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32화 (32/306)

< 032화. 리그2, 전반기. (2) >

1.

이적 시장이 끝나고 포츠머스의 로스터를 발표했다. 앞으로 미우나 고우나 전반기를 함께해야 할 친구들이다.

[GK- 말콤 우드. 올리버 웰즈. 재커리 뱅크스.

DF- 케빈 도슨. 찰스 말로리. 스펜서 보이드. 앤디 로버트슨. 타일러 페인. 매튜 다이스. 맥스 휠러. 이선 카펜터. 코터 모슬리.

MF- 마이클 반즈. 스티븐 데커. 커너 러셀. 칼빈 필립스. 델리 알리. 하비 셸비. 잭 해리슨.

FW- 안토니오 그린. 존 말로리. 조쉬 킹. 프레디 스톤. 휴고 매닝.]

총 24명의 단출한 선수단.

얼핏 보면 충분한 숫자로 보인다.

최소한 더블 스쿼드는 완성되었으니까.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좋은 상황은 절대 아니다.

1군과 후보의 차이는 엄청난 편.

미래를 아는 감독인 내가 봐도 열 명 정도는 도저히 갱생이 어렵다.

딱 리그2가 한계인 선수들.

‘난 미래를 알 뿐.’

어디까지나 10년 치 감독 경험과 축구 역사를 아는 능력이다.

미래가 없는 선수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엔, 난 초능력자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잠재성은 타고난 것.

그 선천적으로 한계가 정해진 능력마저 키운다면 그건 이미 축구의 신의 경지일 테지.

하여튼, 중요한 건 최대한 1군의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리그2의 경기는 총 46경기.

프리미어리그보다 8경기나 많다.

더군다나 압박을 강하게 가져가는 내 전술의 특성상 부상 위험도도 높은 편.

한 명이라도 드러누우면 승격에 빨간불이 켜질 거다.

‘요컨대 리그에 몰방해야 한다는 거지.’

리그컵과 FA컵은 빠르게 버려야 한다.

물론, 리그컵은 몰라도 FA컵은 매우 아쉽긴 했지만.

‘돈이 되니까.’

FA컵은 하부리그 소속 구단의 재정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

강팀하고 붙기라도 한다면 관중 수입에 TV 중계 수입까지.

로또 맞았다고 봐도 무방.

이 비렁뱅이 같은 구단으로선 매우 아쉽다.

‘그래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무리하다가 망할지도 모르니까.’

망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고민할 시간도 아깝고.

리그1로 승격.

FA컵에서 ‘얻을지도 모르는’ 수입.

고민할 가치가 있는가? 승격만 해도 FA컵에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이 번다.

아니, 애초에 난 이번 시즌에 승격하지 못하면 모가지가 날아간다.

‘그리고 리그에 집중한다고 해도 불안 요소가 많다.’

1군은 리그2 기준으로는 완벽했다.

아니. 완벽했‘었’다.

과거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마이어스의 부재.

이건 꽤 큰 문제다.

녀석은 나의 4-2-3-1과 4-3-3시스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으니까.

변형 3백을 가능케 하는 건 한쪽 사이드에서 중앙수비수로 자리를 옮겨주며 스토퍼 역할을 맡아줄 선수.

하지만 우리 팀엔 마이어스 말고는 이 역할을 맡아줄 선수가 없다.

내가 이래서 마이어스를 보내기 싫었거늘. 리그1이었다면 막았겠지만 챔피언십 팀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팀에 오른쪽 수비가 가능한 선수는 빌어먹을 인종차별주의자 스펜서 보이드와 매튜 다이스인데.’

스펜서 보이드는 선수단이 줄부상당해 뛸 선수가 10명이 되지 않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을 선수.

로스터에 등록은 했지만, 전력 외 선수다.

솔직히 놈이 지랄염병을 떨 게 뻔해서 그냥 넣어준 것일 뿐.

그렇다고 매튜 다이스에게 마이어스의 롤을 주기엔 어렵다.

올해 갓 성인팀에 들어온 19세인데다 미래를 봐도 애매한 선수였으니까.

이적 전부터 마이어스의 백업을 위해 훈련은 시켰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묘한 선수지.’

매튜 다이스는 참 묘한 선수였다.

같이 지낸 시간은 3년.

리그2를 벗어나자마자 타 구단에 팔아버렸다. 도저히 특색이 없었거든.

다이스, 주사위 놀음이란 성에 어울리지 않게 저점도, 고점도 없다. 던질 주사위가 없는 수준.

이길 때도 평점 6점.

질 때도 평점 6점.

시즌 평균 평점 6점.

6의 남자였다. 열심히 지도 중이지만 자신이 없다. 미래에도 꾸준히 하부리그를 전전하며 평점 6점 행진을 이어나갔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도 애매하다. 묘하게 훈련을 잘 따라오기 때문.

겉으로 보기엔 티는 나지 않지만, 데이터를 보면 또 그게 아니다.

성장 정도로만 치면 상위 5명 안에 들 정도.

긁어는 봐야 할 복권이긴 한데. 중요한 건 당장은 쓸만한 녀석이 아니다.

‘그렇다고 좌우 반전을 해서 왼쪽을 스토퍼로? 아니야. 로버트슨과 해리슨의 조합을 포기할 순 없지.’

로버트슨과 해리슨.

리그2에 강림한 좌측면의 공포.

이미 상대 팀들은 이 둘을 막기 위해 골머리가 썩는 중일 터.

가장 날카로운 무기의 날을 구부러뜨리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다.

‘방법은 하나야. 진형을 바꿔야 해.’

큰 변화는 불가.

잦은 전술 변화는 일관성을 해친다. 차라리 실력이 달리는 선수를 억지로 때려 넣는 게 나을 때도 있으니까.

‘선수단을 살펴보면···. 수비수가 많고 정발 윙어가 많아.’

정발.

주발과 경기장에서 뛰는 사이드가 일치할 때 쓰는 말이다.

오른발 선수가 오른쪽에서,

왼발 선수가 왼쪽에서 뛴다는 뜻.

즉, 요즘 시대엔 사라지는 중인 클래식 윙어가 많다는 이야기다.

델리 알리의 영입과 4-2-3-1를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대한 측면을 벌려 중앙에 넓은 공간을 창출.

그 공간을 공격형 미드필더가 헤집는, 고육지책이었을 뿐.

자원만 넉넉했다면 나도 반대 발 윙어, 즉 인버티드 윙어를 사용했겠지.

‘2010년대의 명장들이 이럴 땐 어떻게 했더라. 위르겐 클롭, 펩 과르디올라···. 지단, 나겔스만···. 아! 그 사람을 깜빡했군.’

한 사람을 잊고 있었다.

전술의 천재.

이를 논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독일 출신 감독!

천재 혹은 괴짜.

전술적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지만, 인격에 문제가 커 선수단과 프런트와 맨날 싸우던 미친개.

‘토마스 투헬.’

이 남자의 전술이라면.

다이스라는 복권을 긁어볼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2.

A매치 휴식 기간.

대형 클럽의 프런트나 팬들은 꽤 노심초사하는 기간이다.

혹여나 소속 선수들이 A매치 중에 다친다면 악재도 이런 악재가 아니었으니까.

잘라 말해, ‘프로’팀의 입장에선 없으면 좋다.

결국 선수에게 돈을 주는 건 구단.

다친다고 대표팀에서 사죄금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이런 문제로 대형 클럽들과 각국의 축구협회는 항상 반목하기 마련이었다.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를 차출해 리그 운영에 큰 차질을 주는 건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이야기.

이렇듯 거대구단엔 달갑지 않은 기간이지만 영세 구단엔 이야기가 정반대였다.

어차피 국가대표에 나가는 선수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전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기간으로 제격이다.

“오늘부터는 체력훈련을 줄인다!”

훈련장에서 소하가 버럭 소리 지르자 선수들은 환호한다.

“예쓰!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났다!”

“정말 힘든 두 달이었어.”

“나···. 조금 강해진 듯한 기분.”

“아아. 안 되는데. 이제 쇠질 없인 못 사는 몸으로 변해버렸는데.”

“뭐야. 이제 좀 30KM 구보가 쉬워지려고 했는데. 아쉽네.”

장난 섞인 아쉬운 반응도 있었지만, 얼굴은 따로 논다. 전역 신고를 마친 민간인(진)의 모습이랄까. 매우 좋아한다.

얼마나 지옥 같던지. 오죽했으면 소하가 하루 훈련휴가권을 미끼로 킹을 부려 먹었겠는가.

하지만 스포츠는 흘린 땀만큼 결과를 얻는 법.

선수들의 성장도는 놀라웠다. 두 달 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수년은 앞선 식단 시스템.

수년은 앞선 체력훈련 프로그램.

즉 수년은 앞선 스포츠과학.

과학은 위대하다. 인간의 몸도 과학이지 않던가.

근력, 순발력, 지구력, 주력 등등.

신체적인 부분만 보자면 두 달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역시 하부리그는 피지컬빨이지.’

음흉하게 웃는 소하.

신체조건이야말로 스포츠의 기본.

발을 쓰든 손을 쓰든 일단 몸을 쓰는 거니까.

기술, 정신, 신체.

이 세 가지 능력이 모두 바닥일 때, 신체야말로 가장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였다.

상한선에 금방 도달하지만 말이다.

“아, 너무 좋아하네. 그냥 계속할까?”

“큼큼. 아, 아쉽다는 이야기죠.”

“아쉽다고 말한 선수도 많거든요.”

“제, 제발.”

물론 농담이다. 경질 이후 사람이 좀 꼬인지라. 잘되는 꼴을 보고 꼬장을 부리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들다.

“농담이야. 이제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인데 과한 체력훈련은 그만둬야지.”

모든 팀이 마찬가지. 프리시즌에 비해선 시즌 중의 훈련 강도는 낮다.

“그럼 이제 기초훈련 위주로 진행하나요? 알리처럼?”

“아니.”

델리 알리.

구단 내에서 유일하게 다른 훈련을 배정받은 선수.

알리는 그간 체력훈련 대신 기초훈련에 엄청난 시간을 배정받았다.

‘그야, 기초가 부족한 선수니까.’

뭔 헛소리냐,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진짜다. 알리는 원래 타고난 축구 센스로 세계급 활약을 펼쳤던 선수.

하지만 토트넘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초부족으로 바닥이 드러났다.

소하는 이 불행한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그럼 무슨 훈련을···.”

“전술훈련이다. 우린 10일 동안 전술 하나를 깎아야 하거든.”

“네? 또 다른 전술이요?!”

대경실색하는 선수들.

이제야 간신히 전방 압박과 하프 스페이스의 공략법을 조금 맛보았거늘.

좀체 이해되질 않는다.

“아, 말을 잘못했네. 기초적인 골자는 같아. 그냥 포메이션만 조금 바꾸는 거지. 어렵진 않을 거야.”

소하는 스펜서 보이드와 매튜 다이스를 슬쩍 흘기며 말을 잇는다.

“우린 3백으로 간다!”

3.

A매치 휴식기 이후 재개된 리그.

첫 상대는 로치데일 AFC.

상당한 강팀이다. 과거에는 3위를 달성하고 승격에 성공한 팀.

게다가 원정경기라 매우 힘든 경기가 예상된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재개된 리그. 오늘의 경기는 화제의 팀인 포츠머스와 그들을 홈으로 불러들인 로치데일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와아아아아! 로치데일!”

로치데일의 홈구장, 스포틀랜드 스타디움은 역시나 만석이다.

오랜만에 열린 리그 경기이기도 하고, 상대가 상대다 보니.

내 입으로 당당히 말하자면 현 리그2에서 가장 화젯거리인 팀은 단연 이 몸의 포츠머스다.

후후. 이 몸이야말로 흥행 보증수표지.

“잘 부탁드려요. 감독님.”

경기 시작 전에 앞서 로치데일의 감독, 케이스 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베리의 서식하는 돼지 새끼와는 다르게 손을 맞잡아 준다.

“요즘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군.”

손‘만’ 잡아줬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가시는 뾰족하기 그지없다.

아아, 정녕 동종업계 종사자 중에선 날 좋게 보는 이는 없단 말인가.

하기야,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새파랗게 어린놈이 모든 관심을 받으니까.

배알이 꼬여도 엄청나게 꼬였겠지.

“하하. 제가 콧대가 좀 높은 편이긴 하죠. 다 부모님 덕분이랄까요.”

“···잘나갈수록 겸손해야 살아남는 세계라네. 자네는 그걸 알아야 해.”

아잇. 싯팔. 이 망할 아저씨가 초면에 꼰대질 오지게 하네. 꼴 받는걸.

“글쎄요. 잘나간다는 말엔 동의할 순 없겠네요. 고작 4부리그에서 잘나간다고 하기엔, 좀 그렇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잉글랜드 4부리그는 다른 4부와는 다르다.

이 리그의 감독 정도면 상위 10% 안에 드는 감독들이니까.

한국 직장인 연봉으로 비교하자면, 상위 10%가 1억이다.

전 세계의 감독만 수만 명. 그중에 10%라면 꽤 잘나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

“정말, 듣던 거보다 훨씬 건방지군. 오늘도 광대질을 하려는 생각인가?”

힐 감독은 두 눈을 부라렸다.

내가 얌전히 고개를 숙일 줄 알았나 보지만, 번지수 잘못 찾았어.

“광대질이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린 관중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이에요. 이거. 이거. 감독 짬밥 좀 드셨다는 분이 아직도 이걸 모르셨나 보네.”

“나에게 지금 감독이 어떤 건지 가르치는 건가? 우습군.”

이야. 도발해도 묵묵히 꼰대질하는 저 꿋꿋함! 본받아야 할 정도다.

“설마요. 오히려 선배님들께 항상 배우고 싶어 하죠.”

“그렇게 될 걸세. 자네의 광대질의 한계를 오늘 내가 가르쳐 줌세.”

“옙. 기대하고 있을게요.”

대충 받아주고 원정 벤치로 돌아왔다. 더 말을 섞으면 혈압이 터질 거 같거든. 뭔 말이 통해야지.

그나저나,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대응 전략을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해온 듯싶다.

세상에 둘도 없을 꼰대로 보이지만, 나름대로 로치데일 승격으로 이끄는 감독이니까. 능력은 출중하다. 가만히 있었다면 한 대 얻어맞았겠지.

[아! 이거 놀랍군요. 포츠머스가 다시 한번 기행을 펼칩니다! 오늘 선발 포메이션이 백 스리 군요!]

때마침 장내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가 귀를 후벼팠다.

스윽.

난 썩은 미소와 함께 힐 감독을 훔쳐보았다.

반쯤 벌린 입.

안구가 튀어나올 만큼 부릅뜬 눈.

가늘게 떨리는 손끝.

상당히 당황한 모습.

후후. 3백은 예상 못 했죠? 그럼 어디 한번 한 수 배워볼까요? 선배님.

< 032화. 리그2, 전반기.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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