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2화. 14-15시즌 이적 시장. (3) >
1.
회의장은 발칵 뒤집혔다.
그만큼 소하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의 무게감은 남달랐다는 뜻.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무게감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유해진?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이나 뛴 아시아 최고의 선수 아닙니까? 그 선수가 은퇴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죠.”
“호오. 과연. 그 유해진이라면 선수단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성 감독님과 유해진이라. 아시아에서 돈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착각이 드는군요.”
먼저, 긍정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합당했으며 열정적이었다. 눈동자가 파운드 스털링, 영국 화폐로 바뀌었을 정도!
스타 선수 출신이라는 과거.
상업적 이익.
이 두 가지 조건만 봐도 포츠머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인선이었으니까.
“흐음. 아직 은퇴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선수 아닙니까? 당장 바로 다른 일을 할까요?”
“선수로서라면 구단의 모든 보유금액을 투자해서라도 영입을 추진했겠지만, 단장으로서는···. 의문이 많네요.”
“자격증 하나 없는 사람을 단장으로 바로 임명하기엔···.”
부정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조심스러우며 타당한 반론을 제기했다.
바로, 행정가로서 능력이 미지수라는 점. 고작 일주일 전에 은퇴한 선수라 자격증 하나 없을 텐데, 단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겠냐는 매우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긍정과 부정.
둘 다 일리 있는 의견.
이런 난제에 의견이 맞물릴 땐, 최고 결정자인 구단주의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리처드 맥닐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는 중이었다.
‘성 감독이 재미있는 카드를 꺼내 들었군. 그리고 너무나도 매력적이야.’
리처드 맥닐.
그는 기본적인 근본이 사업가다.
아침부터 밤까지 어떻게 하면 이익을 창출할지 고민하는 인물.
이런 그에게 소하와 유해진의 조합은 거부하기 힘든 상업적 카드였다.
‘우리 구단이 이들을 모두 보유하게 된다면, 한국 시장은 우리의 것과 다름없다.’
한국. 대한민국.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지만 시장으로서의 가치는 절대로 무시하지 못한다.
GDP만 해도 세계 12위인 작지만 강한 나라!
이 나라의 모든 축구팬들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돈을 말 그대로 갈퀴로 긁어모을 거다.
‘내 본업의 확장을 위한 좋은 발판이 되기도 한다.’
리처드 맥닐의 유통업은 잉글랜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손을 뻗치는 중이었으니까.
포츠머스를 인수한 여러 이유 중에서 ‘본업의 홍보’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유해진의 단장 임명은 동아시아지역에 뿌리를 내릴 완벽한 기회.
돈 먹는 하마냐,
황금알을 낳는 거위냐.
선택은 쉬웠다.
“허허. 놀라운 인사로군. 매우 흥미로워. 자네에게 직접 유해진을 선임하려는 이유를 듣고 싶군.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리처드 맥닐. 그는 소하에게 좀 더 자세한 연유를 물었다. 소하라면 그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를 이해시켜줄 테니까.
그러자,
구단주의 마음이 어느 정도 기울었다는 걸 눈치챈 소하는 자신감 있게 열변을 토한다.
“여러 이유가 있죠. 먼저, 알다시피 인기 선수 출신 단장은 선수단에 큰 도움을 줍니다.”
수많은 스타가 은퇴 후 축구단 단장으로 진로를 정하며, 많은 구단이 그들을 원한다.
행정가로서 미지수인 그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바로,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 때문.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밟아본 그 경험은 누구에게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는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저희 선수들에게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죠.”
“그렇지. 매우 동감하네.”
“또한, 포츠머스라는 연고지는 작습니다. 남쪽 바닷가에 자리를 잡은 해산물 비린내 나는 작은 동네죠.”
소하도 포츠머스라는 도시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실을 짚어줘야 할 시간.
“크흠···.”
“큼큼. 사, 살기는 좋은 동넵니다.”
물론, 대부분이 포츠머스에서 거주 중인지라 조금 불편해한다. 사실이라 반박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연고지에 얽매인다면 성장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에요.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는 세계화를 추진해야 하며, 유해진의 단장 선임은 이 계획의 중추적인 시작점이 될 겁니다.”
소하가 꾸준히 제창하는 세계화.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혹시 해서 말하지만, 근처에 런던이라는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가 존재하는 덕에 우리의 세계화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세계화. 이건 논의할 가치도 없는 우리가 무조건 믿어야 할 진리입니다.”
매년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찾는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 세계 최고의 관광지에서 포츠머스는 대략 7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즉,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방문하기 쉽다는 이야기였다.
“허허허. 바로 그 걸세! 자네의 머릿속을 파헤쳐 보고 싶군. 도대체 어디까지 수를 계산한 건가?!”
박장대소를 하며 큰 목소리로 외치는 맥닐 구단주. 그의 기대대로 소하는 서서히 모두를 이해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장으로서의 능력은 미지수입니다. 그를 무턱대고 선임하기엔···!”
오직 브라이언만이 발작하듯 반론을 제기했을 뿐. 하지만 물 밖에 나온 생선처럼 맥아리 하나 없는 발버둥이었다.
“아니요. 이미 스타 선수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단장으로서 충분하죠. 흔한 국가대표도 몇 번 배출해보지 못한 작은 구단이니까요. 끽해야 저희 아버지나, 후보 골키퍼였던 데이비드 제임스. 이 정도만 있을 뿐이잖아요? 이렇듯 경험이 전혀 없는 구단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경험만은 ‘전’ 선수라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도움이 될 거예요.”
FIFA 센추리 클럽.
A매치에 100회 이상 출전한 선수들의 명단. 매우 영광스러우며 들어가기 힘든 자리다.
“그리고 우리 구단은 어떤 구단이죠?”
“···.”
“···.”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소하가 직접 답을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성장’하는 구단이에요. 외부에서 비싼 단장을 영입하기보다는 장래가 밝은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성장하는 것이 구단의 기조와도 어울리죠. 이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함께 실천해나가야 하는 일이고요.”
거침없는 폭풍 같은 열변을 마무리하는 소하. 그리고 그의 말은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
“!!”
“그렇지.”
“옳은 말입니다.”
“그렇죠. 우리는 성장기였었죠.”
소하의 열변에 압도된 회의장!
그의 활화산 같은 주장에는 힘과 의지가 묵직하게 담겨,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심지어 계속 반론을 제기하던 브라이언마저도 입도 뻥끗하지 못한다.
“허허. 그렇군. 그렇고말고. 우린 성장 중이었지. 그러니 함께 성장해나갈 유망한 인재가 우리한테 어울리지. 좋네. 유해진을 우리 단장으로 영입하기로 하지.”
부드러운 눈길로 소하를 바라보던 리처드 맥닐, 포츠머스 구단주. 그는 주저 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나저나, 유해진과 합의는 이미 끝난 건가? ”
리처드 맥닐은 인자한, 흡사 자신의 뛰어난 손자를 보는듯한 얼굴로 소하에게 물었다. 당연히 말을 맞췄겠거니 생각하며 믿음을 보낸다.
하지만.
“어···. 이제 말해봐야죠.”
“···.”
“···.”
뒤통수를 긁으며 당당하고 뻔뻔하게 대답하는 소하. 순간, 장내는 언제 뜨거웠냐는 듯 차갑고 싸늘한 한기가 내려앉았다.
2.
회의가 끝난 건 점심시간쯤.
난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주소록을 뒤졌다.
한국과 대략 시차가 9시간 정도니 지금 유해진 선수에게 전화하기엔 딱 좋다.
-사흘 내로 결과를 내오게! 날짜 안에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정말 크게 실망할걸세!
구단주의 할배의 성난 고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내 라인에 선 중역들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비행기 안에서 주고받은 번호로 전화를 거니, 얼마 되지 않아 유해진 선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성소하 감독님. 잉글랜드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역시, 열정적인 분이세요. 쉬기엔 배가 고프셨을 테니까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유해진 선수. 아니, 이제 은퇴했으니까 유해진은 상당히 날 반겼다. 전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한가득하다. 이게 인덕 아닐까?
“먼저, 은퇴 발표 기자회견은 저도 라이브로 봤어요. 참 뭐랄까. 마음 한쪽이 공허해지는 기분이었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그간의 노고에 정말 감사드려요.”
“성 감독님께서 이렇게 슬퍼하실 줄 알았으면 조금 늦출 걸 그랬나 봅니다.”
“하하. 그러니까요. 제팀에서 토할 때까지 뛰셨어야죠.”
정말 미친 듯이 주전으로 박았을 텐데.
감독 사무실로 찾아와 제발 좀 선발로 그만 써달라고 빌 때까지 말이야.
그래도 선발로 썼겠지만.
“하하. 너무 진심이라 무서울 정도네요. 한참 내리기 바쁘실 거 같은데 어쩐 일이십니까?”
“제 성격을 아실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유해진 ‘전’ 선수. 이제 축구행정가의 길을 걸으실 거죠?”
“그, 그걸 어떻게···?!”
깜짝 놀라는 유해진. 몇 번 인터뷰에서 언급은 했지만, 아직 자신마저 확실히 결정하지는 못했던 진로를 정확히 짚자 믿을 수 없어 한다.
미래에서 돌아왔다고 말할 순 없으니 일단 준비한 변명으로 대신하자.
“전 감독이니까요. 전에도 말했듯이 선수의 마음을 잘 아는 편이죠.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네요. 성격과 그간 했던 발언들을 종합하자면 결과를 도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
“게다가 같은 업계 사람 아닙니까. 대중들이 아는 것보다는 많이 알죠.”
“대단하시군요. 단편적인 정보였을 텐데요. 맞습니다. 전 축구행정가의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감독같이 선수들을 이끄는 건 조금 성격에 맞지 않아서요.”
“원래 직업이란 성격에 맞는 걸 골라야죠. 그래서 말이죠,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해요.”
“무슨···? 아. 설마?!”
유해진은 내 의도를 단박에 알아차리고선 매우 놀라워한다.
하긴, 이 사람이야말로 천재.
이 대화에서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다.
‘외모 디버프지.’
순박한 얼굴에 가려져 노력파라고 평가절하당하는 유해진. 하지만 그는 천재 중에서도 천재 아니던가. 축구의 불모지인 아시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은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나 소나 노력하면 다 되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맞아요. 저랑 일 하나 하죠.”
3.
유해진은 소하와 통화를 끊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포츠머스의 축구단 단장 자리라···. 솔직히 매우 탐나는 자리야.’
소하가 제시한 포츠머스 단장 자리.
여기에 필요한 FIFA 마스터 코스 과정과 기타 모든 교육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야말로 매우 매력적인 제안.
행정가로서 성장하기에도.
행정가로서 경력을 쌓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무만큼 도움이 되는 건 없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프로구단이라면 행정가로서의 첫걸음으로는 최고의 장소야.’
원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려고 했다. 전문대학교 수료부터 초급 FIFA 라이선스를 따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 후, 한국 내 구단부터 스텝을 밟으려고 했건만. 순식간에 몇 단계나 뛰어넘을 기회였다.
‘생각할 시간은 짧다.’
소하가 준 유예기간은 단 3일.
이는 소하가 리처드 맥닐에게 받은 시간과 똑같다.
이렇게 큰일을 결정하는 데 고작 3일을 준 소하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안 되겠어. 그분에게 의견을 구해보자.’
결국 ‘스승’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는 유해진.
그의 스승은 하나같이 대단한 명사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스승은 현대 축구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오, 유. 어쩐 일인가? 자네가 은퇴했다는 소식은 들었다네. 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어.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에 은퇴하셨을 땐 정말··· 말로 형용하기 힘들 만큼 아쉬웠습니다.”
작년. 즉, 2013년.
2013년에 은퇴한 유해진의 스승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포포투 선정, 올 타임 넘버 1 감독.
헤이젤 참사로 리그 순위 29위까지 떨어졌던 잉글랜드 리그를 부활시킨 구원자.
트레블을 달성하며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까지 내려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감독.
바로,
Sir.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내 은퇴가 자네의 은퇴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리라 믿고 싶네.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전 무릎이 좋지 않습니다. 이젠 그만둬야 할 때였습니다. 남은 제 인생을 위해서로 말입니다.”
-그렇지. 정말 아쉬워. 자네의 무릎만 멀쩡했다면.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을 텐데. 그나저나, 무슨 고민이 있나? 단순한 안부 전화는 아닌 거 같네만.
“···은퇴하셨어도 변함없이 예리하시군요.”
유해진은 혀를 내둘렀다. 수하기 너머의 목소리만 듣고 심리상태를 정확히 꿰뚫어 보다니. 역시 당해낼 수 없는 거인이었다.
“맞습니다. 한 가지 고민 탓에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말해보게나.
“혹시···. 성소하라고 아십니까? 포츠머스의 젊은 감독입니다.”
유해진이 운을 떼자 퍼거슨 경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바로 말을 받는다.
-그 친구 말인가? 허허. 어느 정도 무슨 고민인지 알겠네. 물론, 내가 자네의 선택을 결정해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말해주겠네.
“경청하겠습니다.”
-미스터 성은 무척 재미있는 젊은이야. 내가 눈여겨보는 중인 친구지. 그 나이 때의 나를 아득히 초월한 뛰어난 인재라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
“···!!”
유해진은 손이 덜덜 떨리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전설적인, 맨체스터의 신이라고까지 불리었던 감독이 이렇게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니.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퍼거슨 경마저 높게 평가하는 젊은 천재가 자신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유해진의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선수 생활 막바지에 들면서.
은퇴를 선언하면서.
꺼지기 직전이었던 가슴의 불꽃.
재가 되어 흩날리려 했지만 현역 시절만큼 다시금 활활 타오른다.
-선택은 자네의 몫이네. 내가 확언해 줄 수 있는 건 미스터 성과 함께한다면 재미있을 거라는 걸세.
“···알겠습니다. 조언,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허허허. 자네의 선택이 무엇인지 듣지 않아도 알겠군. 그럼, 조만간 런던에서 한번 보세나.
뚝. 전화가 끊어졌지만, 유해진의 심장박동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심장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을 거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 062화. 14-15시즌 이적 시장. (3)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