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39화 (39/306)

< 039화. 리그2, 후반기. (1) >

1.

며칠 뒤.

잉글랜드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각종 대형 신문사는 물론, 비주류 신문사까지 모조리 ‘승부 조작’ 사건을 집중적으로 1면에 실었다.

The Sun

-하부리그 승부 조작 사건! 심판까지 연루된 2000년대 축구계 최악의 사건.

The Guardian

-자정이 필요했던 The FA. 기어코 칼을 빼 들어 승부조작단을 자기 손으로 베어버리다.

Daily Mail.

-전 프리미어 리그 선수까지 가담한 승부 조작 사건. 영국 축구계는 정말로 안전한가? 영국판 칼초폴리를 항상 경계해야 할 것.

Daily Express

-고의 레드카드 한 번에 7만 파운드. (1억 1천만 원). 고의 옐로카드 한 번에 3만 파운드. 돈 벌기가 이렇게 쉽다.

Daily Mirror

-‘마이클 엣킨스’ 승부 조작의 주동자이자 협회 소속 심판! 리그2의 경기 중 일부를 조작해 파문! 피해구단은 포츠머스로 알려져.

Metro

-승부 조작 사건을 밝혀낸 사람은 2부리그의 한 감독이란 소문이?!

리처드 맥닐, 포츠머스의 구단주에게 의문의 녹음기를 건네받은 협회.

말 그대로, 머리털을 곤두세울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날 바로 대책 위원회를 결성.

영국국립범죄청(NCA: National Crime Agency)과 손을 잡고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심지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부 조작의 뿌리를 뽑아주길 바랍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스널의 팬이자,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마저도 수사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을 정도.

물론, 여왕의 ‘부탁’은 상상 이상의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협회와 NCA는 겨우 5일 만에 영국 내 승부조작단을 소탕했으며, 조작 브로커들이 머무른다는 싱가포르까지 요원들을 파견.

일망타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식적인 발표까지 마무리되었다.

실로 번개 같은 속도의 일 처리 솜씨!

영국에서 승부 조작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일화였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가장 큰 도움을 준 포츠머스의 신임 감독 소하는 비밀리에 협회의 초대를 받았다.

“큼큼.”

알피 벨. 42세.

FA의 감사과의 감사원인 그는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가늘게 떨리는 손.

홍시같이 붉은 얼굴.

거친 숨결.

상당히 당황하거나 치욕을 느끼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후후. 어서 시작하시죠. ‘감사(監査)’과 알피 벨 씨.”

원인은 바로, 이 남자 때문.

눈앞에서 짙푸른 눈을 반짝이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는 포츠머스의 감독, 성소하.

겉보기에는 서글서글한 멋진 미소였지만 알피 벨은 속뜻을 잘 알았다.

‘개자식. 굳이 나를 콕 지명하다니.’

감사(感謝)패를 증여하는 자리에,

감사(監査)원을 불러 수여자로 지정하다니.

노골적인 비꼼이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순 없었다.

여왕 폐하에게 비공식 치하를 받은 남자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협회 측에서도 무언의 압박을 넣어, 거절한다면 옷을 벗어야 할 판국이었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가, 감사패 수여식을 하겠습니다. 먼저, 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공헌을 한 포츠머스의 감독, 성소하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소하에게 감사패를 건네는 탈피 벨. 어서 이 치욕스러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

“아이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벌을 주려고 하던 분에게 상을 받다니. 대대손손 가보로 보관할게요. 알피 벨 씨. 후후.”

소하는 감사패를 공손하게 받들며 잔뜩 이죽거렸다.

어느새 얼굴을 가득 메운 썩은 미소는 그가 얼마나 행복한지 짐작이 간다.

“···크으으음!”

“하. 전 정말 몰랐어요. 역시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인생의 한 치 앞. 아니, 10년 앞을 내다보는 주제에.

“제가 살다 살다 여왕 폐하랑 차도 한잔 마실 줄이야. 며칠 전만 해도 반성문이나 쓰려고 했는데 말이죠. 알피 벨 씨는 아셨나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쿨럭. 그, 그만하시오.”

“후후. 경사스러운 자리니까, 같이 즐기시죠?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실까.”

“이, 이제 그만···.!”

그 후,

비공식 감사패 수여식 내내.

이후 준비된 만찬회 내내.

알피 벨을 따라다니며 정신 고문을 잔뜩 해버린 소하였다.

2.

“아기 상어~ 뚜루루.”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검은빛 감사패를 닦을 때마다 왜 이리 가슴이 들뜨는 건지.

우승컵보다 이걸 먼저 들게 될지는 몰랐다. 이참에 비싼 왁스나 하나 사서 매일 닦아줘야겠다.

승부 조작 사건은 미래보다 한 달 먼저 종료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서식하는 기생충, 아니, 브로커들을 일망타진했으니까.

동태눈깔, ‘마이크 엣킨스’도 심판 자격 영구 정지를 하사받은 뒤 지금은 콩밥을 먹고 있다. 새끼. 그러니까 왜 조작질하고 지랄이야?

‘샘 소세도 잘 풀렸으니까. 이래저래 최상의 결과로군.’

나에게 협조한 샘 소세는 선수자격 박탈이란 처벌만 받았다.

어차피 34세의 노장에, 팀도 구하지 못하고 있어 은퇴를 고려하던 샘 소세.

그런 그에게 그리 큰 처벌은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듣기로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자서전을 출판하기로 계약했다는데, 참, 글발 살릴 사람은 따로 있었나 보다.

‘소년만화 같은 해피 엔딩이랄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작 경기라고 판명이 난 체스터필드 전은 재경기가 없다는 점.

그래도 내 출장 금지는 아예 백지화되었으니, 공식적으로는 난 퇴장당한 적이 없는 감독이다.

앞으로 퇴장당하는 놈이 첫 번째라고. 그러니깐, 당하기만 해봐. 주급 정지 때려버릴 테니까.

3.

어느덧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삭제 승부 조작 사건이 한 달쯤 흐른 11월 말.

리그는 19라운드까지 모든 경기를 마치었다. 5주 동안 7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덕분에 꽤 힘든 경기도 있었지만, 나와 우리 팀은 당당히 1위를 질주 중이다

리그1 나오라고 해!

그럼, 잠깐 순위표를 봐볼까.

1위. 포츠머스 12승5무2패. 41점.

2위, 스컨소프 11승3무5패. 36점.

3위, 로치데일 10승3무6패 33점.

4위, 사우스엔드 9승4무6패 31점.

5위, 옥스퍼드 9승3무8패 30점.

6위, 플릿우드 8승4무7패 28점.

7위, 체스터필드 7승5무7패 26점.

등등.

승격권이 아닌 곳은 볼 필요가 없으니까 생략해야겠지.

여기서 눈여겨볼 건,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 체스터필드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는 내가 야광봉을 흔든 경기에서 패배를 당한 후, 무려 7연승 중이다.

즉 나한테 지고 나서 모든 경기에서 이겼다는 이야기.

‘강적을 각성시켜버린 게 아닐까. 따라오는 기세가 매서워.’

승점은 겨우 5점 차이. 나도 7경기에서 4승 2무 1패라는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냈거늘.

쫓아오는 기세가 너무 날카로워 엉덩이가 따끔따끔하다.

아마도 다음번 스컨소프와의 홈경기에서 우승의 향방이 갈릴 거란 예감이 진득하게 든다.

그리고, 체스터 필드.

이 팀은 좋지 않은 의미로 나를 비롯한 세상을 놀라게 했다.

7경기, 1승 1무 5패.

내 뒤를 바짝 쫓아오던 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승점을 4점밖에 챙기지 못하며 순식간에 7위로 낙하했다.

이정도면 번지점프가 아닐까?

혹은, 고점에 물린 주식 같기도 하고.

‘아마도 승부 조작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 체스터필드에는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겠어.’

관련자는 없었지만, 선수단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승부 조작 경기라고 낙인이 찍힌 경기였으니까.

‘별로 불쌍하지는 않아. 인과응보지.’

정말 죄가 없냐? 글쎄. 솔직히 나로선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날 경기가 끝나고 슬쩍 인터넷을 들어가 봤는데 가관이었거든.

-응. 다 정확한 판정. 심판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인 줄.

-슈퍼컴퓨터가 내린 판정. 이런 심판이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가야 하는데. 명심판이야.

-꼬우면 니들도 심판 잘 만나던가.

-포츠머스 팬들은 다 눈이 삐꾸임? 뭐가 오심이고 뭐가 조작인데.

악성 팬들의 댓글은 정신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새끼들. 지금도 한번 날뛰어 보지 그래?

이래저래 이미 잔류는 확정을 지었다.

보통 승점 40점이 강등 커트라인이었으니까.

강등 후보가 19경기 만에 승점 40점 이상을 달성해 1위를 달리는 건 꽤 신선한 일이었나보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포츠머스를 집중적으로 다룰 정도.

-거침없는 포츠머스. 최악의 상황에서 19라운드 만에 잔류를 확정.

-강등은커녕 승격, 혹은 우승을 바라보는 포츠머스.

-폐허가 된 전 프리미어 리그 구단을 어떻게 재건했나? 성소하 감독의 리더십을 알아보자.

-군인 출신의 힘인가? 전의 야광봉 춤이 군대 수신호라는 사실이 밝혀져.

-동양계 혼혈이 불러일으킨 기적. 성소하 감독의 과거를 낱낱이 공개!

등등. 물고 빨고 아주 난리가 났다.

그나저나 과거를 파헤치긴 왜 파헤쳐. 스토커 새끼들인가. 하여튼 먹잇감 하나 눈에 띄면 눈깔이 뒤집혀선.

이렇듯 모두가 ‘성공’을 확신하는 분위기지만 난 썩 만족스럽지 않다.

‘경기 내용이 구려.’

19경기 12승 5무 2패.

겉보기에는 정말 떠들썩해질 만한 성적이지만 정말 간신히 달성했다.

옥스퍼드, 원정경기.

지루한 공방전 끝에 0-0 무승부.

대거넘 레드브리지, 홈경기.

1-0 신승.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조쉬 킹의 미친 중거리 슛이 없었다면, 무승부가 날뻔한 경기다.

요크시티, 원정경기.

1-0 신승.

90분 내내 잭 해리슨과 앤디 로버트슨이 왼쪽을 폭파해버렸지만, 결정력이 아쉬웠다. 3경기 만에 선발 출장한 존 말로리의 기가 막힌 침투가 없었다면 비겼을 거다.

사우스엔드, 원정경기.

0-2 패배.

원정경기는 언제나 어렵다. 2줄 수비를 뚫지 못하고 역습 철퇴 두 방에 머리가 깨져버렸다. 경기 후, 오랜만에 라커룸에서 샤우팅을 내질렀다.

맨스필드, 홈경기.

2-0 승리.

전 경기의 샤우팅이 먹혔는지, 아님 홈빨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조쉬 킹과 알리의 골로 쉽게 승리.

위컴, 원정경기.

1-1 무승부.

어이없는 세트피스 미스로 전반 3분 만에 선제골을 헌납. 그 후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고, 후반 76분경에 반즈의 프리킥 골로 따라잡은 경기. 필드골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버턴 알비언, 홈경기.

2-0 승리.

홈경기는 강하다. 90분 내내 두들겼고, 쉽게 이겼다. 조쉬 킹의 영점만 잡혔다면, 안토니오의 머리가 삼각형이 아니었다면. 4-0, 5-0도 가능한 경기였다.

이래저래 성적은 챙겼지만, 눈에 띄는 지표가 보일 거다.

그렇다.

바로 득점 숫자.

‘눈에 띄게 줄었다.’

조쉬 킹은 꾸준히 골을 넣어주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 패턴이 읽혔다.

힘과 속도는 좋으나 발밑이 처참하다는 점을 집중 공략당하는지라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알리와 쌍으로 묶어서 기초훈련 중이긴 한데, 애초에 이쪽으론 재주가 없는 놈이라.’

볼에 대한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법.

훗날 국가대표에 승선했어도 기술적으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킹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당 1골에 가까운 18세의 선수가 팀의 문제라면 그냥 해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조쉬 킹은 그냥 이대로만 해주며 성장하면 된다. 도망가지만 않길 바랄 뿐.

그렇다면 원인은 바로, 오직 하나.

마이어스의 부재다.

지금 주 전술로 자리 잡은 투헬식 3백은 현재 선수단으로는 맞지 않는 옷.

어떻게든 공백을 메우려고 발악한 결과물이지만 영 신통치 않다.

이러다간 후반기에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득점 숫자뿐만 아니라 점유율, 패스 성공률, XG 값, 모두가 하락 중이니까.

마치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의 항공사 주가를 보는 거 같다.

‘다시 팀을 정상화해야 해.’

방법 또한 한 가지.

다시 원래의 전술로 회귀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매튜 다이스’,

이 주사위 눈금이 3밖에 없는 어린 오른쪽 수비수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 039화. 리그2, 후반기.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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