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66화 (66/306)

< 066화. 14-15시즌 이적 시장. (7) >

1.

소하의 움직임에 프리미어 리그의 미래도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가장 미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아스널.

예정에 없던 베예린의 포츠머스행 임대 이적은 바카리 사냐에 대한 구단 프런트의 생각을 다르게 바꾸었다.

‘듣기로는 맨체스터 시티가 그에게 15만 파운드의 주급을 제시했다고 한다.’

15만 파운드. 한화로 2억 4천만 원.

수비수에게 주기엔 엄청나게 큰 금액이라 아스널의 프런트는 한 발 뺀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른쪽 수비수층이 얇아지면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마티유 드뷔시’를 영입하기보다는 그냥 사냐를 잡는 게 더 좋지 않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 것.

‘그래도 15만 파운드는 너무 많으니, 13만 파운드를 제시해보자.’

기존에 제시했던 10만 파운드보다 3만 파운드나 올려서 재계약을 제시

장고의 고민을 거듭하던 바카리 사냐는 기어코 결정을 내린다.

“재계약에 합의하겠습니다.”

이적을 선언했던 그가 마음을 바꾸었다. 사실 그의 목적은 우승컵도 우승컵이지만 은퇴가 점점 다가오는 시기라 더 많은 수입을 원했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은사’ 아르센 벵거 감독의 간곡한 부탁과 우승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13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주급은 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자고로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은 잉글랜드에서도 통용되는 말이었으니까.

이로써 지난 시즌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던 사냐까지 지키게 된 아스널.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과 더불어 강력한 우승 후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2.

소하는 직접적으로 도봉산 선수의 영입에 나서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감독이 너무 나서서 한국인만 영입한다는 비판을 억제하기 위함이었고.

하나는, 새로운 단장인 유해진의 실적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유해진은 소하의 추천으로 구단에 영입된 인물.

그가 잘해야지 그를 추천한 소하도 반사이익을 보는 법이었으니까.

‘정말 순식간에 녹아버렸구나. 한 달이.’

내일이면 7월.

벌써 월드컵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벌써 16강 경기가 모조리 끝나고 8강 경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매우 아쉽게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아주 제대로 멸망했다.

1998년 이후로 최악의 대참사.

단 1승도 하지 못하며 1무 2패로 빠르게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연스레 강도 높은 비판이 예상되는 바.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생각보다 미온적인 태도로 아쉬움을 성토하는 정도로 끝이 났다.

“홍 감독의 지휘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고했지.”

“엄청난 졸전이지만 괜찮아. 4년 뒤 월드컵이 본경기니까.”

“하긴. 지금 흔들리는 축구계를 구원해줄 한 사람이 있지.”

“한반도 역사를 살펴봐도 위기의 순간엔 항상 영웅이 나왔어.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자고.”

원래 미래와는 다르게 굉장히 여유로운 반응이다. 당시에는 ‘엿’까지 던지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이 달라진 반응은 놀랍게도 소하 덕분이었다.

“4년 뒤 러시아 월드컵에는 든든한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아줄 테니까.”

“잉글랜드를 놀라게 하는 중인 젊은 천재 감독!”

“원래 행복과 불행은 같은 문으로 오는 법이지.”

“성 감독의 지휘라면 16강은 따 놓은 당상 아닐까?”

소하는 국가대표의 ‘국’ 자도 생각하지 않고 있거늘. 김칫국물을 아주 제대로 마시는 중이다.

이 현상은 포츠머스의 공격적인 한국 마케팅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 원인. 우연히도 소하는 자기도 모르게 국가대표팀의 방패 역할을 한 셈이었다.

‘흠. 뭐야. 의외로 FC 코리아 팬들이 점잖게 넘어가네. 과거에도 이랬었나? 아닌 거 같은데.’

이런 사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소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도봉산 선수의 영입 진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났다.

[속보! 포츠머스는 한국인 선수를 노리는 중.]

의문의 제보를 받은 한 국내의 신문사에서 이적설을 제기한 것.

이 소식은 월드컵의 좋지 않은 성적으로 식어가던 한국 축구에 다시금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성 감독이 원하는 선수는 세 명으로 압축된다. Q.P.R의 왼쪽 풀백 유석영. 볼턴의 윙어 도봉산. 마지막으로 카디프 시티의 미드필더 임보경.

-유성 조합이란 유례없는 한국인 지휘체계에서 과연 어떤 선수가 첫 번째 한국인 선수가 될지 초미의 관심이 쏠려.

-노골적인 한국 마케팅. 이는 한국 축구계의 득인가 실인가?

-상당히 긍정적인 현상. 더 많은 선수가 높은 수준의 축구를 경험한다면 이번 월드컵 같은 참사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드디어 축구가 야구의 아성을 넘어서고 국민 스포츠 자리에 오를 것인가.

몇몇 불순한 의도가 보이는 부정적인 기사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호평이다.

차붐이 닦은 한국인 유럽진출의 길.

유해진이 이 길을 넓혀 놨다면 이제는 소하와 포츠머스가 아스팔트로 포장하는 중이었으니까.

뛰어난 리그에 속한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국가대표의 수준은 당연히 높아지는 법. 축구계는 두손 두발 다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미쳤다. 드디어 삼위일체가 완성되는구나. 선수, 감독, 단장이 전부 다 한국인인 잉글랜드 프로구단이라니.

-20년째 포츠머스 팬입니다.

-과연 어떤 한국인 선수를 영입할까? 정말 기대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임보경 선수와 윤석열 선수가 확률이 높지. 이들은 팀에서 전력 외로 분류되었으니까.

-내가 보기엔 도봉산 선수야. 포츠머스는 지금 윙어가 없다고. 이미 수비수와 미드필더는 충분해.

└축잘알 인정.

└정확하네. 구단 관계자세요?

└혹시 성 감독님인가요?

└헛소리하지 마. 도봉산 선수가 뭐가 아쉬워서 한 단계 아래 리그로 가? 심지어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당연히도 대한민국 축구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24시간, 일주일 내내 포츠머스가 노리는 선수가 누구인지 갑론을박을 펼칠 정도.

그야말로 대축제의 현장이었다.

온갖 밈이 봇물 터지듯 나왔으며 숨어있던 축구 고수들까지 나와 토론을 펼치는 상황.

2002년 이후로 점차 식어만 가던 한국 축구의 제2의 전성기라 불러도 무방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높은 관심과는 다르게 이적 상황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3.

“그러니까···. 얼마요?”

난 귀를 후벼 파며 되물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 폼이 완전히 밑바닥을 찍어 자리가 위태로운 선수의 이적료로 ‘600만 파운드’를 부르다니.

암만 생각해도 내 청력에 문제가 생긴 듯싶다.

“600만 파운드입니다. 감독님.”

아쉽게도 내 청각이 건강하다는 것은 알버트 위버 씨가 씩씩하게 증명해주었다.

600만 파운드라.

볼턴이 도봉산 선수를 영입할 때 썼던 이적료의 정확히 두 배다.

대략 300만 파운드에 서울에서 볼턴으로 이적했으니까.

“혹시 볼턴의 협상을 담당하는 기술 이사가 정신병이라도 걸렸나요?”

“···아, 아닙니다. 그의 정신상태는 멀쩡합니다.”

“도봉산 선수가 이적을 거부하기라도 했나요?”

“아닙니다. 유해진 단장이 말을 끝내놨다고 해서 오퍼를 넣은 거니까요.”

“그럼 왜 똥배짱을 부릴까요?”

“그건 저도 잘···.”

당황하는 알버트 위버 씨.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우리가 제시한 300만 파운드도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었으니까.

적어도 선수를 영입할 때 사용했던 원금은 회수하는 것 아니겠는가. 협상을 질질 끌기 싫기도 하고 돈 쓸데도 없어서 쿨하게 제시했지만 돌아온 건 퇴짜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지금 볼턴은 빚더미에 파묻히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빚이 1억 파운드가 넘으니까요.”

“그렇죠. 제가 알기로 1억5천만 파운드 정도는 될 텐데요.”

1억 5천만 파운드.

한화로 2,500억이란 엄청난 금액이다.

영세구단이 뭐 이렇게 빚을 많이 졌는지. 아마도 강등의 여파일 테지.

11-12시즌, 프리시즌.

톰 밀러에게 핵심 선수였던 도봉산 선수의 다리가 부러지며 시즌 아웃.

심지어 마찬가지로 핵심이었던 미드필더, 파브리스 무암바 선수마저 경기중에 심장 문제로 쓰러져 은퇴를 결정했다.

여러 악재가 겹친 볼턴은 거침없이 그대로 강등.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강등은 정말 엄청난 위기를 불러왔다.

수입이 반 토막이 났으니까. 갑작스러운 강등이라, 선수들의 계약에도 강등 시 주급 삭감 조항도 없었고, 빚은 눈더미처럼 불어났다. 파산 근처까지 재정이 파탄 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번 시즌도 강등에서 간신히 벗어나서 올해도 장래가 밝지 않은데 도대체 뭔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알버트 위버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희가 돈이 많은 사실을 알아서 똥배짱을 부리는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네요.”

“맞습니다. 그럼 어쩌시겠습니까?”

“흐음. 어쩔까요.”

선택은 두 가지.

금액을 조금 깎아서 한 500만 파운드쯤에 눈물을 머금고 영입한다.

혹은, 파투를 낸다.

일단 이적 자금은 간당간당한다.

남은 금액은 370만 파운드.

델리 알리의 완전 이적으로 사용한 100만 파운드.

그리고 3명의 선수를 임대하면서 사용한 임대료 20만 파운드.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데클란 라이스까지 총 5명을 영입한 금액치고는 참 알뜰하게 썼다.

하여튼, 앞으로 선수단 정리를 할 예정이라 어느 정도 수입이 있을 터.

아슬아슬하게 500만 파운드 정도는 다시 모일 거란 계산이다.

“500만 파운드라···. 너무 비싸죠?”

“그렇습니다. 한 선수에 이리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협상을 끝내기엔 아쉬운데···. 꼭 필요한 선수거든요.”

단순히 시장독점을 위해 필요한 선수가 아니다. 한국 시장이야 이미 어느 정도 장악을 끝냈는데 뭣 하러 더 투자하겠는가. 여기서 더 바란다면 과한 투자이며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

즉, 다른 외부요인을 모조리 배제하더라도 꼭 필요한 선수다.

일단, 좌우 윙이 모두 가능한 점.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고점’이 정말 높은 선수라는 점도 굉장한 장점이었고.

내가 만약 이 선수를 부활시킨다면.

우리 팀은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수준급이었던 윙어를 가지게 된다.

너무 과장 아니냐고? 설마.

도봉산 선수가 큰 부상으로 폼이 상당히 떨어진 선수지만 3년 전만 해도 마르세유 턴을 하면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던 테크니션이었다. 그것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볼턴 공격진이 목구멍까지 넣어준 숟가락을 뱉지만 않았어도 두 자릿수 어시스트도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다.

그러니 어찌 탐이 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를 부활시킬 비책도 이미 마련해둔 상태.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아쉽다.

“물론, 감독님이 강력히 원하신다면 모두가 이해할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선수는 감독님께서 선택하시는 거니까요.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하! 위버 씨의 말솜씨가 제법 느셨네요. 낯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요?”

제법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솜씨가 느셨다. 나름대로 이사까지 단 사람의 처세술이란 걸까? 역시 아무나 배지를 다는 건 아닌가 보다.

“뭘요. 사실인데요. 하하.”

“좋아요. 위버 씨가 이렇게까지 말해주시는데 포기할 수는 없죠.”

“그럼 돈을 마련할 때까지 협상을 연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결정을 내리자 위버 씨가 빠르게 행동에 들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내 뜻을 위버 씨가 잘못 알아들었나 보다.

“잠깐. 멈춰요.”

“네? 어째서···?”

“협상은 끝내세요.”

“네? 방금 영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두 개는 종종 다르게 움직일 때도 있죠.”

“무슨···?”

알버트 위버 씨는 내 개소리에 좀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하긴, 내가 말한 거지만 상당히 이상한 말이긴 했어. 이적과 협상은 바늘과 실의 관계였으니까.

“위버 씨. 똥배짱을 상대할 땐 어떻게 상대해야 하죠?”

“글쎄요···. 그런 사람들은 피하는 게 최선 아닙니까.”

“···.”

위버 씨 다운 답변이다.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이라 굳이 불화를 만드는 타입은 아니니까. 피하고 말지.

“큼큼.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저같이 성격 더러운 사람은 다른 방법을 취하죠.”

“어떤···?”

“같이 똥배짱을 부리는 거죠. 누구 똥이 더 굵나 어디 한번 치킨 레이스를 해보죠. 어차피 급한 건 그쪽이에요. 빚더미에 질식사할 위기라 한 푼이라도 더 필요할테니까요.”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드디어 내 속뜻을 이해한 알버트 위버 씨. 제법 괜찮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음흉하게 웃는다.

그리고, 다음 날.

위버 씨는 내 기대에 부응해 한 가지 거짓 정보를 언론에 흘렸고, 순식간에 엄청난 숫자의 기사가 터져 나왔다.

-포츠머스의 한국인 영입 계획 철회. 다음 타깃은 본머스의 ‘라이언 프레이저.’

-과한 요구를 한 상대구단과의 협상을 단칼에 끊은 성소하 감독. 과연, 포츠머스의 사령탑다운 모습.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비보가 아닐 수 없는 협상 결렬.

-오늘 중 협상을 마치고 선수를 설득하기 위해 본머스로 향할 거라는 성소하 감독.

그렇다.

내 돈을 뜯어 가려는 악의 무리를 단죄할 정의의 철퇴!

바로, 언론플레이였다.

< 066화. 14-15시즌 이적 시장.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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