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6화. 휴가. (2) >
1.
어디서 정보가 샜을까? 라는 의문은 지금 당장 중요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벌어진 일.
지금은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야 할 시간이다. 방송국 카메라가 즐비한 시점에 포츠머스 홍보를 하지 않는다면 멍청한 짓. 우린 거지 구단이거든. 이참에 돈이나 뽑아내자고.
“자자, 진정들 하시고 다른 승객들한테 불쾌감을 줄지도 모르니까, 자리를 옮기죠.”
당혹함을 지우고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자 역으로 기자들이 놀란다.
“앗?! 그, 그러죠.”
“그, 그렇게 하죠.”
“하하, 저희가 잠시 민폐를 끼쳤네요.”
“어디로 갈까요?”
기습공격을 당한 쪽이 오히려 더 침착할 줄이야, 아마도 예상외겠지.
이렇게 해서 찾은 공항 라운지의 한 카페. 내 ‘부탁’에 모두 커피 한 잔씩 손에 들고 차례대로 질문을 퍼붓는다.
이 정도면 카페에 민폐를 끼친 건 아니리라 믿는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야.
“SBC의 김성태입니다. 감독님.”
그 사이에 순서를 정했는지, SBC에서 나온 기자부터 질문을 시작한다.
“예. 질문하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물론, 영국에서도 최연소 감독으로 등극하셨는데요,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비결이라. 뭐 있겠나.
“20%의 운과 20%의 노력. 그리고 60%의 실력이죠.”
“그러니까··· 본인의 실력이 뛰어났기에 이런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력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운이나 노력만으로 헤쳐나가기에는 프로는 만만치 않은 곳이죠. 오히려 실력이 아닌 다른 요소로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모욕일 거예요. 그리고 포츠머스 많이 찾아와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진작 알아봤지만 정말 독특한 캐릭터이십니다.”
김성태 기자는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기야, 나 같은 캐릭터는 동양권에서는 드물겠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흔든다.’라는 속담도 있을 만큼 겸손함을 중시하는 문화권이니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는 너무 많다. 난 어차피 광대. 똑같은 개그를 치는 광대보다는 색다른 개그를 들고 오는 쪽이 더 재미있는 법.
관중들을 하나라도 더 끌어모으려면 이런 자세는 계속 유지해줘야 한다.
물론, 역풍은 조심해야겠지만.
“KBC의 조윤환 기자입니다. 검은 머리 외국인 전형으로 국민건강보험을 악용했다는 비판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몇몇 악플러들이 주장하는 개소리가 기자라는 양반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어이가 없다.
난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악용이라. 도대체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폭언인지 모르겠네요. 전 엄연히 한국인입니다. 나라가 베푼 은혜는 제 금쪽같은 2년을 국방의 의무에 바침으로써 갚았다고 생각해요. 설마 기자님의 의견이신가요?”
“아, 제, 제 의견은 아니고요. 몇몇 그렇게 주장하는 누리꾼이 있어서요. 역시 그렇죠.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죠.”
찔끔. 조윤환 기자는 어깨를 움츠리며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괜히 씹을 거리를 만들려고 하다가 역공을 당하자 정신이 혼미해진 모습이다.
새끼. 그러니까 말 가려가면서 해. 내가 너 기억한다. 앞으로 KBC의 제안은 모조리 거절할 줄 알라고.
“MBS의 신나영 기자입니다. 요즘 국민 사이에서 가장 입에 자주 오르는 20대로 선정되셨는데요,”
호오. 내가? 하긴. 20대에 리그2 최다승점을 갈아치우고 승격했으니까. 국뽕 너튜브들부터 시작해서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서 엄청 올려 쳐주겠지.
원래, ‘최초’란 타이틀은 그만큼 모두의 관심사였다.
과거에도 국내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었다. 이래저래 한국인 최초로 이것저것 했으니까.
“얻으신 명성에 비해서 대중에 얼굴을 쉽게 노출하시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계십니다. 혹시 신비주의 콘셉트 같으신 건가요?”
이 말은 즉, 얼굴 좀 자주 내비쳐라. 이 자식아, 정도로 요약이 된다.
“신비주의라니요. 제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요. 그저 팀에 집중하기 위해서 몇몇 제안을 거절했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이제 여러 매체에 얼굴을 내비칠 요량이 있으시다는 이야기인가요?”
“일단 연락이 와야 어디 나가든가 하죠. 부르지도 않으셨으면서. 하하. 그리고 모처럼의 휴가지만, 국민의 관심을 외면할 순 없으니 제안이 온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할게요. 제 전화는 언제나 켜져 있습니다. 그리고 포츠머스에 찾아오시면 절 볼 수 있습니다!”
구단 홍보 겸 내 주머니에 돈 좀 채워 넣자고. 이제 구단 식당에서 밥을 싸가는 구질구질한 짓 좀 그만하고 싶다.
그렇게 구름같이 몰려든 기자들에게 질문을 하나하나씩 받자 어느새 점심시간을 넘어 오후가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기자의 질문 시간.
슬슬 그 질문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TVM의 현성태 기자입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마지막 질문자가 되었는데요, 마지막답게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하겠습니다.”
“제 쓰리사이즈만 물어보지 않으시면 됩니다.”
“하하! 역시 재치가 있으신 분이에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감독이라면 영입에 대한 권한이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단마다 다르지만 전 굉장히 강한 영향력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면 한국인 선수를 영입할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까?”
옳거니. 드디어 나왔군.
모든 기자와 국민이 궁금해하던 ‘그 질문.’
한국인 선수를 영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
꽤, 아니.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국민으로서 보자면 한 선수라도 더 영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구단과 감독으로선 애매하다.
상업적으로는 분명히 대박이겠지만, 망한다면 그것대로 큰 문제.
속칭 ‘향우회.’ 이 향우회는 잘해도 비판의 원흉이고 못하면 경질행 특급열차의 VIP티켓이다.
‘흐음. 솔직히 영입할 만한 선수가 몇 없긴 해. 아니, 없어.’
그나마 미래의 내 팀에서 주전이나 후보가 될만한 한국인 선수는 단둘뿐.
여진구 선수와 토트넘의 ‘그 선수’.
지금이나 미래에는 다른 선수들도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지만, 영입할만한 선수는 이 둘뿐이다.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니냐고? 설마.
이미 내 팀에는 미래의 월드 클래스 및 월드클래스에 가까운 선수들이 즐비하다.
조쉬 킹, 미래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심지어 올해의 성장세만 보자면 미래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델리 알리, 폼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역대급 잉글랜드 유망주. 그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에 비견되던 선수다.
칼빈 필립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전. 월드 클래스라고 부르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상위급 미드필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앤디 로버트슨, 두말할 필요도 없는 월드 클래스이자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장. 향후 15년간은 왼쪽 풀백 걱정이 없다.
에링 홀란드, 메시와 호날두, 메호대전의 바통을 이어받을 음란대전. 그러니까 음바페와 홀란드의 한 축이다. 이미 20세에 월드 클래스를 찍고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를 두고 자웅을 가린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상당한 인재들이다. 이들 중 몇은 과거와는 다르게 폭발적인 성장 중이라 미래에는 어떤 선수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대표적으론 케빈 도슨과 잭 해리슨.
이런 짱짱한 선수단에서 한국인 선수가 들어갈 자리가 있겠는가? 그나마 토트넘의 그 선수만이 자웅을 겨룰 만하겠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모두의 시선을 즐기며 입을 열었다.
“한국인 선수의 영입은 당분간 없을 겁니다. 물론, 제 기준에 부합하는 선수라면 국적을 떠나서 영입하겠지만요.”
과감한 발언에 정신없이 랩톱의 자판을 두들기는 기자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깊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2.
장장 몇 시간을 기자들에게 시달린 후. 어느 정도 기삿감의 허기짐을 채운 기자들은 군말 없이 떠나갔다.
휴우. 이제 좀 떼어냈네. 그냥 무시해도 될 법도 하지만 전혀 아니다. 기자들이란 한번 스위치가 켜지면 만족을 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족속들.
어느 정도 허기짐을 채워줘야 나중에 귀찮게 들러붙지 않는다.
그럼 드디어. 집으로 가서 일 년 만의 휴식을 넉넉하게 취해 볼···.
“성소하 씨 되십니까?”
안 되겠네.
집에 가서 쉴 생각에 방싯 웃음이 나왔지만,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양복쟁이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또 뭐야. 맨 인 블랙이야? 나보고 외계인이라도 잡으러 가자고?
“누구쇼?”
한껏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뭔 협회요. 외계인 잡는 협회가 우리나라에 있었나?”
“···축구협회입니다. 고위 인사들이 성소하 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하아. 다음에 보죠.”
“쉽게 만날 분들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럴 줄 알았지만 너무나 움직임이 빠르다. 과거에도 협회가 정말 귀찮게 했었는데. 이번에는 수년이나 먼저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이자들이야말로 기자들은 상대도 되지 않는 거머리 중에서도 거머리.
떼어내기가 불가능한 존재다.
그럼 빨리 해치워 줘야겠지.
“알았어요. 가죠.”
검은색 양복쟁이가 이끄는 검은색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 고급 요정.
영화에서나 보던 ‘그 장소’는 처음 와본지라 은근히 재미있다.
한복인지 기모노인지 모를 요상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시중을 들던 곳 아니던가. 과연, 영화에서 나왔던 그곳처럼 별천지가 따로 없다.
“이쪽입니다.”
고급 요정 속의 귀빈실.
그 안에는 2명의 중년남성과 2명의 젊은 남자가 나를 반기며 앉기를 권한다.
4명 중 3명은 아는 얼굴이다. 그것도 다시는 보기 싫었던 얼굴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아이고야. TV보다 훨씬 잘생기셨네.”
이쪽은 축구협회 사무총장 김승희.
쌍팔년도에 유행했던 두툼한 큰 안경을 쓴 야심가다. 과거에도 얼마나 치근덕거리던지.
얼굴만 봐도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호오. 자네가 요즘 우리나라에 가장 유명하다는 20대 총각인가? 반갑네.”
이 사람은 축구협회 이사회의 속한 박종팔 이사장. 슬하에 아들이 셋이 있는데, 전부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 빽으로 실력과 비교해 잘나가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성 감독님.”
그 세 아들 중 하나인 박승대. 막내다. 지금은 작년에 새로 신설된 K-리그2의 선수. 실력은 뭐···. 내가 퍼거슨 감독님의 할아비가 되더라도 K-리그2에서 벗어나지 못할 재능이다.
“반갑습니다. 이준석입니다.”
깍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30대 초반의 남자.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4명 중 가장 권력이 강하다는 것.’
가장 예의 바르며 가장 존재감이 없었지만, 묘하게 나머지 3명이 그의 눈치를 본다. 직감적으로 그가 가장 높은 사람임을 알아챘다.
“예. 안녕하세요. 알다시피 영국의 조그마한 구단을 지휘하는 성소하에요. 공사다망하신 분들이 이 시간에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정말 궁금하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낯부끄럽지만, 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
선수는 몰라도 감독이라면, 권한이 다르다. 요컨대, 선수영입이나 프런트 영입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라는 뜻.
그렇다. 이 망할 놈들은 나에게 청탁을 하러 온 거다. 저 느물느물한 탐욕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박승대를 보라.
영국에 입성하고 싶다는 욕망이 절절 흘러넘친다.
씨발. 내가 미쳤다고 널 쓰겠냐? 훗날 월드 클래스가 될 유망주로 채워 넣기도 바쁜데? 그만 쳐다봐. 사커킥 날리기 전에.
“허헛. 듣던 대로 성 감독은 성격이 급한 편이시군요.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배나 좀 채웁시다.”
능구렁이 같은 김승희가 슬쩍 화제를 돌리며 시간 끌기에 들어간다.
어차피 젊은 놈이니 천천히 시간을 끌며 요리하겠다는 생각이 훤히 보인다.
새끼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겉은 28세라도 속은 38세야. 단맛 쓴맛 다 보고 똥 맛까지 본 사람이라고. 어디서 더러운 수작질이야?
“아니요. 전 여기서 밥을 먹을 생각이 없는데요?”
순간, 고급 요정의 귀빈실은 싸늘한 침묵에 휩싸였다.
< 056화. 휴가.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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