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7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1) >
1.
영국 너튜브계의 떠오르는 샛별!
뚱보와 삐쩍이는 드디어 20만 구독자를 달성, 9월과 비교해서 덩치가 4배나 커졌다.
축구팬들을 위한 영국 축구계의 가십.
관광객들을 위한 영국 관광지의 소개.
포츠머스를 위한 포츠머스의 이야기.
이 세 가지를 맛깔나게 번갈아 가며 다루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체급을 키워가는 축구 채널이다.
성공 요인은 꽤 여러 가지다.
외모와 성격이 정반대인 중년 남자 둘의 환상적인 호흡.
너무 자극적이지도 않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기 있는 콘텐츠.
종종 나오는 기괴한 코스프레.
그저 웃기려고 할 뿐이 아닌,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축구 지식을 가지고 해설하는 열정적인 모습.
등등. 성공할 요소가 차고 넘쳤다.
특히, 할로윈 데이에 보여준 톰 힉스의 트롤 분장과 나단 필립스의 좀비 분장은 아직도 회자가 될 정도.
최소한 포츠머스 시민 중에 그들의 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까지 명성을 얻었다.
“안녕하십니까. 뚱보, 톰 힉스입니다.”
“반가워요. 삐쩍이, 나단 필립스에요.”
단순한 인사였음에도 시청자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열심히 채팅을 두들긴다.
-<30년째 토트넘 팬>: 아, 오늘 두 사람 표정 밝은 거 봐. 괜히 기분이 좋지 않은데?
-<죽어도 리즈 유나이티드> : 필립스 말투 봐봐. 요즘 포츠머스가 잘나간다고 저 마른 송장이 미소를 짓네.
-<아서왕> : 이빨 보이지 마!
-<홍차> : 얘네 얼굴만 봐도 웃음이 자동으로 나옴.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두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인다.
힉스야 원래 웃는 상이었지만, 저 필립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다니. 확실히, 요즘 포츠머스가 잘나가긴 하나 보다.
“하하하. 반응이 뜨겁습니다. 시작에 앞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설명 먼저 드리겠습니다.”
“포츠머스가 벌써 7위를 확정 지었어요. 즉, 승강 플레이오프를 확정을 지었다는 이야기에요. 아직 3월이 오지도 않았는데요. 후후.”
2월 27일.
34라운드까지 끝난 리그2.
아직 12경기나 남았음에도 7위를 확정을 지은 덕에 포츠머스는 이른 봄을 맞이했다.
아직 겨울이라도 불러도 무방한 날씨였건만. 포츠머스 시민들은 힉스와 필립스처럼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먼저, 큼큼. 우리 팀 자랑 좀 하겠습니다. 정말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2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이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말할게요. 리그2 우승컵은 포츠머스가 반쯤은 손아귀에 넣었다고 봐도 좋아요.”
34경기 24승 7무 3패.
2014년 들어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포츠머스 FC!
이미 2위인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 승점이 15점 차다.
무려, 5경기의 차이.
“다시금 4백으로 돌아온 포츠머스의 공격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렇죠. 다소 실점이 많기는 하지만 맞은 만큼 더 때리는 통에 지질 않고 있으니까요.”
24라운드부터 34라운드까지, 11경기.
31득점, 10실점.
쉽게 말해 한 대 맞으면 세대 정도는 쥐어박아 줬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가공할 만한 공격력!
“조만간 포츠머스에는 축제가 열릴 거 같습니다. 아쉽게도 시기는 조금 미루어졌지만요.”
“네. 2위인 스컨소프와의 35라운드 경기가 연기되었거든요. FA컵 일정 때문이죠. 꽤 아쉽지만, 스컨소프의 좋은 성적을 바랄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팀은 본선 1라운드에 광탈을 했으니까요. 대리만족이랄까요. 허헛.”
FA컵 본선 1라운드.
소하의 포츠머스는 모조리 후보로 출전했고, 형편없이 박살이 났다.
심지어 감독인 소하마저도 지휘봉을 내려놓고 밀러에게 경기를 통째로 맡겼으니까.
“성소하 감독의 결단이었습니다.”
“맞아요. 천운이 따라 아직 부상이 없는 포츠머스지만, FA컵까지 병행하기에는 스쿼드가 얇으니까요. 좋은 판단이었어요.”
FA컵의 상금과 중계료는 아까웠지만, 소하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그야말로 일점 돌파.
목표는 오직 리그 우승일 뿐.
그리고 그만한 결과물을 얻었기에 좋은 판단이라고 평가받았다.
“자 그럼 오늘은 먼저··· 아니 잠깐.”
힉스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채팅장에 한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한 유명인이 말이다.
-<올드보이> : 반갑습니다.
-어? 올드보이 회장님이시다.
-와 쩐주 나오셨다.
-저한테도 후원해주세요!
-뚱보랑 삐쩍이는 뭐하냐? 빨리 머리 안 박냐? 회장님 오셨는데?
-저분 정체가 뭐야?
채널의 든든한 후원자로 명망이 높은 ‘올드보이’의 등장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올드보이.
채널을 개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막대한 금액을 후원하는 비공식 회장. 지금까지 한화로 1억이 넘는 금액을 후원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엇. 올드보이님께서 채팅을 치시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힉스와 필립스도 올드보이의 등장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공경을 표한다.
역시 돈 앞에선 장사 없다.
심지어,
“제가 요전번에 배운 한국의 감사를 표현해보겠습니다.”
힉스는 벌떡 일어나더니, ‘엎드리다 못해 아예 물구나무를 서면서 하는 절’을 시도한다.
속칭 그랜절.
평범한 절보다도 훨씬 예의를 갖춘 극존대의 예법!
당연하게도 누가 가르쳐줬는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이런 요상한 한국문화를 가르쳐줄 사람은 포츠머스의 유일한 한국인인 소하밖에 없었으니까.
-콰당.
물론, 뚱보인 힉스가 제대로 물구나무를 설 수 있을 리는 만무. 그대로 나뒹굴며 시청자들에게 폭소를 선사한다.
-<올드보이> : 슬랩스틱인가요? 잘 봤습니다.
-아. 뚱보 진짜 너무 웃겨.
-나 저 사람 꿈에서도 나와서 웃다가 잠에서 깼어.
-진짜 저런 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저번에도 하다가 코피 줄줄 흘리더니.
-삐쩍이도 해야 하지 않냐?
자연스럽게 무언의 강요를 받는 삐쩍이, 나단 필립스.
“큼큼.”
잠시 헛기침을 하던 필립스는 평소의 근엄한 모습을 내던진 채 싹싹 빈다.
간절한 눈망울과 함께.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했다간 정말 뼈가 부러지거든요.”
간곡한 필립스의 부탁에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뼈에 가죽밖에 붙지 않은 필립스가 ‘그랜절’을 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골절일 테니까.
“큼큼. 회장님에 대한 예는 여기까지 차리고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금세 신형을 회복한 힉스가 자리에 앉으며 다음 이야기를 진행한다.
“포츠머스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포츠머스를 이끄는 감독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는 힘듭니다. 안 그렇습니까?
”맞아요. 강등이 유력했던 포츠머스를 반년 만에 리그2의 왕으로 발전시킨 감독이니까요.“
본격적으로 포츠머스의 신임 감독이자, 리그2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소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힉스와 필립스.
사실, 말만 이야기지 거의 다 칭찬이다. 팬심을 빼더라도 비판을 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으니까.
”너무 칭찬만 하는 거 아니냐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필립스 씨?
시청자들의 지적에 힉스는 교묘하게 필립스에게 짐을 떠넘겼다.
부릅. 짐짓 노려보는 척을 하던 필립스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솔직하게 내심을 실토한다.
“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요 일주일 내내 성 감독을 욕할 요소를 찾고, 또 찾았어요. 그런데 없어요. 욕을 하고 싶은데 욕을 할 이유가 없단 말이에요.”
단점이 없었다.
그나마 단점이라면, 기자회견을 공격적으로 한다는 점인데, 모두 현실로 이루어버렸으니. 이쯤 되면 공격적인 언사가 아닌 예언이었다.
-<올드보이> : 아주 훌륭한 감독입니다. 신께서 포츠머스에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오. 올드보이님도 성소하 감독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구나.
-이로써 확실한 점. 올드보이도 포츠머스를 응원한다는 것.
-하긴, 지금의 성소하 감독을 까는 건 미친 짓이지.
-축알못 인증이야. 지금의 성감독을 비판하는 건.
올드보이를 비롯한 대부분 시청자의 생각도 같았다. 억지로 까고 싶어도 깔 건덕지가 나오지 않는다.
리그 34경기에서 24승을 거두는 부임 8개월 차 초보 감독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 : 솔직히 성감독이 잘하는 건 모두 프런트가 도움을 줬기 때문이지.
요상한 닉네임을 가진 한 사람이 포츠머스의 프런트를 거론하자, 힉스와 필립스는 물론, 시청자들이 길길이 날뛴다. 흡사, 벌집 통을 공격받은 벌과 같은 모습이다.
-헛소리 그만해라. 포츠머스 프런트가 뭘 했는데?
-혹시 프런트 직원이세요?
-낙수효과 오지게 받으면서 자랑은 하고 싶더냐?
-관심종자한테 먹잇감 주지 마라.
-성감독 아니었으면 포츠머스의 프런트는 전부 실직자였어.
괜히 프런트의 이야기를 꺼낸 시청자는 집중포화를 얻어맞는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올드보이> : 방장은 저런 어그로꾼을 영구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가 망치를 세 번 휘두른 것과 같은 발언. 이것으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낸 시청자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 : qmfkdldjs님이 차단되셨습니다.
-이야. 방장, 일 잘한다.
-판사 저리 가라네.
-도편추방제 보소.
일단의 소란이 끝난 뒤.
힉스는 정리에 들어간다.
“이로써 포츠머스는 승격은 물론이고 우승까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우승을 확정할 수 있을까요? 필립스 씨.”
힉스의 질문에 재빨리 머릿속에서 계산을 마친 필립스는 빠르게 답을 내준다.
“한 달 뒤, 40라운드쯤에는 확실히 정해질 거 같아요.”
필립스의 말에 시청자들은 반박 없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근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필립스는 맨유의 몰락을 정확히 예견한 인물. 일단 믿고 보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프리미어 리그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시즌 우승 경쟁이 치열한데요,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아스널, 첼시의 4파전이 흥미진진합니다. 리그 27라운드에 리버풀이 스완지를 4-3으로 꺾으며 아스널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는데요. 과연 리버풀이 24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어지는 힉스의 유려한 프리미어 리그 상황설명. 시청자들은 순식간에 어그로꾼을 잊은 채 프리미어 리그의 이야기로 빠져들어 갔다.
2.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
겨울을 마음만은 무척 따듯하게 지낸 포츠머스 시민들.
하지만, 봄이 찾아왔음에도 도시에는 역으로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해서 서늘하다.
한겨울이었던 1월보다 체감온도는 훨씬 낮게 느껴질 정도.
이유는 단 하나.
승격과 우승을 확정을 지을 경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리그 40라운드.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
1위와 2위의 경기!
순위는 한 단계 차이지만 승점 차이는 꽤 많이 나는 편이다.
1위 포츠머스,
39경기, 28승 7무 4패. 91점.
2위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39경기, 23승 6무 10패. 75점.
3위, 로치데일 AFC
39경기 22승, 6무 11패. 72점.
상당히 큰 승점 차이다.
만약, 다가올 40라운드에서 포츠머스가 승리를 거둔다면, 남은 6경기를 모조리 져도 승격과 우승이 동시에 확정된다.
물론, 전문가나 슈퍼컴퓨터도 포츠머스의 우승과 승격을 확신했지만, 서포터들이 느끼기에는 전혀 달랐다.
“혹시 모르니까.”
미래는 한 치 앞도 모른다.
누가 알았겠는가. 법정관리를 받던 포츠머스가 우승을 넘볼 줄을 말이다.
이 말은 지금 1위인 포츠머스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미래는 한 치 앞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은연중에 포츠머스 시민들이 느끼던 불안감은 매우 불행하게도 현실화가 되었다.
“큰일 났어! 프레디 스톤이 부상을 당했대! 진짜 무슨 일 나는 거 아니야?”
“아, 괜히 불안한데.”
첫 번째 불행은 프레디 스톤의 부상.
요즘 선발과 후보를 번갈아 나오며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던 프레디 스톤.
비트코인 공부를 때려치우고 너무나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다가 그만 부상을 입어버렸다.
부상 부위는 아킬레스.
꽤 심각한지 전치 4주의 판정을 받았다.
이 말은, 리그가 얼마 남지 않는 지금, 시즌 아웃이라는 뜻.
“망했네.”
“아니야. 프레디 스톤이 주전은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면 주황불 정도지.”
프레디 스톤 정도야. 어차피 후보선수니까. 하지만,
“스티븐 데커가 또 부상당했대.”
“씨발. 그 새낀 이번 시즌을 통으로 날려버리네.”
팀의 8번. 스티븐 데커는 재활 훈련 중에 또다시 부상을 입었다.
무슨 짓을 한지 모르겠지만, 사타구니 근육이 늘어난 큰 부상.
완치에 최소 4~6주가 필요한 꽤 심한 부상이다.
이로써, 스티븐 데커도 시즌 아웃.
한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선발로 뛰어보지 않은 진기록을 세웠다.
“뭐···. 원래 없던 선수였으니까.”
“그렇지. 난 이제 스티븐 데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그래도 여기까진 세이프.
원래 유리 몸인 선수와 후보 선수를 잃는 것쯤이야 모든 팀이 경험하는 악재였으니까.
오히려 큰 부상 없이 40경기를 치른 선수단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운이 좋지.”
“두 명 잃은 거 정도야.”
하지만 축구의 신은 그리 관대한 존재가 아니었다.
스컨소프와 경기 3일 전.
세트피스 훈련을 하던 중에 세 명의 선수가 뒤엉키며 다쳐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큰 실수.
선수들도 다가오는 큰 경기에 긴장한 터라 몸이 굳은 탓이었다.
“골키퍼인 말콤 우드. 중앙수비수인 타일러 페인, 이선 카펜터. 이 셋이 모조리 다음 경기 출장이 불가능하대.”
“씨발.”
멀쩡하던 선수단에 5명이나 빠져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악재에 포츠머스는 이미 지나간 겨울이 다시금 도래했다.
“윈터··· 이즈 커밍···.”
왕좌를 쉽게 차지하기엔 축구의 신은 그리 녹록지 않은 존재였다.
“불안해.”
“미끄러지는 거 아니야?”
“긴장되는데.”
축구의 신의 농간에 도시 전체는 물론, 포츠머스FC의 프런트와 선수단마저 불안감을 느끼며 긴장을 할 때.
“후후. 그래. 너무 쉽다 했어. 이 정도는 해줘야 우승하는 보람이 생기지.”
감독 사무실의 의자에 몸을 파묻은 소하만이 웃고 있었을 뿐이었다.
< 047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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