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3화. 14-15시즌 이적 시장. (4) >
1.
며칠 뒤 6월 초.
축구계와 전 세계는,
한참 지구촌 대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단일 종목 최대규모의 대회.
시청자 수는 올림픽이 더 많았지만, 상업적으로는 월드컵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수입이 2배 이상 차이가 났으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올림픽에서 양궁선수가 활을 잘 쏜다고 일반인들이 활을 사겠는가? 절대 아니다. 무슨 조선 시대 사대부도 아니고.
하지만, 월드컵은 다르다.
월드컵에서 나오는 공인구, 유니폼, 축구화 등등. 아주 불티나게 팔린다.
때문에, 기업들은 상당한 투자를 진행했고 자연스럽게 월드컵이 다가올 때는 전 세계의 관심은 모조리 월드컵과 축구에 쏠렸다.
여기에 잉글랜드와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는 한번 더 ‘그깟 공놀이’로 활활 불타오르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나,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다시금 반전되는 결과까지 불러올 정도의 대사건.
바로, 유해진과 성소하 감독의 결합.
대한민국의 미디어는 연일 포츠머스의 상황을 다루며 기사를 쏟아내었다.
-젊은 천재, 성소하 감독과 월드컵 4강의 주역, 유해진 선수와의 결합.
-‘국민구단’으로 우뚝 선 포츠머스.
-천재들이 만나 어떤 핵융합을 일으킬지 국민의 모든 관심은 이제 잉글랜드 남쪽의 작은 도시에 쏠려.
-월드컵이 다가온 지금. 유성 조합의 발족까지 합쳐져 침체하였던 사회 분위기가 축구로 다시 활기를 띠다.
-축구계에 유성이 떨어지다. 유해진과 성소하. 이 둘이 만나 일으킬 시너지는 감히 상상도 되질 않아.
하루도 쉬지 않고 수십 개의 기사가 범람했으며, 지상파, 케이블 가리지 않고 이 놀라운 소식에 대한 특집방송을 방영했다.
당연하게도 온라인도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제2의 해외 축구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
-와. 미쳤다. 한국인 감독에 한국인 단장. 완전히 한국 구단이네.
-이제 한국인 선수만 있으면 삼위일체를 완성하는구나.
-10년째 포츠머스 팬입니다.
-15년째 포츠머스 팬인데요, 정말 기대되네요. 빨리 프리미어 리그까지 승격하자!
└지랄한다. 현지인이세요? 한반도에 사는 인간이 포츠머스를 10년 전부터 빨았다고? 어이가 없어서.
-너무 노골적인 한국 마케팅 아닌가?
-포츠머스의 구단주 리처드 맥닐이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아 보이네요.
긍정적인 여론이 압도적!
소하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혔다.
그리고, 리처드 맥닐 구단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서울 명동에 포츠머스 상점이 생길 예정. 빠르면 한 달, 길면 두 달 안에 입점이 완료된다고 발표했습니다.
-포츠머스의 중계권을 사기 위한 3사와 케이블 방송사의 눈치싸움.
-유럽 유통업계의 큰손, 리처드 맥닐. 그는 누구인가?
과거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건만. 돈 냄새가 나자 소하가 혀를 내두를 만큼 빛살 같은 속도로 필요한 일들을 바로바로 진행했다.
이로써 포츠머스는 엄청난 자금과 관심을 획득. 리그1, 3부리그에 속한 팀 중에서 기초체급이 가장 커졌다.
거의 챔피언십 리그에 속한 팀과 엇비슷할 수준.
기초체급은 팀의 저점을 높여주는바.
포츠머스에는 정말 너무나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소하 개인에게도 매우 좋은 일.
요즘 가장 주목받으며 유일한 20대 잉글랜드의 감독인 소하. 그의 약점은 단 하나였다.
비선출.
이 비선출이란 딱지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 무리뉴 감독도 선수들에게 선출도 아니면서, 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유해진이 단장으로서 소하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비선출로서의 약점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즉, 소하의 이적 시장에서의 행보에 날개가 달렸다는 뜻. 이래저래 권력을 다시 회복하려는 브라이언의 노림수는 완벽히 실패했으며 오히려 포츠머스와 소하에게 힘을 실어준 격이 되어버렸다.
2.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빌어먹을 프런트에서는 브라질로 직접 가서 월드컵을 관람해 보는데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유는 뻔할 뻔 자.
월드컵이야말로 전 세계 스카우트들이 가장 내리기 바쁜 시기 아니던가. 가서 쓸만한 선수가 없는지 보고 오라는 뜻.
하지만 내 선택은 빠른 거절.
솔직히 내가 월드컵에 뛰는 국가대표 선수를 봐서 뭐 하겠는가. 어차피 그림의 떡인데. 암만 변방 국가라도 3부리그에 올 국가대표 선수는 없다.
그리고 모두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있을 때, 유망한 선수를 쓸어 담자. 이것이 바로 나의 계획이다.
“감독님! 휴가도 반납하시고 근무하신다니. 이 몸은 또다시 감탄했습니다.”
밀러 아저씨 두둥등장.
딱히 따로 연락해 부르지는 않았지만 예정된 브라질 여행도 가족만 보내고 출근 도장을 찍었다.
“진짜 오시다니. 그냥 월드컵이나 보시지 그랬어요.”
“허허.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지금 한참 엄청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인데요.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시점 아닙니까? 저도 한 손 거들어야죠.”
“···.”
이 아저씨가 머리에 총을 맞았나? 왜 이렇게 바른 소리만 하시지. 잠깐. 가족들은 모두 브라질로 보내고 혼자 남았다고?
가족 구성원 중에서는 분명히···.
“···혹시 부인이랑 싸우셨나요?”
“···?!”
움찔. 밀러 아저씨는 학원 튀고 피시방 간 걸 엄마한테 걸린 아이처럼 소스라치게 놀란다.
역시는 역시 역시군.
“이야. 보기보다 사악하신 분이네요. 친정 보내기보다 더 확실한 해외여행 보내기를 진짜 실천하는 사람이 있었네요.”
친정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해외는 함부로 돌아올 수 없는 법. 이거 내가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 이미 도움을 준거잖아.
“오, 오햅니다. 전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으로서 구단에 이바지하고자···.”
“됐네요. 하여튼 고마워요.”
난 허둥지둥, 궁색한 변명을 내뱉는 밀러 아저씨의 말을 자르며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날 도와주기 위해 휴가를 반납한 거 아니겠나.
브라이언과 그 일당들이 호시탐탐 날 방해하는 와중에 이렇게 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허허. 감독님에게 고맙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네요. 그럼 뭐부터 할까요?”
부끄러운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쓱 거리는 밀러 아저씨. 이런 사람이 과거에는 왜 그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먼저 영입계획에 앞서 유소년 선수들 자료 좀 봐야겠네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쓸만한 유스를 올리고 나서 보충을 해야죠.”
“쓰읍. 불안한데요. 왜 자꾸 맞는 말만 하시는 건지···. 건강하신 거 맞죠?”
“흐흐.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말투를 들어보니 마음에 드신 선수가 있는 듯한데요.”
“···.”
이제는 내 속마음까지 얼추 맞춘다.
정말 무시무시한 진화 속도이다.
모 게임의 여주인공처럼 휴가 기간에 고치 속에서 개조라도 받으셨나?
“한 선수가 있긴 하죠.”
밀러 아저씨의 말처럼 유스 중에서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긴 하다.
과거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 그냥 다른 구단에 넘겨버렸던 선수.
“아담 웹스터.”
아담 웹스터.
우리 포츠머스의 성골 유스다.
그리고 훗날 프리미어 리그 좀 봤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한 선수이기도 하다.
브라이턴에서 상당히 이목을 끄는 선수로 성장했으니까.
플레이 스타일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큰 키. 빠른 발. 훌륭한 발밑.
현대축구의 수비수에게 요구하는 모든 능력이 상당히 준수하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선수는 아니다.
수비를 조금 못한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튀어 나가 적극적으로 경합을 노리는 스토퍼형 선수라, 뒷공간을 만주벌판처럼 넓게 내준다는 점.
꽤 큰 단점이다.
“역시. 감독님의 사람 보는 눈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웹스터 그 녀석은 이미 주전으로 뛸 준비가 되었어요.”
“하하. 뭘요. 밀러 아저씨가 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해주셨기 때문이죠.”
솔직히 조금 양심에 찔린다.
과거에는 별로 관심도 주지 않고 팔아버린 선수였으니까.
변명하자면, 먼저 당시 내가 이끌던 포츠머스의 전술은 수비적이었다.
이 말은 즉, 수비를 못 하는 수비수를 사용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
뒷공간은 쭉 내리고 플레이해야 하는데 앞으로 튀어 나가는 선수라니? 누가 쓰겠는가. 1부리그 선수들도 감독의 전술에 맞지 않으면 버림당하는 업계다.
아무튼 그렇다고. 절대 내 안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웹스터에게는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세요. 괜히 딴마음 먹고 다른 구단으로 나를 생각하지 못하게끔.”
“넵.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유스는 그다지 눈에 띄는 선수가 없는데, 밀러 아저씨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몇몇 눈에 띄는 친구들은 있지만 1군에 들어올 수준은 아닙니다. 우리 1군 선수들이 워낙 짱짱하지 않습니까? 녀석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죠. 허헛.”
하긴. 지금 우리 구단의 1군은 탈 리그 1급이다. 이름값만 보자면 말이다. 유일한 약점은 얇은 선수층일 뿐.
“그리고, 유소년 좀 채워 넣어야 하겠는데요? 15명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죠. 작년만 해도 법정관리 받느라 U21과 U18이 날아가 버린 게 컸습니다.”
“후우. 일이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건 또 언제 꽉꽉 채워 넣는단 말인가. 유소년 선수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2군 리그를 뛸 U21 선수가 10명도 없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U21은 팀 내 유망주들이 성인 무대에 진입하기 전 한계를 시험해 보는 곳이지만 다른 중요한 업무도 맡고 있다.
바로, 부상 당한 선수의 재활.
부상을 당한 선수들의 경기 감각은 자연스럽게 뚝 떨어진다.
그리고 경기 감각이 떨어진 선수를 바로 경기에 내보낸다는 건 매우 좋지 못하다.
실력도 제대로 뽐내지 못할뿐더러,
또다른 부상의 위험도 컸으니까.
그래서 감독 대부분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1~3경기 정도는 2군 리그에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도록 지시했다.
이토록 중요한 2군 리그에 선수 부족으로 참가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 한시라도 빨리 수를 늘려야 한다.
“그건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1군 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제가 감독님 곁을 지키는 이유 아닙니까?”
“아닌데요.”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맞다.
밀러 아저씨는 전술적인 부분을 뺀다면 다른 능력치는 준수한 편.
행보관 같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곁에 두면 궂은일은 할 필요도 없어서 좋다.
어찌 보면 나와 가장 잘 맞는 수석코치일지도.
“헉! 그, 그럼?!”
“1군에 도움이 안 된다니요. 아저씨 덕분에 제가 1군에 집중할 환경을 가지게 된 거잖아요.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이번 시즌 FA 컵은 아저씨가 지휘할 테니까!”
“오오. 아니지. 잠깐. 이번에도 FA 컵을 포기하시려고요?”
“당연하죠. 리그컵은 모르겠지만.”
“···.”
무척 신이 났던 밀러 아저씨는 순간 굳어버린다. 보통은 리그컵을 포기하고 FA컵을 노렸으니까.
정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 같은 모습에 할 말을 잃은 거겠지.
“다 생각이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이거부터 읽어보세요.”
품에서 미리 준비해둔 종이 하나를 밀러 아저씨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읽어보시면 알 거예요.”
“흐음. 연애편지는 아닌 거 같고.”
“···.”
제가 미쳤습니까? 아저씨한테 연애편지를 주게?
“허. 이, 이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은 밀러 아저씨. 상당히 당황한 듯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때요?”
“충격적이군요. 감당되시겠습니까?”
내가 밀러 아저씨에게 건네준 종이는 이름하여, ‘살생부’
영어로는 블랙리스트다.
이번 시즌 팔아버릴 선수의 목록이 담긴, 어찌 보면 상당히 기밀을 요구하는 종이다.
외부로 유출된다면 큰 평지풍파가 날 확률이 높다. 아니, 확실히 일어나겠지.
“너무··· 많이 쳐내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특히나 지금 후보 수비수들은 전부 다 적혔네요.”
“수비수는 넉넉하잖아요.”
부동의 주전 케빈 도슨과 찰스 말로리.
여기에 아담 웹스터까지.
주전급만 3명이다. 그러니 당연히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리그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 않습니까?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물론 3명으로는 부족하죠.”
“호오. 그 말씀은 영입을···?”
“당연하죠. 꽤 재미있는 선수예요.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이 세 가지 포지션을 모두 뛸 수 있는 선수죠. 나이도 어리고, 잠재력도 뛰어나요.”
내 말에 밀러 아저씨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머릿속의 데이터를 검색해본다. 하지만,
“멀티 포지션이 되는 선수야 꽤 많지만, 감독님의 기준에 부합할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는 없는 거 같은데요···?”
“그야 당연하죠.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 유스예요.”
“네? 어, 어디 팀입니까?! 대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빨리 말해주세요!”
내 멱살을 잡을 기세로 빨리 대답을 내놓으라는 밀러 아저씨. 하극상을 겪고 싶지 않으니 후딱 말해주자.
“데클란 라이스. 첼시의 유소년팀 선수죠.”
데클란 라이스.
훗날 우리 팀의 칼빈 필립스와 함께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허리를 맡아주는 뛰어난 선수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유계약 신분이었다.
< 063화. 14-15시즌 이적 시장. (4)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