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4화 (14/306)

< 014화. 신입생과 쥐새끼. (3) >

1.

성소하는 지난 2주간 아무 생각 없이 지내진 않았다.

쥐새끼를 잡기 위해 여러 미끼를 던져본 결과 유력한 용의자는 셋.

‘브라이언 씹새끼, 기술재무팀의 누군가. 그리고 밀러 아저씨.’

스포팅 디렉터가 없는 지금.

영입 협상은 감독과 CEO, 그리고 기술재무팀이 힘을 합쳐 진행했다.

여기에 수석코치와 전력분석총괄을 겸임 중인 밀러 아저씨도 주의할 인물.

‘가장 의심되는 건 역시, 브라이언 이 후레자식이지. CEO니까. 모든 정보는 그에게 흘러갈 테지.’

브라이언과는 단둘이 술을 한잔한 사이긴 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도 몇 번이나 경험했던 일.

나와 어떻게든 친해져 보려 발버둥 치는 건 알겠지만 믿을 만한 종자는 아니다. 예전에는 이거보다 훨씬 더 치근댔다. 그 덕에 모든 권한을 양도했었고. 결과는 뭐···.

‘기술재무팀의 누군가도 유력하다.’

기술재무팀.

이적 및 영입을 담당하는 기술팀과 재무팀이 합쳐진 신생 부서.

거듭되는 재정난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적과 돈의 흐름을 쥐어 잡은 이 부서라면 정보 유출이 쉽다.

‘밀러 아저씨. 단순한 수석코치라면 모르겠지만 전력분석총괄도 맡은 이상, 용의자 혐의를 피하긴 힘들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도 수상하다.

이렇게 쉽게 자신의 편으로 돌아설 인물은 아니었거늘. 사람이 확 달라지기는 쉽지 않다.

고작 연습경기에서 한 번 패하고, 군인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바뀐다?

냄새가 좀 풍겼다.

구리구리한 음모의 냄새가.

‘개인적으로는 브라이언이 범인이길 무척 바라지만···.’

브라이언이 쥐새끼라면.

앞으로의 여정에 있을 큰 걸림돌을 한방에 치워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제발. 그놈이어라!”

성소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브라이언이 범인이길 기도했다.

2.

델리 알리의 이적이 완료되었다.

지역지는 연이어 새로운 이적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었다.

-델리 알리의 임대영입 완료. 임대료 10만 파운드, 완전 이적 때 금액은 100만 파운드.

-주급 100% 부담. 옳은 거래인가?

-신임 감독의 야심에 찬 첫걸음. 무리한 임대 이적이 실패한다면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 것.

감독의 첫 영입이었지만 반응은 아쉽게도 냉소적.

리그2 역사상 가장 비싼 임대 이적이지만 델리 알리란 선수는 무명에 불과했으니까.

좋은 반응이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델리 알리는 장차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통할 재능입니다. 이 선수를 영입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신임 감독은 누가 뭐라고 짖던 마냥 행복한 기자회견을 했다.

“겨우 17세 선수를 주전으로 사용하실 예정입니까?”

“당연합니다. 18세인 조쉬 킹도 주전인데 알리라고 문제가 있겠습니까?”

“···.”

17세의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하겠다니. 제정신이 아닌 듯싶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자칫하면 어린 선수에게 큰 부담을 줄지도 모르는 발언 아닌가.

알리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야.’

알리의 생각은 달랐다.

대범함만큼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선수가 바로 알리다.

17-18시즌.

레알 마드리드와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4차전.

그 경기에서 고개를 까닥이는 알리의 자신감에 찬 표정은 축구팬들을 환호하게 했었다.

그리고 자신감은 치기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

그날의 MOM은 당연히도 알리였다.

‘내가 세계에서도 통할 선수라고 해주다니. 역시, 괜찮은 사람이야.’

처음, 알리는 포츠머스의 임대 이적에 관심이 없었다.

굳이 한 단계 낮은 리그에서 뛸 이유를 찾기 힘들었으니.

하지만 검은 머리의 푸른 눈을 가진 감독이 ‘직접’ 찾아와 설득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실, 설득보다는 칭찬 일색에 가까웠지만.

‘내 재능을 폭발시켜 주겠다는 말에 결정했지만, 이게 맞으려나.’

포츠머스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였다.

방만한 운영으로 망한 구단.

작고 오래된 홈구장과 클럽하우스.

불어오는 바닷바람.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바로 젊은 팀 동료들이었다.

“당신이 델리 알리입니까? 절 따라오십시오. 팀 동료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임시주장인 잭 해리슨이 팀 동료들을 소개해주었다. 꼬박꼬박 정중한 어조로 대하는 터라 조금 당황했다.

“오. 잘 부탁한다.”

“이야. 드디어 막내에서 벗어났네. 편하게 형이라 불러.”

“감독이 네 칭찬을 엄청나게 하던데. 같이 위로 올라가자.”

“나랑 같이 하늘의 구름을 관찰할래?”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알리를 자연스럽게 반겼다.

텃세는 물론 흔한 신고식마저 없었다.

보통 이적을 하면 기존 선수들에게 재롱을 떨어야 했거늘.

나중에 알았지만, 신임 감독이 뭐하는 개짓거리냐고 폐지했다고 한다.

‘미필 새끼들이 뭔 악·폐습을 하냐, 라고 했다지.’

감독이 군인 출신이라는 거에 조금 놀랐다. 수염도 없는 중성적인 이미지여서 정말 의외였다.

“장기자랑은 한국 군대에서 신병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쓰인대. 꼬우면 군대식으로 훈련할까? 라는 협박에 모두 말없이 동의했어.”

한 살 위인 조쉬 킹이 말해줬다. 이 자메이카계 영국인은 보자마자 달라붙어 이것저것 알려준다. 참 대단한 친화력이다. 물론 그 행동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축구선수에게 선수단의 분위기도 무척 중요한 요소다.

좋은 팀 동료는 여러 가지로 플러스 요인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알리는 새로운 구단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동료.

붙임성 많은 동년배 선수.

승격을 위해 훈련에 매진하는 향상심.

훈련시설이 좀 낙후되었으면 어떤가.

이런 동료들과 함께라면 땀을 흘릴 가치가 충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첫날 찾아온 괴인. 그의 등장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네가 새로 온 임대생인가?”

묵직한 저음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알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거웠다.

그야말로 트롤이었다.

“그, 그런데요?”

알리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입을 뗐다. 저렇게 험악한 얼굴을 가진 근육질 남자는 처음 봤다. 암만 겁이 없는 알리라도, 겨우 17세의 어린 소년.

압도적인 외모에 절로 겁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로 날 부른 걸까.

아니지. 애초에 저런 남자가 왜 클럽하우스에 서식 중인 걸까.

온갖 잡생각이 알리의 머리를 어지럽힐 동안, 트롤이 무덤덤하게 종이 뭉치를 건넨다.

“이건 네 메디컬 테스트를 통해서 작성한 신규 식단이다.”

“···누구시길래···?”

“난 이 팀의 영양 총괄이다. 앞으로 주 6일은 내가 주는 밥만 먹도록.”

“···알겠습니다.”

“다른 음식의 섭취는 불가하다. 명심하도록.”

끄덕. 끄덕. 알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긴다면 반으로 접어버릴 기세다.

남자가 사라지자 어느새 조쉬 킹이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저 사람은 감독님의 군대 동기야. 저래 보여도 스포츠영양학에 관련된 모든 자격증을 가진 석학이라고. 우리 팀 선수 모두는 저 사람이 만들어주는 개인 식단으로 배를 채우지.”

“···저 덩치로 요리사?”

“어. 요리 엄청나게 잘해. 저 근육은 자기 몸으로 식단테스트를 하다 보니 저렇게 됐대.”

“신기한 사람이네. 근데 저 사람은 왜 피했어?”

“며칠 전에 몰래 탄산 마시다가 걸렸거든.”

“걸리면 어떻게 되는데?”

쓰윽.

한번 주위를 살펴본 킹은 심각한 목소리로 답한다.

“웨이트를 죽기 전까지 시켜. 저 사람, 피지컬 코치까지 겸업이라.”

“···.”

정말 이상한 구단이었다.

3.

알리의 영입 다음 날, 성소하는 브라이언에게 한 가지 사실을 통보한다.

“비밀리에 진행한 이적이 하나 있어요.”

“···비밀리에요?”

브라이언은 기가 찼다.

감독이 독단적으로 개인 접촉을 했다는 말 아닌가. 스포팅 디렉터가 없는 상황에서 월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무례한 건 사실이었다.

“알잖아요? 내부에 쥐새끼가 있다는 거. 그 빌어먹을 새끼 때문에 진행한 일이니, 이해해주시죠.”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어떤 선수입니까?”

“잉글랜드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어린 선수죠. 이름은 앤디 로버트. 오른쪽 반대발 윙어죠. 심지어 자유계약 선수예요.”

“앤디 로버트?”

처음 들어보는 선수다.

브라이언도 영국 축구계에서 짬밥 꽤나 먹은 인물.

영연방에 한해서는 나름대로 선수데이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감독은 내가 모르는 선수와 어떻게 비밀리에 접촉할 수가 있었을까?’

강한 의구심이 든다. 심지어 감독이 몰래 접촉한 선수는 자유계약 신분.

이런 선수를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저도 제 나름대로 정보통이 있거든요. 실력은 보증합니다.”

성소하는 씨익 웃었다.

브라이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의 속마음이 쉬이 짐작됐다.

‘당연히 모르겠지.’

허구의 선수였으니까.

국적과 이름을 교묘하게 다르게 말했으니까.

이것은 거짓 정보였다.

쥐새끼를 잡기 위한 정의의 덫.

“말을 꺼냈다는 건 정식으로 영입을 진행하시겠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다만 남몰래 진행해 주세요. 알다시피 자유계약 신분은 인기가 좋잖아요? 괜히 노심초사하기 싫거든요.”

“흐음. 알겠습니다. 그 전에 선수와 만나보겠습니다.”

“네. 내일 도착할 겁니다. 기술재무팀에는 제가 직접 말을 전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브라이언. 진행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짜 선수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첫 번째 덫을 설치한 성소하는 이번에는 기술재무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앤디 로보요? 예, 일단 알겠습니다.”

두 번째 덫도 설치 완료.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는 전력분석관.

“밀러 아저씨 바쁘세요?”

“아니요. 이제 막 분석팀과 회의를 끝냈습니다. 하하.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요?”

“지난 2주간 선수들의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근력, 체지방 등등. 모든 지표가 좋은 쪽으로 성장 중입니다.”

밀러는 신이 나서 보고했다.

그도 새로운 영양사의 영입에 의구심을 표했던 인물.

하지만 데이터와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버거워하던 훈련에도 웃음을 지을 정도로 선수들의 성장은 눈에 띄었다.

“제 말이 맞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잘 먹으면 잘하겠죠.”

“하하. 이 단순한 걸 모르고 있었다니. 제가 멍청했군요.”

“동양권에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으니까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게 바로 동양의 지혜로군요.”

“하하. 뭐, 그런 거까지는 아니고.”

성소하는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탈바꿈한 밀러 아저씨에게 덫을 놓을 필요 있을까 싶다.

‘아니지. 아니야. 소리장도(笑裏藏刀)라고, 웃으며 뒤에서 칼빵 놓는 놈들은 수두룩해.’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밀러 아저씨가 범인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그나저나 어쩐 일이세요? 미리 보고를 받으려고 오신 거 같지는 않고.”

“그게, 밀러 아저씨한테는 이야기해 둬야 할 거 같아서요. 조만간 앤디 로버트슨이란 스코틀랜드 국적의 왼쪽 풀백을 영입할 예정이라, 선수의 분석자료가 필요해요.”

“오호. 처음 들어보는 선수군요.”

“그럴 거예요. 스코틀랜드 4부리그인 퀸스파크 FC의 선수였다가 자유계약으로 풀렸거든요.”

“···.”

밀러는 할 말을 잃었다.

스코틀랜드의 4부리그라니.

같은 4부리그였지만 수준이 달랐다.

그런 리그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선수라면, 실력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괜찮은 선수 맞습니까?”

“괜찮으니까 영입하려고 하는 거죠.”

“뭐, 감독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그럼 휴우. 자료를 구해봐야겠군요.”

“네. 괜히 일감만 만들어 드려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다 힘들어서 그렇죠. 빨리 승격해서 겸임 딱지 좀 떼고 싶습니다. 하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밀러는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4.

다음 날.

지역지에는 한 가지 기사가 실렸다.

-감독의 새로운 영입 목표는 잉글랜드의 무명 선수, 앤디 로버트.

“후후후. 이 씨발롬 잡았다.”

성소하는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함정에 제대로 걸렸다.

잉글랜드의 앤디 로버트는 브라이언에게 흘렸던 거짓 정보.

이 거짓 정보가 지역지에 실렸다는 건 브라이언이 쥐새끼라는 증거였다.

“개 쌍놈의 새끼.”

욕을 내뱉으며 서둘러 사장실로 향하는 성소하. 브라이언에게 어떤 욕을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하지만,

-웅성. 웅성.

소하는 직원들이 사장실에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예감했다.

< 014화. 신입생과 쥐새끼.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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