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1화. 14-15시즌 이적 시장. (2) >
1.
축구구단은 크게 보자면 두 가지 부서로 나뉜다.
하나는, 축구단.
하나는, 프런트.
스포팅 디렉터, 한국말로 단장은 두 개의 부서 중에서 축구단의 최고 상급자를 칭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초창기 프로축구에는 없던 직급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감독 혼자서 모든 것을 해치울 수 있을 만큼 일이 많지도 않았고 세분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점점 프로리그에 돈이 몰리며 업무가 방대해지자, 감독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감독의 업무를 나눠서 맡아줄 스포팅 디렉터가 탄생하게 된 것.
감독은 훈련과 경기에만 집중.
나머지 축구단 내의 일들을 도맡아 하는, 현대축구에 걸맞은 분업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직책이다.
“사장님이 이렇게 저를 신경을 써주시는지는 몰랐네요. 하.하.하.”
일단은 방긋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소하.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욕설을 내뿜고 있다.
‘씨발 개같은 대머리 새끼.’
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골백번도 더 죽였을 정도.
“감독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브라이언이 뻔뻔하게 묻자 소하는 표정 관리에 전력을 다한다.
‘싯팔. 겉으로만 보자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의견이다. 구단이 커지는 만큼 저번 시즌처럼 소하 혼자서 주먹구구식으로 축구단을 운영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브라이언이 이번 제안을 구단주 앞에서 제창한 건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단장. 스포팅 디렉터. 이 자리는 감독과 업무를 분담하는 역할이자 나의 상급자. 즉, 내 권한을 축소하기 위함이지. 벌레 같은 새끼.’
감독도 결국은 월급쟁이이자 중간관리자에 불과할 뿐.
이런 상황에서 브라이언의 추천으로 외부에서 감독의 상급자인 단장이 들어온다면?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사사건건 방해하며 소하의 권한을 축소하고 자기들의 힘을 키워나갈 거다.
대표적인 폐해는 지금 소하가 손아귀에 꽉 움켜쥔 ‘영입 권한’도 단장이 들어온다면 절반을 뚝 떼줘야 한다.
“흠. 글쎄요. 전 앞으로도 ‘지금처럼’ ‘혼자’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데요.”
소하는 일단은 가벼운 거절의사를 내비쳤다. 특별히 지금과 혼자를 강조해서 말이다.
요컨대, 지금도 혼자서 잘하는데 왜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
대책을 세워두긴 했지만, 일단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하지만,
“흠. 괜찮은 의견이군.”
구단주인 리처드 맥닐이 수긍한다.
쩐주의 말은 신의 말.
이로써 새로운 단장의 영입은 확정된 것과 다름없다.
‘이러기에요?’
째릿. 소하는 도끼눈을 뜬 채 구단주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허허. 평생 자네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자네는 너무 힘이 강해졌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긴 어린 표정을 짓는 리처드 맥닐. 그리고 소하는 이 거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내 힘이 너무 강해진 걸 경계하는군. 하긴. 지금 구단 내 권력 싸움은 싸움 자체가 성립되질 않으니까.’
몇몇 중역들이 브라이언의 편에 섰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별거 아닌 수준.
일반 직원까지 합치자면 9:1 정도의 비율이 나올 거다.
여기서 9는 당연히도 소하.
리처드 맥닐은 중간관리자자 감독인 소하의 힘이 너무 강해진 것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전제정치는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하시다니. 후후.’
전제정치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종대왕 같은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연산군 같은 예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정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소하가 맛이 가서 폭주한다면.
기껏 살려놓은 구단이 잿더미로 변하는 데에는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브라이언, 이 대머리 새끼. 다른 건 몰라도 정치적 감각 하나만큼은 뛰어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형국.
결코 이길 수 없는 형세.
한발 뒤에 절벽이 기다리는 상황.
그에게 남은 유일한 살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길로 뛰어들었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외부의 힘을 빌리려는 수작질을 부리다니. 정말 싫어하지만, 박수가 절로 쳐질 정도로 훌륭한 대처다.
소하가 브라이언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똑같이 나왔을 거다.
“흐음. 구단주님 뜻까지 그러시다면야. 저도 찬성할게요.”
한발 물러서는 소하. 구단주의 의견까지 정면으로 반박하며 의지를 관철하기엔 얻는 게 적다. 게다가 이미 대책도 세워뒀지 않은가.
정면돌파.
소하가 싫어하지 않는, 오히려 좋아하는 방식이다.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성 감독님. 구단이 커지기 위해선 각자의 장소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하, 하. 그렇고 말고요.”
브라이언의 입에서 저딴 말이 나오다니. 소하는 그저 기가 찼다. CEO란 자리가 정치놀음이나 하는 자리란 말인가? 개소리가 부쩍 늘었다.
“허헛. 성 감독이 이렇게 쉽게 승낙해주다니. 구단주로서도 기쁘다네. 그렇다면, 브라이언 자네가 말을 꺼냈으니 이미 후보자를 정해놨을 거 같네만? 후보자 선정까지 처음부터 시작하면 일이 늦어질걸세. 그건 매우 좋지 않지.”
후보자를 정해두지도 않고 이런 일을 벌였다면 각오하라는 은은한 압박!
물론, 브라이언은 이쪽 방면에서는 상당한 프로였다.
“네. 준비도 없이 일을 추진한다면 자리를 내놓아도 할 말이 없겠지요.”
“그렇지. 그럼 자네가 추천하려는 후보는 누구인가? 말을 듣자 하니 구단 외부의 인사를 점찍어 둔 듯 보이는데.”
리처드 맥닐의 물음에 브라이언은 싱긋 웃으며 즉답한다.
“데이브 로버츠. 현재 AFC본머스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인재입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중역들은 감탄성을 내뱉는다.
“아. 그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요.”
“상당한 성과를 낸 단장 아닙니까? 사장님의 인맥이 대단하군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4년 만에 본머스를 챔피언십 리그로 올려둔 프런트의 디렉터 아닙니까?”
“엄청난 인맥이로군요.”
소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유명인이 등장하자 꽤 놀란다.
‘호오. 이 새끼가? 벌레 같은 새끼가 발 하나는 더럽게 넓구만.’
데이브 로버츠라면, ‘에디 하우’ 감독이 이끄는 AFC 본머스의 디렉터 아니던가.
AFC 본머스.
어찌 보면 포츠머스의 선배 격 되는 구단이다.
포츠머스와 마찬가지로 재정난에 빠져 퇴출 위기까지 갔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서포터들이 모금까지 했던 것까지 똑같다.
심지어 갑부 구단주가 위기에 빠진 팀을 인수를 한 것도 판박이다.
물론, 이쪽은 러시아 석유 재벌이라 부임 첫해부터 어마어마한 지원을 해줬지만 말이다.
“본머스의 구단주 ‘막심 데민’이 허락을 하겠나?”
“물론입니다. 이미 우리 쪽이 결정을 내린다면 바로 이적을 단행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태입니다.”
“흐음. 그것참 묘하군. 막심 데민, 그 러시아인은 사람 욕심이 많다고 들었네만. 쉽게 놓아주다니 말이야.”
“···재계약이 난항이기 때문일 겁니다.”
간신히 사실을 실토하는 브라이언.
대충 얼버무리기엔 구단주는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흐음. 상당한 급료를 요구했나 보군. 그것은 우리 구단에 오더라도 변하지 않겠지.”
번쩍. 리처드 맥닐이 눈을 부릅뜨며 정곡을 찔렀다.
그리고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재정 상황이 상당히 좋은 상태입니다. 그의 급료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끄덕. 끄덕.
한 사람을 제외하고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비싼 주급을 요구한다 해도 지금의 포츠머스는 충분히 낼만 했다.
‘지랄하네! 미친 새낀가.’
오직 한 사람, 소하만이 불같이 분노했을 뿐.
‘진짜 폐급새끼가 따로 없네. 간신히 재정 상태를 좋게 만들었더니 당장 필요 없는 단장 영입으로 모조리 꼬라박으려 하네. 개 또라이새끼가 따로 없어.’
진짜 마음 같아선 저 느글느글한 면상을 팔꿈치로 찍어버리고 싶은 소하. 간신히 진정하며 숨을 고른다.
“이건 꽤 고민할 문제로군.”
리처드 맥닐도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훗날이면 몰라도 당장은 소하 혼자서도 감당이 되는 직책.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기엔 아깝다.
게다가 지금도 큰 금액을 원하는 작자가 훗날에는 돈을 적게 요구하겠는가?
성공하면 할수록 엄청난 돈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가성비가 너무나도 좋지 않다.
“나 혼자서는 결정하기는 꽤 심오한 문제라고 본다네. 따라서, 실무자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니 투표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나?”
리처드 맥닐 구단주는 한발 물러나며 결정을 중역들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난제를 떠안은 중역들은 묵묵부답. 솔직히 어찌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흠. 성 감독의 생각은 어떠한가. 자네도 엄연히 구단의 핵심이니까 말일세.”
잠시 한숨을 내쉰 리처드 맥닐은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의 소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속사포처럼 튀어나오는 소하의 대답. 묻지 않았다면 대단히 실망할 뻔 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저야 좋죠. 민주적인 구단 운영. 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죠.”
“역시 그렇지.”
“하지만 말이죠···.”
“음?”
소하가 씨익 웃으며 말을 늘이자 맥닐과 다른 중역들은 궁금증을, 브라이언은 불안함을 띤 얼굴이 된다.
한껏 브라이언의 불안함을 음미한 소하는 미리 세워두었던 대책을 꺼낸다.
“저도 단장 자리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요.”
“···!”
“엇?!”
뒤통수를 대형 해머로 한 대 맞은 듯이 눈을 부릅뜬 브라이언이 재빨리 입을 연다.
“물론, 성 감독의 능력은 세상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허나, 축구계 인맥은 전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력을 넘어서 경험의 문제이니까요.”
“흐음. 그건 그렇죠.”
“인맥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었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맥이란 쉽게 만들기 어려운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나, 소하에게는 이 정도 반응은 예상 범위. 미리 준비해둔 반론을 꺼낸다. 아니, 꺼내려 했지만 먼저 선수를 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브라이언. 자네는 잊었는가? 이미 성 감독은 훌륭한 인선으로 구단에 굉장한 이익을 주었다네.”
바로, 리처드 맥닐이 소하보다 먼저 앞으로 나선 인물이었다.
“그게··· 무슨···?!”
“김용한. 덩치가 아주 큰 무척 뛰어난 능력을 지닌 청년일세. 우리 구단의 자랑 중 하나지.”
“그, 그건···.”
브라이언은 감히 반박하지 못한다.
소하라는 빛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구단 관계자라면 성공의 핵심 인물 중 무조건 꼽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를 부정한다면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꼴. 브라이언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김용한 영양 총괄은 정말 뛰어난 청년이지. 자네도 알지 않은가. 포츠머스의 식단 시스템은 타 구단에서도 배워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말일세.”
알다마다. 거액을 지급하며 식단을 공유하자는 구단까지 속출할 정도였다.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이 친구는 성 감독의 추천으로 구단에 입사했다네. 즉, 감독의 ‘인맥’이라는 거지. 이것 하나만으로 성 감독의 인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는 없다고 본다네.”
“그, 그렇습니다.”
반박할 부분이 단 한 개도 없는 정론에 마지못해 긍정하는 브라이언.
이미 살아있는 증거가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 증거는 실력을 늘리기 위해 미국으로 가 공부를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었으니까!
“브라보. 역시 구단주님의 시야는 넓으시군요. 제가 나서기도 전에 팩트를 날려주시다니. 다시 한번 존경스럽네요.”
소하가 물개박수를 치며 말을 잇는다.
“모두 귀는 멀쩡하시니까 제가 ‘인맥’에 문제가 없음은 아시겠죠?”
끄떡. 끄덕.
구단주까지 변호한 마당에 브라이언의 편을 들 사람은 없었다.
제아무리 브라이언 편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축구계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람입니다.”
꿀꺽. 모두가 소하의 입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 본머스의 디렉터와 비견될 만한 사람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유능하기 짝이 없는 젊은 감독이 거론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심지어 그를 영입한다면 조금 전에 발표한 이번 시즌 수입을 상회할지도 모르죠. 엄청난 스타 선수 출신이니까요.”
2배의 수입도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여기서 더 많은 상업적 이익을 거둔다?
절로 눈이 돌아간다.
이미 돈으로만 보자면 브라이언이 제시한 단장과는 비교조차 어렵다.
“심지어 인성마저 겸비한 완벽한 인물이에요. 어때요? 궁금하지 않나요? 후후.”
“제길. 성 감독. 60초 뒤에 결과를 공개하는 MC처럼 늘이지 말고 빨리 알려주게나! 한 번만 더 시간을 끌면 이번 시즌에 자네의 재계약은 없다고 약속하네!”
소하가 질질 끌자 리처드 맥닐이 보기 드물게 성화를 내며 재촉했다.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는지. 자기도 모르게 체통을 잃고 절로 분통을 터뜨릴 정도!
“힉. 그, 그건 안 되죠. 제 주머니 사정은 여유롭지 않으니까.”
짐짓 겁을 먹었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는 소하. 구단주의 미간이 좁아지자 재빨리 답을 꺼낸다.
“유해진.”
소하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모두가 입을 떡 벌리며 놀란다.
그 위엄찬 리처드 맥닐부터, 대적자인 브라이언까지.
당연한 반응이다.
유해진!
현 시간인 14년도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스타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초거대 클럽에서 7년이나 선수 생활을 한 전설!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하며 많은 축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선수가 바로, 소하가 준비한 대책이었다.
< 061화. 14-15시즌 이적 시장.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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