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0화 (20/306)

< 020화. 개막전. (1) >

1.

점점 다가오는 리그 개막.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구단의 내적, 외적으로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비록 리그 2, 4부리그지만 영국은 축구의 성지.

상당한 관심을 받는 리그다.

평균관중 수는 5,000여 명.

k-리그의 평균관중 수가 8,000여 명 정도니, 영국이 얼마나 축구에 미친 나라인지 체감이 된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축제 분위기.

그중 가장 신난 사람들은 선수도 팬도 아닌 다른 이들이다.

그들은 바로, 베터(Bettor).

한국말로 하자면 토토쟁이.

혹은 토쟁이.

물론 영국과 한국의 스포츠 베팅은 인식이 다르다. 영국에서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했으니까.

덕분에 영국은 스포츠 베팅의 천국이기도 하다. 시장규모는 60억 파운드, 한화로 10조가 넘어갈 정도.

실제로 영국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베팅 숍(Betting Shop)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고, 포츠머스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어디 팀에 걸어야 할까.”

리 바이런. 포츠머스의 항구 노동자.

그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베팅 숍을 찾았다.

그가 베팅하려는 종목은 리그2의 우승팀과 승격팀.

슬쩍 베팅 숍 내의 TV로 눈을 돌려, 베팅정보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역시, 가장 유력한 우승팀은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입니다. 저번 시즌 아쉽게 강등당했지만, 체급이 다르거든요.”

“동의합니다. 우승은 못 할지라도 승격은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외의 복병으로는 체스터필드입니다. 전 시즌은 8위에 그쳤지만, 전력보강이 훌륭히 진행 중이며 팀이 완성되었으니까요.”

“잠시 실시간 배당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3/5

체스터필드 FC-4/1

버턴 앨비언 FC-10/1

로치데일 AFC-12/1

플릿우드 타운 FC-16/1

요크 시티 FC-16/1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16/1

포츠머스 FC-24/1]

“흐음.”

바이런은 고민스러웠다.

재미로 하는 거지만 포츠머스의 배당이 너무 낮았다.

아무리 재미라지만 돈을 바닥에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조금 더 프로그램을 지켜보고 나서, 베팅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포츠머스의 배당이 생각보다 매우 낮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우승 베팅이니까요. 승격 베팅은 상당히 낮은 배당률을 보여줍니다.”

“아하. 그렇다면 승격은 하겠지만 우승은 힘들다, 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군요?”

“네. 사실 친선경기에서의 좋은 경기력과 신임 감독의 당찬 발언이 아니었다면 승격배당률도 매우 낮았을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법정관리에 들어갔었고, 그 때문에 선수층이 얇으니까요.”

끄덕. 끄덕.

바이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츠머스 서포터인 그가 듣기에도 진행자의 말은 백번 공감됐으니까.

애초에 우승확률에 포츠머스가 언급됐다는 것부터가 기적에 가까웠다.

신임 감독이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겠지.

“그렇다면···. 우승은 대충 걸고, 승격팀은 우리 팀에 걸어야겠군.”

마음의 결정이 끝났다. 팬심으로 베팅을 하기엔 24/1는 너무 확률이 낮았다.

1파운드를 걸면 24파운드를 따는 확률이라니. 어린아이라도 여기에 돈을 걸지는 않을 터.

승격만 해도 더는 바라는 것이 없었으니 꽤 만족스러운 베팅이겠지.

“흐음.”

하지만.

막상 다른 팀을 우승팀으로 적어내기엔 뭔가 찝찝하다.

문득, 신임 감독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제도 리그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폭탄선언을 했던 그 얼굴이 말이다.

단순한 트래시 토크라고 보기엔 너무나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리고.

불가능한 확률에 운을 맡겨보는 것도 낭만 아니겠는가!

“에라 모르겠다.”

바이런은 재차 수정해서 베팅을 완료한다. 그의 선택은 결국 포츠머스.

그것도 3천 파운드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마누라에게 등짝을 얻어맞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한 줌 후회도 없었다.

2.

개막 3일 전.

포츠머스의 선수단은 여지없이 훈련에 매진 중이다.

처음 시작했던 4인 1조의 론도 훈련은 어느새 팀 단위로 규모가 커졌다.

“킹! 거기선 오른쪽으로 붙어줬어야지! 왼쪽 패스 길은 이미 내가 막아 놨잖아! 아오!”

존 말로리가 버럭 고함을 쳤다. 킹의 잘못된 압박으로 위치선정에 구멍이 나버렸으니까.

이렇게 쉽사리 압박이 풀리면 상대 팀에게 큰 기회가 와서 조심해야 했다.

“미안해요. 다시 할게요!”

“감독님이 항상 말씀하시잖냐. 주위를 둘러보라고. 상대 팀뿐만 아니라 같은 팀도 기억해!”

“네!”

킹은 쾌활하게 대답하며 다시금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훌륭한 협력 압박으로 수비진에게 패스 미스를 유도한다.

“흐음. 아직 아쉽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하는 입맛을 다셨다. 아직 완벽한 전방 압박에 도달하려면 한참 걸릴 거 같다.

“감독님은 지향점이 높으시군요.”

수석코치 밀러가 혀를 내둘렀다. 그의 눈으로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 보였거늘. 성에 차지 않는 감독의 모습이 얼핏 이해가 어렵다.

“이 정도로 실력으로 3년 안으로 프리미어 리그로 가는 건 힘들잖아요? 더 분발해줘야죠.”

“진심이시군요···. 그래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저희가 4부리그라는 것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건 인정해요.”

소하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들이 프리미어 리그급 수준을 보여줬다면 애초에 이 팀에 없었을 테니까.

“아, 그리고 새로운 영입생인 알리와 로버트슨은 어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감탄만 나옵니다. 꽤 많은 선수가 프리시즌 중에 스텝 업 했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달라요.”

“그렇죠? 흐흐.”

“다시 한번 감독님을 의심한 걸 뼈저리게 후회 중입니다. 그 둘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맞아요. 그릇이 달라요. 재능 자체가 범접할 수준이 아닙니다.”

밀러가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혹시라도 다른 선수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는 발언인지라 신경 쓰는 듯했다.

“유심히 지켜봐 주세요. 밀러 아저씨 말대로, 재능은 엄청나니까요.”

“지금 실력도 주전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기량만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이에요.”

밀러의 평가는 당연지사.

꽤 쓸만한 안목을 가졌다.

알리는 13-14시즌에 한 단계 위 리그인 리그1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친 선수.

로버트슨은 13-14시즌에 스코틀랜드 1부리그에서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선정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던 선수.

가진 능력치가 이미 탈 4부리그 선수라는 이야기다. 이 둘만 있어도 최소한 승격권일 정도!

“쟤들을 주축으로 우린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그러니 템포 따라오시길.”

“허허.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감독님은 어떻게 저런 선수들을 아시고 영입하신 겁니까?”

밀러의 의문에 소하는 잠시 헛기침을 한다. 이럴 땐 미리 준비해둔 변명이 제격.

“큼큼. 뭐, 비선출의 생존전략이죠. 적어도 경기 밖에서 관찰했던 시간만큼은 훨씬 기니까요.”

“아하! 이거, 비선출이라고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군요.”

“뭐, 장점이라고 할 건 아니죠. 선출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 뿐. 그게 답니다.”

선출과 비선출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애초에 축구계에서 비선출의 비율은 극히 작은 편.

선수 시절의 경험은 비선출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특출난 재능을 가지지 않는 이상.

그런 의미에서 회귀 전에도 비선출로서 최연소 감독이 된 소하의 재능은 굉장한 편이었다.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비선출로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엄청 대단한 일이었군요?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거 같습니다. 허허.”

“빡세긴 하죠.”

비선출로 명성을 크게 얻은 감독은 몇 없다. 아주 극소수.

대표적으로 조제 모리뉴,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아리고 사키 정도.

조금 범위를 넓혀보자면, 우나이 에메리, 거스 히딩크, 브랜드 로저스.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만큼 축구계는 비선출로선 도전하기 힘든 생태계였다.

“그나저나, 슬슬 등번호를 배정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 맞다.”

깜빡했다.

워낙 공사다망한지라.

“꽤 기대하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조쉬 킹은 무조건 9번을 받고 싶어 하는 거 같고···.”

9번이야말로 주전 공격수의 상징.

일단 9번을 받는 순간, 팀 내의 주포라고 인정받는 격이었다.

최근 최전방 공격수 1옵션으로 주가가 상승한 킹으로서는 당연한 바람.

“작년 9번이 존 터너였나요? 법정관리 때문에 이적한.”

“네. 원래 있던 주전 공격수였죠.”

“킹 말고 9번 원하는 애는요?”

“없습니다. 안토니오는 별말 없고, 존 말로리는 원래 쓰던 18번을 원합니다. 감독님이 맨날 18, 18을 입에 담고 사신다며 좋아하더군요.”

“···변태 새끼네요.”

“큼큼. 그만큼 감독님을 좋아한다는 뜻이겠죠.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일단 고려해볼게요. 애들한테는 오늘 중으로 발표한다고 전해두세요.”

후우. 한숨이 나왔다.

이 망할 놈의 직업.

할 일이 끝도 없다.

3.

등번호 배정.

팬들은 그저 유니폼 팔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번호는 즉 선수단에서의 자기 위치였으니까.

예를 들면. 10번.

전통적인 에이스 등 번호.

이 번호를 두고 서로 기 싸움을 하는 일은 새로운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1~11번까지는 주전선수의 증거라 탐을 내는 선수가 많았다.

“호날두만 봐도···.”

호날두가 맨유로 복귀했을 때, 등번호 문제는 기사까지 날 정도였다.

이미 등번호 주인도 있을뿐더러 번호등록도 끝나, 꽤 화제였다.

그의 시그니처 넘버는 7.

당시, 맨유의 7번은 에딘손 카바니.

번호를 다른 선수에게 준다는 건, 선수의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인성 좋기로 소문난 카바니는 양보해주었고 별 탈 없이 끝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모두가 지들이 주전이라도 믿고 있을 텐데···.”

지금 포츠머스는 저번 시즌과 비교해서 선수단이 절반 이상 물갈이된 상태.

남은 주전선수도 몇 없어, 모두가 주전 자리에 욕심을 내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등번호가 발표된다면,

“앞자리 새끼들은 주전이라고 좋아하고 뒷자리 새끼들은 후보라고 사기가 꺾일 거야.”

조쉬 킹만 해도 당당히 9번을 원하는 상황.

만약 괘씸죄로 54번 같은 걸 준다면 녀석은 매우 매우 실망해서 경기력에 큰 문제가 생길 테지.

하. 정말 머리 아프다.

지금 빈 번호는 9번과 10번.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 차지한 번호는 8번.

전부 다 팀의 핵심임을 증명하는 번호다.

그나마 빈 번호는 대충 채워도 불만이 적겠지만, 8번. 8번이 문제.

“엿 같은 레이시스트 새끼가 8번인데···. 이거 괜히 건드리면 지랄병 날 텐데. 하.”

녀석은 과거와 다르게 꽤 잠잠했다. 몇몇 선수들의 고자질 덕분에 종종 날 향한 인종 차별성 욕을 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괜히 건드려서 선수단 분위기를 망가뜨리면 낭패 중 낭패.’

개막을 앞두고 선수단 분위기가 폭발한다면 그간 노력은 허사다.

완전히 잿더미.

‘그렇다고 쓰지도 않을 새끼한테 8번 주기에는 좀···.’

그냥 내버려 두기도 뭐하다. 주전선수의 유니폼만큼 좋은 상품은 없으니까.

8번이란, 핵심 미드필더 상징.

경기에 자주 나와 인기가 많은 선수가 가진다면 유니폼이 잘 팔리는 번호다.

‘그야말로 계륵이군.’

취하자니, 미친개가 무섭고.

버리자니, 수입이 줄어들고.

‘조조가 이럴 때 어떻게 했더라?’

위연이 쏜 화살에 맞아 강냉이가 털리고 회군했었나? 양수가 괜히 미리 철수 준비했다가 머리통 날아갈 뻔했지.

‘버리는 게 좋아 보이긴 한데.’

유니폼 수입은 생각보다 적다.

기사에서 보면 몇백만 장이 팔렸으니 영입비 다 땡겼다 하지만, 실상 구단의 주머니에는 매우 적은 돈이 들어왔다.

많아봤자 7%.

천억 원치 유니폼 팔아봤자 70억이 들어온다.

꼴랑 7% 먹자고 들이박기엔 미친개의 흉포성은 만만찮다.

‘아. 씨발.’

짜증이 확 밀려들어 온다.

아니. 잠깐. 내가 굳이 선수 하나의 눈치를 봐야 하나?

이 새끼 이거.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만. 처음의 각오를 벌써 잊다니.

‘난 이제 맞추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래. 조조처럼 강냉이가 털리고 나서야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한번 들이박아 보자.

< 020화. 개막전.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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