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8화. 잘 먹어야 잘한다. (1) >
1.
“헉헉헉. 언제까지 합니까 감독님.”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
“체력은 국력이다. 론.도.훈.련.”
“커흑.”
선수들은 게거품을 물고 빌빌거렸다. 몸풀기로 시작한 10KM 구보 다음에 이어진 론도 훈련에 곡소리가 이어졌고.
론도 훈련, 한국에선 왕따 놀이나 볼 돌리기로 불리는 훈련이다.
다수가 소수를 둘러싼 형태에서 소수 쪽이 공을 빼앗는 기초적이자 현대축구의 핵심적인 훈련법.
나의 론도 훈련은 넓은 공간에서 3명의 선수가 한 명의 선수를 가지고 논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을 커트하면 휴식이 주어졌고.
“이건··· 불가능해요. 조금만 공간을 줄여주시면 안 됩니까.”
“응. 안돼.”
조쉬 킹이 징징거렸지만 한마디로 무시했다. 어디서 감히 뺑기를 치려고 해? 하여튼 싹수가 노란 놈이야.
“···이래선 체력만 뺄 뿐이에요.”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지. 넌 그냥 발정 난 비글처럼 공만 따라다니잖아.”
“···.”
“머리를 써라. 저기 봐라. 반즈는 이미 성공하고 누워서 쉬잖냐.”
마이클 반즈는 이미 애저녁에 공을 탈취하고 푹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유유자적하게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은 신선이 따로 없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저기에 낚싯대만 쥐여주면 딱일 것 같은데.
“너도 알다시피 반즈는 너처럼 빠르지도, 민첩하지도 않아. 하지만 머리는 훨씬 좋지. 그래서 저렇게 쉬는 거고.”
“폭언이네요. 너무하세요.”
“너무하긴. 난 사실만 말했을 뿐이라고. 솔직히 부정은 못 하잖아?”
“큼큼. 아니거든요. 저희 선생님이 그랬어요. 저는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하지 않는 거라고요. 근데 굳이 ‘공격수’인 제가 공을 뺏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공격수는 축구선수 아니냐?”
곧, 아니, 지금은 공격수도 수비진에 대한 맹렬한 압박을 시도하는 시대.
1선의 전방위 압박은 상대의 수비진이 불안감을 유발, 불안감은 균열을 만들어냈으니까.
“···이거 이 훈련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진짜 너무 힘든데.”
“모두가 10분 내로 끝낼 수 있을 때까지. 10분이면 너무 여유롭지.”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숫자를 더 늘리고 공간도 더 늘려 난이도를 올릴 거니까.
“팁이라도 좀 주세요. 진짜 전 영원히 못할 거 같아요.”
“···.”
목에서 이 빡대가리 새끼야, 같은 험한 욕이 튀어나왔지만, 꾹 참았다.
배움을 청하는 어린양에게 가르침을 주는 건 감독이 된 도리니깐.
하지만, 우리 근육뇌의 조쉬 킹은 말로는 잘 배우지 못하는 친구. 그렇다면 몸으로 가르쳐줘야 하겠지.
“말로 가르치긴 힘드니까, 역할을 바꿔보자고. 자! 모두 ‘술래’ 다시 정해라. 했던 사람들은 빼고.”
“예!”
이번에는 패스를 주고받는 쪽이 된 조쉬 킹. 힘든 역할에서 풀려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였을 뿐. 계속 오른쪽으로 달려들던 도슨이 순간 왼쪽으로 빠르게 몸을 틀자 패스가 발에 걸려버렸다.
“···.”
“와아. 훌륭해. 도슨은 정말 가르칠 게 없다니깐.”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저쪽에 가서 푹 쉬어.”
“다른 훈련은 없습니까? 아직 수비수로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건 내가 따로 준비해둔 게 있으니까 지금은 쉬면 돼.”
“네.”
짜식. 4부리그 선수답지 않게 프로의식이 하늘을 찌른다. 참 마음에 드는 친구다.
“자, 이제 알겠냐?”
“그러니까··· 페이크를 주란 말이죠?”
“···.”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었다.
이 자식의 머리는 장식이란 말인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천 년 전이었다면 위대한 광전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텐데.
“예측을 하란 말이야.//, 예측을. 네가 계속 오른쪽으로 공을 보내니깐 이번에도 오른쪽일 거라 예측하고 페이크를 걸었잖아.”
“아하. 근데 어떻게 예측하죠? 어디로 줄지는 반반이잖아요. 오른쪽이던가 왼쪽. 도박이네!”
“···빠득.”
참자. 참자. 넌 감독이야. 여기서 쓴소리를 한다면 아직 어린 친구의 마음이 꺾인다!
“큼큼. 그러니까 주위를 잘 봐야지. 넌 공을 뺏을 때 공만 보잖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공을 봐야지 발을 뻗어서 뺏죠.”
“이런 개씹··· 아니지.”
위험했다. 한국말로 나와 천만다행이다. 꽤 위험한 녀석이다. 내 인내심의 끝에 도달하다니. 과연, 미래의 국가대표.
“그러니까, 계속 공을 볼 필요는 없잖아. 뺏는 그 순간에만 봐도 문제없지 않을까?”
“그럴지도?”
“···그럴지도가 아니라 그런 거야. 그럼 공을 보지 않는 시간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걸 알게 될까?”
“날씨?”
“이런, 씨발. 빡대가리 새끼가.”
잠시 이성을 잃고 폭언을 내뱉었다. 아, 이러면 안 되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한국말이라 알아듣지는 못했다.
역시 욕은 한국말.
입에 착 감겨 흥분한 상황에서도 한국말로 욕이 나온다.
세종대왕의 위엄이 분명하다.
“네? 뭐라고 하셨죠?”
“큼큼.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날씨 같은 개소리를 한 번만 더하면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오버헤드킥 훈련 시킬 테니까 그런 줄 알아. 킹아. 좀, 머리를 쓰란 말이야. 다시 한번 진지하게 머리를 써서 답을 도출해봐.”
“흐음···.”
잠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킹은 곧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답한다.
“주위의 선수가 보이는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이야. 바로 그거라고! 믿고 있었다고!”
난 제대로 된 대답에 그만 체통을 잃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아. 이 롤랜드 고릴라 같은 친구에게도 인간 수준의 지능이 존재했군요. 정말 다행이야.
킹이 도출한 주위를 살피는 능력.
이 능력을 모든 선수가 능숙하게 사용한다면 팀의 수준은 몇 단계 스텝 업 할 거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숫자를 늘려 진행될 론도 훈련까지 거친다면, 팀 전체의 압박 레벨이 오를 테고.
유기적인 고강도 전방 팀 압박을 통한 상대 진형의 붕괴. 이것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게겐프레싱의 골자다.
“정확히는 패스를 받을 선수의 위치가 보이겠지. 그렇다면, 보통은 패스를 어디에 줘야 할까?”
“그야, 패스를 주기 쉬운 쪽이죠!”
“그렇지. 그럼 네가 먼저 움직여서 패스 주기 쉬운 위치를 막는다면?”
“반대편으로 주겠죠. 아! 이게 예측이네요!”
“맞았어! 주위를 살펴보게 된다면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거야. 이해했지?”
“네. 아! 그럼 도슨이 페이크를 줄 수 있었던 건 주위 상황을 알았기 때문이군요! 주위 상황을 토대로 예측을 한 결과였어요.”
“그래. 이제야 뇌의 존재를 증명하는구나? 훌륭해. 그럼 어디 한번 배운 걸 몸으로 해봐라.”
“기대해주세요. 제가 이래 보여도 한번 배운 건 잘 써먹거든요.”
자신감 있게 훈련으로 돌아가는 킹. 절로 긴장이 된다. 놈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저래 보여도 10년 뒤엔 국가대표에 승선하는 선수. 걱정은 기우일 테지.
-콰당.
어미 새를 찾는 새끼 새처럼 주위‘만’ 둘러보던 킹은 그만 다른 선수와 충돌하고 넘어졌다.
“아이고. 공 보는 걸 깜빡했네. 헤헤.”
능청스럽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어서는 킹. 그 모습에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씨발! 저 새끼 점심시간 전까지 오버헤드킥 훈련 시켜!”
2.
선수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영양’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포츠머스의 지랄 맞은 상황에서 훌륭한 요리사를 보유했다는 건 꽤 고무적인 일이다.
“오오. 미스터 승.”
포츠머스에서 15년을 요리사로 근무 중이신 헬렌 카터 이모님이 날 반겨주신다.
“승이 아니라 ‘성’. 발음하기 힘드시면 캐슬이라고 불러요. 이모님.”
“후후. 그래도 감독님은 영국인 보다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셨잖아요? 거기에 맞춰야죠.”
“뭐, 그건 그렇죠. 마음대로 하세요.”
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전의 세계에서 몇 없었던, 날 아껴주는 분이셨으니까.
나보다 두 배는 더 사셨으면서도 5년 후 은퇴하는 그 날까지 존칭으로 불러주시던, 고마운 분이다.
“오늘도 훌륭한 식사군요. 잘 먹겠습니다. 헬렌 이모님.”
“칭찬은 됐어요. 저의 의무를 이행한 것뿐이에요.”
“후후.”
역시 이 망할 구단에 몇 존재하지 않는 믿을만한 직원이시다.
프로의식은 물론이고 실력도 겸비하셨으니 보물이 따로 없다.
‘나이도 많으신데, 하루도 이 시간대에서도 한번을 거르지 않으시네.’
주방을 바라보자, 감탄이 나왔다.
새로 조성한 주방처럼 새하얗다.
얼마나 주방 청결에 신경을 쓰시는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이야! 잘 먹을게요. 쉐프!”
“와. 오늘도 진수성찬이네. 좀 싸가야겠는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 밥만 보면 생각이 사라진다니까.”
“난 출근하면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더라. 우리 마누라는 요리를 못해서.”
“인정. 진짜 개밥먹는 줄.”
“이 새끼가?!”
선수들의 만족감도 높은 식단이다. 소화하기 편하지만,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음식들이다.
”역시. 맛있어.“
식당 구석에 앉아 멋들어진 음식을 한 입 집어넣으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간단한 옥수수 수프였지만 오장육부로 옥수수가 스며드는 기분이다.
‘잠깐.’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음식을 위장 속에 집어넣다 보니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게 맞는 걸까?’
훌륭한 음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완벽한 음식은 아니다.
적어도 스포츠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선수들은 조금 전까지 강도 높은 론도 훈련을 마치고 고강도 인터벌 훈련까지 수행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보다는 단백질과 비타민 위주로 먹어야 훈련의 효과가 배가 될 터.
‘이 수프의 열량은 몇이지? 이 팔라펠의 영양 성분은? 애플크럼블에 들어가는 설탕은 선수들에게 악영향 아닌가?’
문득, 19-20시즌, 우승을 달성한 클롭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영양사 ‘모네 넴머’가 없었다면 우리는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난 그의 인터뷰에 리버풀의 영양 관리를 조사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 축구 구단의 품격을 여실히 보여줬었다.
‘선수의 나이, 민족성, 체중, 신진대사, 체지방, 알레르기, 포지션, 출전 시간 등등. 모든 데이터를 기준으로 개별 식단을 작성했지.’
정밀한 메디컬 테스트를 통한 식단조절은 기본이었고 경기 시간에 맞춰 식사를 제공하는 건 덤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야.’
하프타임에 마시는 에너지 드링크는 미래에는 당연한 문화로 정착된다.
이것뿐이겠는가? 경기가 끝나고 나서의 에너지 보충도 스포츠 과학적인 시각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먹는 건 중요해. 선수는 사람이고, 사람은 음식으로 유지되니까.’
선수들의 식사는 중요하다. 섭취하는 영양소에 따라서 퍼포먼스가 오르기도 하며 부상위험도 낮아질 테니까.
포츠머스의 선수단은 아직 규모도 작고 실력도 뛰어나지 않지만, 젊은 팀이다.
젊다는 것. 이것은 아직 육체가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소리 아닌가.
‘헬스 너튜버들이 말했지. 몸을 만들 때는 운동만큼 식단이 중요하다고.’
즉, 이 사랑과 정성이 담긴 헬렌 이모님의 음식은 쓰레기라는 거다.
설탕도 들어있으며 단백질 함량이 적어 선수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쓰레기!
"···."
난 슬쩍 헬렌 이모님을 훔쳐보았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선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신다. 그 모습에 갑자기 가슴이 시큰거려왔다.
‘마침, 내 미래의 지식에는 지금 시간대에 백수인 훌륭한 영양사가 있다.’
그 영양사라면.
작은 구단의 한계 때문에 리버풀만큼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리고, 흉내만 내더라도 효과는 바로 체감되겠지.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다. 식단만 바꾸어도 1주일이면 효과가 나타났으니까.
지금 당장 리그2에 처박혀 있는 팀에겐 가장 쉬운 실력 향상의 길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구단에 영양사가 둘이나 필요하지는 않아.’
리저브팀, 그러니까 U23 팀도 없고, 성인선수단이라곤 22명인 코딱지만 한 구단에 영양사 2명은 인력 낭비다.
‘그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선··· 헬렌 이모님을 내쳐야 한다.’
욱씬.
상상만 해도 죄책감에 가슴이 찌르르하다. 헬렌 이모님은 회귀 전, 날 위해 한국 요리도 공부하셨던 분.
이모님을 버려가면서 포츠머스를 성공시켜야 하는 걸까?
내 꿈에 그만한 가치가 존재할까?
‘인간성과 꿈을 선택하라, 이건가.’
등가교환. 세상의 법칙.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
답은 정해졌다.
등가교환, 세상의 법칙.
하지만 난 세상의 법칙을 거스른 인간 아니던가!
‘브라이언을 쪼아야겠군.’
식사를 마치고 방문할 곳이 정해졌다.
< 008화. 잘 먹어야 잘한다.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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