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화. 아버지는 취향이 독특했다. >
1.
아버지는 취향이 독특했다.
런던의 수많은 강팀을 내버려 두고 남쪽 바닷가의 시골 팀인 포츠머스를 응원하셨으니까.
심지어 아버지는 가문 대대로 런던 토박이시다.
어쩐지. 피쉬앤드칩스도 없어서 못 드시더라니.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 이게 축구공이란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버지가 처음 축구공을 건네는 모습이다.
3살쯤이었나, 4살쯤이었나.
하여튼, 영국인 아버지는 대단한 축구광이었다.
“아들. 넌 축구선수가 되는 거야.”
어찌나 대단한 축구광이었던지.
두 발로 서자마자 축구공을 선물로 주셨다.
과연, 축구에 미친 영국인답달까.
문득,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얻어맞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다른 구단은 안돼. 무조건 포츠머스에 입단하는 거야. 포츠머스에서 은퇴하거라. 그리고 포츠머스에 트레블을 달성하는 거란다.”
3부와 2부를 전전하는 허접한 팀에서 은퇴하라니. 아들 인생을 망칠 작정이 분명하셨다. 게다가, 트레블이라니.
영국에선 단 두 팀만 달성한 위대한 업적 아니던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라, 뭔 나이키 광고도 아니고.
하여튼, 가족 전부가 런던팀을 응원할 때 아버지 혼자만 포츠머스의 서포터였다.
그것도 대단히 열성적으로.
왜일까. 왜 그러셨을까.
지금도 의문이지만 끝내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 순 없었다.
-끼이이익! 쾅!
10살 무렵에 일어난 교통사고.
아버지는 그 망할 사고에서 돌아가셨다. 만취자가 운전대를 잡은 덤프트럭이 정면에서 덮친 끔찍한 사고.
아버지는 초인 같은 반사신경으로 핸들을 틀었고, 기어코 조수석에 앉은 나는 살리셨다.
어디까지나 살리기만.
“앞으로 과격한 운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영영 휠체어 신세를 질지도 몰라요. 그러니...”
축구선수라는 나와 아버지의 꿈은 박살이 났다. 그리고 난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만리타향에서 어머니 혼자 다친 아들을 키우기 힘드셨고, 한국은 건강보험 때문에 치료비용이 저렴했으니까.
요컨대 검머외 전형이라는 거지.
한국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영국보다 좋았다.
인터넷 빠르지, 음식 맛있지. 한국인의 핏줄 맞긴 했나 보다.
물론, 항상 좋지는 않았다.
“얼굴은 김친데 눈깔은 퍼렇네. 너 잡종이야? 소문으로는 물건이 그렇게 그렇게 크다며? 보여 줘봐.”
한국 잼민이들은 빠구가 없었다.
이게 김치의 매운맛이라는 건가.
영국 애들하곤 수준이 달랐다.
물론, 그냥 내버려 두진 않았다.
외모는 동양적이지만 골격만은 서양인이었으니까. 동네 치과 의사 선생님의 수입 좀 올려주었다.
그렇게 꽤 험난한 초등학교 생활이 지속되었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니 상황은 달라졌다.
“소하야, 이거 받아줘.”
얼굴을 붉힌 채 초콜릿을 건네주는 여학생. 너무 많아서 지겹다. 이 정도면 초콜릿 가게를 차려도 되지 않을까?
물론 난 여자한테 관심 따윈 없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축구일 뿐.
아니, 포츠머스FC 였을 뿐.
아버지의 꿈은 어느새 나의 꿈으로 변해버렸다. 혹은, 항상 그리는 아버지의 진심을 알고 싶다는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축구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길이 많았다.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길은 감독. 축구선수를 포기한 그 날부터 정한 나의 길이었다.
2.
여러 운과 노력, 그리고... 큼큼. 재능 덕분에 20대 후반에 포츠머스의 감독 자리에 올랐다.
리그 2. 그러니까 4부리그까지 떨어진 팀의 막장 상황 덕분이다.
20년을 꿈꾸어온 꿈의 구단.
그러나.
막상 들어와 보니 이미 무너져버려 폐허가 된 곳이었다.
즉, 꿈은 악몽이었다는 이야기.
하긴, 망했으니 나 같은 놈을 감독으로 썼겠지.
덕분에 프런트도, 선수도 나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장애물이 날 괴롭히고 방해했지만 버티어내며 느리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길 수년.
간신히 승격한 챔피언십 리그,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승격 플레이오프.
아쉽게 승격에 실패했지만 나는 희망을 보았다. 다음 시즌엔 분명,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할 거라고.
전문가들이나, 베팅업체도 승격이 유력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개고생이 허튼짓이 아니었다.
그래,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가, 아버지와 나의 꿈을 이루자.
수년, 수십 년이 흘러도 어떻게든 트레블을 달성해서 아버지의 묘 앞에 우승컵을 받칠 거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무조건 해내고 말았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
“아쉽지만 재계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비수처럼 날아와 내 심장을 난도질한, CEO 브라이언의 통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죠?”
“무리뉴 감독과 계약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연락하더군요. 포츠머스와 함께 3년 내로 챔피언스 리그를 누빌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주제 무리뉴. 이제는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 하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은 상상을 초월했다.
포르투와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전설적인 감독!
그 후 유럽의 명문클럽을 돌며 감독직을 맡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아서 평가가 많이 내려간 감독이기도 하다.
물론, 나 따위에 비하면 저 하늘의 태양만큼 빛이 나는 사람이지만.
“...전... 지난 세월 동안 포츠머스에 신명을 다 받친 사람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을 해내셨죠. 하지만, 구단은 판단했습니다. 감독님의 역량으로는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마침, 계약기간도 끝났고요.”
“...씨...”
브라이언, 저 대머리 새끼의 말은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의 폭발이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며 숨을 쉬기가 어렵다.
이 감정은 뭘까. 그래, 이건 분노다.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활활 타오르는 분노.
“...개소리...”
“네?”
“개소리하지 마! 야 이 씨발롬아! 처음에도 승격하지 못한다고 했지. 근데 결과가 뭐지? 챔십까지 올려놨어! 너네 개씹 트롤새끼들하고!”
“...”
“내가 키운 구단이야. 이럴 순 없어. 씨발놈들아. 너희가 사람이야? 사람이냐고! 10년을 개처럼 일했어!”
“진정하십시오.”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 야 이 개새끼야. 니 새끼가 땡전 한 푼 주지 않아서 찜통 뒤져가며 선수단 채운 것도 나고, 잘 키운 유소년선수 팔아치울 때마다 다시 키운 것도 나고! 돈 없다고 징징거려서 연봉 인상은 쥐꼬리만큼 한 것도 나야! 이 개좆 병신같은 구단 여기까지 올려둔 사람이 나라고!”
씨발. 저 무능한 프런트 새끼들은 지난 세월 동안 키우는 고양이보다 도움이 되질 않았다.
작년만 해도 그래.
뭐? 영입명단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라 씹새꺄. 네가 즐라탄이면 여기 오겠냐?!
격렬한 분노 때문에 현기증마저 올라온다.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이다.
평생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왔으니까.
혼혈이란 그런 법이니까.
이젠 그것도 끝이다.
갓끈 푼 동아시아 시골 잡종 미친개의 지랄을 보여주마.
“말이 심하시군요.”
“좆까는 소리하지 마. 홍차 새끼야! 니가 한 말이 더 심해!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씨발롬아 말을 해야 통해주지. 월월 짖는데 내가 어떻게 반응할까?"
내 거침없는 욕설에 무표정하던 브라이언, 저 개새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지만 그러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경비원, 미스터 성을 끌어내세요!"
쾅!
저 쓰레기가 미리 준비해둔 경비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놔! 놔!"
"지,진정하세요. 감독님."
"놓으라고! 으아아아!"
나도 한 덩치 했지만, 경비원들 여럿을 뿌리칠 수준은 아니다.
지랄발광을 했지만 질질 끌려 나갈 수밖에.
이것이 포츠머스에서의 내 마지막이었다.
3.
보통 영화나 웹소설을 본다면 이런 경우 팀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전임감독을 그리워한다.
신파의 기본이랄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영화는, 영화였고 웹소설은 웹소설이었을 뿐.
“개막 5연승! 대단합니다. 이대로라면 프리미어 리그 복귀도 어렵지 않겠어요! 무리뉴 감독의 화려한 부활!”
“성 감독의 해임은 탁월한 판단이라고 보입니다.”
“무리뉴 감독의 명성 덕분에 챔피언십 수준에서는 감히 영입할 수 없었던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우. 갓. 개막 7연승 이후 13경기 무패! 이미 내년 프리미어에서의 미래를 그려도 되겠어요!”
“포츠머스가 비상합니다!”
포츠머스는 잘나갔다. 그것도 아주 좆나게 잘나갔다. 진짜 개 열받아서 고혈압이 올 만큼 잘나갔다.
처음, 내 경질에 서포터들은 큰 반발을 했었다. 역시 남는 건 팬님뿐이다.
“성은 10년 동안 동고동락한 감독이라고! 이건 폭거야!”
“단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는 감독이지. 느리지만 천천히 꾸준히 위로 올라간 사람이었다고!”
“브라이언은 사퇴해라!”
“브재앙 아웃!”
여론은 나의 편이었다. 물론, 무리뉴사단이 폭주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이야! 프리미어 리그가 코앞이잖아?!”
“사실, 성감독은 꾸준했지만 임팩트는 없었지.”
“선수 영입 퀼리티 보소. 감독이 달라지니까 오는 선수가 다르네.”
“진작 쳐냈어야 했는데.”
“프런트의 결정은 신의 한 수였어.”
“빛라이언! 찬양해!”
빠른 태세 전환에 협곡의 한 챔피언이 떠올랐다.
팬 새끼들 진짜 너무하네.
덕분에 난 고작 반년 만에 완전히 잊혔다.
지원의 지자도 모르던 구단주 영감탱이는 돈을 미친 듯이 풀었고, 유럽 대항전 수준의 선수를 대거 영입해 트럭을 몰았다. 아니, 탱크를 몰았다.
선수단 레벨이 2부리그 수준이 아니다.
씨발.
저 선수단이면 나도 승격했을 텐데.
아니, 돌아가신 울 할아버지가 감독이라도 쉽겠지.
“좆같네.”
할 말이 딱히 없었다. 그냥 좆같았다. 잊힌 망령 같은 내가 할만한 일은 한가지였다.
바로, 펍에서 술이나 퍼마시는 것.
다른 일은 생각나지 않았고 하기도 싫다.
난, 단순히 축구 감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포츠머스의 감독이 되고 싶었지. 꽤 많은 구단에서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조리 무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돈도 지난 십 년간 꽤 모아뒀다. 처음엔 주급 80만 원의 싸구려 계약이었지만, 챔피언십 승격 후 주급 700만 원은 받았으니까.
돈도 있겠다, 술이나 퍼마시자! 하하!
“꿀꺽. 크아. 좋다.”
취기만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언제든지 찾아와 날 위로해주니까. 훌륭한 친구다.
“젊은 분이 근심이 많아 보이는군요.”
“...나요?”
금발벽안의 미녀가 술을 들이켜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 옆에 앉은 거야?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누추한 펍에 오기엔 뭐랄까. 고귀함이 넘쳐 보인다.
“그래요. 당신이요.”
“제가 젊은 사람은 아닌데요.”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마흔! 예전 같았으면 자식이 학생이라고.
“후후. 제가 보기엔 젊은이가 맞는답니다. 그것도 아주 푸릇푸릇한.”
“?”
뭐라는 거야. 술을 얼마나 퍼마셨길래 저런 개소리를 하지?
나보다 어려 보이는 기지배가.
기분도 안 좋은데 아예 잡치게 하는구만.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답니다. 머글들의 오랜 악습이죠.”
“...”
내가 틀렸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헛것을 보는데 맞다. 그럼 막 나가도 상관없겠지.
“그나저나 익숙한 얼굴이네요. 성감독님 맞으시죠? ‘전’ 포츠머스 감독.”
“어. ‘전’ 포츠머스 감독이야. 꼽냐?”
“이야기는 들었답니다. 참 아쉬워요. 요즘에는 로망이 없죠. 10년 동안 그토록 노력한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다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행태에요.”
“...너 제법 괜찮은 사람이구나?”
“후후. 칭찬 고마워요.”
“자, 여기 한잔 받아.”
나는 신이 나서 헛것에게 술 한잔 대접했다. 취기가 나에게 말동무를 하나 선물해 줬나 보다.
“그래도 이제 털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아직 창창한 나이잖아요? 노력과 재능도 겸비했으니 뭐든 해낼 거예요. 전 믿는답니다.”
헛것은 우악스럽게 건넨 맥주잔을 기품있게 들어 고풍스럽게 홀짝이며 격려했다.
“그러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 난 배신당했다고. 내 꿈과 아버지의 꿈에도 배신당했고, 서포터들에게도 배신당했어.”
“...”
“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근데 결과가 뭐야? 다른 놈들은 연락하는데, 정작 포츠머스 관련자들한테는 흔한 광고 문자 하나 오지 않아.”
“...그래도 포츠머스를 아직 사랑하시죠?”
“그거야... 씨발. 당연하지.”
고민 없이 답했다. 포츠머스는 내 꿈이자 인생이었다. 이 개 같은 구단을 싫어한다면, 내 꿈과 인생마저 부정하는 거다.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비록 비참하게 배신당할지라도.
난 주저없이 포츠머스의 감독직을 맡아 트레블에 도전할 거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유일한 한가지였으니까.
“멋진 대답이네요.”
“흐흐. 멋지긴. 그냥 배신당한 남자주인공의 찌질함이겠지.”
“성감독님에게는 아직 낭만이 남아있었군요.”
“낭만이라. 훗. 애증이겠지.”
“애증도 낭만이랍니다. 직접 만나보니 결심이 서네요.”
“으응? 뭔 결심?”
점점 눈이 풀린다. 술을 너무 퍼마셨나 보다. 하기야, 벌써 6시간째 죽치고 앉았으니까. 그냥 이대로 자고 싶다.
“부디 제, 선물을 즐겁게 즐기시길. 그리고 이번엔, 꼭 꿈을 이루시길.”
헛것의 청량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난 의식을 잃었다.
4.
“으으. 골이야. 너무 마셨나.”
난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전혀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보인다.
잠깐. 익숙하지 않다는 말은 취소.
어디서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치, 감독이 되기 전에 묵던 싸구려 원룸의 천장과 똑같지 않은가.
“음?”
이상하다. 이 원룸은 5년 전에 재건축에 들어갔을 텐데. 아직 술이 덜 깼나 보다. 난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스마트폰을 켜보았다.
“뭐, 뭐야 씨발!”
스마트폰 액정에 표기된 년 도는 2013년. 눈을 비벼보아도 확실하다. 2013년 7월 6일. 심지어 스마트폰도 10년 전 초기모델이다. 술이 확 깬다.
“이게 꿈인가? 10년 전이잖아?”
10년 전, 2013년 7월 6일.
이날은 내가 염병할 병신폐급 구단에 취임하기 하루 전이었다.
< 001화. 아버지는 취향이 독특했다.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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