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1화. 14년도 프리시즌. (2) >
1.
모든 일을 끝마친 현재.
드디어 훈련에 제대로 매진할 시간이 찾아왔다.
전지훈련은 패스.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일단 전지훈련이란 야구의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시작된 시즌 전 훈련.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 으쌰으쌰하며 훈련에 집중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은 7월.
추울 리도 없고 포츠머스는 영국에서 가장 따뜻한 최남단 도시다.
게다가 해외로 가기엔 리그1 팀 사정에 어울리지도 않고.
사실,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전지훈련은 본디 목적보다는 홍보에 더 집중돼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홍보는 이미 넘칠 정도로 한 상태. 게다가 멀리 떠날 교통수단도 마련하기 힘들다.
영세구단에 전용기가 있을 리 없으니까.
이래저래 돈 많이 벌어서 구단 전용기를 가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번 시즌은 어떤 방식으로 기본 골자를 잡을 예정이십니까?”
감독인 나와 수석코치인 밀러 아저씨의 주도하에 코치 회의를 열었다.
물론 기본적인 팀 성향은 비슷할 거다. 그래도, 실무자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놓친 부분을 보완할 좋은 기회다.
“당연히 지난 시즌과 같이 ‘공격 앞으로’예요. 리그1에 올라왔다고 수비적으로 운영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흐음. 맞습니다.”
“선수들의 몸 상태도 아주 좋습니다. 프리시즌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끄덕끄덕.
코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좋네요. 그럼 추가할 의견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해주세요.”
의견을 묻자, 먼저 전술 코치인 브랜든 윌리웜이 손을 번쩍 들며 의견을 피력한다.
“감독님.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플랜 A에 집중하는 쪽이 좋아 보입니다. 어린 선수가 많아 전술 적응도가 조금 뒤떨어질 테니까요.”
“좋은 의견 고마워요. 맞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베테랑 선수들과 비교해 전술 변화에 적응이 느리죠.”
재능의 문제가 아닌 경험은 문제다.
경험이 아직 적은 어린 선수들은 잦은 전술 변경에 더욱 취약했으니까.
여기에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 많다는 점. 전술적 일관성을 가져가야 할 시간이 맞다.
“쉐도우 플레이 훈련 시간을 조금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측면공격에 관련된 플레이를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이래저래 저희 팀은 측면공격을 활용하니까요.”
“지금의 고강도 체력훈련은 리그 컵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코치진들의 의견.
매우 훌륭한 상황이다.
적어도 벤스 모건의 회의와는 비교가 실례일 정도로 유익한 시간이다.
“나도 의견 한 가지를 내겠다.”
마지막 의견은 주인공은 내 몇 없는 친구이자 포츠머스의 영양 총괄 겸 피지컬 코치인 김용한.
휴가 기간, 미국에 가서 스포츠 영양학과 트레이닝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의심의 이유는 간단하다.
덩치가 전보다 더 커졌으니까.
공부는커녕 로니 콜먼 형님을 만나 같이 쇠질이나 하고 온 분위기다.
“필라테스 강사를 채용하면 선수들에게 굉장히 좋을 거다.”
“필라테스? 아! 좋은 생각인데?!”
“역시 뭘 좀 아는군.”
이걸 깜빡하다니. 훗날 유명 구단에선 필라테스는 물론, 요가까지 훈련 세션에 넣는 팀도 많아진다.
궁극적인 목적은 다르지만 둘 다 부상 방지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으니까.
“이참에 요가까지 넣자. 어차피 강사 인건비 정도는 충분하니까.”
“좋군.”
회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무언갈 얻어가는 시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2.
훈련의 뼈대는 지난 시즌과 같았다.
론도 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고강도 체력훈련. 본격적으로 2-3-5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한 시작이었다.
현대축구의 기본은 삼각형.
선수들이 항상 패스 선택지를 2개 이상을 가져가야 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2-3-5 시스템은 그의 굉장히 어울리는 방식이다.
큰 틀에서도 삼각형 대형이었으며,
작은 틀에서도 삼각형 대형을 유지하기 편했으니까.
2-3으로 이어지는 수비라인과 3선의 삼각형,
3-5로 이어지는 3선과 1, 2선의 삼각형.
이를 창시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정말 천재 그 자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잘 써먹어야지 않겠는가? 항상 감사합니다. 펩 감독, 클롭 감독. 그리고 투헬 감독.
하지만, 개인 훈련만은 수정이 필요했고, 이미 진행하는 중이다.
먼저, 조쉬 킹. 녀석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장점은 엄청난 피지컬과 뛰어난 침투 움직임.
전자야 유명하지만, 후자는 조금 의외일지도 모른다. 녀석은 돌대가리로 유명하니까. 맞다. 녀석의 침투는 머리를 쓰는 게 아니다. 본능이지.
즉, 재능이라는 뜻.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예체능만큼 재능이 압도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도 없다.
그리고 신은 이 돌대가리 새끼에게 어울리지 않는 재능을 부여했고. 솔직히 신을 믿지 않지만 감사하다.
조쉬 킹에게 좋은 침투를 위한 전술적인 이론을 가르칠뻔했으니까.
상상만 해도 소름 돋는다. 10년이 지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단점은 명확하다. 부족한 기술.
슈팅 기술부터 시작해, 패스, 드리블, 크로스 같은 전반적인 기초가 매우 부족하다. 지금이야, 리그 수준이 낮아 대충 피지컬로 때우지만, 올라가면 갈수록 한계가 드러날 터.
아직 10대일 때 극복해야 한다.
또한 훗날 들어올 홀란드와의 공존을 위해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단계.
“넌 이번 시즌 내내 한가지 훈련에 집중할 거다.”
“네? 웨이트 해야 하는데요.”
“···넌 운동 그만해. 보디빌더로 전향할 속셈이냐?”
“그, 그건 아닌데. 그래도 남자는 피지컬이죠! 웨이트는 포기 못 해요.”
이 새끼가? 선수가 말대꾸?
기강을 다시 잡아야겠다.
“그렇구나···. 그럼, 식당 보조로 보직을 바꿔야 하나. 6년 동안 종일 식자재를 존나게 나르다 보면 웨이트가 필요 없을 테니까···.”
“···.”
“아니지. 아니야. 그럼 선수 권리 침해로 고소당할 테니까···. 차라리 지금은 팀을 떠난 스펜서 보이드처럼 오버헤드킥 훈련만 시켜도 괜찮을 듯? 그리고 1만 번은 너무 적어. 해낸 놈이 나왔으니까. 10만 번이면 몇 년간은 얼굴 보지 않아도 되겠지.”
내가 싸늘하게 중얼거리자 킹은 경기를 일으키며 부동자세를 취한다.
“히, 히익! 받들게요. 뭐, 뭐든 명령만 내려주세요.”
“음? 어디까지 했더라. 웨이트 계속하고 싶다고 했었나?”
“아니요. 잘못 들으신 거겠죠.”
“그렇지? 난 또. 우리 킹이가 겁대가리를 상실한 줄 알았잖아.”
“헤헤. 저 겁 많아요. 그래서 무슨 훈련인데요?”
금세 상당히 기대하는듯한 표정을 짓는 조쉬 킹.
뭔가 새로운 걸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의 기대를 깨부숴줘야만 한다.
“뭐겠어. 기초훈련이지.”
“···.”
“넌 온더볼이 너무 구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초훈련밖에 없다.”
얼굴이 썩어들어가는 조쉬 킹.
세상천지에 기초훈련을 좋아하는 선수는 몇 없었으니까.
“표정 풀어, 확.”
“···.”
방싯. 금세 웃는 연기를 하는 킹.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어차피 네 친구 알리도 이번 시즌 내내 기초훈련일 테니까 외롭진 않을 거야.”
“알리가요? 걔가 기초가 부족해 보이지는 않은데···.”
“아니. 내 눈에는 너무 부족해. 그러니 네 상태가 내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짐작이 가지?”
“···.”
“그냥 똥 싸는 기계로 보인다는 소리야. 그래도 다른 건 잘하니까 기초만 마스터하면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야.”
“진정한 주인공···?”
반짝. 드디어 마음이 동했나 보다.
조쉬 킹은 떨군 고개를 스르륵 치켜들며 눈빛을 빛낸다.
하. 진짜 보육원 선생도 아니고 미치겠다.
“그래. 야 솔직히 말해서 하부리그에서 잘한다고 그게 주인공이겠냐? 그냥 주인공 조력자 수준 정도지. 네가 진짜 무대에서 진짜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기초라는 벽을 넘어야 해. 쉽게 말해서 더 강해지기 위한 고된 수련이라고 보면 돼. 주인공들도 어디 처박혀서 수련하잖아. 그거랑 똑같아.”
“호오! 그건 참 마음에 드네요. 좋아요.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 그럼 된 거야.”
신이 난 조쉬 킹.
이미 기초훈련 통보를 받고 죽상인 알리를 데리고 기초훈련을 시작한다.
단순한데 다루기 어려운 새끼야. 정말로. 정확히 말하자면 귀찮은 거겠지만.
“그리고 너희 둘은 이 친구랑 일 년간의 부트캠프를 시작한다.”
“···.”
“···.”
내가 김용한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하자 도봉산과 데클렌 라이스가 공포로 몸이 굳는다.
오오. 이런 귀여운 반응 신선해서 좋아. 기존 선수들은 이미 적응해서 오히려 장난까지 치던데.
“너희들의 현재 단점은 명확해. 부족한 피지컬이지. 단언컨대 이 친구와 함께 1년이면 단점은 장점으로 변할 거다.”
“···알겠습니다.”
“이 악물고 해볼게요”
15세와 26세.
11살 차이나 나는 선수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조금 떨떠름한 도봉산.
의욕에 불타는 라이스.
라이스는 걱정이 없다. 이미 첼시에서 방출당한 아픔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은 지 오래였으니까. 정신 무장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다. 오히려 의욕이 너무 과해 부상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수준.
하지만 도봉산 선수는 미묘하다.
이 선수의 피지컬 약점은 수년 전부터 따라오던 문제 아니던가.
하지만 수년간 여전히 약점이 똑같다는 뜻은 두 가지 경우다.
고치기 싫다던가.
고치기 어렵다던가.
후자라면 스포츠과학을 토대로 한 노력과 근성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전자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리고 느낌상 전자의 냄새가 강하다. 일단 시즌 초반은 지켜보도록 하자.
“해리슨과 스톤은 잘하고 있어.”
잭 해리슨과 프레디 스톤.
이 둘의 훈련성과가 이번 시즌의 핵심이다. 한평생 각자의 라인에서 사이드돌파 외길인생을 살아왔던 둘.
이제는 반대편 사이드에서 컷-인 플레이를 해줘야 할 시간이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훈련이다.
컷인 플레이와 직선적인 사이드 돌파는 궤가 너무 달랐으니까.
더군다나 이들은 성인 선수.
유망주도 아니고 플레이 방식을 바꾸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선수에 따라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꽤 할만합니다. 좀 더 숙달되어야 하겠지만요.”
“공부도 때려치우고 연습 중이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둘의 진척은 상당히 빠른 수준.
잭 해리슨이야, 로봇이라 코딩만 잘해준다면 금방 써먹을 인재였고,
프레디 스톤은 투자 공부까지 한다는 소문이 도는 지식인이라 의외의 성과를 내는 중이다.
역시 어떤 일이든 머리가 좋아야 뭐든 잘하는 거 같다.
근데, 무슨 투자 공부를 하지? 뭐, 별로 시답지 않은 돈벌이겠지.
축구선수로서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게 돈을 버는 지름길이야, 친구.
3.
“헉, 헉, 헉.”
네이선 아케는 오전 훈련이 끝난 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상당히 좋지 않은 낯빛.
뭘 잘못 먹을 걸까?
혹은 병에 걸린 걸까?
다행스럽게도 둘 다 아니었다. 그는 그저 너무나도 강도 높은 훈련에 기진맥진했을 뿐.
‘미친. 훈련 강도가 무슨···.’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네이선 아케.
솔직히 첼시라는 거대구단에서 임대 온지라 포츠머스란 팀을 조금 얕잡아 보는 마음도 있었다.
‘흥. 리그1 따위에서 하는 훈련 정도야 설렁설렁해도 후딱 끝나겠지.’
그런데 이게 웬걸.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훈련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심지어 선수들의 한계를 정확히 계산한지라 힘들지언정 몸에 무리는 가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분한 건,
‘기존 선수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고 있었어. 심지어 훈련이 끝나도···!’
믿기지 않았다. 첼시 소속인 자신은 이렇게 힘든데, 다른 선수들도 당연히 힘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 훈련은 너무 가볍다고 자진해서 훈련장 몇 바퀴를 더 뛰다니. 작년까지만 해도 리그2에서 뛰던 선수들이 맞나?’
비슷한 또래인 조쉬 킹, 델리 알리, 칼빈 필립스의 모습에 자존심이 와장창 구겨졌다.
그리고 네이선 아케에겐 정말 놀라운 광경이기도 하다. 유망주의 창고라고 불리는 첼시의 유소년팀이나 2군 팀에서도 저런 선수들은 보지 못했기 때문.
정말 놀라운 신체 능력이었다.
‘그래, 나보다 1년 먼저 훈련을 받은 덕분이겠지. 그런데 말이야, 저 녀석은 뭐지?’
그와 같이 이번 시즌에 팀에 합류한 선수들은 모두 기진맥진해서 얼굴이 사색이다. 하지만, 오직 한 명. 가장 어린 선수는 기존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할만하다는 얼굴이다.
‘데클렌 라이스. 유소년팀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방출당한 녀석이라던데. 그럼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어야 하지 않나?’
자존심이 상했다. 방출당한, 자기보다 어린 선수한테 져버렸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나도 자존심이 있지. 이렇게 질 순 없어.’
혼자서 활활 타오르는 네이선 아케.
훗날 명장 펩 과르디올라에게 선택받아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게 되는 선수다운 마음가짐이었다.
< 071화. 14년도 프리시즌.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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