.

“그럼 어째서 3만6천 파운드를 거신 거죠? 확실하다면 더 걸어도 되잖아요?”

어이없어 하 질문에 리 바이런은 멋쟁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한다.

“전 딴 돈에 반만 겁니다.”

말을 마친 뒤 유유자적하게 사라지는 리 바이런.

“···.”

“···.”

잠시 내려오는 무거운 침묵.

하지만 이내 침묵은 저 멀리 사라지고 들끓는 용광로로 변한다.

“포츠머스! 이번에도 포츠머스야!”

“딴 놈 말이 진리지!”

“포츠머스로 가즈아!”

너도나도 포츠머스에 돈을 걸며 열광한다.

이유는 한가지.

결국 베팅은 딴 놈이 진리였으니까.

그 어떤 통계도 딴 사람의 선택보다 확실한 정보는 없었다.

2.

뚱보와 삐쩍이.

곧 구독자 100만을 바라보는 명실상부한 축구 너튜브 계의 대기업.

이들의 인기는 상상 초월해, 영국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즐겨 보는 방송이었다.

구단의 후원을 받는 터라 정식으로 몇몇 나라의 자막까지 제공하는 터라 인기는 나날이 치솟는 중이다.

현재 시청자 수 312,030명.

오랜만에 생방송을 진행하기 때문일까? 오늘은 랜선이 고통스러워할 만큼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가 그들의 방송을 지켜보는 중이다.

“안녕하심까. 뚱보, 톰 힉스입니다.”

“안녕하세요. 미라, 나단 필립스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무표정하게 인사를 건네자 시청자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아, 오늘 왜 이런 옷을 입었냐고요? 매니저가 이렇게 입으라고 했습니다.”

“매우 경우가 없는 매니저예요.”

그들의 매니저는 물론, 에밀리아 존슨.

요즘 소하에게 이상한 영감을 얻은 그녀는 멈추기 힘든 폭주 기관차였다.

“오늘따라 본방송 시청자들이 많습니다.”

“오랜만이니까요. 시작하도록 하죠.”

“먼저, 이적시장 정리와 시즌 프리뷰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이거 보려고 오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금력으로는 세계에서 최고인 프리미어리그. 14-15시즌에도 엄청난 이적이 줄줄이 터졌다.

“드라큘라, 루이스 수아레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났습니다. 무려 7,500만 파운드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르셀로나는 지난 시즌부터 수아레스에 관심이 많았죠. 언제가 됐던 일어났을 일이었어요. 리버풀도 명문이지만 현시점에는 바르셀로나보다 밑이니까요.”

수년 뒤에는 몰라도 지금의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직도 암흑기를 헤매는 리버풀.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를 필두로 세계에서 위명을 떨치는 바르셀로나.

상대가 될 리가 없다.

“7,500만 파운드라니.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글쎄요. 제가 보기엔 적정가격이라고 봐요.”

“네? 7,500만 파운드면 과장 조금 보태서 리그1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한화로 1,200억. 감히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금액이다. 선수 하나의 몸값으로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

“그렇죠. 그래도 루이스 수아레스란 선수는 그만한 가치를 보여줬어요. 프리미어리그의 왕이었으니까요. 이 선수라면 역사를 새로 쓸 거예요.”

“그렇다면 바르셀로나가 대단한 성적을 거두리라 보시는 겁니까?”

힉스의 물음에 필립스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확답한다.

“네. 과언일지도 모르지만, 트레블을 달성할 확률이 높다고 봐요.”

“트, 트레블이요?! 허허. 참. 저번에는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탈락을 예견하시더니. 이번에도 폭탄을 터뜨리시는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욕은 제가 받을 테니까요. 그리고 근거가 없는 예측이 아니에요. MSN 라인이라면 10-11시즌의 영광을 재현할 거예요.”

“MSN 라인이요? 그건 또 뭐죠? 지난 시즌의 SS 라인 같은 겁니까? 한번 재미 보셨다고 또 쓰시는군요.”

톰 힉스가 익살스럽게 얼굴을 찌푸리며 태클을 걸었다.

“씁. 상당한 인기를 얻은 명칭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유행할 거예요.”

“예이. 예이. 그럼 MSN 라인이 뭔지나 설명해주시죠.”

“···메시, 수아레스, 네이마르. 이 셋을 칭하는 공격진이에요. 이름값만 들어도 상대 팀들의 정신이 혼미해질 선수들이죠.”

“명칭을 떠나서 정말 강력하긴 합니다. 축구 역사를 통 들어서도 이만한 트리오가 결성된 건 드문 일 아닙니까?”

“그렇죠. 공격력으로만 보자면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트리오일 거예요.”

MSN.

혹은 SNM(Show No Mercy), ‘자비는 없다’라는 별명에 걸맞은 지상 최고의 공격 편대다.

그리고 이 트리오는 정말로 역사를 써 내리는 데 성공한다.

“월드컵 스타인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한 레알 마드리드도 만만치 않지 않나요?”

“하메스도 좋은 선수임은 분명하죠. 하지만 루이스 수아레스에는 크게 미치지 못해요. 장단점이 확실한 하메스 로드리게스지만, 수아레스는 단점이 없는 선수거든요. 물론, 깨물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하하하. 정말 선수가 사람을 깨무는 모습은 2년 연속으로 보게 될 줄 몰랐어요. 그것도 한 선수가요.”

월드컵에서도 깨물기를 시전하며 좋지 않은 의미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수아레스. 그저 웃음 벨이었다.

“그럼, 이제 프리미어리그 이적 이야기로 들어가죠. 바르셀로나가 수아레스를 영입할 자금을 손에 쥔 건 알렉시스 산체스를 판 덕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스널도 이번 시즌 우승을 노릴 만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체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월드 클래스 선수예요. 이 선수를 3,500만 파운드에 영입한 아스널은 기대해볼 만하죠. 외질과 산체스를 중심으로 팀을 완성한다면 맨시티와 첼시와도 해 볼 만할 거예요. 게다가 바카리 사냐도 잔류를 해서 큰 약점이 없어요. 지금의 아스널은. 1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도전할 적이에요.”

아스널을 호평하는 나단 필립스.

03-04시즌 무패우승 이후로 리그 우승이 없는 아스널의 강세를 예측했다.

“그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앙헬 디마리아를 6,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영입하지 않았습니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명실상부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팀.

상업적으로나 그간 성적으로나 이를 부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며 순식간에 추락. 후임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는 시즌 중에 경질당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네덜란드 출신의 전설적인 감독.

루이스 판할.

한국 팬들에겐 마도사, 전술 노트로 유명한 감독이다.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는 성공하겠지만 우승은 힘들 거에요. 그리고 앙헬 디마리아는 실패할 겁니다.”

“···감당되십니까?”

필립스의 폭탄선언에 힉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팬덤이 가장 큰 팀을 이렇게 건드리는 모습은 그저 욕먹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같았다.

게다가 6,000만 파운드, 한화 1,000억짜리 선수가 실패할 거라고 호언장담한다니.

평생 맨체스터시에 가지 않을 생각이 분명했다. 혹은, 맨시티 팬이던가.

“두고 보십시오. 전 지난 시즌에도 욕을 찬사로 바꾸었어요.”

“···그 자신감 계속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말씀드리지만, 저 톰 힉스는 나단 필립스의 발언과 일체 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는 리그1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뚱보와 삐쩍이였습니다!”

서둘러 방송을 종료하는 톰 힉스.

다른 구단에 관련된 이야기도 남았지만, 분노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폭주는 너무나도 두려웠으니까.

다시금 논란을 일으킨 뚱보와 삐쩍이.

이번 시즌에도 그의 예언이 맞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음은 분명했다.

3.

포츠머스의 개막전 상대는 셰필드 유나이티드다.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별명은 ‘칼날(The Blades)’.

잉글랜드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경기장인, ‘브라몰 레인’을 홈구장으로 가진 역사가 깊은 구단이다.

지금이야, 리그1에서 빌빌거리지만, 19-20시즌에는 기어코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는 구단이기도 하다.

개막전 당일.

경기 시작에 앞서 포츠머스의 선발명단이 공개되었다.

[GK-말콤 우드.

LB-앤디 로버트슨.

CB-찰스 말로리.

CB-케빈 도슨.

RB-엑토르 베예린.

DM-칼빈 필립스.

CM-스티븐 데커

CM-델리 알리.

RW-잭 해리슨.

LW-라이언 프레이저.

ST-조쉬 킹.

SUB: 재커리 뱅크스, 아담 웹스터, 네이선 아케, 데클렌 라이스, 마이클 반즈, 존 말로리, 안토니오 그린.]

이에 서포터들과 축구계인 인물들은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어? 스티븐 데커? 이 선수가 선발?”

“뭐야? 330만 파운드짜리 선수는 벤치에도 없네.”

“친선경기 때 아예 망해버린 전술로 시작할 모양인데?”

“진짜 미치겠다. 지겠는걸?”

“칼빈 필립스가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이거 맞나?”

친선경기 내내 실패한 역발 윙어를 사용하는 전술.

유리 몸에다가 지난 시즌 단 한 번도 선발로 나오지 않았던 스티븐 데커의 선발 기용.

330만 파운드로 이번 시즌 리그1 최고의 몸값으로 이적한 도봉산의 명단 제외.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하는 핵심 선수, 마이클 반즈의 벤치 시작.

하나같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선발명단이었다.

이에, 수많은 기자와 서포터들이 소하에게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는 그저,

“저에게는 계획이 있어요.”

“그게 뭐죠?”

“승리할 계획이죠.”

“···.”

두리뭉실한 답변만 앵무새처럼 내뱉을 뿐.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다 못해 화병을 나게 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심지어 평소에 자신만만하게 진행하던 기자회견마저도 조용하게 진행.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모든 팬은 불안에 떨지 않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무.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은 잘만 흘러간다.

이제 킥오프 휘슬이 울리기까지는 이제 겨우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 074화. 14-15시즌 개막전.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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