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0화. 14년도 프리시즌. (1) >
1.
“우리의 이적시장은 이제 끝났습니다. 재계약과 훈련에 모든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에요.”
스펜서 보이드의 방출과 더불어 진행된 기자회견장에서의 소하의 발언.
큰 탈 없이 모두가 고개를 끄떡였다.
“완벽한 이적시장이었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끝난 게 조금 아쉽지만.”
“우리 구단이 이상해.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이고 빨리 끝내다니.”
“하긴. 2년 전만 해도 마감까지 질질 끌다가 망한 계약이 수도 없었는데. 이대로 팀워크를 다지고 우승하자!”
“내가 보기엔 모두 성 감독 덕분이야. 소문으로는 항상 품속에 USAS-12를 넣고 다닌대.”
USAS-12라니. 달밤에 흡혈귀를 때려잡는 소설의 주인공이 사용하던 총기 아닌가. 흉악한 무기다.
그만큼 소하가 오고 나서의 포츠머스는 전혀 다른 구단이 되었다는 뜻. 그의 영향력을 칭찬하는 농담이었다.
“그런데, 왜 스티븐 데커는 아직도 구단에 남아있는 거지?”
“그러게. 감독의 비밀스러운 테이프를 가지고 협박하나?”
“인정. 암만 봐도 약점이 잡혔나 봐. 어떠한 이적설도 나오지 않았잖아.”
“에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감독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스티븐 데커.
포츠머스의 8번이자 경기에 나올 수만 있다면 정말 뛰어나다는 전설의 선수.
저번 시즌 단 한 경기도 선발로 출장하지 못한 유리 몸이라 당연히 정리 대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포츠머스와 소하의 움직임. 포츠머스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호기심이 일만 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을 뿐.
‘씨발. 뭔 입질이 와야 팔든지 말든지 하지. 지난 시즌에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누가 관심을 가져. 오히려 종잇장이라는 것만 보여줬지.’
거래란 수요와 공급이 존재해야 성립되는 행위다. 수요가 없는데 어떻게 공급하겠는가.
툭하면 FC 병원으로 임대 이적을 하는 스티브 데커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악성 재고로 남아, 소하는 졸지에 어떻게든 그를 활용해야 할 숙제마저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재계약 작업.
가장 난관이었던 조쉬 킹의 재계약이 노예계약으로 마무리되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리슨아.”
“네, 감독님.”
이제 1년 남은 잭 해리슨의 재계약 협상 테이블. 특이하게도 에이전트가 아닌 잭 해리슨 본인이 직접 튀어나왔다.
하부리그에는 종종 에이전트를 고용하지 않는 선수도 있었는데, 잭 해리슨도 기 중 하나였기 때문.
“도장 찍을 거지?”
“도장이 뭡니까?”
“사인이야.”
“리그1 수준에 맞는 합당한 계약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렇구나···.”
조금 불안해진 소하.
잭 해리슨은 워낙 로봇 같은 사람이라 만만찮은 상대였다.
에이전트도 없이 나왔다는 건 리그1 평균 급료에 대해 빠삭하다는 방증이기도 했으니까.
제법 어려운 협상이 될 거라고 예측한 소하와 포츠머스의 관계자들.
하지만,
“좋습니다. 아주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샤샥. 명쾌한 재계약 서명.
잭 해리슨은 보기 힘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새로운 계약에 사인을 남겼다.
주급 3,000파운드, 계약 기간 4년.
원래 받던 주급의 두 배인지라 잭 해리슨의 회로에도 초록 불이 쉽게 들어왔던 것.
어찌나 마음에 들던 재계약이었던지 인터뷰에서 립서비스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포츠머스에 남는 결정을 한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습니다. 성소하 감독님과 함께라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굉장히 모범적이고 합리적인 재계약이었습니다. 지성인에 어울리는 모범적인 계약이었죠.”
이 정도면 극찬 중 극찬이었다.
이렇게 꽤 어려울 거란 잭 해리슨의 재계약을 손쉽게 마무리 지은 포츠머스.
뒤에 대기 중인 선수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케빈 도슨 4년 재계약. 주급 2배 인상.
찰스 말로리 3년 재계약. 주급 2배 인상.
존 말로리 3년 재계약 주급 2배 인상.
말콤 우드 2년 재계약, 주급 1.5배 인상.
지난 시즌 계약에 합의한 앤디 로버트슨, 칼빈 필립스를 제외하곤 모두 재계약에 성공하며 당분간 선수를 빼앗길 염려를 덜었다.
하지만.
7월 내내 연이은 주전선수들의 재계약 소식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가장 중요한 사람의 재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았으니까.
물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이 포츠머스의 사령탑, 소하였다.
2.
포츠머스 클럽하우스의 가장 고급스러운 사무실 안.
은은하고 부드러운 조명등에 비해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곳에서 탁자를 둘러앉아 무게를 잡는 사람들의 면모는 하나하나 놀랍다.
잉글랜드 식품 유통업의 대부이자 포츠머스의 구단주인 리처드 맥닐.
이번 달부터 포츠머스의 CEO직을 맡은 지 6년 차가 된 CEO, 제임스 브라이언.
작년까지만 해도 겸임을 하며 고생하다가 드디어 승진한 CTO 알버트 위버.
이번에 새롭게 포츠머스에 합류한 돈 계산의 달인, CFO, 니엘 비숍.
포츠머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서인 홍보부를 맡은 홍보부장 벤스 모건.
포츠머스 프런트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인 5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일이다.
심지어, 이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 것도 놀라운 일인데, 장내의 주도권은 반대편 상석의 젊은이가 꽉 움켜쥔 모양새. 정말 놀랄 놀자 이다.
“얼굴 닳겠어요. 제가 잘생기긴 했지만, 남자한테 관심 없거든요? 그리고 왜 어울리지도 않게 무게를 잡아요? 빨리 시작하죠.”
물론, 그 젊은이는 소하.
그렇다. 드디어 포츠머스의 모든 시민과 대한민국의 국민이 원하고 원하던 그 시간이 왔다.
바로, 소하의 재계약.
작년 포츠머스에 처음 부임할 때 2년 단기계약을 맺은 터라, 다들 노심초사하던 때였다.
“성 감독님의 현재 주급은 450파운드입니다. 이는 매우 낮은 금액이죠.”
먼저, 알버트 위버가 입을 열었다.
450파운드. 한화로 약 70만 원.
이번에 새로 맺은 조쉬 킹의 노예계약 따위는 대형 로펌회사의 전관예우라고 보일 정도로 박봉인 계약이다.
“그렇죠. 아주 가성비 좋지 않습니까? 70만 원 받고 이렇게 허리가 휘어라, 일하는 감독을 얻다니. 여러분들은 운이 참 좋아요.”
“···.”
“···.”
소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잔뜩 비꼬았다. 솔직히 말해, 그는 지금 상당히 뿔이 난 상태. 재계약 제의를 이렇게나 늦게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새끼들이 빡센 일 다 처리하고 나서야 슬슬 재계약을 거네.’
있던 정도 떨어질 정도로 느린 대처.
소하가 포츠머스에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면 재계약이고 나발이고 밥상 뒤집었다.
“험험. 너무 섭섭해하지 말게나. 어느 정도 ‘인상’해야 하는지 꽤 많은 논의가 오갔기 때문이라네.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지.”
가장 윗분인 리처드 맥닐이 먼저 나서며 소하를 달랜다. 그가 생각해도 너무 늦은 재계약 제의였으니까.
“구단주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으니 너그러운 제가 그냥 넘어가야겠네요. 그럼, 빨리 시작하죠. 저 애들 훈련 봐줘야 하거든요?”
소하가 보채자 리처드 맥닐은 슬쩍 브라이언에게 눈치를 준다.
“좋습니다. 여기, 저희의 첫 제안입니다. 만족할 거라고 자신하니 한번 봐보시죠.”
브라이언이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건네자 소하는 잽싸게 낚아채 쭉 읽어본다.
주급 3,000파운드.
3년 계약 연장.
승격 보너스, 3만 파운드.
우승 보너스, 3만 파운드.
사소한 조약들을 떼고 메인만 보자면 3에 미친 인간들 같은 재계약이었다.
“호오. 상당한 인상이네요.”
소하의 초기반응은 상당히 긍정적.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정성이 느껴졌기에 좁아져 있던 미간은 원래 넓이를 되찾았다.
“그럼 이대로 계약을 진행···.”
“아니요.”
소하는 브라이언의 말을 자르며 치고 들어갔다. 꽤 마음에 드는 내용이지만 그는 아직도 배고팠으니까.
이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포츠머스라는 구단 때문에 머리가 살짝 맛이 간 소하였지만, 호구처럼 재계약을 해줄 순 없는 노릇아니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만일의 사태에도 빵빵한 주머니라는 결과가 남는다.
‘비트코인이 오르지 않아···. 그러니까 이건 기회란 말이지!’
미친 듯이 오르는 포츠머스의 가치에 비해 오르지 않는 비트코인 가격.
하지만 소하는 오히려 기회로 봤다.
돈을 더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미래가 바뀌어 크게 오르지 않아도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예상만큼 오르지 않을지 몰라도, 인수 자체가 1순위 목표는 아니니까.’
구단 인수.
암 덩어리들을 쳐내고 소하의 입맛에 맞도록 포츠머스를 개혁할 최고의 수단.
하지만, 가장 우선시할 문제는 아니다.
소하에게는 어디까지나, 포츠머스의 성공과 부흥이 최우선 과제.
지금처럼 구단주가 협조적이라면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카드였다.
어디까지나 보험이었을 뿐.
“어,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열 배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하지만 열 배는 아니죠.”
“그 말은···. 열 배를 원하신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
소하의 단호하고 해맑은 대답에 장내는 잠깐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평소 혓바닥이 살아 움직이던 브라이언이 식은땀 한 방울을 흘리며 간신히 되물었다.
“열 배 달라고요.”
맙소사 진짜 열 배라니. 브라이언은 말할 가치도 없고 리처드 맥닐마저 굳어버린다.
“세, 세상천지에 한 번에 주급 열 배를 인상하는 재계약은 없습니다.”
“세상천지에 망한 구단을 1년 만에 건실한 구단으로 바꾸는 감독도 없죠.”
“그, 그건···.”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소하의 요구가 과하긴 했지만, 이런 요구가 과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성과를 내는 중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주급 3,000파운드는 조금 실망스럽네요. 제가 벌어준 돈이 얼만데.”
“···.”
“쿨하게 4,500파운드로 올려주시죠. 그리고 승격 및 우승 보너스도 한 10만 파운드로 해주시고. 그리고 3년 계약도 너무 짧아요. 4년 계약으로 하죠.”
“···.”
얼핏 보면 과한 요구.
이 정도면 단순한 돈 욕심만은 아니다.
돈 욕심으로 구단이 버거울 정도로의 요구를 할 소하가 아니었으니까.
‘이래야 함부로 개수작을 걸지 못한다.’
연봉과 계약 기간이 길수록 경질시 위약금이 증가한다.
소하가 요구한 수준의 계약이라면 위약금은 상상을 초월할 거다. 구단의 재정이 한꺼번에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금액임은 분명. 아마도 1년~2년 정도는 영입은커녕 재계약도 못 한다.
‘날 건드리면 같이 망한다는 위기감을 조성해야지 잠잠하겠지.’
갈 길이 멀다. 그 먼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데, 내부에서의 공격까지 처리하기는 너무 짜증스럽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도 꾸준히 트롤짓을 하겠지만 작심하고 달려들지는 못할 터. 요컨대, 구단의 재정을 손에 쥐고 협박하겠다는 의지였다.
“허허헛!”
모두가 소하의 엄청난 요구에 어찌할지 모를 때.
리처드 맥닐 구단주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군. 세상천지에 자네 같은 감독이 또 있겠는가?”
“역시 구단주님만은 제 가치를 잘 알아주시는군요. 그리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닐 거예요.”
“그렇지.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돈을 벌어줄 인재 아닌가.”
“···그렇겠죠.”
현재보단 미래를 보는 인물.
하루 살기도 각박한 세상 속에 몇이나 있겠냐만, 리처드 맥닐도 소하와 마찬가지로 몇 없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요구사항을 수락하도록 하지. 내가 듣기로는 자네가 자네의 ‘목표’를 달성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금액일 테니까.”
“호오. 용케 알고 계시네요.”
“허헛. 내 눈과 귀는 무한 증식이라네.”
리처드 맥닐은 슬쩍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쥐새끼 사건때의 핀리 보먼 씨는 영감님의 눈이었군.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데.’
구단주의 눈을 쳐낸 건 CEO인 브라이언. 그런데, 브라이언의 자리인 CEO는 ‘구단주의 대리인’이다.
‘둘이 무슨 관계지? 서로 적이 될 순 없는 사인데.’
구단주와 CEO.
이는 상하 관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CEO가 역심을 품었다고 해도 구단주는 그냥 잘버리면 되니까. 애초에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CEO는 구단주가 가장 믿는 사람이지 않던가. 이상한 일이다.
‘씨발. 하여튼 능구렁이들끼리 뭐하는 짓거리인지. 신경 끄자.’
머리를 한 차례 털며 잡념을 떨쳐내는 소하. 저 정치꾼들과 얽히기는 정말 싫었다. 괜히 머리만 아파졌으니까.
“그럼 어서 계약을 마무리 짓도록 하세나. 서포터들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라네.”
“알겠어요. 그러니까 진작에 제의를 하셨어야죠.”
소하는 투덜거리며 새로 작성한 계약서에 사인했고, 포츠머스에서 가장 관심을 끌던 일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3.
다음 날, 포츠머스에선 대대적으로 소하의 재계약을 공표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밝게 웃으며 브라이언과 리처드 맥닐 사이에서 펜을 들고 있는 소하의 사진은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됐어!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
“바로 이거지. 축구는 감독놀음이야. 몇몇 구단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잘되었어.”
“심지어 엄청난 주급 인상이라던데. 구단이 성 감독을 얼마나 믿는지 알아볼 수 있어서 더 좋아.”
“당분간 큰 걱정은 없겠군.”
소하에게 관심을 보이던 몇몇 구단들만 씁쓸한 입맛을 다셨을 뿐.
모두가 행복해하는 재계약 소식이었다.
“이제 곧 8월이네. 곧 시즌 시작이야.”
“기대된다. 과연 포츠머스는 어떤 1년을 보낼까.”
“우승을 향해 가자!”
너무나도 행복하게 보낸 터라, 순식간에 지나간 7월 한 달.
어느덧 리그1 개막전이 2주 내로 다가왔다.
< 070화. 14년도 프리시즌.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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