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9화. 데드라인. (3) >
1.
리즈 유나이티드.
웨스트요크셔주의 리즈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
리즈 시절의 그 ‘리즈’가 바로 이 축구 구단이다.
좋지 않은 의미로 세계에서 명성을 크게 얻었지만, 근본은 넘치는 구단.
재정 악화로 망해버렸다는 점에선 포츠머스와 비슷할진 몰라도 비교하는 게 실례다.
적어도 리즈 유나이티드는 한때나마 잉글랜드를 호령했었으니까.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더비인, 로즈더비의 한 축이기도 하다.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라이벌이라니. 과연, 근본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린다.
자세히 뜯어 보면 포츠머스와는 비슷하면서도 천지 차이.
주제도 모르고 돈을 펑펑 쓰다가 쫄딱 망한 포츠머스
한 끗 차이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하지 못한 리즈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리고 투자를 했지만 정말 아쉽게 진출에 실패하며 재정 악화에 빠졌다.
그에 반해 포츠머스는 챔피언스 리그는커녕, 유럽대항전도 한번 나가보지 못한 구단.
09-10시즌에 FA컵 준우승을 해서 유로파리그 예선참가를 할 ‘뻔’했지만 방만한 경영에 이은 재정난으로 금지당했다.
대신 나간 건 리버풀.
이래저래 포츠머스는 전설이다. 매우 좋지 않은 쪽으로.
하여튼, 포츠머스와는 다르게 아주 근본이 넘치는 구단인 리즈의 13-14시즌은 어수선했다.
켄 베이츠 구단주가 구단을 판매.
바레인의 사업가 살라 누루딘이 새로운 구단주 자리에 앉는 등. 내적, 외적으로 꽤 어수선하다.
여기에, 오른쪽 풀백들의 줄부상.
덕분에 저번 시즌부터 팀을 맡은 브라이언 맥더멋 감독은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망했군.”
브라이언 맥더멋 감독은 비관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오른쪽 측면에 구멍이 나버려 손쓸 방도가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영입일 뿐.
하지만, 가진 이적 자금은 겨우 20만 파운드에 불과.
같은 챔피언십 선수의 영입은 어림도 없는 금액이다.
유달리 희귀한 포지션인 측면 수비수는 상위리그에서 임대도 어렵다.
선수가 없으니까.
심지어 새로 구단을 인수한 구단주에게 돈을 더 달라고 하기도 어렵다.
아직 구단의 내부 정리도 끝나지 않았는데 돈을 쥐여줄 리 없잖은가.
이래저래 망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충 없이 그냥 시즌을 시작한다면 강등할지도 모른다.’
측면 수비수의 중요성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고로, 유소년 선수로 때우기엔 무리.
어느 정도 검증된 성인 선수가 필요하다.
“으으. 머리야.”
머리를 부여잡는 맥더멋.
그런 그에게 한줄기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으니,
“감독님. 이 선수 어떻습니까? 리그2 선수라 몸값도 매우 저렴합니다.”
수석 스카우트가 가져온 한 무명 선수의 보고서. 처음엔 그저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화가 날 정도.
“리그2? 장난하십니까?”
“큼큼. 진정하시지요. 데클렌 마이어스란 선수입니다.”
데클렌 마이어스? 들어본 적도 없는 선수다.
‘그리고 뭐? 리그2? 하. 참.’
리그2라 하면 프로의 맨 밑바닥 아니던가. 암만 배고파도 길가의 개똥을 주워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탈이 나기 마련이니까.
차라리 유소년 선수를 올려 쓰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다.
허나,
“와우. 마벨러스!”
짧은 경기 영상을 보고 나서 완전히 빠져버렸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선수가 리그2에서 썩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격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축구 지능이 정말 뛰어났다. 이 정도면 당장 영입해도 통할 정도!
매우 공격적인 포츠머스 FC의 전술에서 안정감 있게 수비의 균형을 맞춰주는 모습에 완전히 홀딱 빠졌다.
심지어 스카우트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어스는 멀티플레이어.
눈이 뒤집힐 수밖에.
마이어스와 사랑에 빠진 맥더멋 감독.
그날로 식사도 걸러 가며 며칠 밤을 지새 이번 시즌 포츠머스의 모든 경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유레카!”
전율이 돋았다.
30년 전, 잃어버렸던 머리카락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데클란 마이어스의 실력 때문에?
아니다. 물론 마이어스를 영입할 마음을 굳혔지만 다른 이유였다.
바로, 그간 고민해오던 전술적 고민을 드디어 풀어냈으니까.
‘성소하? 이 20대 감독은 천재다. 천재 말고는 다른 수식어가 불필요하다!’
포츠머스 FC의 신임감독.
그가 보여주는 축구는 차원이 달랐다.
아직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해 조금 모자라 보였지만 놀라운 디테일이었다.
‘이미 포지션의 개념을 깨버렸어. 4백과 3백을 오가며 경기장 내내 물이 흐르듯 포메이션이 꿈틀거린다.’
이것은 즉, 현대 축구가 목표로 하는 최종 진화의 단계 아니던가!
맥더멋의 전술적 안목으로선 최소한 5년은 앞서나간 전술이었다.
티키타카와 게겐프레싱의 절묘한 조합.
여러 감독들이 시도 중인 난제 중 난제를 고작 28세의 젊은 감독이 어느 정도 이루어내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브라이언 맥더멋.
올해로 52세.
자신보다 절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천재 감독에게 경의를 품으며 기술단장에게 말을 전한다.
“마이어스의 영입을 진행하겠습니다.”
데드라인이었지만 어렵지 않은 영입일 거라 자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2.
스포츠 에이전트.
감독들에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후레자식을 일컫는 직업이다.
‘돈에 환장한 새끼들.’
자신의 수수료를 위해 툭하면 다른 구단에 선수를 찔러보거나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며 재계약을 어렵게 만드는 쓰레기들!
‘필요는 하지만 때리고 싶긴 해.’
축구선수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가방끈이 짧다. 그에 반해 법적 지식이 필요한 계약서는 엄청 많이 접하는 직업.
구단과의 계약.
광고 출연.
개인 스폰서.
개인 초상권.
개인 사업.
등등. 일반인에 비해선 비교도 어려울 만큼 많은 계약을 진행한다.
당연히 축구밖에 모르는 프로 축구 선수들은 난관에 봉착.
불합리한 계약을 맺거나 노예계약을 맺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포츠 에이전트가 등장. 쉽게 말해 분업화였다.
선수는 축구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잡다한 일은 모조리 에이전트가 맡는 방식이다.
따라서 선수들에게는 종종 가족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이기에 축구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저 대리인 주제에!
정말 아니꼬운 놈들이지만, 나도 필요하긴 하다. 언제 구하지.
“제 고객은 마음을 정했습니다.”
안다. 알아.
이 서류쟁이가 비루한 클럽 하우스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마이어스가 이적을 원한다는 뜻.
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두 시간이 넘는 개인 면담을 통해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으니까.
앞으로의 비전.
팀에서의 중요도.
훗날 받게 될 주급까지.
모든 약을 총동원해 봤지만,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아쉽게 됐군요. 감독님.”
나와 함께 에이전트를 맞이한 브라이언이 마음에도 없는 소릴 지껄였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한지 연신 입술을 씰룩인다.
진짜 인중 찌르고 싶네.
하여튼, 보통은 단장이나 영입 담당 이사가 협상을 진행하지만, 우리 구단은 예외.
나와, 기술재무팀장, 그리고 브라이언이 주도한다.
왜냐. 사람이 없거든.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마이클 에드워즈 같은 사람 어디 없나.
게다가 굳이 내가 끼지 않아도 되지만, 브라이언 저 새끼들을 어떻게 믿고 협상 테이블에 홀로 앉히겠는가.
“계약 기간은 많이 남았습니다만.”
데클렌 마이어스의 계약은 2016년 6월 30일까지.
작년에 4년 계약을 했으니 아직 엄청 많이 남았다. 3년이나.
고로 계약상으로는 우리가 엄청나게 유리하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현 주급의 4배를 제시했습니다. 맥더멋 감독은 마이어스를 어떻게든 영입하고 싶어 합니다.”
“···.”
씨발. 좆나게 많이도 불렀네.
마이어스의 현 주급은 1,000파운드.
즉, 4,000파운드를 불렀다는 거다.
한화 6백만 원쯤.
챔피언십의 평균 주급보단 꽤 낮지만, 지금과는 비교성립이 불가능.
세금 떼도 한 달에 천오백을 버는 거니까.
그나저나, 구단 간의 합의도 끝나지 않았는데 개인 합의는 마친 모양이군.
마이어스. 이 새끼도 위연이었어.
“계약 기간이 매우 많이 남았는데요.”
우선은 많이 남은 계약 기간으로 물고 늘어지자. 조금 추잡하지만.
“네. 그래서 리즈 유나이티드는 상당한 액수의 이적료를 제시했다고 압니다.”
“그건 아직 합의가 끝난 게 아니라 여기서 말할 사항은 아니고요. 댁이 여기에 온 이유가 있을 텐데요.”
에이전트가 우리 측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마이어스가 계약상으로 무언갈 바란다는 뜻.
대충 뭔지는 짐작이 간다.
아마도,
“정확히 보셨습니다. 마이어스는 구단에 남는 것도 선호합니다. 감독님과 팀 동료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3배의 주급 인상 재계약이면 잔류할 겁니다.”
역시나. 예상대로다.
알긴 알았어도 3배라니. 말도 안 되는 요구다. 진짜 뒷골 당기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혔다. 꽤 준수한 얼굴의 뒷면에 이런 흉심을 숨기고 있었다니. 마이어스, 이 개자식.
“감독님과 포츠머스의 프런트에는 나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고객은 최대한 신경을 쓴 겁니다. 알다시피, 리그1도 아닌 챔피언십리그에 속한 팀이니까요.”
“···그건 그렇죠.”
꿈의 리그에 가장 가까운 리그.
심지어 명문 중의 명문인 리즈 유나이티드라면 리그2 소속의 선수들은 백이면 백 전부 다 이적을 단행할 거다.
오히려 잔류라는 선택지를 건네준 마이어스의 충성심이 특별한 수준.
속으로 욕은 했지만, 마이어스의 심정은 공감한다. 솔직히 연봉 4배 부르는데 이직하지 않을 직장인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손해를 감소하고 회사에 남는 선택지를 고려한 게 대견할지도?
“3배 인상은 불가합니다. 감독님.”
기술재무팀장이 소곤거렸다.
나도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아요. 3배는 힘들죠.”
현 주급도 한도 근처다.
여기서 더 늘린다면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오겠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가지뿐.
“재계약은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이적을 허가하지 않으시겠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다면요?”
“정식으로 이적 요청서를 낼 겁니다. 언론에도 정보를 흘릴 테고요.”
“당연히 그렇게 나오시겠죠.”
한마디로 분탕을 치겠다는 이야기.
선수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현대의 축구판에서 이 짓은 구단에 꽤 심각한 타격을 준다.
가장 큰 피해는 역시나 선수단의 사기 저하. 초거대 구단은 힘으로 찍어 누를 때도 있지만, 이런 영세 구단은 큰 문제다.
프로 축구 선수란, 더 많은 연봉이 최우선인 직업. 당연하다. 선수 생명이 짧으니까.
이런 선수들에게 더 많은 연봉을 받을 기회를 박탈한다는 건, 의외로 엄청난 사기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동기부여에도 문제가 생겨 대충 계약 기간만 채울 생각을 품을지도 모르지.
즉 마이어스가 떠날 마음을 품은 순간, 선택지는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후우. 알겠어요. 리즈 유나이티드와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죠.”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3.
리즈 유나이티드는 포츠머스와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체계가 잡힌 구단.
당연하게도 협상담당자는 존재한다.
“네? 이제 협상을 시작하자고요?”
리즈의 협상담당자, 딘 에디슨은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벌써 시간은 오후 4시.
엔드라인까지 고작 8시간 남았다.
자칫 협상이 길어진다면 아예 무산될지도 모르는 시간.
아니, 애초에 웃돈 주고 제안을 했기에 역제안이 올 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포츠머스라 하면 재정이 열악해 몇 달 전만 해도 법정관리를 받던 구단.
바로 수락할 줄 알았다.
-네. 옵션 몇 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젊은 목소리.
왠지 모르게 짜증이 가득하다.
“그, 그러시군요. 솔직히 포츠머스에서 바로 수락할 줄 알았습니다. 60만 파운드는 대단히 큰 금액입니다.”
-알거든요. 근데 전 부족해요.
“···.”
할 말을 잃었다. 추정 몸값에 3배를 지른 큰 금액이었건만. 목소리를 보아 젊은 친구인 듯싶은데, 축구계의 생태를 잘 모르나 보다.
“저, 포츠머스의 협상담당자님. 마이어스의 추정 몸값은 16만 파운드입니다. 비록 승격 옵션은 제외하더라도 60만 파운드는 굉장히 후하게 지급하는 겁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저는요, 승격 옵션을 돌려서 60만 파운드를 이번 시즌에 바로 받고 싶거든요? 물론 출장 옵션이랑 잔류옵션은 유지하고서요.
“···.”
날강도였다. 한마디로 100만 파운드에 리그2 선수를 사가라는 소리 아닌가.
차라리 이 돈이면 같은 리그 내 선수를 사고 만다.
“···아시겠지만 불가능합니다.”
-그럼 전 이만.
뚝.
“···.”
포츠머스의 젊은 친구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통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잠시 당황한 딘 에디슨.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를 건다.
-네에. 금방 전화하셨네요.
분명 금방 전화를 걸 거라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음색.
딘 에디슨은 이마에 굵은 핏줄을 일으키며 간신히 말을 꺼낸다.
“···불가능한 요구를 하시는 걸 보아하니, 원하시는 게 있으신 거 같은데···. 맞나요?”
-이야. 역시 전문 협상가는 다르네요. 네, 당연히 있죠.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는 젊은 친구.
자꾸만 놀아나는 듯한 불쾌감이 든다.
애써 기분 탓이라고 머리를 흔들어보지만 찝찝하기 짝이 없다.
“크흠. 어떤 걸 원하십니까?”
-데클렌 마이어스는 저희 팀에선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선수죠. 어차피 이적시장 마감일이라 돈도 필요 없고요. 대체 선수를 구할 시간이 없으니깐요.
“그래서요?”
-돈으로 선수를 바꾸지 못한다면, 선수로 바꿔야겠죠?
“네? 트레이드요?”
-네. 정확해요. 물론 20만 파운드는 주셔야겠지만.
“어, 어떤 선수를···?”
-걱정하지 마세요. 리즈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선수이니까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엔 왠지 모를 사악함이 느껴졌지만, 딘은 애써 무시하며 재차 묻는다.
“시간이 없으니 어떤 선수인지 바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칼빈 필립스.
“네? 누구요?”
칼빈 필립스. 이제 막 유소년팀에서 U23으로 올라온 젊은 선수다.
딱히 재능이 특출난 편은 아닌지라 특별한 이목을 끌고 있진 않다.
추정 몸값은 20만 파운드.
생각보다 굉장히 쉬운 제안 아닌가!
“흠. 일단 알겠습니다. 10분 내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협상이었다고 자찬하는 딘 에디슨.
하지만, 소하는 알았다.
칼빈 필립스.
훗날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이자,
‘요크셔 피를로’라는 엄청난 별명을 가지게 되는 선수란 걸.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남았다.
칼빈 필립스는 충성심이 강한 리즈의 성골 유스. 그를 설득해야만 했다.
앞으로, 7시간 43분 안에.
< 029화. 데드라인.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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