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3화 (23/306)

< 023화. 개막전. (4) >

1.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12초 만에 선제골을 넣은 포츠머스.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베리FC의 서포터들만 제외하고선.

-미친. 12초 만에 골이야!

-구단 신기록!

-오오오. 성버지.

-앞으로 성소하 감독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감독이 잘한 게 아니라 선수가 잘한 거야. 다들 정신 차려.

└응~ 아니야. 우리 팀 선수들 원래 저런 거 못하는 애들이야.

온라인은 성소하를 찬양하는 글의 홍수였다. 그리고 이것은 나름 객관적인 서포터라 자칭하는 힉스와 필립스도 마찬가지.

“언빌리버블.”

필립스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짧은 소감을 남겼을 뿐. 너무 놀라 환호할 여지는 물론, 생각할 기력도 없었으니까.

“···.”

힉스는 아예 입에 본드가 묻었다. 두둑한 턱살과 볼살을 가늘게 떠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어···. 음. 충격적인 시작입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힉스가 중계라는 자신의 본분을 떠올렸다.

“어메이징.”

아쉽게도 필립스는 아직도 혼이 반쯤 나가 있었지만.

“큼큼큼. 필립스 씨? 해설 부탁드립니다. 하하.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라 필립스의 멈추지 않던 입이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보기 드문 장면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힉스가 넉살 좋게 풀어나가며 필립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윽.”

잠시 힉스를 노려본 필립스는 냉정을 되찾고 해설을 시작한다.

“아. 죄송해요. 너무나도 완벽한 골이라 그만 제가 정신줄을 놓았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하하. 그럴 겁니다. 사실 저도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이번 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엔 단순한 운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짜임새가 좋아 보였습니다.”

“정확히 보셨어요. 이걸 운이라고 한다면 ‘축구를 알지도 못하는 놈.’이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성소하 감독은 짧지만 강렬한 영화 한 편을 준비했어요.”

필립스는 혀를 내두르며 칭찬에 칭찬을 거듭한다.

“인제야 이해가 가요. 성소하 감독의 모든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자칫 과도해 보이는 기자회견도, 이해하기 힘든 선발명단도요.”

“큼큼. 필립스 씨. 혼자만 알고서 감탄하시지 말고 저한테도 좀 알려주십시오. 전 축알못이라. 하하.”

힉스의 넉살에 이제야 해설임을 자각한 필립스. 그는 천천히 이번 골에 대해서 입을 연다.

“···그건 말이죠···.”

2.

소하는 계획이 완벽히 들어맞자 자기도 모르게 썩은 미소를 지었다.

히죽.

먹히거나, 먹히지 않거나.

확률은 반반이었거늘. 완벽히 들어맞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수 넷이서 우라돌격을 감행해서 얻어걸린 듯싶지만 전혀 아니다.

‘내가 괜히 트래시 토크를 일삼는 게 아니라고.’

홍보라는 목적이 최우선이지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전술이란 감독의 의지나 사상을 투영하는 법.

예를 들면, 라인을 내리고 두 줄 수비를 하는 전술은 감독의 ‘난 주저앉아서 버티고 또 버티면서 역습 한 방을 노릴 거야.’라는 생각이 투영된 것이다.

즉, 이것은 그간 소하에게 악감정을 품었던 리 그랜트 감독에게도 적용된다.

‘뻑킹 아시안. 무조건 이긴다.’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의지.

그랜트의 비틀린 승리에 대한 욕망은 그의 전술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베리FC의 주 전술은 4-4-2.

보통은 라인을 내리고서 역습 한 방을 노리는 성향.

하지만.

오늘 그랜트는 선수들에게 라인을 올리고 과감한 공격을 명했다. 축구는 공격해야 승리하는 스포츠였으니까.

덕분에 앞으로 쏠린 팀의 무게 중심.

마찬가지로 들이박을 준비가 끝난 포츠머스.

정면 추돌로 대형 사고가 나지 않고서야 배길 리가 있겠나.

평상시 같았으면 그저 뒤로 공을 돌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을 터.

하지만 오늘은 앞으로 공을 보내려고 하다가 기습 선제공격에 당해버렸다.

평상시처럼 했다면.

조쉬 킹의 압박에 당황할 리도 없었을 거다.

애초에 조쉬 킹의 전력 질주는 단순하게 보자면 체력낭비,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힘든 전략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것만이 소하의 노림수는 아니었다.

‘베리FC의 8번. 잭 케네디는 그럭저럭 쓸만한 선수지만 판단력이 느리지. 9번인 피터 홉스는 패스가 엉망진창이고 침착함을 유지 못 하는 선수.’

소하의 노림수는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도 포함이다.

회귀 전, 소하가 리그2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3년.

그 3년 동안 리그2 소속의 모든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한 인물이 바로 성소하다.

개인 시간도 버려가며 인생을 축구에 갈아 넣은 덕에 생긴 지식.

이 지식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범죄가 아닐까?

약점이 보이면 약점을 집요하게 노려줘야 인지상정.

“후후후.”

이제 겨우 시작이다.

선제공격은 이 경기에서 베리FC를 더 큰 함정 속으로 던져버리기 위한 에피타이저였을 뿐.

메인 요리가 아니다.

점점 짙어만 가는 썩은 미소였다.

3.

RE: 1대0부터 다시 시작하는 리그2 개막전.

12초 만에 골을 헌납한 베리FC의 선수들의 속마음은 두 가지로 갈렸다.

‘침착하게 수비를 굳건히 하면서 동점 골을 노리면 할만하다.’

‘이미 1대0이야. 감독님의 지시를 따라 공격을 해야 따라잡는다.’

공격진과 수비진.

이 둘의 생각은 이렇게 정반대로 엇갈려버렸다.

-삐익.

다시금 울린 휘슬.

이번에도 베리FC의 선공으로 시작한다. 혹시라도 또다시 킹이 달려들까, 재빨리 뒤로 공을 넘기는 베리FC.

그러든지 말든지.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주저 없이 전방 압박을 시작한다.

선봉장은 조쉬 킹.

신장 187cm. 체중 77kg의 이 젊은 선수의 압박은 상당한 위압감을 준다.

심지어 그의 순간 속도는 34km/h.

상당한 준족이다.

이런 선수가 끊임없이 달려들자, 결국 공의 종착역은 최후방 중앙 수비수일 수밖에.

“제길.”

베리FC 5번 제이콥 웨스트.

그는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이제 막 경기가 시작한 지 겨우 5분.

도대체 몇 번이나 공을 받았는지 세기도 어려웠으니까.

좀체 공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짧은 패스를 해봤자 상대의 거센 압박에 이기지 못해 다시 리턴패스를 받을 뿐.

그렇다고 긴 패스를 시도하기엔 그의 패스 솜씨는 형편없다.

분명 상대편에게 공을 헌납할 테지.

그만의 잘못은 아니다. 4부리그에서 뛰는 수비수들의 공통적인 특징일 뿐.

애초에 빌드업 잘하는 수비수는 상위리그에서도 희귀한 선수였다.

“또 오는군.”

웨스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느샌가 조쉬 킹이 코앞까지 쇄도했으니까.

지치지도 않은 기색이다.

-뻥.

결국 참지 못한 웨스트는 형편없는 롱패스 실력에도 불구하고 전방으로 길게 공을 차넣었다.

결과는 당연히도 실패.

중앙 미드필더끼리의 공중볼 경합에서부터 튀어나온 공은 마치 의도한 것처럼 포츠머스의 중앙수비수, 케빈 도슨의 발밑에 안착한다.

그저 게겐프레싱이 어째서 세계를 놀라게 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천천히 한 골 갑시다.”

점잖게 외친 도슨은 마이클 반즈에게 공을 건넸고 반즈는 유유자적하게 경기를 조율한다.

순식간에 흐르는 시간.

경기는 어느새 15분이 지난다.

경기의 주도권은 압도적으로 포츠머스의 것.

슈팅 수 8대0.

유효슈팅 수 3대0.

말 그대로 가둬두고 두들겨 패는 포츠머스. 운이 조금만 따라줬다면 이미 점수 차를 더 벌렸을지도 몰랐다.

조쉬 킹의 강력한 슛이 골대를 강타하지 않았다면.

델리 알리의 멋들어진 침투 후 툭 차넣는 슛이 골키퍼의 손끝에 걸리지 않았다면.

존 말로리의 강력한 아웃프런트 중거리 슛이 골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히지 않았더라면.

이미 경기는 끝났을 터. 그야말로 압도적인 체급 차이다. 흡사 스모선수가 유치원생을 가지고 노는 형국.

그에 반해 베리FC는 속수무책이었다.

골킥으로 공격권을 가져와도 제대로 된 빌드업이 되지 않는다.

그저 롱패스를 뻥, 내지른 뒤 하늘에 대고 기도를 연발할 뿐.

“계획대로야.”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경기를 주시하던 소하는 의도한 대로 경기가 흘러가자 내심 만족스럽다.

“이게 바로 선제공격이 주는 효과지.”

단순히 압박이 좋아서 베리FC의 빌드업이 엉망이 된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압박이 잘 통하도록 유도한 거지.

이유는 한 가지.

바로 벌어진 베리FC의 간격.

지키려는 선수는 뒤로,

공격하려는 선수는 앞으로.

선제공격을 당한 베리FC의 선수들은 자기도 모르게 감독이 지시한 간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벌어진 간격은 빌드업에 어려움을 줬으며 포츠머스가 압박을 넣을 시간을 벌어줬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전방을 향해 롱패스를 뿌리는 일.

자고로 전방을 향한 롱패스는 10개 중 하나만 제대로 들어가도 오늘은 긁히는 날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베리FC에게는 진퇴양난의 상황!

뿐만 아니라 소하가 기존의 4-3-3에서 4-2-3-1로 변경한 이유이기도 하다.

벌어진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은 공격형 미드필더인 델리 알리가 엄청난 활약을 하도록 도와줬으니까.

그는 이미 20분 만에 키패스 3개. 유효슈팅 1개를 기록하는 등 데뷔전이라곤 믿기지 않는 활약 중이다.

“이제 슬슬 한 골 더 넣어줘야지. 뭐 하는 거야 밥벌레들아!”

소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둬놓고 패는 중이지만 얼굴에는 점점 불만이 어린다.

축구는 골로 말하는 스포츠.

암만 경기력이 압도적이라 할지라도 골이 없다면 허공에 삽질한 것과 다름이 없다.

게다가 자꾸 골을 넣지 못한다면 경기의 흐름이 베리FC에게 넘어갈지도 몰랐다.

‘무조건 대승이어야 해.’

소하는 1대0, 신승 따위 줘도 가지기 싫었다.

압도적인 승리.

오로지 이것만이 그를 만족시켜 준다. 사심을 한가득 담기도 했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개막전 대승은 필수.

[슬슬 추가 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렇게 두들기고도 역습 한방이면 동점이거든요.]

[베리FC가 정신을 차린다면 쉽게 승리를 챙기지 못할 겁니다. 지금 카운터 펀치를 맞아 정신이 어지러울 때 확인 사살을 해야 합니다.]

장내 아나운서도 소하와 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던졌다.

그렇게 모두가 추가 골을 원하며 경기장을 주시할 때쯤.

잭 해리슨.

포츠머스의 부주장이자 11번인 그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는다.

4.

경기 전날.

잭 해리슨은 심각한 표정으로 감독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한참 개막전을 준비하던 성소하는 잭 해리슨의 얼굴을 반긴다.

“오. 무슨 일이야?”

“감독님. 저···. 그게 저···. 제 고민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짐짓 심각한 표정의 잭 해리슨.

무슨 고민일까. 소하는 그답지 않게 진심으로 걱정한다.

이 젊은 꼰대가 이렇게 우울한 얼굴을 할 정도면 보통 큰일이 아닐 테니까.

“무, 무슨 일이야? 이, 일단 앉아. 여기 홍차 한잔할래?”

“어디 회사 겁니까. 전 포트넘&메이슨 말고는 티백 홍차는 마시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나마 맛이 괜찮습니다. 사실, 티백 홍차는 홍차의 진짜 맛을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역시 차는 잎차 아니겠습니까?”

“···찬물이나 처마시겠다는 헛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는 재주를 가졌었구나? 내가 미처 몰랐네.”

“···그냥 아무거나 주시면 됩니다.”

소하의 날카로운 반응에 꼬리를 내린 잭 해리슨. 소하가 괘씸죄로 대충 타준 중국산 티백 차를 홀짝이며 말문을 연다.

“감독님. 제가 과연 이 팀에서 주전을 맡을 실력이 됩니까?”

“음? 뭔 개소리야?”

자신의 실력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던 선수였거늘. 뜬금없다.

심지어 그는 리그1에서도 알아주는 클래식 윙어였다.

“···요즘 들어 제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왜?”

“그게···. 새로 들어온 동료들 때문에.”

“···.”

잭 해리슨이 고민이 생긴 이유는 의외로 새로운 영입생인 델리 알리와 앤디 로버트슨 때문이었다.

덤으로 조쉬 킹까지.

그들의 재능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진 것.

축구판에서는 어렵지 않게 나오는 반응이었다.

“···해서··· 감독님이라면 저에게 해답을 내려줄지도 모른다고 확신해 찾아왔습니다.”

“흐음. 그게 왜 고민인데? LV50짜리와 LV10짜리가 똑같은 속도로 성장할 순 없는 법이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언젠간 그들에게 따라잡힐 겁니다. 부주장으로서, 전 조금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만의 무기’가 필요합니다.”

“무기? 이미 가지고 있잖아?”

어깨를 으쓱거리며 반문하는 소하.

잭 해리슨의 사이드 돌파 후 이어지는 날카로운 크로스는 훌륭한 무기였으니까.

“전 그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것만으로는···.”

“아르연 로벤도 원툴 매크로 플레이로 월드 클래스 선수가 됐는데?”

아르연 로벤.

세월이 오면 혼자 나이를 두 배로 먹어, 2차대전 참전용사 같은 외모를 가진 월드클래스 선수.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드리블 후 감아 차는 슛은 그의 전매특허이자, 매크로 플레이.

단순한 원툴 플레이지만 그를 막아내는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았다.

“큼큼. 그 선수는 워낙 뛰어난···.”

“아니. 아니. 물론 4부리그 선수를 감히 로벤과 비교하기엔 선을 넘지. 중요한 건, 그가 어떻게 원툴 매크로 플레이를 통하게 했는지가 중요하지.”

“···그 방법이 뭡니까?”

씨익. 소하는 이 해답을 아주 잘 알고 있다. 13-14시즌. 펩 과르디올라 체제로 넘어간 바이에른 뮌헨에서 로벤은 필살기를 배웠다.

예상외였다. 개인플레이를 일삼는 로벤이 펩의 체제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모두가 평가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펩 체제에서 진정한 월드클래스로 탈바꿈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그건 말이야···. 이지선다.”

< 023화. 개막전.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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