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타는 바다
일본의 함대가 마이즈루 항을 출발했다는 정보를 취득한 대한민국 해군은 그에 대응하기 위해 출진했다.
일본 2, 3, 6, 7함대. 이는 대한민국 해군 전체 전력과 비슷한 규모였는데, 대한민국 해군은 1함대인 동해 함대와 기동전단만을 내세웠다.
이렇듯 열악한 조건으로 일본 함대를 상대하는 이유는 바로 중국의 대규모 해군 전력 때문이었다.
이미 중국과 일본은 동맹을 맺고 대한민국과 전쟁을 하고 있다.
일본 해군이 동해로 쳐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중국의 북해 함대와 동해 함대, 그리고 남해 함대 일부 군함들이 서해로 진격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 2함대는 중국 해군을 막기 위해 3함대와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일본 해군을 막아야 하는 1함대에는 아직 전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기동전단이 투입되었다.
그나마 중동에서 실전을 경험하였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해군 본부에서 일본의 네 개 함대를 상대할 1함대에 기동전단을 지원 보낸 것이었다.
물론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일본의 해군을 막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만, 우수한 대함미사일과 요격미사일 등을 가지고 있고, 또 비밀 병기가 있기에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었다.
거기에 거의 갑절의 차이가 나는 일본 군함에서 쏟아낼 대함미사일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해군은 바지선을 대량 징발하여 그 위에 신형 요격미사일을 갖췄다.
천하 디펜스에서 개발한 신형 요격미사일은 원격으로 발사할 수 있어 굳이 발사관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요격미사일을 담은 케이스가 바로 발사관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군은 부족한 군함의 숫자를 바지선으로 대체하여 일본 해군의 침략에 대비하고 있었다.
동해를 방어하는 1함대 군함들은 연결 고리를 매달아 요격미사일을 가득 실은 바지선들을 끌고 동해를 가로질러 독도 인근 해역에서 대기하였다.
원래 일본은 전통적으로 88함대를 운용했다.
전투함 여덟 척과 대잠 헬리콥터 여덟 대를 일컬어 88함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 해군의 네 개 함대는 전투함만 서른두 척이라는 의미였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 해군은 66편제를 취하고 있다.
즉, 여섯 척의 전투함과 여섯 대의 대잠 헬리콥터를 운용한다는 소리였다.
결국 전투함의 숫자에서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지만, 전장에 나선 해군 장병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일본 해군의 군함들을 보며 다짐하였다.
‘일본 놈들은 한 놈도 대한민국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다!’
◈ ◈ ◈
뚜우! 뚜우!
짧은 경적이 울리자 군함의 승조원들은 주황색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각자 전투 위치로 가서 대기하였다.
“함장님, 320㎞ 전방에 일본의 대규모 함대가 보입니다!”
레이더를 보고 있던 장병이 함장에게 보고하였다.
“알겠다. 전 장병에게 알린다. 일본 해군이 320㎞ 전방에 나타났다. 전투 개시는 1함대 기함인 주몽함과 기동전단의 해모수함부터 시작할 것이다.”
1함대의 기함인 주몽은 대한민국 최신예 순양함인 해모수함의 자매함으로, 해모수급 순양함의 2번함이었다.
3번함인 온조함은 서해 함대인 2함대의 기함이 되었고, 3함대의 기함으로 건조 예정인 4번함 혁거세함은 아직 완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일본의 네 개 함대를 상대하는 두 척의 해모수급 순양함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만약 해모수급 순양함이 해군 지휘부의 생각만큼 활약을 해주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큰 위기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해모수급 두 함선이 재대로만 활약해 준다면, 해전에서도 육군이 거둔 대승에 못지않은 전과를 올릴 것이라 예상하였다.
해군 지휘부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해모수급 순양함에만 탑재되어 있는 세 문의 레일건 덕분이었다.
일본 함대의 대함 무기는 00식 대함미사일이었다.
일명 제로식이라 말하는 이 대함미사일의 최대사거리는 200㎞였다.
그에 반해 해모수급 순양함의 레일건 최대사거리는 300㎞에 이르렀다.
즉, 사거리에서 100㎞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해군이나 일본 함대의 대함미사일 제원은 비슷했다.
그 이유는 일본과 한국의 대함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바탕이 된 것이 미국의 대함미사일인 하푼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일본의 전투함 숫자와 배수량에 따라 대함미사일이나 요격미사일의 숫자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아 유리할 뿐이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 함대를 상대하는 대한민국 해군에게는 해모수급 순양함이 두 척 있었다.
해모수급 순양함에는 각기 세 문의 레일건이 탑재되어 있으며, 한 번에 군함을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사거리를 이용해 전투를 벌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었다.
즉, 상대가 접근하기 전에 계속해서 유리한 거리에서 치고 빠지기를 한다면 아무리 많은 숫자의 함선이 있다고 해도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해군 작전 사령부의 계획 아래 1함대와 기동전단은 전투 준비를 하였다.
“일본 함대와의 거리가 280㎞ 정도 되었을 때 교전을 시작한다.”
주몽함의 함장인 주용운 제독은 휘하 장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기동전단의 강감찬 제독에게 무전을 날려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강감찬 제독.”
― 말씀하십시오, 제독님.
“일본 함대와의 거리가 280㎞ 정도 되었을 때 자네의 해모수함과 우리 주몽함이 적의 기함을 공격하기로 하지.”
일본 함대의 기함이 멀쩡하다면 나중에 쌍방의 교전 거리인 200㎞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지스함의 숫자에서 밀리는 한국 해군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신의 방패라 명명되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지스함은 대공 방어력이 뛰어난 함선이었다.
1,000㎞ 내에 2,000개의 목표를 탐지할 수 있으며, 80여 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지스함.
그런데 지금 쳐들어오고 있는 일본 함대에는 모두 여덟 척의 이지스함이 있었다.
그 말인즉, 한국의 1함대와 기동전단의 전투함들이 대함미사일을 모두 쏜다고 해도 일본 함대가 막아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주용운 함장은 일단 이지스함의 숫자부터 줄이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지스함이 없다고 대함미사일을 추적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지스함 말고도 일본 함대에는 대공을 담당하는 전투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지스함보다 탐지할 수 있는 목표나 추적하는 목표가 적을 뿐이었다.
―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런 선배님이 일본 2함대와 6함대 기함을 맡아주십시오. 전 3함대와 7함대를 맡겠습니다.
“알겠네. 무운을 비네.”
교신을 마친 주용운 제독은 비장한 눈으로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잠시 뒤면 나라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푸른 동해에서 벌어질 것이다.
비록 전력상으로 부족한 해군이지만, 적을 맞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우린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들이다. 엄청난 수의 왜군을 맞아 단 열두 척의 함선으로 물리친 충무공의 후예가 바로 우리다. 비록 전방에 있는 일본 함대가 우리보다 많다지만, 그것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린 죽음을 각오하고 임진년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둬 나라를 지켜낼 것이다!”
주용운 제독은 무전을 통해 자신의 각오를 장병들에게 설파하였다.
장병들 역시 가슴을 울리는 웅변에 모두들 고함을 질렀다.
와!
비록 주용운 제독이 있는 함교까지 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좋았다.
주몽함의 승조원은 물론이고, 1함대와 기동전단에 속한 모든 장병들이 주용운 제독의 무전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에는 웅지가 피어올랐다.
◈ ◈ ◈
마이즈루 해군 기지를 떠나온 일본의 해군 함대는 독도 인근에 마중을 나온 대한민국 해군의 모습에 조소를 날렸다.
“겨우 두 개 함대도 되지 않는 함선을 끌고 나와 우리를 막겠다고? 어처구니가 없군.”
“그렇습니다. 참으로 미개한 조센징들입니다.”
이번 한반도 정벌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타다미 유우타 삼등해장 레이더에 포착된 한국 해군의 배치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유우타 삼등해장의 말에 부함장 요미우리 해장보는 맞장구를 쳤다.
일본 제국주의에 심취해 있는 요미우리 해장보는 이번 한반도 정벌에 무척이나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사실 요미우리 해장보는 우익 중에서도 과격 우익 단체인 천조회(天造會)의 일원으로, 이들은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를 연구하는 집단이었다.
아니,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그것이라 여겼다.
이들은 예전 왕정복고를 꿈꾸던 이들처럼 천왕(일왕)이 다스리는 때야말로 일본이 정상에 선다고 생각하여 과격 시위는 물론이고, 특히나 한국과의 친교를 주장하는 이에게는 테러를 가하는 등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로 인해 조직이 와해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조직이 바로 천조회였다.
그리고 그런 과격 사상에 심취한 요미우리 해장보이기에 한국인을 낮춰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음, 그나저나 위성이 없으니 답답하군.”
예전이라면 인공위성이 보내주는 실시간 화면을 통해 상대를 살피며 작전을 수행했을 텐데, 적의 위치만 확인할 수 있는 레이더 화면만으로 전투를 치르려니 무척이나 답답했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나 전력에서 월등한데, 설마 저희가 조센징들에게 지기라도 하겠습니까?”
전력면에서 두 배, 아니, 세 배 정도 차이가 나다 보니 요미우리 해장보의 얼굴에는 전혀 한국 해군에 대한 걱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뒤 들려온 폭발음 소리에 삽시간에 사라졌다.
쾅!
쾅!
연달아 들려오는 폭발음에 유우타 삼등해장과 요미우리 해장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무, 무슨 일입니까?”
이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함교 내에 있던 장교 중 한 명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아악! 쵸카이가…….”
“악! 아타고가 피격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비명을 지르던 장교 한 명이 다급하게 유우타 삼등해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방금 전 들린 폭발음은 2함대 이지스함인 쵸카이와 3함대 소속 아타고가 주몽과 해모수함에서 발사된 레일건에 피격을 당한 소리였다.
아타고와 쵸카이는 단 한 번의 피격에 기수가 점점 기울며 침몰을 하고 있었다.
쵸카이의 경우 함미가 피격되어 기울어진 반면, 아타고는 정확하게 허리에 맞아 두 동강이 나 급속히 가라앉았다.
최강의 함선이라는 이지스함이 그 이름값도 못하고 허무하게 침몰한 것이었다.
“어서 구조선을 띄워 쵸카이와 아타고의 승무원들을 구출하라!”
유우타 삼등해장은 다급하게 무전을 날려 침몰하는 두 함선의 승조원들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이미 두 동강 난 아타고는 깊은 동해 바다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함미가 뻥 뚫린 쵸카이의 승무원들은 기울어진 함선의 난간을 잡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피격을 당한 위치가 너무도 절묘한데다 파괴된 부위가 너무도 커 급격히 유입되는 바닷물 탓에 탈출이 요원해 보였다.
그 순간, 그나마 아직 가라앉지 않은 쵸카이에 접근해 승조원들을 구출하려던 일본 해군에게 긴급 피난 명령이 떨어졌다.
― 위잉! 떨어져라! 위험하다. 쵸카이에서 떨어져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쵸카이가 침몰하려고 한다. 쵸카이에서 떨어져라!
쵸카이의 승무원들을 구출하고 있던 도중 다급히 날아든 무전에 군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쵸카이가 급격히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군인들은 그 모습에 아직 바다 위에 떠 있는 승무원들을 놔두고 급격히 쵸카이에서 멀어졌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다름 아닌 안전을 위해서였다.
배가 침몰할 때 발생하는 와류에 의해 자신들도 빨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쵸카이 승무원 중 일부는 와류에 휘말려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쾅! 쾅!
일본 해군이 침몰하는 아타고와 쵸카이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때, 또다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린 그들의 눈에 이번에는 6함대 기함인 후소와 7함대 기함인 야마시로가 피격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두 함선은 조금 전 침몰한 쵸카이나 아타고와 다르게 피격은 당했지만 당장 침몰하지는 않았다.
다만, 피격된 곳이 함교와 레이더가 있는 위치라서 앞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콰쾅! 펑!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조금 전 피격을 당한 후소와 야마시로에 또다시 피격이 가해졌고, 곧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다.
이번에는 미사일을 탑재한 함수 쪽에 피격을 당해 유폭이 일어난 것이었다.
숫자로 따지면 서른두 척의 전투함 중 불과 네 척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전투함 네 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함대의 꽃이라 불리는 이지스함. 무적의 군함이라 이름 붙여진 이지스함 네 척이 적의 모습도 보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한국 해군에 비해 여전히 배 이상의 전투함이 남아 있지만, 일본 해군 병사들의 마음속에 일본을 떠나올 때의 자신감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동해에서 대한민국의 해군 1함대와 기동전단이 일본의 네 개 함대를 맞아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서해에서도 중국 해군과 대한민국 해군 2, 3함대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다만, 동해에서 1함대와 기동전단이 조금은 일방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면, 서해에서는 숨 막히는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2함대 기함인 온조함이 장거리 포격으로 접근하는 중국 해군의 군함들을 피격시켰지만, 파괴되거나 전투 불능에 빠진 군함의 숫자에 비해 남아 있는 함선의 숫자가 너무도 많았다.
마치 6.25 사변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보듯, 공격을 받으면서도 끝없이 접근하는 중국 해군의 함선들로 인해 대한민국 2, 3함대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내주고 교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슝! 슝!
서로를 향해 대함미사일이 날아가고, 또 자신에게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보유한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한국과 중국 해군의 전투함들은 정신없이 미사일과 각종 무기들을 쏟아냈다.
― 함장님! 남서쪽 500㎞ 지점에서 대규모 비행 물체가 포착되었습니다.
2함대 기함인 온조함의 인공지능 ‘온조’가 함장인 박영표 제독에게 보고하였다.
해모수급 순양함에는 함선을 컨트롤할 슈퍼컴퓨터 대신 인공지능 컴퓨터가 탑재되어 운용을 돕고 있었다.
“중국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인가 보군.”
박영표 제독은 온조의 보고에 방금 나타난 전투기 편대들이 어디서 날아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중국 해군에 항공모함이 있음을 알고 있는 박영표였다.
그런데 조금 전 전투에서는 항공모함이 보이지 않았다.
정보에 의하면 세 척의 원자력 항공모함이 정비를 위해 상해에 입항했다가 특공대에 의해 침몰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세 척의 항공모함이 침몰했다 해도 중국 해군에는 아직도 여섯 척의 항공모함이 남아 있었다.
비록 세 척은 연식이 오래되어 운항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전투기를 실어 나르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항공모함의 전투력이란 바로 함재기의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지, 항공모함 자체적인 전투력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장시간 운행을 하지 못한다 해도 충분히 제 역할은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중국 해군의 항모 여섯 척이 모두 모인다면 170여 대의 전투기를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즉, 한 번의 전투에 170대의 전투기들이 동원된다는 소리였다.
전투함의 숫자에서도 열세인 상황에서 100대가 훨씬 넘는 전투기들까지 끼어들게 된다면, 아무리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해군이라도 대응하기가 힘겨웠다.
“대한함에 먹이가 도착했다고 연락해.”
박영표 제독은 인공지능 온조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대한민국 해군이 꼭꼭 숨겨둔 항공모함인 대한함을 호출한 것이었다.
전력이 열세인 상태에서도 대한민국 해군은 대한민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대한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국 해군이 아직 항공모함을 전선에 투입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미 인공위성을 통해 존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는 동원하지 않는 모습에 뒤를 치려고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해군도 대한함을 따로 숨겨두었다가 중국군이 항공모함을 동원하면 그때 그들을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한함은 중국의 항공모함과 다르게 대형급 항모였다.
비록 재래식 항공모함이 원형이기는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인도 받아 개수를 하면서 대한함은 재래식 항공모함의 탈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환골탈태하였다.
비록 원자력 항공모함은 아니지만, 대한함은 많은 연료가 필요 없었다.
원자력을 능가하는 플라즈마 발전기를 내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원자력 항공모함처럼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해군은 그 공간에 함재기를 배치하였다.
결국 대한함은 미국의 대형 항공모함들처럼 100여 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
비록 중국 해군의 함상 전투기 170여 대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이전 중국 공군의 전투기들을 일방적으로 격추시킨 업그레이드 버전의 F/A―18E/F 슈퍼 호넷이기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렇기에 군사령부에서는 부족한 전투기의 숫자를 공군에서 지원해 주기로 하였다.
지상에서 발진하는 F/A―18E/F 슈퍼 호넷과 F―15K 슬램 이글은 먼 거리를 비행해야 하기에 보조 연료 탱크가 필요하지만, 공군이 지원을 해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전투였다.
그리고 F―15K 슬램 이글은 막강한 무장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두 발의 공대함미사일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 ◈ ◈
청와대 지하, 전쟁 사령부.
동해에서 교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 이후로 더 이상의 보고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
그 때문에 초조해진 윤재인 대통령과 군 사령관들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지킴이 PMC에 통신을 요청하였다.
요청을 받은 문익병 사장은 위성 센터의 코드를 열어 청와대 전쟁 사령부와 연결하였다.
어차피 지킴이 PMC 지하 위성 통제 센터에서도 군인들이 인공위성을 조작하고 있기에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지킴이 PMC로부터 위성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 받게 된 청와대는 동해에서 벌어진 해전 상황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위성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이기에 처음에는 눈에 익지 않아 피악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예상했는지 지킴이 PMC 위성 통제 센터에서는 화면을 송출할 때 일본 해군 함대와 대한민국 해군 1함대와 기동전단을 따로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구분하고, 또 각 함선에 함선명까지 표기하여 보내주었다.
덕분에 청와대에서는 보다 보기 편해진 화면으로 일본과 벌어지는 해상 전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허허, 적은 숫자에도 잘 싸우고 있군요.”
윤재인 대통령은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붉은색 일본 함정과는 반대로, 적은 숫자에도 어떤 피해도 없어 보이는 아군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 상황을 알지 못할 때는 걱정을 했는데, 막상 전투 상황을 알게 되니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이다.
사실 전력 면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일본에 비해 열세란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비단 일본만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었고, 대한민국 해군도 이견이 없었다.
그렇기에 출전을 하면서도 목숨을 바쳐 막겠다는 각오로 전투에 임했는데, 드러난 결과는 정반대였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력으로 일본의 네 개 함대를 맞아 되레 우세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일본의 군함들의 숫자가 무려 10여 척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벌써 반쯤 침몰한 군함들도 상당했다.
그에 반해 아군의 함선들은 전혀 피해가 없었다.
그때, 이상한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정 장군.”
“예, 대통령님.”
“저기, 우리 아군 군함의 뒤에 있는 저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윤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검은 상자는 가끔 작은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는데, 화면에는 어떠한 표시도 없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정승환 대장도 별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승환 대장은 고개를 돌려 해군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이제동 사령관, 저게 뭔지 알려줄 수 없습니까?”
실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이제동 사령관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흠, 저, 그것이… 저것은 바지선입니다.”
“바지선?”
이제동 해군 사령관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쟁이 한창인 곳에서 무슨 이유로 바지선이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이제동 사령관은 바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사실 우리 해군의 함선 수는 일본 해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그렇지요.”
“예. 근래 최신형 군함이 건조되었다고 하지만, 일본이 취역시킨 군함들의 숫자에 비해 너무도 부족하지요. 그래서 해군 장병 중 한 명이 이번 전쟁에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아이디어요?”
“네, 그렇습니다. 함대함 전투에선 원거리 타격 무기인 미사일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그리고 미사일에는 군함을 파괴하는 대함미사일이 있으며… 그런 이유로 부족한 함선을 대신해 적의 대함미사일을 요격할… 천하 디펜스에서 개발한… 그래서 바지선에 대량의 요격미사일을 싣고 전장에 끌고 간다면 부족한 전투함을 대신해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아, 기발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이제동 사령관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족한 함선 숫자를 대신해 바지선에 요격미사일을 싣고 전장에서 사용한다는 생각을 하다니.
사실 군함을 파괴하는 데에는 한 발 또는 두 발 정도의 대함미사일이면 충분했다.
다만, 중간에 요격을 받을 것을 감안해 많은 숫자의 대함미사일과 그 이상으로 요격미사일을 싣는 것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전투함의 숫자에서 밀리다 보니 요격미사일의 숫자나 대함미사일의 숫자 또한 일본 해군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 아군이 발사한 대함미사일이 중간에 요격될 가능성이 높고, 또 그와 반대로 적이 발사한 대함미사일을 요격할 미사일이 부족해 피격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해군은 이런 문제를 최신형 요격미사일의 성능을 활용해 해결하였다.
다수의 바지선을 동원해 부족한 요격미사일의 숫자를 채우고, 요격미사일을 실어야 할 전투함에는 보다 많은 숫자의 대함미사일을 탑재하였다.
즉, 전투함과 바지선이 각각 역할별로 미사일을 분담한 것이다.
전투함은 적 군함을 목표로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 적의 대함미사일은 바지선에 싣고 있는 요격미사일을 원격으로 조종하여 막아냈다.
그랬기에 조금 전 화면에서 바지선이 가끔 작은 불꽃을 피워 올리는 장면이 보였던 것이다.
의문이 풀리자 대통령과 장군들은 다시 느긋하게 전투를 지켜볼 수 있었다.