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3화. 14-15시즌 개막전. (1) >
1.
훈련에 박차를 가하는 포츠머스는 전지 훈련을 포기한 대신, 친선경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덕분에, 친선경기치고는 상당히 흥미로운 경기들이 잡혔다.
포츠머스 vs 볼턴.
포츠머스 vs 번리.
포츠머스 vs 본머스.
포츠머스 vs MK 던스.
총 4개의 경기.
상당히 알차다.
한 개의 프리미어 리그 팀과 두 개의 챔피언십 리그 팀. 그리고 같은 리그에 속한 팀과의 친선경기는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심지어 며칠 전, 포츠머스에서 올라온 괴상한 홍보영상은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도 호기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우리는 친선경기도 이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 팀이니까.”
볼턴과의 첫 번째 친선경기를 시작하기 전. 소하는 평소 하던 대로 라커룸에서 승리를 요구했고,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볼턴 정도야 할만하죠.”
“빚쟁이구단!”
“거지 구단!”
“말조심해, 미스터 도가 거기선 준 레전드라고.”
“···괜찮아.”
자기들도 모르게 신입생 헐뜯은 선수들. 마음씨 착한 도봉산이 쉽게 넘어가 준 덕에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
오늘도 포츠머스의 선발진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GK-말콤 우드.
LB-앤디 로버트슨.
CB-찰스 말로리.
CB-케빈 도슨.
RB-엑토르 베예린.
DM-마이클 반즈.
CM-델리 알리
CM-커너 러셀.
RW-잭 해리슨.
LW-라이언 프레이저.
ST-조쉬 킹.
SUB: 재커리 뱅크스, 아담 웹스터, 네이선 아케, 데클렌 라이스, 칼빈 필립스, 스티븐 데커, 라이언 메이슨, 도봉산, 존 말로리, 안토니오 그린.
33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이적료로 합류한 도봉산의 벤치 시작,
전설의 포켓몬으로 유명한 스티븐 데커가 명단에 등재,
왼쪽 윙어였던 잭 해리슨의 오른쪽 인버티드 윙어 역할.
등등 상당히 논란거리가 많은 명단공개였다. 덕분에 가뜩이나 높았던 관심도는 폭발할 지경!
포츠머스의 홈구장 프래튼 파크는 휴식기 동안 축구가 그리웠던 서포터들로 가득 들어찼다.
-삐익!
경기는 시작되었다.
경쟁자인 리그1 팀들도 숨을 죽이고 몰래 지켜보는 뜨거운 친선경기.
포츠머스는 공격적인 팀으로 유명하기도 하며, 이번에 영입한 도봉산의 친정팀이 볼턴인지라 재미있는 경기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아, 오늘 포츠머스의 합이 별로 맞지 않습니다. 짜임새는 좋은데 조금씩 플레이가 어긋나는군요.]
[잭 해리슨이 엉망이군요. 왼쪽에서 뛸 때 비해서 본인 능력의 30%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대생인 엑토르 베예린도 안쪽으로 들어와 주는 인버티드 윙백이란 옷이 맞지 않아 보이네요.]
[오른쪽 공격이 괴멸적인 수준이에요.]
탄식을 내지르는 장내 아나운서.
그들의 말처럼 좋은 경기력이라고는 빈말로도 하지 못할 수준의 전반전이다.
합이 전혀 맞지 않는 오른쪽 조합.
이 때문에 왼쪽으로 쏠린 공격작업.
하지만 팀에 합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0세의 어린 왼쪽 윙어.
공격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더군다나 같은 리그1 수준이면 몰라도 볼턴은 한 단계 위 리그인 챔피언십 소속 구단. 전력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팀이다.
당연히 공격작업이 통하지 않을 수밖에.
[그래도 수비적으로는 튼튼하네요. 많은 숫자가 공격작업에 투입되었지만 든든합니다.]
[앤디 로버트슨, 케빈 도슨, 찰스 말로리는 지난 시즌에도 40경기 이상 합을 맞춘 라인이니까요. 믿을 만합니다.]
[미드필더 진의 협력플레이도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요.]
그나마 지난 시즌부터 합을 맞춘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의 활약에 전반전은 무승부로 마치었다.
이들마저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면 최소한 2-0으로 전반전을 끝냈을 거다.
‘흠. 뭐 예상 범위니까.’
큰 우려를 낳은 전반전이지만 소하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어디까지나 친선경기는 적응의 단계였으니까.
‘그래도 지기는 싫다.’
언제나 승리를 추구하는 소하. 후반전은 과감한 선수교체를 단행하고 시작한다.
[아, 포츠머스가 지난 시즌의 전술로 바꾼 거 같습니다.]
[잭 해리슨이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왔습니다. 실험이고 뭐고 일단 이기겠다는 생각이네요. 친선경기이지만 지기는 싫다는, 성 감독다운 행동입니다.]
2-3-5 시스템에서 2-4-4 시스템으로 돌아온 포츠머스.
그러자, 경기력이 눈에 띄게 살아난다.
특히나 어리바리하던 엑토르 베예린은 물을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을 정도!
그의 장기이자 정체성인 엄청난 속도로 오른쪽 측면을 휘저어 버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정말 빠르네요! 저게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수의 스피드군요!]
[수비력에는 의문이 있지만, 저 속도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선수예요.]
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엄청난 속도로 후반전을 이끄는 엑토르 베예린. 저 멀리 런던에서 벵거 감독이 미소를 짓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야. 탑클래스를 찍어보는 재능을 가진 선수는 바이브가 다르긴 하구나.’
소하도 감탄. 훈련 때도 빠르긴 했지만 그리 체감하지는 못했었다.
포츠머스에는 빠른 선수가 수두룩했으니까.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팀과 비교해보니 속도가 확확 차이가 난다.
‘킹이랑 별 차이는 없던데. 폼이 슬슬 올라오는 건가? 그리고 체구가 작으면 더 빨라 보이기도 하니까. 이래저래 좋구나, 좋아.’
소하는 상당히 만족해한다. 이런 선수를 임대로 데려올 수 있다니. 다이스의 공백에 대한 걱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베예린의 분투와 원래 모습을 되찾은 포츠머스. 이 조합은 상당한 파괴력을 보여줬지만, 볼턴도 만만찮은 팀이다.
한때나마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던 과거가 있는 팀. 그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고, 경기는 1-1로 마무리된다.
리그2 득점왕인 조쉬 킹의 멋진 선제골이 있었지만, 짜임새 있는 역습 한방에 동점 골을 내줬던 것.
아쉬운 무승부였다.
“나쁘지 않았다. 전반전은 포기하고 시작한 거였으니까. 그래도 한번 경기를 뛰어봤으니 어느 정도 감을 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하의 정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 역시나, 훈련과 실전은 언제나 다른 법이었다.
2.
며칠 뒤, 번리와 맞붙은 두 번째 친선경기.
13-14시즌 챔피언십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번리의 감독은 ‘션 다이치.’
무시무시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유머러스한 감독이다.
능력은 굉장히 뛰어난 편. 현역 영연방감독 중에선 열 손가락에 들어간다.
하부리그를 전전하던 번리를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경쟁력 있는 팀으로 탈바꿈시킬 정도의 엄청난 능력자!
얼핏 보면 소하와 비슷한 행보를 걷는 인물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다이치 감독님.”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 감독님. 차세대를 이끌 젊은 인재를 만나게 돼서 기쁘네요.”
걸걸한 목소리로 소하를 반기는 션 다이치. 소하와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꽤 잘 어울린다. 인간적으로 주파수가 맞는 느낌.
하지만, 전술적 성향은 완전히 정반대다.
소하는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축구를 추구한다면,
션 다이치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단단하고 수비 중심의 축구를 추구한다.
완전히 극과 극.
그래서 이번 친선경기가 성립됐다.
소하는 훗날 프리미어 리그에서 7위를 달성하는 강력한 수비축구를 상대해보고 싶었고,
다이치는 앞으로 상대할 강팀들의 공격 전술을 미리 체험해보고 싶었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구단을 위해 최선의 수를 고른다는 점은 똑 닮은 두 감독. 상당히 치열한 경기가 예상된다.
-삐익.
드디어 시작된 포츠머스와 번리의 친선경기. 치열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경기 결과는 번리의 2-0 압승.
포츠머스는 슈팅 숫자는 많았지만, 유효 슛은 적었고, 점유율은 높았지만 번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결국 번리의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역습에 두 골을 실점하고 무득점으로 패배.
‘이게 프리미어 리그의 벽이군.’
모처럼 당하는 압도적인 패배에 소하는 입맛이 썼다. 조금 벽을 느낄 정도.
번리는 정말 강했다.
포츠머스가 자랑하는 무기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으니까.
밴 미를 앞세운 수비진에 조쉬 킹은 말 그대로 지워졌다. 피지컬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상대도 프리미어급 피지컬 괴물이었으니까.
강력한 수비진에 포츠머스의 공격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고, 역습 시에는 한 선수가 포츠머스의 진형을 헤집었다.
그 선수는 바로, 대니 잉스.
훗날 리버풀에서 뛸 정도로 뛰어난 선수인 그는 포츠머스 수비진들이 처음 상대해보는 유형의 선수였다.
몸싸움이 약한 것도 아닌데, 속도는 빨랐으며, 기술은 또 엄청나게 뛰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에 뛰어난 골 결정력까지.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통하는 공격수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줬다.
“후. 갈 길이 멀군요.”
“젠장. 너무 잘하는걸.”
자존심 빼면 시체인 찰스 말로리마저 혀를 내둘렀다.
그도 소하처럼 벽을 느낀 것.
그래도 벽을 느꼈을지언정 좌절하지는 않았다.
“훈련에 박차를 가해서 다음번에는 꽁꽁 막아보겠습니다.”
“두 번은 지지 않는다.”
투지를 불태우는 케빈 도슨과 찰스 말로리. 포츠머스로서는 정말 든든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들이었다.
“많이 배웠네요. 번리는 정말 강하네요.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생존할 거라고 제가 장담하죠.”
“감사합니다. 포츠머스도 강했습니다. 두 단계나 리그가 차이가 나는 팀인데도 긴장을 늦추기 어려웠어요.”
“설마요. 유효 슛도 몇 개 날리지 못했는데요.”
“아직 선수들이 무르익지 않아서입니다. 성 감독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후후.”
말없이 미소를 짓는 소하. 맞는 말이었다. 아직 소하의 팀은 성장 중이었으니까. 이미 완성된 선수들이 많은 상위리그 팀을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빨리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다음번에 더욱 발전한 포츠머스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싶으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희가 올라갈 때까지 떨어지지 마시고 꾹 버티셔야 해요. 제가 복수하는 그 날까지!”
“하하. 알겠습니다.”
어지간히도 서로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렇게 다이치 감독과 두터운 악수를 주고받은 소하는 라커룸으로 향했다.
‘후. 계획대로군.’
라커룸에서 벽을 느껴버리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선수들을 보며 소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자꾸 이기기만 하다 보면 주제도 모르고 자만이 뜰 테니까.’
자만이란 독버섯 같은 존재.
이를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선 벽을 한번 느낄 필요가 있었고, 제대로 통한 모습이다.
“모두 벽 느끼고 영혼 이탈한 모습이 재미있네.”
“···놀리지 마세요.”
“다음엔 저희가 이길 거거든요?”
“돌아가서 개인 연습이나 해야겠다.”
소하가 이죽거리자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며 노발대발한다. 마음이 꺾이긴커녕 승부욕을 활활 태우는 모습이 정말 흐뭇하다.
‘새끼들. 위로해줄 필요는 없겠네.’
너무 큰 벽을 만나면 아예 마음이 꺾일지도 몰라 위로 좀 해주려고 했건만.
선수들이 알아서 재무장을 시도하는 모습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 그 자세면 너희들은 꼭 대성할 거다. 내가 도와주마.’
친선경기 패배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3.
친선경기는 모두 끝났다.
본머스와 2-2 무승부.
MK던스와 3-0 승리.
4개의 친선경기 일정에서 총 1승 2무 1패의 결과표를 받은 포츠머스. 현 포츠머스의 체급에 딱 들어맞는 결과다.
프리미어 리그 팀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챔피언십 팀과는 엇비슷하며 리그1에서는 강한 모습, 그 자체.
MK던스는 14-15시즌, 준우승을 달성하고 챔피언십 리그 승격에 성공하는 팀.
이런 팀을 3-0으로 박살을 내버렸다는 건 포츠머스의 체급이 리그1 수준을 넘었다는 증거였다.
이렇듯 친선경기를 통해 다방면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포츠머스.
어느 정도 포츠머스의 체급을 증명한 소하는 훈련에 박차를 가했고, 선수들의 경기력은 점점 물이 올랐다.
그렇게 훈련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덧 7월이 끝나고 8월이 다가왔다.
8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리그1 개막전이 시작하는 달.
이제 길고 긴 리그1 레이스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며, 비시즌 기간에 이루었던 성과를 만천하에 증명해야 할 시간이었다.
< 073화. 14-15시즌 개막전.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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