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48화 (48/306)

< 048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2) >

1.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 40라운드가 열리기 이틀 전.

내가 예상한 것보다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구단 내적으로도.

구단 외적으로도.

몇몇을 제외한 선수들의 표정도 평소와는 다르게 진중하다.

이것은 즉, 긴장했다는 이야기.

잘라 말해 굉장히 못마땅한 상황이다.

긴장하면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거나 판단이 느려질 테니까. 원래 잘하던 것도 하지 못할 테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화장실에 살림이라도 차렸냐? 킹아?”

뇌가 순진한 남자.

뇌순남, 조쉬 킹.

녀석은 단순한 만큼 주위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타입이었다.

평소 날 닮아 자신감이 넘치던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바짝 쫄아, 훈련 중에도 몇 번이나 화장실을 찾았다.

역시나. 리그2 최고의 선수로 당당히 공인받았지만, 이 자식은 아직 18세 애새끼일 뿐.

어른의 케어가 필요한 녀석이다.

“킹아. 쫄리냐?”

점심시간, 난 킹을 따로 사무실로 불렀다.

“···쪼, 쫄긴요. 그냥, 좀 불안해서요.”

“왜?”

“동료들이 갑자기 부상도 당했고···. 주위에서 계속 재수가 없는 말을 하다 보니까···.”

“근데?”

“그게···. 또 듣다 보니까 다 맞는 말이잖아요.”

솔직히 그렇긴 하다.

원래 사람은 없던 일을 당하면 더욱 당황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처음으로 맞이한 위기는 나름대로 그 타당한 여러 이유가 있었다.

먼저, 24명뿐인 선수단에서 5명이나 빠졌다는 점.

즉 경기 출전이 가능한 선수가 19명밖에 없다. 선발 11명에 교체 7명, 총 18명이니까, 한 명 빼고 모조리 투입해야 한다. 선택지가 매우 적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주전 골키퍼의 부상.

35세의 노장, 말콤 우드는 한 시즌 내내 골문을 훌륭히 지켜주었다.

비록 내 전술 탓에 무실점이 매우 적었지만, 그의 수비 리딩이 없었다면 이길 경기도 비기고 비길 경기는 졌겠지.

왜 골키퍼에 경험 많은 선수를 사용하는지 여실히 증명해준 훌륭한 선수다.

그의 부재는 엄청난 구멍이 될 거란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위와 더불어 말콤 우드의 부상 여파로 세컨드 골키퍼가 나와야 하는 것도 불안 요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점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말콤 우드와 세컨드 골키퍼 올리버 웰즈는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

심지어 이번 시즌 첫 선발이라, 나의 통제 밖이다. 골키퍼란, 한 번의 실수로 경기를 완전히 말아먹을지도 모르는 존재니까.

또한 오른쪽이 완전히 터졌다는 것도 좋지 않다. 요즘 윙백으로 기용하던 프레디 스톤의 부재는, 매튜 다이스와 엿 같은 인종차별주의자 스펜서 보이드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었으니까.

만약, 다이스가 다친다면?

이번 시즌 선발 출장은 한 번도 없고, 교체로도 10경기를 소화하지 않은 보이드를 써야 한다.

그렇다고 3백으로 바꾸는 것도 불가능.

3순위, 4순위지만 백업 중앙수비수가 모조리 아웃되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일정도 문제.

41라운드부터 46라운드.

총 6경기 중에 원정경기만 4번이다.

초반에 홈경기가 많았으니 당연한 경기 일정이었지만, 운이 좋지 않다.

그 원정경기의 상대들이 전부 다 강등권 팀인지라. 힘든 경기일 게 뻔하다.

오, 이렇게 정리해보니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일 만하구나. 솔직히 좀 망했을지도?

“그게 정말 맞는다고 생각해?”

“네? 그, 그렇죠. 패, 팩트잖아요.”

삼인성호.

세 사람만 우기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고사성어.

심지어 이번 사건은 ‘없는 호랑이’도 아닌지라 킹이 불안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되지.

감독이 된 도리로써 킹이라는 근육 로봇을 원상태로 고쳐줘야 할 의무가 있다.

“킹아. 내가 진짜 팩트를 말해줄까?”

“지, 진짜 팩트요?”

꼴깍. 마른침을 넘기며 내 입에서 시선을 고정하는 조쉬 킹.

“우리에게는 39경기, 29골을 넣은 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건재하다는 거야.”

“···!”

“그리고 말이야···.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지?”

“그럼요!”

조쉬 킹은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밝은 목소리로 외치며 나에게 달라붙는다.

“솔직히, 지금 빠진 애들은 다 조연이잖아. 최고의 공격수라는 주연을 빛나게 해줄 조연 말이야.”

“호오···.”

“너, 드라마에서 조연 죽는다고 드라마가 끝나디?”

“아니죠!”

“그래. 주연이 펄펄 살아있는데 뭐가 문제야? 난 이해가 안 돼. 리그2의 주인공이 엑스트라 몇 명 빠졌다고 불안해하는 게.”

“그 말은 즉···.”

“그래. 내가 여유로운 건 네가 있기 때문이야! 나의 주인공, 조쉬 킹이!”

그러자, 조쉬 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신이나 떠벌린다.

“역시 그렇죠?! 역시 감독님이야. 항상 혼내시기만 하길래 긴가민가했지만, 이제야 확신이 섰어요. 감독님이 절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을 줄이야. 역시. 역시! 역시!! 와하하핫!”

“···.”

“감독님 말이 다 맞아요. 그깟 엑스트라들 몇 없다고 주인공이 흔들리면 안 되죠!”

“···.”

너무 약발이 좋아서 순간 녀석의 명치에 주먹밥을 한 대 먹여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일단은 승리가 우선이니까.

“하하하핫! 그럼 이야기는 끝난 거 같으니 훈련을 하러 가볼게요. 내가 간다! 스컨소프!”

“그래. 다치는 거 조심하고.”

“주인공은 부상 같은 거 당하지 않아요! 불사신이니까요!”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한껏 멋쟁이 미소를 지은 조쉬 킹은 바람같이 사라졌다.

“···.”

하. 그냥 사표 쓸까. 감독직 하기 진짜 더러워서 원. 카악, 퉷.

2.

그 후, 여러 선수와 면담을 하며 나름대로 불안감을 지워주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케빈 도슨이나, 델리 알리, 앤디 로버트슨 같은 구단의 코어들은 부른 시간이 아까웠다. 다들 이미 부담감을 모조리 향상심으로 바꾸고 임전 태세를 마친 상태.

과연, 미래의 스타들은 떡잎부터 다르다.

그런데 조쉬 킹은 왜 그럴까. 아, 얜 잊자. 두통만 오니까.

“다이스야. 괜찮니?”

“네? 그럼요. 내일은 포츠머스뿐만 아니라 영국 축구계가 주목하는 날이잖아요. 헤헤···. 최고의··· 무대랄까요···.”

“···후, 훌륭하구나.”

숨은 관심종자는 이미 시즌 최고의 경기가 기다려지는지 벌써 눈빛이 살짝 맛이 갔다. 하기야, 관심받기 딱 좋은 경기니까. 나름 걱정되는 선수였는데 기우였다.

이렇게 선수단 관리 때문에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내 일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존재들이 있었다.

이럴 때 빠지면 섭섭한 무능한 프런트들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나 홍보팀과 관리지원팀.

딱히 일하지 않아도 역대급 성과를 내는 이 부서의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사무실을 찾아오며 질문을 퍼부어댔다.

“큼큼. 가, 감독님. 우승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우승 파티를 준비해야 할까요?”

“서포터즈 대표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들도 준비를 해야 하냐고요.”

“기자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부상과 40라운드 경기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끝도 없다. 이 망할 놈의 구단은 내가 없으면 정녕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집단이란 말인가?

-똑똑똑.

-똑똑똑.

-똑똑똑.

하루에도 과장 없이 수십 번은 울리는 노크 소리. 요즘은 자다가도 환청이 들려 깰 정도다.

-똑똑똑.

그새를 참지 못하고 또 울린다.

좋아,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구긴 채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어젖혔다.

“가, 감독님!”

이번 담당은 에밀리아 씨였군.

아마도 홍보팀장 벤스 모건의 치졸한 수작일 거다.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내가 에밀리아 씨는 어느 정도 존중해준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까.

“저, 그게 팀장님이 감독님께 뭣 좀 물어보라고 보냈는데요,”

역시나. 이놈의 구단은 내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단 말이야.

“근데, 괜찮으시죠? 표정이 굉장히 좋지 않아 보이시는데···.”

에밀리아 씨는 내 험악한 인상에 굉장히 당황한 듯하다. 하기야, 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얼굴 앞에서 쌍욕을 박으려고 했으니까.

“별거 아니에요.”

“그, 그렇군요.”

“저는 신경을 쓰지 마시고 구단 사람들에게 알리세요.”

“네?! 갑자기 어, 어떤 걸요?”

“지금 당장 모조리 훈련장으로 나오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근데 모조리라면···?”

“전부 다!”

내가 버럭 소리지르자 에밀리아 씨는 호다닥 달리기 시작한다.

참. 빠르긴 해. 폼은 볼 때마다 요상하지만. 어떻게 저런 폼으로 저렇게 빠를까?

3,

한 시간 뒤,

구단 관계자들은 내 명령에 모조리 훈련장으로 집합했다. 유소년선수단까지 합쳐서 백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다.

비품 관리실의 존 스미스.

티켓 사무소의 릴리 화이트.

축구화 담당 로이 팔론.

유니폼 담당 빌리 키.

같은 말단 직원부터,

홍보팀장 벤스 모건.

기술재무팀장 알버트 위버.

지원관리팀장 니엘 비숍.

CEO 브라이언.

구단 프런트의 중역들까지.

부상선수를 제외한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날한시에 한자리에 모여 한 사람을 바라보는 기이한 상황.

다른 것은 속마음뿐이다.

“많은 말을 하진 않을게요.”

난 잠시 뜸을 들이다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많은 걱정이 있다고 압니다.”

너무 일이 잘 풀리면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 이럴 때 기분에 잡아먹히면 일을 망치기도 한다.

“귀 파고 똑똑히 들으세요.”

많은 말은 필요 없다.

“이틀 뒤 우리는 리그2 우승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고 있을 겁니다.”

4.

40라운드 하루 전.

미디어는 모처럼 프로의 밑바닥인 4부리그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지역지나, 간신히 주요신문사의 귀퉁이에 작게 실리던 리그2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조명받는 건 의례적인 일.

그만큼 포츠머스의 비상은 축구의 종가마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었다.

-‘낭만’. 그것은 아직 존재했다. ‘미스터 포츠머스’의 사후 20년. 그의 아들이 구원자로 모습을 알리다.

-법정관리의 구렁텅이에서 한 시즌 만에 승격을 노리는 포츠머스.

-한편의 ‘동화’.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젊은 천재’의 등장.

-2003년 챔피언십 리그 우승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포츠머스FC. 지옥에서 천당까지 당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9개월.

낙관적인 시선이 주류였지만, 비판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주전 골키퍼의 이탈. 이번 경기를 잡지 못한다면 우승으로의 길은 험난.

-이번 경기를 제외한다면, 남은 6경기 중 4경기가 원정경기. 전패의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해.

-악재와 부담감에 무너져 내린 팀은 수없이 많다. 이런 팀들의 공통점은 팀이 ‘젊다는 것.’ 포츠머스와 똑같은 상황.

-그동안 운이 좋았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거나 부상이 더 발생한다면 승점은 91점에서 멈출지도.

포츠머스의 이야기 말고도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도 다뤘다.

-포츠머스전만 넘으면 역전의 기회는 충분하다. 그들은 이제 리그 하위권과 홈경기만 남았으니까.

-포츠머스를 쓰러뜨린다면 기세를 탈 것. 역전의 발판.

-승점 16점 차이. 이번 경기에서 이긴다면 13점 차이로 좁혀져 해볼 만하다.

큰 승점 차이에 비해서 세간의 관심이 주목된 리그2 우승컵의 향방.

하나같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일정은 압도적으로 포츠머스가 불리.

후반부에는 강등권 팀들과의 원정경기가 줄줄이 잡혀있어, 쉽사리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 군대로이드와 강등로이드는 검증된 부스터였으니까.

윽고 시작된 경기 전 기자회견.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자가 소하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찰칵.

눈을 어지럽히다 못해 스트레스까지 줄 법한 플래시 세례였지만 소하는 의젓한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기자회견의 포문은 역시나, 다음 시즌부터 구단 내부 기자로 임명된 줄리아 로버츠.

원래도 상당히 미녀였지만, 지금은 아주 그냥 얼굴에 화사하게 꽃이 피었다.

‘호홋. 한참 날아오르는 포츠머스의 내부 기자가 되다니. 내 기자 인생도 이제 폈어.’

훗날 포츠머스가 정말로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라도 한다면. 그녀는 순식간에 세계 곳곳에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그녀에게 성소하라는 동양계는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로버츠 기자님. 나날이 아름다워지시네요.”

“후훗. 감사합니다. 다 감독님 덕분이죠.”

슬쩍 얼굴에 홍조를 띄우는 줄리아 로버츠. 정말, 눈앞의 젊은 감독은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지 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상당히 편안해 보이시는데요, 특별한 방책을 준비하셨나요?”

줄리아 로버츠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시작부터 던졌다.

“역시. 로버츠 기자님은 질의의 소재를 잘 정하시는 거 같아요.”

먼저 로버츠 기자에 대한 칭찬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한 소하는 덤덤히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별한 방책이라.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저희 평상시처럼 경기에 나설 것이고 하던 대로 승리를 거둘 거예요.”

“그렇다면, 내일 포츠머스에 우승컵을 선사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소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매우 단호하고 신속하게,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단언한다.

“네. 내일은 포츠머스시에 축제가 열릴 겁니다. 미리 케이크라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케이크에 제 이름 새겨두는 거 잊지 마시고요.”

웅성. 웅성.

찰칵. 찰칵.

기자회견장에는 일대 소란이 일었다.

상당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자신감이 충만하다니. 놀라우면서도 부럽기까지 하다.

시즌 초반이었다면,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자신에 찬 발언.

하지만 지금은 회견장에 참석한 구단 관계자들마저 자신감을 나눠 받는듯한 착각이 든다. 역시, 선언이란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었다.

“정말 자신감의 신 같은 모습입니다. 어제 구단 관계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했던 말도 같은 내용인가요?”

“그럼요. 다시 한번 단언할게요. 우린 우승할 겁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목이 터지라고 노래를 부를 겁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

소하에겐 당연한 태도였지만, 꼭 필요한 태도이기도 했다.

자고로, 장수가 흔들리면 병사들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지는 법이었으니까.

이제, 결전이 코앞이다.

< 048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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