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6화. 홍보와의 전쟁. (1) >
1.
너튜브의 발호!
지금은 가끔 보는 수준이지만 10년 뒤면 자주 보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생활’이 된다.
이 너튜브에서 선발주자로 나선다면.
홍보와 수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조리 잡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
“채널이라 함은···?”
“포츠머스 FC의 채널을 만들자는 거죠. 인터넷 방송 느낌으로.”
“흐음···. 홍보에 도움이 될까요? 우리 구단은 인지도가 낮아서 구독자가 아무도 없을 텐데요.”
에밀리아의 예리한 지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소리다.
구멍가게에서 암만 홍보를 해봤자 아무도 봐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도시 전체라면 어떨까?
“네 지당한 의견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포츠머스 FC뿐만 아니라 포츠머스라는 도시까지 포함해야겠죠.”
“네?!”
“포츠머스는 작은 도시에요. 인구 25만 명도 되지 않은 작은 동네. 이 도시에서 내수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요.”
런던같이 인구 천만의 도시라면 모를까 20만 명 정도의 작은 항구도시로는 성장에 한계가 존재했다.
“아! 그렇다면 감독님께서는 국제화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정확해요. 포츠머스는 작은 동네지만, 대표적인 관광도시잖아요. 우리의 미래는 외국 팬들에게 달렸어요. 포츠머스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츠머스 FC까지 인지도를 올려야죠.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거예요. 관광객 수 증가로 연고지의 활성화를 노리는 동시에 구단의 홍보까지.”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앞을 가로막을 거예요. 감독님도 아시겠지만요.”
에밀리아의 말은 같았다.
문제는 단 하나.
이 망할 구단은 인지도라고는 개미 오줌만큼도 없다는 것.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은 국제화의 씨앗은 존재하니까요.”
“도대체 어떻게···?”
나는 답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에밀리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음? 감독님이 잘생기시긴 했지만,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 스타라는 게 단순히 잘생겨서만은 도전하기 힘들거든요. 인간적인 매력, 예술적 재능, 그리고 노력과 운! 이것이 모두 하나가 돼야···.”
뭐라는 거야. 이 여자는.
아직 술이 덜 깼나? 하여튼 잘 나가다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오네.
“무슨 소리세요?”
“감독님 본인을 가리키시길래···.”
“···제 말은 저의 국적을 이용하자는 겁니다. 덤으로 나이까지.”
“아하! 확실히. 감독님의 나이는 화젯거리가 되기에는 충분하죠. 역사에 남을 만큼 젊은 감독이시니까요. 그런데 국적은···. 남한은 그리 영향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지 않나요?”
허허. 이 여자가? 감히 대한민국을 저평가하다니. 아 입이 간지럽다. 훗날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가 세계를 강타한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자지러지겠지.
“큼큼. 인정합니다. 지금은 영향력이 강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한류도 있고, 뭣보다 해외관광객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대한민국의 해외출국자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최소 2,000만 명 이상.
간단한 산수로 전체인구의 절반이 해외로 나간다는 뜻.
엄청난 숫자다.
물론, 이 해외출국자들이 전부 영국으로 놀러 온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유럽 여행이 메이저인 만큼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닐 터.
십만 명 정도만 더 관광객이 찾아준다면 연고지의 경제 이득은 엄청날 거다.
“그리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대한민국이 유독 국뽕이 심하거든요.”
“구욱보웅?”
“아, 발음하기 어렵겠구나. 쉽게 말해 쇼비니즘이라고 보면 돼요.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자국을 옹호하는.”
“아하. 뭐, 그러지 않는 나라가 몇이나 있겠어요. 영국만 해도···.”
오. 꽤 깨어있는 영국인이군. 영국도 국뽕이 심한 나라긴 하지. 특히나 축구에 대해선 더욱더!
“하여튼, 전 최초로 잉글랜드 구단의 감독이 된 한국인이죠. 이 명찰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잘 팔리는 상품이에요. 최소한 한국에서는요.”
지난 3주간 꽤 많은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연일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처음엔 한국인들부터 관심도를 올리고 차차 늘려나가는 거죠.”
“호오. 어느 정도 계획의 윤곽이 잡히네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리 팀 성적이 좋아야 해요. 승전보를 계속 울려야 관심이 지속될 테니까요.”
“그 부분이라면 걱정 마세요. 자신 있으니까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한국 내에서는 연이어 뉴스를 쏟아내겠지. 그러면서 포츠머스의 이름은 점차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로 퍼질 테고.
“좋아요. 감독님의 생각은 잘 알겠어요. 제가 봐도 괜찮음을 넘어 훌륭한 계획이에요. 구단이 유명해진다면, 얻는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요.”
대기업의 후원과 광고 계약.
늘어나는 홈 관중.
솟구치는 유니폼 판매량.
일단 유명해지기만 하면 재정적 안정성이 확립된다.
이래저래 ‘프로’스포츠 구단은 돈이 필요한 법.
두둑한 지갑은 포츠머스란 나무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거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을.
“하지만 저는 방송에 소질이 없어요. 편집 정도는 가능하지만요. 즉, 우린 너튜브 채널에서 얼굴을 보여줄 방송인이 필요해요.”
역시. 그나마 쓸만한 직원이다.
내가 괜히 부른 게 아니라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파악했으며 필요한 요소를 정확하게 짚는다.
조금 맹하지만, 이 정도면 이 빌어먹을 구단에서는 선녀가 따로 없다.
상대적 선녀효과랄까.
“정확해요. 역시 에밀리아랑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요?”
“정말요? 헤헤. 감사해요.”
내가 칭찬하자 얼굴을 붉히며 굉장히 좋아한다.
완벽한 계획에 홀딱 넘어간 듯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너튜브 채널의 방송을 맡을 사람도 점지해 뒀으니까요.”
“와···. 준비성이 대단하시네요. 그게 누구죠?”
“후후. 에밀리아도 아는 사람들이죠.”
인선도 생각해두지 않고 일을 벌일 리 없잖은가.
그들은 현재로선 그저 라디오 중계를 맡은 평범한 포츠머스 서포터다.
하지만. 훗날, 인터넷 축구 방송계의 거성으로 우뚝 서는 사람들이었다.
2.
“반갑습니다. 톰 힉스 씨. 그리고 나단 필립스 씨. 그래도 첫 만남이니 소개하겠습니다. 성소하입니다. 이번에 포츠머스를 맡은 신임 감독이죠. 하하.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요.”
“아···. 반갑습니다. 톰 힉스입니다.”
“나단 필립스입니다.”
뚱뚱한 힉스 씨와 삐쩍 마른 필립스 씨는 내 인사를 얼떨떨하게 받았다.
아직도 내가 왜 자신들을 은밀히 사적으로 보자고 한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후후. 아직 제가 왜 여러분들을 사석에서 뵙자고 한지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예. 도통 짐작이 가지 않네요.”
말라깽이 필립스 씨가 눈을 부릅뜨며 긍정했다.
“아시겠지만, 전 빙빙 돌리는 말을 싫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랑 사업하나 하죠.”
“···.”
“···.”
푸근한 인상의 힉스 씨도.
까칠한 인상의 필립스 씨도.
내 입에서 나온 트럭에 그만,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린다.
그와 동시에 이 미친놈이 무슨 약을 팔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기색도 내비쳤다.
“두 분은 물론, 포츠머스에도 상당히 좋은 사업이죠. 너무 불신 어린 표정으로 보시면 곤란해요. 하하.”
“···무슨 약을 팔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몸에 좋은 약이죠. 두 분이 포츠머스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요.”
“흐음. 감독의 말 그대로 저흰 포츠머스를 사랑합니다. 감독님과 프런트가 아닌.”
“알고 있습니다.”
알다마다. 아는 정도를 넘어 과거에 온몸으로 체험했다. 저 산송장같이 마른 몸에서 어찌나 독설이 술술 나오던지.
솔직히 내가 고소해도 필립스 씨는 할 말 없었을 거다.
“좋습니다. 한번 어떤 약인지 조금 맛보기로 하죠.”
“후후후. 조금 매콤할 겁니다.”
씨익.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힉스와 필립스에게 설명했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힉스와 필립스의 표정 변화가 재밌다.
의심 가득하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다.
격식을 차려 무거운 공중파 TV와 듣는 라디오의 시대가 저물 거라는 말에는 자기도 모르게 맞장구까지 친다.
“그렇죠. 곧 ‘가볍게 보는’ 시대가 찾아올 겁니다. 대단한 식견입니다.”
설명이 마지막에 다할 때쯤에는 이미 계약서에 사인할 준비가 끝난 모습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어때요. 꽤 매콤한 약이었죠?”
“얼얼하군요. 이게 한국의 김치맛입니까?”
“오. 김치를 다 아시네요.”
“사람을 파악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옳은 말이네요. 그래서, 어떻습니까? 제 계획은.”
“훌륭합니다. 저와 힉스가 어렴풋이 꿈꾸던 콘텐츠입니다.”
필립스는 담백하게 칭찬했다.
어떠한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아서 더욱 진심이 느껴졌다.
“포츠머스와 포츠머스 FC의 이야기. 그리고 거침없는 두 남자의 유쾌한 축구 이야기라면 꽤 재밌을 거예요.”
훗날 한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끄는 웨스타TV 같은 느낌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님을 거침없이 비판해야 할 겁니다. 물론, 프런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드디어 경칭을 써주는군. 날 인정했다는 거겠지.
“당연히 알고 있죠. 자고로 응원하는 팀의 감독을 씹는 일만큼 재밌는 일은 없으니까요. 거침없이 물고 뜯고 씹어버리세요. 단, 한 가지만 지켜주세요. 무조건 재미있게. 구독자들이 팝콘을 뜯으면 깔깔 웃을 수 있도록!”
“···하하.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미친놈 취급받으셨을 겁니다. 욕해달라고 부탁하신다니.”
“어차피 먹을 욕이잖아요? 기왕 먹을 텐데, 돈이라도 벌어야죠.”
잘하든 못하든 평생 욕을 먹는 직업이 바로, 대통령과 감독이다.
그, 클롭 감독도 클재앙이라면서 욕먹었으니.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래도, 나보단 프런트의 욕을 빡세게 해줬으면 좋겠다. 난 죄가 별로 없거든.
“후후후. 좋습니다. 하하!”
“푸흐흐. 마음에 드네요. 허허!”
한참을 미친 듯이 웃던 필립스와 힉스.
어느 정도 숨을 고르더니 진지하게 묻는다.
“마지막으로 질문 한 가지만 하죠.”
“네 하세요.”
“왜 하필 저희입니까?”
“···.”
그야, 당신네가 훗날 인기가 많은 너튜버가 되니까.
난 그 시기를 앞당겨줄 뿐.
힉스와 필립스.
2년 뒤, 포츠머스를 넘어 영국 축구계에 관한 유머러스한 만담을 펼치거나 각종 축구 정보를 소개하는 대기업이 된다.
이런 인재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회귀자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좀 더 빠르게, 좀 더 나에게 유리하게 길로 만들어야겠지.
물론, 속마음은 이럴 뿐. 지금은 듣기 좋은 말을 해줘야 할 때.
“그야, 두 분은 포츠머스를 누구보다 많이 사랑하시니까요. 충분한 이유 아니에요?”
“···.”
“그럼 수락하셨다고 알고, 계약 이야기로 가보죠. 일단 이번 달 안으로 준비를 끝내주셔야 합니다.”
“빠듯하군요.”
팔월의 첫째 날.
오늘은 제외하면 30일의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시즌 시작과 일정을 맞추고 싶습니다만··· 무리일 테니 양보해드린 겁니다. 협상의 여지는 없어요.”
“큼큼.”
“그리고 초기 자본금은 구단에서 지원해드릴게요. 아니지. 투자라고 해야겠죠.”
“···금액은 얼마 정도 생각하십니까?”
“10만 파운드.”
구단주 할배에게 뜯어낸 돈의 잔금이다. 더 이상의 영입은 없을 테니까.
그냥 묵혀두기엔 아깝고.
“헉.”
“오우.”
예상치 못한 큰 금액에 힉스 씨와 필립스 씨는 헛숨을 들이켠다.
10만 파운드, 한화 1억 6천만 원.
이 정도면 필요한 장비값은 물론이고 1년 연봉은 된다.
“에이. 이 정도로 놀라시긴. 순수입의 20%까지 가져가실 텐데요. 구독자 십만 명 전까지는 1만 명당 1%씩 올리고, 십만 명 이후부터는 십만 명당 1%. 어때요?”
“···너무 후해서 사기 같습니다.”
“마, 맞아.”
허허. 이 사람들이 맨날 속고만 살았나. 제대로 홍보만 된다면 이 정도 수입 배분은 헐값이다.
이들이 포츠머스에 가져다줄 경제적 이득에 비하자면 강도질이고.
게다가,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간다면 너튜브 수입 따위. 푼돈이다. 오히려 유능한 홍보꾼을 영원히 붙잡아둘 절호의 찬스!
“싫으시면 말고···.”
밀당은 협상의 기본.
슬쩍 당겨주자 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끌려온다.
“어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당장 내일 사표 쓰고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전 지금 바로 그만둔다고 전화할 수 있습니다.”
“···.”
이럴 거면서 의심은. 쯧.
“근데, 감독님. 이 사업, 프런트와 합의가 끝이 난 겁니까?”
“···.”
아픈 곳을 찌르는군. 그야, 당연히 아니지. 아직 정식으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거든.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계약서 준비하고 전화하실 테니까요. 지장만 가져오세요.”
자, 그럼. 퇴근 준비 중일 홍보팀장을 조지러 가볼까. 덤으로 브라이언도.
< 016화. 홍보와의 전쟁.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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