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7화. 홍보와의 전쟁. (2) >
1.
홍보팀장, 밴스 모건.
그는 회의를 좋아했다.
딱히 성과는 없어도 무언가를 했다는 묘한 성취감이 들었으니까.
하루에도 최소 두 번 이상의 회의 시간 가지는 덕에 생긴 그의 별명은,
미팅 몬스터.
참고로 최고 기록은 5번이다.
오후 4시.
퇴근 시간을 한 시간 남겨둔 지금.
그는 오늘의 세 번째 회의를 준비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직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1시간 정도는 뚝딱.
이 좋은 걸 하지 않기가 어렵다.
‘내일은 연차를 썼으니 푹 쉬어야겠군.’
오늘은 8월 1일 목요일.
금, 토, 일. 3일의 휴식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8월 10일에 예정인 리그 개막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그러니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후후. 그럼 가볼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의실로 향하는 밴스 모건.
회의를 마치자마자 퇴근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사내만 아니었다면 탭댄스를 출지도 모를 만큼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야. 벌써 퇴근 준비가 끝난 옷차림이시네. 일단 회의부터 하죠.”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인사를 건네는 신임감독의 모습에 순간, 모종의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2.
회의는 무거운 침묵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참다못한 홍보팀장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말을 건다.
“큼큼. 가, 감독님이 홍보팀 회의에는 어떤 일로···.”
“궁금해서요.”
“어, 어떤 것이···.”
“대체 얼마나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회의길래 퇴근 한 시간 전에 하는지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하더군요.”
난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비꼬았다.
퇴근 한 시간 전에 회의라니. 진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회의라는 건 업무의 조정이다.
오늘 업무는 어떻게 할까.
즉, 하루의 업무를 어느 곳에 집중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것이냐를 정하는 일이다. 보통은.
그런데 이걸 퇴근 전에 한다는 건, 대충 시간만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업무 집행 방해였다.
혼자 멍 때리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의 시간도 뺏는 멍청한 짓.
정말 빌어먹을 인간이다.
“저, 그게···. 오늘 회의의 주제는 말이죠. 그··· 뭐랄까···.”
망할 월급도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겠지. 걍 시간 때우려고 한 거니까.
“티, 팀장님. 이번 회의는 구단의 인지도를 늘리기 위한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씨 착한 에밀리아가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었다.
쯧쯧. 저렇게 마음이 여려서 큰일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아 맞다! 바로 그겁니다 감독님.”
사색이던 밴스 모건의 얼굴에 다시금 혈색이 돌았다. 연신 아멜리아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낸다.
“그럼 궁금함을 해결하셨으니, 이제 감독님의 업무를 보러 가심이···.”
“왜요? 제가 알면 안 되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저···. 그게···. 이건 프런트의 일이니까···. 감독님이 신경을 쓰실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각자의 업무가 있는 거니까···.”
“뭔 개똥 같은 소리세요. 홍보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저도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항이니 홍보팀의 계획을 알 권리가 있어요.”
와. 생각하는 게 다르구나. 사고방식이 일반인과 달라. 저딴 걸 변명이라고 하는 사람일 줄이야.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그럼 더 무서운데.
“이, 이건 워, 월권행위가 아닐지···.”
“월권 같은 소리 하고 계시네. 확, 정권을 먹여버릴라. 전 감독으로서, 홍보팀의 계획을 듣고 싶은 것뿐인데요. 제가 따로 업무를 지시했나요?”
“···.”
“제가 업무를 방해했나요?”
“···.”
“아니죠? 전 그냥 가만히 구경만 하는데, 이게 뭐가 월권이죠? 제발, 뇌를 거쳐서 말을 하세요.”
저 개기름 줄줄 흐르는 면상에 엘보우를 먹여버리고 싶다.
무능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진짜.
“그럼, 전 없는 셈 치고 ‘퇴근 전’ 회의를 시작하세요.”
“큼큼. 아, 알겠습니다. 그, 그럼 먼저···.”
상식을 뛰어넘는 퇴근 전 회의는 천천히 시작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만 주고받는다.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는 행위는 머리털 나고 처음 경험해본다.
“티켓 판매량은 작년과 다를 게 없는 비슷한 수준으로···.”
“전년도 자료와 비교했을 시 개막전에선 좌석점유율 70% 이상을···.”
“몇몇 선수들과 요양병원으로 봉사활동을 간다면 구단 이미지가···.”
“시즌권 판매량은 조금 떨어져···.”
등등. 그냥 클릭 몇 번만 하면 알 수 있는 쓸데없는 내용만 한가득하다.
비전의 제시 따윈 없다.
말 그대로 그냥 시간 죽이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난 물끄러미 홍보팀장을 바라봤다.
밴스 모건.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저 양반보다 먼저 잘리게 된다는 미래가 우스워서.
저 무능력자가 앞으로 십 년 넘게 자리를 보존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람이 좋아서.’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한 성격.
직원들의 복지를 잘 챙겨주는 상급자.
가족을 우선시하는 이상적인 가장.
하지만. 이게 정말 사람이 좋은 걸까?
적어도 난 아니라고 본다.
머릿속에서 월급루팡질을 어떻게 할지만 생각하는 인간이 성격이 좋다는 게 맞는 걸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잘라버리고 싶지만, 그럴 직급도 아니고 법에도 어긋난다.
고용법은 장식으로 있는 게 아니니까.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슬쩍 에밀리아를 바라보며 신호를 줬다.
그러자 에밀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심호흡을 하고서 발언권을 가졌다.
“팀장님. 제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오. 존슨양. 한번 말해보세요.”
모건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승낙하자 에밀리아가 나의 계획을 줄줄이 설명한다.
몇몇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하고 몇몇은 심드렁하다.
물론, 심드렁한 몇몇에는 모건도 포함이었다.
“흐음. 꽤 흥미롭긴 하네요. 하지만 너무 불확실하니···.”
“오! 그거 마음에 드네요.”
의견을 무시하기 전에 잽싸게 끼어들었다.
“에?”
“와. 쓸만한 직원이 있었네요. 이런 계획이라니. 놀랍지 않나요? 흡사 미래를 완벽히 예측한 것만 같달까요.”
“···그, 그런가요?”
“전 이 계획에 열렬히 동참합니다. 이적료 10만 파운드. 이거 전 수락할게요. 어차피 영입할 선수도 없었는데, 돈은 돌리고 돌려야죠.”
“···.”
“역시. 모건 팀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네요. 전 마냥 집에 가서 쉴 생각만 하는 월급도둑 무능력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신입사원의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계획을 거절하지 않고 수락하실 생각이라니. 다시 봤어요.”
삐질삐질.
내 압박에 모건은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그의 성향상, 허허 웃으며 거절하려고 했겠지만 이렇게 된다면 발 빼기 힘들 터.
그가 선택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모건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훔치며 억지 미소를 짓는다.
“허···허허. 그, 그렇죠. 너무나도 훌륭한 계획입니다. 수락하지 않기가 힘들군요. 잘했어요. 존슨 양.”
“···.”
모건은 말을 바꿔 내 의도대로 움직였다. 당연한 결과다.
난 지금 구단주의 총애를 받는 몸.
이 사실은 프런트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구단주를 꼬셔내 돈을 받아오는 감독에게 대들 인간이 존재할 리가 없잖은가. 모두 자리 간수에만 급급한 인간들인데.
“이야. 아주 훌륭한 회의였네요. 이렇게 중요한 사항이라 퇴근 시간 전에 긴급하게 회의를 연 것이었군요?”
“···.”
“전 또. 시간 죽이려고 허튼짓하는 줄 알았는데. 모건 팀장님을 오해한 점 정중하게 사과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홍보팀으로서 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역시 그렇죠? 아, 이제 앞으로 이 시간대에 회의를 열면 항상 구경하러 와야겠어요. 이런 중대사가 벌어지는 회의일 줄이야. 두근두근하네요.”
앞으로 이 시간대에 회의를 열지 마라, 라는 무언의 압박.
아무리 무능력자라도 내 말뜻은 이해했나 보다.
“드, 드문 일이라. 앞으로 보기 힘드실 겁니다.”
“아쉽네요. 그러리라 믿을게요.”
히죽.
한 번만 더 이딴 개짓거리를 하면 치졸한 뒷수작을 써서라도 잘라버려야지.
“그럼 브라이언 사장님에게 컨펌받으러 가죠.”
“네? 버,벌써요?”
“팀장님도 승낙하셨고 제 인가도 떨어졌는데, 꾸물거릴 이유가 없잖아요? 동양에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 라는 속담이 있어요. 빨리 해치우죠. 따라오세요. 에밀리아도.”
개막이 9일 남았다.
이제 외적인 일에는 시간을 쓰기 점점 어려워질 테니 빨리 끝내야지.
게다가 저 모건이란 인간의 특성상 일주일은 질질 끌 게 뻔했다.
“아! 그리고 이런 중요한 일은 권한을 가진 팀장님이 필요하니까, 에밀리아 씨와 함께 최대한 신경을 써주세요. 내일 팀장님에게 직접 진척도를 듣고 싶네요.”
“저··· 그게···. 내일은···.”
“다음 주면 리그개막인데 연차를 쓰는 직원이 있겠어요? 설마.”
“···.”
“그런 직원이 있다면···. 어떻게든 옷을 벗길 생각인데,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하···하하. 그런 못된 직원은 없을 겁니다. 가장 바쁜 시기니까요.”
알긴 아는구만.
왜 아는 사람이 이러는지 원.
알고 하는 놈이 더 나쁜 거 아닌가. 하여튼, 빌어먹을 구단이다.
3.
브라이언은 의외로 쉽게 승낙했다.
아니, 오히려 매우 훌륭한 홍보전략이라며 극찬까지 했을 정도.
거침없이 결재서류에 사인하는 모습에는 호쾌함마저 느껴졌다.
‘뭐, 무능력한 새끼는 아니니깐.’
난 브라이언이 싫다.
내 뒤통수를 친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저런 면도 싫다.
분명 좋은 머리를 가진 새끼가 분명한데, 그 뛰어난 머리를 왜 좆같은 곳에 쓰는 걸까.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기도 싫고.
머리만 아프니까.
-19세의 앤디 로버트슨 영입 완료.
-스코틀랜드 4부리그 선수를 영입하는 감독의 정신상태는?
-공짜라면 날생선도 먹을 감독.
-한국은 산 낙지를 먹는 나라. 그저 문화를 따른 것뿐.
-로리타 감독. 유치원 FC로 직장을 옮기는 것을 추천.
-어제자 신문에 잘못된 표기로 혼란을 초래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음 날, 로버트슨의 영입 기사가 전날의 잘못된 정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신문에 났다.
당연하게도 훈훈한 독설이 신문을 가득 채웠다.
아니, 씹. 그래도 공짜로 데려왔는데 말이 너무 심하네.
“두고 보십시오. 로버트슨은 지금도 즉시 주전감일뿐더러 훗날 구단을 영광의 계단에 오르게 할 핵심 인재입니다. 이런 선수를 이적료 없이 데려와 그저 기쁠 뿐입니다.”
물론, 난 뻔한 기자회견을 했다.
풋볼매니저식 기자회견이랄까. 솔직히 감독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대놓고,
‘공짜라서 데려왔습니다. 실력은 확실하진 않지만 로또 한번 긁어보죠. 혹시 아십니까? 1등일지?’
라고 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아니, 다 떠나서 난 진실만 말했을 뿐.
두고 보라고.
델리 알리는 훗날 압둘 알리가 되지만, 로버트슨은 계속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선수니깐.
이제, 첫 시즌 시작 전에 내가 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마무리했다. 남은 건 리그 컨퍼런스 정도?
이거야 뭐, 그냥 친목회니까, 별로 신경 쓸 건 아니었고.
“이제 개막이 일주일 남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뭘까?”
훈련에 앞서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뚱딴지같은 질문에 선수들은 잠시 웅성거린다.
“승리를 위해 필사의 각오를 다지는 거?”
조쉬 킹이 쾌활하게 나섰다.
승리를 위한 필사의 각오라. 나쁘지 않지. 승부욕도 중요하니까.
“괜찮지만, 아니야.”
킹이 물러나자, 선수들이 각자의 의견을 차례대로 표출한다.
“전술적 이해도와 컨디션 조절입니다.”
이건 케빈 도슨이.
모범생다운 정석적인 답변이다.
“프로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는 겁니다. 항상 프로의식을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이건 잭 해리슨이.
젊은 꼰대답다.
“영혼의 여유로움이 필요하죠. 날씨도 선선한데 낚시나 하러 가면 참 좋을 거 같네요. 아니면 산책이라도.”
이건 마이클 반즈가.
말은 저렇게 해도 정해진 훈련 시간에는 열심히 한다.
이후로도 꽤 많은 의견이 나온다. 대부분은 경기 내적인 이야기가 중점이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장 가장 중요한 일을 언급한 사람은 하나였다.
“다, 좋은 의견이었다. 아쉽게도 정답자는 한 명이다.”
선수들의 시선이 일부 상환을 향해 쏠린다.
“바로, 반즈다. 상품은 훈련 1회 휴식권 줄게.”
“후후. 감사해요. 감독님.”
“···.”
정답자인 반즈를 제외하고선 모두 어이없어한다.
“감독님. 지금 낚시를 가자고요? 개막이 일주일 남았는데요?”
“아니. 누가 낚시래. 그리고 난 낚시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반즈가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가 뭐였지?”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낚시가 매력적이진 않다. 뭐랄까, 조금 시간 낭비 같은 느낌? 아직은 세월을 흐름을 즐기기엔 내가 하고 싶은 게 많다.
“반즈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선수들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동시에 반즈의 마지막을 기억해낸다.
점점 오묘한 표정으로 변하는 선수들.
제정신이냐는 말을 간신히 참는 것 같다.
나는 그 표정들을 여유롭게 구경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훈련은 없다. 산책이나 하러 가자고.”
< 017화. 홍보와의 전쟁.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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